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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초상 / 엄정식

작성자김영중|작성시간26.06.17|조회수13 목록 댓글 0
노년의 초상  / 엄정식

지난 21일 70대의 귀농인 김 모 씨가 경북 봉화군 소천면에서 벌인 엽총 난사 사건은 우리에게 매우 큰 충격을 주었다. 경찰에 따르면 김 씨는 그날 오전 9시 13분 소천면에 사는 이웃 주민 임 모 씨에게 엽총을 쏴 어깨에 상처를 입혔다. 그리고 20여 분 뒤인 9시 33분께 소천면사무소에 들어가 계장 손 모 씨와 주무관 이 모 씨에게 총을 발사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사건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우선 '물' 다툼과 민원 처리 등으로 인한 이웃 간의 갈등이 그 원인인 것으로 드러나면서 귀농이나 귀촌의 어려움에 대해 다시 조명할 계기가 된다. 울분을 참지 못하고 쉽게 분출하는 한국인의 기질이나 성향에 대해서 근원적으로 성찰해야 하는 기회도 마련해 준다. 총기의 엄격한 규제에 관한 문제도 새삼스럽게 제기된다. 또한 오늘날 이 땅에서 우리는 어떤 자세로 노년을 맞이해야 하는지에 대한 과제도 동시에 안겨준다. 특히 노인 범죄가 늘어나는 현상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최근 통계에 의하면 노인 범죄가 늘어난 것은 고령 인구 증가의 영향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전체 범죄 건수가 줄어드는 가운데 노인 범죄가 급증하는 것도 최근의 추세다. 65세 이상 인구 1만 명 당 강력·폭력범죄 피의자 수는 2012년 26명에서 2017년 31명으로 늘었다고 한다. 노인들이 과거보다 평균 수명이 높아지고 사회활동 기간도 길어지면서 생긴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노인들의 권위주의적 사고방식을 문제의 원인으로 꼽기도 한다. 전통적 사고에 익숙한 노인들은 나이에 걸맞게 대접받기를 원하지만,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많다 보니 불만과 소외감, 무시당하고 있다는 억울함을 느낀다는 것이다. 이런 감정들이 쌓여 극단적 범죄를 유발한다는 분석이다. 의료계에선 노화가 진행되면 고집이 세지고 호르몬 변화로 분노 조절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있다는 점도 지적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노년에 들어서도 자기 성찰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는 점일 것이다.

미국의 저명한 정신과 의사인 얄롬(Irving Yalom) 박사의 최근 저서 『나 자신이 되기』(Becoming Myself)는 저자 자신이 진정한 자기 자신으로 되어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려낸 자전적 회고록이다. 그것은 이제 86세의 나이에 이른 그가 지난 50여 년간 심리치료사로서의 역할을 자기 자신에 적용한 체험적 삶의 기록이기도 하다. 그중에서도 특별히 감동적인 부분은 마지막 장인 "노년에 이른 풋내기(Novice at Growing Old)"이다. 여기서 그는 자신이 80대에 새로 들어선 풋내기임을 고백한다. 지금까지 익숙하다고 여겼던 환경이 점차 낯설게 느껴지고 기억력이 갑자기 약해질 뿐만 아니라 신체의 이곳저곳이 아프고 쑤시기 시작한다. 그러나 풋내기로서 삶에 대한 열정과 의욕은 여전하고, 열심히 일하면서 즐기며 살아가고 싶은 의지도 한결같다. 이것은 얄롬 박사 자신의 모습이며, 동시에 노인들 대부분의 자화상이 아닐까.

아무리 오래 살았어도 우리에게 모든 순간은 낯설고 새로운 시간일 뿐이다. 환경이 시시각각으로 급변하여 전통적인 세계관이나 인생관, 가치관을 지탱하기 어려운 이 격동의 시대에는 환경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도 더욱 낯선 모습으로 다가올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처해있을수록 자신이 인생의 '풋내기'일 뿐이라는 사실을 더욱 절감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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