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침향/정성화 추억이란 어디선가 불어와 가슴 언저리에 처억 걸쳐지는 바람일까. “저 집이 미옥이네 집이었어” 지름길을 두고 동네 외곽으로 접어든 남편이 가리킨 집은 시골 마을에 어울리지 않게 붉은 벽돌로 지은 이층 양옥집이었다. 나지막한 담은 온통 아이비ivy로 덮여있어 고즈넉한 분위기를 풍겼고, 정원에는 향나무와 소나무, 목련과 무화과나무가 잘 어우러져 마치 수목원처럼 보였다. 미옥이는 남편이 초등학교 때부터 좋아했던 여학생이다. 사십 대 중반에 들어선 아저씨가 오랜만에 내려간 고향마을에서 옛 여자 친구의 집을 찾아 나선 것이다. 지금은 살고 있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그 집 쪽으로 걷고 있는 그에게 나는 이것저것 캐묻지 않는다. 미술 전시회에 가서는 그저 눈으로 감상할 뿐, 그림에 손을 대지 않는 것과 같다. 미옥이는 성격이 온순하면서 차분했고, 명민하면서 예의가 발랐다고 한다. 그녀의 우아한 미모 때문에 고향 마을이 환해 보였다며, 시누이는 내가 묻지도 않은 얘기를 했다. 원래 시누이는 자기 동생의 주가를 올리기 위해서 동생의 옛 여자친구에 대해 부풀려 말하기 마련이다. 그래도 나 역시 그녀의 맑고 아름다운 이미지에 마음이 끌렸다. “별로 변한 게 없군” 남편의 혼잣말이 들렸다. 변하지 않은 그 집의 모습처럼 그때 그 소녀 또한 변하지 않았기를 바란다는 의미인가. 속에서 올라오는 질투심을 누르고 그를 위해 배경음악을 깔아주었다. “오가며 그 집앞을 지나노라며 그리워 나도 몰래~~” 나지막이 흐르는 내 노랫소리에 남편이 피식 웃었다. 덩굴장미가 화사하게 피어있는 아치형의 대문을 열고 단발머리 소녀가 뛰어나올 것 같았다. 담이 긴 그 집을 한 바퀴 돌아보면서 내가 말했다. “미옥이도 지금쯤은 살이 쪘을 거야.” “원래 그 집안에는 살찐 사람이 없다.” 아이구, 집안 내력도 잘 아시네, 한마디 하려다가 그만 두었다. 회상에 젖기라도 하듯 그의 발걸음이 더욱 느려지고 있었다. 남편은 듬성듬성 옛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토요일 오후 먼지가 풀풀 날리는 시외버스 주차장에, 한 소년이 마산서 오는 버스를 향해 달팽이처럼 목을 길게 빼고 서 있다. 마산에 있는 여학교에 다니느라고 주말에만 시골집에 내려오는 한 소녀를 기다리는 중이다, 그러나 그는 나무꾼이 선녀를 사모하듯 그녀를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는 ‘미루나무’였다. 고향 마을로 들어서는 시외버스를 맨 먼저 발견하지만 미루나무는 달려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 서서 겨우 잎새 몇 장만 펄럭였다. 복숭아 빛이 도는 맑은 얼굴에 갈래머리를 땋은 여고생과 수줍음 많은 키큰 남학생, 그들의 이야기는 어느 봄날 맥없이 끝나버렸다. 그녀가 유지한 적절한 거리와 반듯한 행동,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는 친절과 따뜻한 거절의 말들이 그녀를 맑고 아름다운 사람으로 추억하게 했다. 남편의 얘기를 들으며 나는 문득 ‘침향’을 떠올렸다. 침향 그것은 오랫동안 참나무를 맑은 강물이나 땅속에 묻어 두었다가 바람에 정성껏 말린 뒤에 얻게되는 향이라고 한다. 열심히 잎을 내고 가지를 내며 살았던 나무가 다시 강바닥에 누워 긴 인고의 시간을 견딘다는 것이다. 그렇게 견디고 나면 오롯이 나무의 혼만 남아 그윽한 향기를 품게 되는 모양이다. 남편의 가슴에 ‘침향’으로 남은 그녀는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그녀는 아마 온유하면서도 사랑스런 아내의 모습으로, 시부모님께는 지극정성인 며느리로, 아이들에게는 상냥하고 친절한 엄마로 살아가고 있을 듯하다. 추억할 게 많은 삶은 축복이다. 무얼 했으며 무엇을 위해 뛰었는지 곁에 누가 있었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삶은 향기가 없다. 어쩌면 내 가슴에 스며있을지도 모를 침향을 위해 마음을 뒤적여 본다. 선연히 떠오르는 얼굴 하나, 남편은 이래저래 복도 많다. 그와 동네를 한 바퀴 돌아 시댁으로 가는 동안, 머릿속에 ‘꿩 대신 닭’이란 말이 자꾸만 떠올랐다. “보소, 내가 닭이요, 꿩이요?”라고 했다. 웃기만 하던 남편이 짧게 대답한다. 다 살아보고 말해준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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