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아이들/ 염정임
| 어느 날, 옛날 편지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한 편지뭉치 속에서 15,6년 전에 군대에 간 아들이 보낸 편지들이 나왔다. 누렇게 변해버린 시험지에 아들이 삐뚤삐뚤한 글씨로 쓴 편지였다. …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던 자등의 바람도 이제는 따스한 봄바람으로 변해 대지를 푸르게 물들이고, 꽃 망울진 가지를 흔들며 스쳐가고 있습니다. 위병소 앞에 있는 살구꽃은 벌써 만발하여 지루하던 겨울이 끝났음을 상기시켜 주고 있습니다. 저는 아직도 부대 문화화 하기 작업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화장실에는 주옥같은 ‘시’들이 계속해서 붙여지고, 주말엔 베토벤의 피아노 선율이 부대에 울려 퍼지기도 합니다. 저는 그 많은 냉소와 빈축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일련의 작업을 하는 것을 ‘가난한 노래의 씨 뿌리기’로 이름 붙였습니다. … 어떤 편지에서는 제대를 앞두고 느끼는 막막함과 장래에 대한 불안감을 읽을 수 있었다. 나는 편지에 몰입해서 그 당시의 기억을 더듬으며 아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가족들이 면회 갔을 때, 검게 탄 얼굴과 짧게 깎은 머리로, “… 말입니다요….”하며 이상한 말투를 써서 다른 사람 같아 보였던 생각도 났다. 그런데, 그때 거실에서 어린 여자애들의 웃음소리가 들려 왔다. 까르르 하는 웃음소리와 함께 통통거리며 뛰어 다니는 소리도 났다. 나는 순간적으로 형용할 수 없는 시간의 단절감을 느꼈다. 그것은 내가 처음으로 경험한 이상하고도 신비한 체험이었다. 저 아이들은 어디서 온 아이들일까? 갑자기 내가 처한 현재의 시간이 너무나 낯설게 느껴졌다. 나의 현재가 하얗게 바래져 시간도 공간도 초월한 무중력 상태에 떠 있는 듯했다. 마치 그 15,6년 동안의 시간이 사라져 버린 듯, 아무 기억이 안 났다. 그리고는 찰나의 환각에서 깨어났다. 이 아이들은 바로 그 시간의 선물인 것이다. 모든 존재는 시간의 산물이다. 시간은 존재를 생산하기도 하고 거두어 가기도 한다. 찰스 램의 <꿈속의 아이들>이란 작품에서, 아이들은 “우리들은 당신의 아이들이 아니에요. … 우리는 그저 꿈이랍니다. 우리는 단지 존재할 수도 있었던 것에 불과할 뿐이오.” 라며 점점 사라져간다. 그런데 이 아이들은 어디서 온 것일까? 먼 우주의 끝에서 셋이 손을 잡고, 점점 커지면서 불쑥 우리 집 거실에 나타난 것 같다. 어느 별에선가 꽃씨 하나 떨어져 이 땅에서 싹이 나고 자라 꽃 한 송이로 핀 것 같은 존재들. 그들은 만돌린 소리 같은 웃음을 웃기도 하고, 시냇물이 흘러가듯 조잘조잘대기도 한다. 마치 은방울꽃이 흔들리는 것 같은 세 자매의 몸짓…. 그들은 흰 종이 위에다 계속 무지개, 해와 달을 그린다. 그들 속에서 어린 시절의 나를 본다. 자매는 그때의 나처럼 수줍고 부끄러움이 많다. 나의 어린 시절, 나의 미래가 궁금했었다. 그때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제일 먼 미래는 20대나, 30대였다. 지금, 이 나이의 나는 상상의 한계 밖이었다. 시간이란 강물은 나를 노년의 언덕으로 싣고 왔다. 아이들 등교 길에 함께 가면서, 나도 그 옛날 초등학교 때의 어린아이가 된다. 어느 날 어머니는 좋지 않은 꿈을 꾸었다며 아버지께 나를 학교에 데려다 달라고 부탁하셨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나는 혼자 학교에 가게 되었다. 신작로 길을 걷고 있던 중 건너편에 있던 남자애들이 던진 돌에 맞아 이마에 피가 흐르고 병원에 가는 소동이 났었다. 지금도 선명히 기억되는 돌을 맞은 순간의 그 절벽에 부딪친 것 같던 고통. 그 이후 학교에 가는 일이 두려웠다. 학교는 멀고도 멀었다. 자매는 횡단보도를 건너, 굴다리 이래를 지나고, 아파트 단지를 거쳐서 학교에 간다. 이 아이들에게도 등교 길은 먼 길일 것이다. 지난 가을엔 은행잎이 떨어져 노란 카펫이 깔린 것 같던 그 길은 그들에게 어떤 그림으로 기억될까? 빗방울이 떨어지면 강물이 불어나고, 바다에 이르러서는 다시 증발하여 구름이 되는 이 순환의 법칙에 우리의 삶도 비껴날 수 없을 것이다. 구순을 바라보는 어머니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며 스크린 속 같은 희미한 영상을 붙잡으려 애쓰신다. 어머니에게는 5, 60년 전이 바로 며칠 전 같기도 하고, 어제 오늘 일이 아득한 옛날 같아 보인다. 가끔 시간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기도 한다. 언젠가는 나에게 “너 많이 컸구나. 이제 건강한 어른이 되었네.”라고 말씀하셨다. 어머니에게 나는 아직도 병약한 어린 아이였나 보다. 우주 안에서 나의 존재는 어머니와 내 자식들, 그리고 그들의 아이들을 잇는 하나의 고리가 아닐까? 시간은 가끔 숨바꼭질하듯 모습을 숨기기도 하고, 여울물처럼 어지럽게 휘돌기도 하지만, 여일하게 영원을 향해 흘러간다. 생명을 가진 존재들은 언젠가는 시간 밖으로 사라진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불가항력적인 ‘사랑’이라는 유전자가 내재해 있어 생명은 생명으로 이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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