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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수필

♤ 현실을 기꺼이 감수하라(2)

작성자김영배|작성시간26.06.10|조회수19 목록 댓글 0

현실을 기꺼이 감수하라(2)

 

여러분이 다 불평하시는 것처럼 "하나님, 이게 뭡니까?" 이것이 욥이 하는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살 걸 왜 태어나게 하셨어요? 나 죽으면 그만인데, 왜 그러세요? 왜 나를 과녁으로 삼으세요? 나 하나 죄를 범한들 하나님께 무슨 누가 되겠어요?" 이것이 욥의 불평이고 또 우리의 불평 아닙니까? 그런데 아니라는 것입니다. "너는 그런 존재가 아니야. 너는 내 아들이란다." 하나님이 그러는 것입니다.

 

그 영광과 그 명예를 고난으로 얻어야 한다는 것이 선뜻 마음에 안 드실 것입니다. 그러나 살아보십시오 하나님이 타협하는 인생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대강 살도록 놔두시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미 예수님 사건에서 봤습니다. 겟세마네 기도에서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하였더니 정말 십자가에 달아 죽이셨지 않습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 뭐라고 비명을 지르셨습니까?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였습니다. 그 기도를 하고 하나님께 항복하고 오니까. 그 비명을 질러야 하는 길에 내놨다는 말입니다.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5:7). 그래서 어떻게 되었다고 합니까?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5:8). 무슨 고난을 말합니까? 육체에 붙잡혀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식에 자기를 내어놓은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신다는 사실에 대한 증인이 됩니다. 우리 모두의 삶이 그 길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그런 것입니다. 그것은 창조 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의지, 그 회복과 완성의 의지를 보이는 것입니다.

 

욥한테 그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말씀이 육신으로 되어 온 예수, 그의 약속을 구체화하여 우리 모두의 삶이 어떤 삶이고 우리 존재와 운명이 무엇인지를 보인 하나님, 구체적으로 폭풍우 속에 찾아오시는 하나님은 '너의 뭐든 사소해 보이고 아무것도 아니고 무심해 보이는 세계 속에서 보라. 네가 산 염소 새끼 치는 때를 아느냐?'고 묻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 네가 누군지 아느냐? 다만 고통을 면하는 것이 다라고? 넌 내 자식이다." 이러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드디어 보이게 나타나셨습니다. 그의 억울함과 비명과 아우성 속에 하나님이 계셨고 하나님이 그 길로 미셨습니다. 야곱과 씨름에서 우리가 이미 봤습니다. 여러분의 현실을 기꺼이 감수하셔야 합니다. 억울한데 감수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경이로운 하나님의 일하심이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걸으신 바로 그 길이 산 증거입니다. 아셔야 합니다.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하고 자존심을 확인하는 그런 정도로 만족하셔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오늘도 맹렬하게 현실 속에서 나한테 도전을 보내십니다. "너는 너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너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래? 고통을 면하는 것이 다냐? 너는 내 자녀니라." 그렇게 찾아오시는 말씀입니다. 억울하지 않습니다. '힘들지만, 우리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우리를 유익 되게 할 뿐이다'라는 유명한 명언이 있습니다. 누가 했는지는 기억이 안 납니다. 그 이야기대로입니다. 예수 믿는 위대함을 기억하시고, 하나님이 답하고 계시고 옆에 계시고 매일 계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신앙고백의 위대함을 아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 박영선, 욥기 설교, p.468~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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