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드 모네 의 노적가리(건초더미) 연작

클로드 모네 (1874년)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순간에서 영원으로
"이제 여기 새로운 이름하나가 기록되어야 한다.
클로드 모네는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었다.......
색채의 조화에 대한 탐닉,.......
사물을 보는 눈과 보는 사람의 주의를 포착하는 방식의
대담성이라는 면에서 그는 이미 높은 경지에 이르러 있다.
앞으로 우리는 반드시 그를 기억해야 할 것이다."
비평가 폴 망츠 <살롱 1865> [가제트 데 보자르]에서
"저는 지금 각기 다른 효과를 내는 연작물에 끈질기게 매달려 있습니다.
일이 진행되어 갈수록 더욱 절실히 느껴지는 것은,
제가 바라는 것을 찾기 위해서는 한층 더 열심히 작업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어설픈 솜씨로는 될 성싶지 않습니다.......
제 느낌을 전달해야 할 필요성을 점점 더 많이 느낍니다.
그리고 너무 무력해지지 않고 좀더 오래 살 수 있기를 기도 합니다.
아직 진보를 이루었다고 생각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1890년 10월 7일, 귀스타브 제프루아에게 보낸 편지中에서-
사물의 모습을 시시각각으로 변화시키는 빛의 발산과정을 끈덕지게 추구하던 모네는
그 이전에 단발로 그치는 개별 작품보다는 연작 작품을 통해 "빛"의 변화에 골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처음으로 제작한 연작은 20여점 가량 되는 지베르니의 노적가리 시리즈였다.
1891년 초 부소,발라통 화랑은 모네의 그림 석점을 각각 3000프랑에 구입했다.
이 전시로 모네와 미술상 뒤랑 뤼엘은 그 이전의 불화도 청산하고 다시 교분을 나누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1891년 4월 3일 피사로가 그의 아들 루시앙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이 연작시리즈기 즉각적 성공을 거두었음을 알 수 있다.
" 사람들은 오직 모네의 그림만 원한다. 수요만큼 다 그리지도 못할 거다.
모두<노적가리: 저녁 무렵 인상...>에 열광하는 걸 보면 정말 놀랍다.
그리는 족족 4000~6000프랑에 미국으로 팔려 나간다.
'클로드 모내의 최근작'이라는 제목의 전시회에서 피사로는 또한 이렇게 격찬했다.
" 이 그림들은 찬란한 빛을 발하는 것 같다. 말할 것도 없이 대가의 작품이다.
색채는 강렬하기보다 오히려 예쁘다는 인상을 주고 밑그림 솜씨도 뛰어나다. 배경 부분에서
다소 옆길로 샌 듯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대단한 화가이다!
대성공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작품 모두 너무나 매혹적이어서 성공은 당연하게 느껴진다.
그의 그림에서는 만족감이 풍겨 나온다"(1891년 5월 5일)
모네의 노적가리에서의 주인공은 건초더미가 아닌 저 역광의 "빛"이다
자유로운 붓터치와 하늘과 땅이 알맞게, 같은 주조색이 녹아 흐르는 통일감이 느껴지는,
더이상 뺄것이 없는 저 너울거리는 흰빛에서 느껴지는 자유로움!!!
캔버스에서 캔버스로 이어진 긴 일생을 변화하는 빛과 색채를 포착하는 데 아낌없이 바쳤던 클로드모네.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팔레트를 바꾸어 가며 순간을 영원으로 남긴 모네는 1864년에 공개한
<인상, 해돋이>로 보수적인 미술평론가들에게는 멸시를 받았지만 천편일률적인 화단에는
신선한 충격과 자극을 던져 주었다.
빛에 따라 같은 대상이 얼마나 다르게 보이는가를 입증한 모네의 그림들은
인상주의의 탄생을 알리는 축전이다.
우리는 추억할때 어떤 한 순간을 떠 올리며 감성에 젖고
아름다운 영화나 소설속에서도 그 많은 장면 중에서 어느 한 장면에 감동을 받고,
오랫동안 각인되어 우리의 정서를 물들인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그 아름다운 '순간'을 있는 그대로 포착하기 위해 매 순간 노력했으며
그것들을 그들만의 조형언어로, 색채로 표현해 낸것이다.
우리는 그 아름다운 순간을 이렇게 같이 호흡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