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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선덕제

작성자열기|작성시간09.11.21|조회수88 목록 댓글 0

선덕제

신라 27대 선덕여왕은 부인사를 창건하여 신라 왕실의 안녕을

비는 원찰로 삼는것을 비롯하여 경주 첨성대,황룡사를 지었느데

600년초에는 백제가 대야성(지금의 거창)을 침공하여 신라

서북부를 두고 영토 전쟁이 활발할때 달구벌은 빼았겨서는 안될 중요한 요충지로 삼았고 가까운 경주를 두고 팔공산에 원찰을

세우고 1년에 몇차례 왕림하여 팔공산을 지키도록 힘을 썼습니다.

 

 신라 26대 진평왕은 아들이 없이 딸만 셋을 두었는데 맏딸이

선덕여왕이고, 둘째딸은 선덕여왕의 종숙모 즉 태종무열왕(김춘추)의 어머니가 되었으며, 셋째딸은 백제 무왕에게 시집가

의자왕의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선덕여왕은 의자왕의 큰이모가 됩니다.

 

선덕여왕의 셋째동생 선화공주은 절세 미인으로 백제로

시집가게 된 연유는 백제 29대 법왕의 아들

서동(후에 무왕이됨)이 그를 사모한 나머지 서동요라는

노래를 지어  신라에 펴뜨렸답니다.

그런데 그 가사는 셋째 여동생을 왕자가 이미 동침을 하였다는 내용인데 화가난 아버지 진평왕이 ?아보내다시피 하여 시집을 보냈답니다.

백제 무왕은 요사이 말로 표현하면 천하에 둘도없는 제비족인

셈입니다.

아버지가 죽자 왕위에 오르니 그가 30대 무왕입니다.

 

 신라는 선덕여왕때 부터 국운이 일어났고 그 다음왕 진덕여왕은 선덕여왕과는 4촌간으로 김유신,김춘추 같은  인물이 배출되었으며 다음왕 29대 태종무열왕이 3국통일의 기반을 열게됩니다. 신라는 여왕이 큰일을 하였고 또 51대 진성여왕때  부터 기울어지기 시작하였읍니다.

하기야 요사히 국제대회에서 이름을 떨치는 것도 여자이지만 ........,

 그리하여 경주 김씨들은 매년 선덕여왕을 기리며 부인사에서

스님들과 어울려 제사를 지내니 이를 선덕제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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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원문 : 김창제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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