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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9화 <부부> 42화. 그의 비자금을 눈감아 주는 것 + <법정> 12화. 옛 절터에서

작성자유정민|작성시간26.06.11|조회수36 목록 댓글 0

379<부부> 42. 그의 비자금을 눈감아 주는 것

 

  “머리가 많이 길었네, 이발이나 하고 와야겠다.”

  모처럼 일찍 퇴근한 그가 말했다. 그가 옷을 갈아입으러 안방으로 들어가자, 주방에서 식사준비를 하던 그녀는 옷을 챙겨주러 따라 들어갔다.

  그런데 문을 열자, 그가 옷장 위로 손을 올리고 있다가 화들짝 놀라는 것이 보였다.

  “이런 걸 여기다가 숨기고 피우면 되나?”

  그녀는 그를 밀어젖히고 옷장 위로 손을 올려 더듬었다. 그녀는 그가 집에서 담배를 못 피우게 하니까 옷장 위에 숨겨 두고 몰래 피는가 하고 생각했다. 그러자 눈을 껌뻑이며 조급해 하는 남편.

  더듬거리던 그녀의 손에 무엇인가가 잡혔다. 그런데 그것은 담배와는 다른 느낌의 봉투였다. 손으로 집어 열어보니 봉투 안에는 20만 원이 들어 있었다. 순간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 느낌에 가슴이 내려앉았다.

  ‘아니 이 사람도 이런 짓을 하나? 나만 바보같이 살았구나.’

  그렇게 믿었던 그가 이렇게 뒤통수를 치다니.

  그 적은 월급 쪼개 쓰면서도 불평 한 번 하지 않고 묵묵히 살아왔는데, 가족들 먹여 살리느라고 고생하는 남편이 안됐다고 안쓰러워했는데, 누구 남편은 잠자는 사람 깨워서 옷 사입을라며 돈 봉투를 쥐어둔다는데.

  어떻게 이 인간은 고생하는 마누라는 안중에도 없고 자기 혼자 쓰겠다고 비상금을 만들 수 있단 말인가!

  그녀는 머리가 핑 돌 것 같았다.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아무 이야기도 하고 싶지 않아서 획 돌아서 주방으로 갔다.

  “이거 그런 거 아냐, 회사에서 휴가비라고 나왔는데 돈도 조금이고 해서 창피해서 내놓기도 뭐하고 해서 그냥 여기 둔 것뿐이야.”

  그가 봉투를 들고 그녀를 따라오면서 변명을 했다.

  그녀는 그런지도 모르고 ‘올해에는 회사가 어려워서 휴가비도 안 주나보다’ 하는 생각에 피서를 가자는 말도 하지 못했었다.

  “그냥 자기 써라.”

  그가 식탁에 봉투를 놓고는 이발을 하러 나갔다. 마지못해 그런 기색이 역력했다.

  “절대로 안 써. 치사해서 안 쓴다고.”

  그녀는 그의 뒤통수에 대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녀는 이발하고 돌아온 그에게 저녁 밥상을 차려주고는, 말도 하기 싫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그가 출근한 뒤에 보니 돈 봉투는 여전히 식탁 위에 놓여 있었다. 그녀는 돈을 보면서 생각했다.

  ‘이걸 그냥 들고 나가서 다 써버려? 어차피 공돈인데, 좋은 일 하는 셈치고 어머님께 드릴까? 아니면 모처럼 회식이나 할까?’

  그녀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하지만 저녁이 되자 생각이 바뀌었다. 그녀는 결론을 내렸다. 남편에게 돈을 돌려주기로.

  하루 종일 생각해 보니, 겨우 20만 원을 숨겨 놓고 그렇게 쩔쩔매던 그가 조금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도 뭔가 필요한 게 있으니까 그랬겠지.’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나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녀 스스로 그런 생각을 한 것이 기특하게 여겨지기도 했다.

  그는 그저 처분만을 기다리면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그녀는 그에게 봉투를 건네주었다.

  “당신 용돈이 많이 부족했나본데, 이거 당신이 쓰려고 했던 것이니까 당신이 써. 그리고 애들한테 용돈 좀 주고.”

  그가 감동에 겨운 표정을 지었다.

  애들은 모처럼 받은 거금을 들고 기뻐했다. 그녀는 자신의 현명한 결정이 나은 결과를 보면서 뿌듯했다.

  어쩌면 그가 숨겨 놓은 비상금이 더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냥 눈감아 주기로 했다. 한 푼에 목숨 거는 주부들도 불쌍하지만, 벌어오는 남자들이라고 해서 다를 바는 없다고 생각했다.

 

비자금 없는 남편은 머리카락을 잃은 삼손과 다를 바 없습니다. 사회생활, 특히 직장생활의 핵심은 사람들과의 어울림입니다. 어울리는 데 있어 돈은 ‘실탄’입니다.
그가 약간의 실탄을 숨겨 놓았다고 해서, 그것을 이기적인 행동으로 몰아붙일 이유는 없습니다. 궁극적으로 그것은 생존을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법정> 12화. 옛 절터에서

 

  산에만 묻혀서 사느라면 별로 꿈이 없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생활 자체가 단순하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내 침상머리에는 이따금 꾸어지는 꿈이 있다. 꿈이란 따지고 보면 다 허무맹랑한 것이지만, 맑은 꿈을 꾸고 나면 생각도 맑아지고 언짢은 꿈에는 어두운 그림자 같은 것이 드리워지게 마련이다.

 

  잣나무와 전나무가 빽빽이 들어찬 숲길을 휘적휘적 걸어가고 있었다. 맑은 시냇물이 바위에 부딪치며 줄기차게 흘러내리는 골짜기를 따라 한참을 올라가니, 저만치 벼랑 위에서 폭포가 시원스럽게 쏟아져 내린다. 가까이 다가서기도 전에 휘날리는 물보라로 얼굴이 차갑게 느껴진다. 요란한 폭포소리를 뒤에 두고 모퉁이를 돌아섰을 때 훤히 트이는 시야. 푸른 서기(瑞氣)가 뻗쳐오르는 덤불 속을 헤치자 바위 틈에서 맑은 샘물이 콸콸 솟아오른다. 둘레를 살펴보았다. 풀더미 속에 여기저기 주춧돌이 박혀 있다. 퍼렇게 이끼가 낀 축대가 반쯤 허물어진 채 쌓여 있다. 아하, 옛 절터로구나.

  갑자기 배 떠난 뒤의 나루처럼 허전한 생각이 스며들었다. 지붕에 잡초를 잔뜩 이고 있는 퇴락한 전각(殿閣)이 한 채 눈에 띈다.

비바람에 삭았는지 문종이가 너덜너덜하다. 조심스럽게 문고리를 잡아당긴다. 곰팡이 냄새가 가득 담긴 법당 안은 단청빛이 바랄 대로 바래져 희미하다. 언뜻 보니 맞은쪽 탁자 위에 오래된 불상인 듯 얼마쯤 금박이 벗겨져 나간 좌불(坐佛)이 한 분 계신다. 불상을 대하자 그 자리에 엎드려 예배를 드렸다. 향화(香華)가 끊어진 빈 절터에 부처님(佛像)만 홀로 계시는구나 싶으니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무수히 예배를 드리면서 속으로 ‘고사무거승(古寺無居僧)’을 뇌이었다. 그러자 홍안에 기골이 늠름한 노장님 한 분이 나타나 종을 쳤다. 그 소리에 눈을 떴다. 아랫절에서 울려오는 새벽 종소리.

  이것이 지난밤에 내가 꾼 꿈이다. 꿈치고는 너무도 사실적이라 깨고 나서도 생시인지 꿈인지 어리벙벙했다. 나는 이와 비슷한 꿈을 몇 차례인가 꾼 적이 있다. 그때마다 문득문득 옛 절터를 찾아가고 싶은 충동으로 들뜨곤 했었다. 지난해 가을, 보조암(普照庵) 터를 찾아갔을 때 축대와 돌층계만 남은 자취를 보고 세월의 덧없음에 감회가 무량했었다. 고려 중엽 최씨 일파의 무단독재(武斷獨裁)가 살기등등하게 설치던 시절, 지눌(知訥) 보조국사는 남으로 내려와 이 암자를 짓고 머물렀다. 그 암자가 이제는 풀더미 속에 빈터만 남은 것이다. 그날 눈이 시리도록 푸르른 하늘 아래 주렁주렁 빨갛게 매달려 있던 고목 가지 끝의 감이 내 기억의 바다에는 아직도 떨어지지 않고 있다.

  지금은 그 이름조차 잊어버리고 말았지만, 어느 해 여름 지리산 자락에서 맑게 고인 샘과 돌담만 남아 있던 옛 암자터를 보았을 때의 그 적막과 허무감, 그것은 마치 전란이 지나간 뒤 서둘러 찾아간 정든 모교가 잿더미로 화해버린 것을 보았을 때의 그런 허무감이었다. 그때 그 암자터에 쓸쓸히 피어 있던 달맞이꽃이 내 기억의 터전에서 이 여름에도 피고 있다.

여름이 가면, 나는 오늘 새벽, 꿈에 본 그 절터를 찾아 나설 것이다. 거기 고인 샘물로 오늘의 이 갈증을 달래리라.

 

시조 한 수

 

   <대부도>    유정민 

         

여든 넘어 만난 친구 왜 이리 반가운지

얼굴엔 주름 늘고 백발 다된 머리카락

그래도 떠오른 얼굴 교모 쓴 너의 얼굴

 

지난 세월 비바람에 깎이고 삭았는지

늘어진 몸이지만 마음만은 달려갈 듯

가는 시간 너만 가라, 우리는 어깨동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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