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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편지 / 김국현

작성자김영중|작성시간26.06.15|조회수20 목록 댓글 0
어머니의 편지
김국현


오랜만에 우체국에 갔다. 큰아이의 결혼 청첩장을 보내기 위해서였다. 창구는 편지를 보내려는 사람들로 분주했다. 전화나 이메일로 쉽게 연락하는 요즘 세상에서도 편지를 쓰는 사람들이 참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사람들은 연인이나 친구, 부모님에게 안부를 묻거나 자신의 진솔한 감정을 글로 표현하고자 할 때는 편지를 즐겨 이용하는가 보다.
하긴 편지로 받아보는 사연은 전화나 이메일에서는 느낄 수 없는 깊은 맛이 있다. 전화나 이메일같이 기계를 이용하는 것은 어쩐지 삭막하게 느껴지지만, 편지는 보낸 사람의 체취가 묻어 있어 그런지 더 정감 있게 다가온다. 각종 고지서와 홍보물만 가득 들어 있는 우편함에서 육필로 쓴 봉함편지를 받아 본 것이 언제였던가.
나도 학창 시절에는 편지를 자주 썼다. 공부를 핑계로 부모님을 찾아뵙지 못할 때는 죄송한 마음에 편지로 인사를 대신하곤 했다. ‘부모님 전상서’로 시작하는 편지는 부모님의 안부를 여쭙는 내용이 주를 이루다가, 말미에 소위 ‘향토 장학금’이라는 명목으로 용돈이 필요하다는 속내를 드러내곤 했었다.
내가 한창 공부에 열중하던 그해 겨울은 학교 근처에 고시 준비생들이 기숙하는 건물에서 지냈다. 하루는 건물 앞 단골 밥집에서 저녁을 먹고 방으로 돌아오니 집주인이 편지 한 통을 건네주었다. 한눈에 고향에 계신 어머니에게서 온 것임을 알아차렸다. 글씨만 보아도 어머니를 본 듯 반가웠다. 글자 모양은 옛 글씨체로 되어 있었고, 된소리 받침은 소리 나는 대로 적고 모음도 읽기 쉬운 대로 써 내려갔다. 하지만 펜으로 한 자 한 자 정성스레 쓴 글씨를 보노라면 절로 감동이 이는 그런 글 솜씨였다.
그 편지는 ‘자랑쓰러운, 우리 아들에게’로 시작되었는데, 어머니의 자식 사랑이 듬뿍 담겨 있었다. 첫 구절을 읽는 순간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당시는 시험이 얼마 남지 않은 때여서 잠시도 쉴 틈 없이 책과 씨름하며 정신력으로 버텨나가던 시절이었다.


엄마는 너에 성공을 민는다. 너는 우리 지베 자랑이라, 지그믄 어려울찌라도 조그만 참꼬 견디거라. 나는 맨날 너에 합껴글 빌고 또 빌고 잇따. 잘 쳉겨주지도 모탯는데 아직또 잘 참꼬 시험 준비해 주니 차므로 고맙따. 아버지의 못따 이룬 꿈을 네가 이루어 드려라.


나는 눈물을 훔치며 편지를 읽고 또 읽었다. 떨어진 눈물에 글씨가 번져 잘 보이지 않는 곳도 생겼다. 그날 이후 내 책상 앞에는 어머니의 편지가 합격 통지서를 받던 날까지 줄곧 붙어 있었다. 공부하다 지치면 쳐다보며 마음을 다잡곤 하던 내 인생의 이정표였다. 그렇게 어머니는 시험 준비를 하던 내내 나와 함께 계셨던 것이다.
몇 해 전 고향 집에서 어머니의 일주기를 맞았을 때, 나는 어머니에게 올리는 편지를 썼다. 가족들 앞에서 ‘사랑하는 어머니에게’로 시작되는 첫 문장을 읽어 내려가면서 목이 메기 시작했다. 그 편지는 평생 자식의 행복을 위해 희생하신 어머니에 대한 감사와, 이제는 우리들 걱정 그만하고 하늘에서 평안히 영생을 누리시라는 내용이었다. 생전에 지극하던 어머니의 사랑은 돌아가신 후에도 내 마음에 감동을 주고 계셨다.
이제 봄이 오면 어머니의 산소를 찾아가서 큰아이가 결혼하여 착한 손부(孫婦)를 맞았다는 소식도 전해 드리고 어머니의 안부도 여쭙는 편지를 써서 읽어 드리련다. ‘이 세상에서 제일 자랑스러운 어머니에게’로 시작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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