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 / 오세리현
우리는 무수한 만남의 연속을 경험하며 산다. 부모와 자식 가족으로서의 만남이야말로 우주의 신비에 버금가는 각별한 인연이라 할 것이다.
내 사랑 손녀 혜나가 태어 난지 6개월이 되었다. 손녀에게서 아침 이슬과 같은 신선함. 맑음과 밝음을 본다 손녀와의 교감을 통해 즐거운 인생의 전율을 느낀다. 그것은 또한 인생의 다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감이다.
딸이 비혼 을 선포하던 날이 바로 어제 일만 같다. 딸에 비혼 의 말을 들으면서 혹시 지난날 내가 뭔가 자녀교육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였까 하는 자책감이 들곤 했다.
딸은 그렇게 살며 서른 살하고도 두 해 넘기던 가을 어느 날 남자친구와 첫 데이트 날을 약속했다고 했다. 딸이 만난다는 인연이 과연 누구일까. 선택은 성장한 딸이 지닌 지성의 예지와 자유로운 판단에 맡기기로 했다. 순간 딸의 마음을 바꿔놓은 그 청년에 대한 궁금함보다 내 머리 속에서 “그래 정말 잘 생각했다”고 딸에게 말해 주고 싶어 기다렸던 말이 마음 깊숙히 절로 흘러 나왔다.
장성한 자녀가 본인 스스로 결혼 말이 오가면 부모는 상대의 조건이나 손익 계산보다 찬성부터 하라는 집안 어른의 말씀이 생각났다. 요즘 결혼시키기 힘들다고 하신 말씀이었다. 마침내 딸이 결혼 할 기회를 가질 수 있다니, 얼마나 큰 축복이고 행운인가 고맙고 고마웠다.
딸이 결혼 한 후, 은방울꽃처럼 해맑고 섬세한 꽃 모양을 닮은 아기, 혈육의 인연으로 손녀 혜나 를 내 품에 안겨주었을 때 나는 젊음의 다음 장인 할머니가 되었다,
사람들은 내가 힘들 때, 힘이 되어주는 사람, 또 가슴이 따뜻한 사람들을 인연이란 이름으로 그 사람들을 오래도록 마음에 담는다,
문뜩 40여 년 전 미국 유학으로 시작한 나의 삶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이민자의 나라인 이곳은 나에게 새로운 문화와 이질적이고 척박하기 그지없는 환경이었다.
지금까지 그동안 만났던 주변의 많은 사람들의 크고 작은 도움이 있었기에 오늘 내가 여기 반듯하게 서 있을 수 있었으리라.
인연 가운데 빼 놓을 수 없는 분이 있다. 그분은 나의 은사님의 대학원 동기이며 친구이시다. 그분은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나에게 이국땅에서 정착하는데 필요한 일상생활을 챙겨 주시고 친절하게 안내해 주셨다. 자동차 구입 같은 어려운 재정보증까지 도맡아 해 주시며 부모님처럼 진심으로 따뜻하게 돌봐 주셨다.
몇 해가 지난 후 그곳을 떠나 살면서 일 년에 한 두 번씩 반딧불이 반짝이는 캔사스와 태평양 파란 바다를 낀 캘리포니아를 오가며 즐거운 만남을 이어갔다. 그런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중에 그분은 안타깝게도 뇌종양으로 투병하시다가 세상과 하직하셨다.
그분이 환 중 에 잠깐 회복하셨을 때, 살면서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을 초대해 한자리에 모이게 했다. 이 세상 마지막 인사와 사는 동안 고마웠음을 표하는 조촐한 파티를 열었다. 그곳에 참석한 사람들은 돌아가며 그 분과의 에피소드를 하나씩 서로 나누었다.
그날 모인 사람들은 이야기를 듣는 중에 하나로 녹아든 듯 일체감으로 웃었다가 때론 눈시울을 붉히며 진정 뜻 깊고 애틋한 시간을 보냈다.
또한 이 시간은 생과 죽음을 초월 한듯 하지만 헤어져야 하는 시간의 슬픔을 감출 수 없어 못내 애절해함이 아니었을까.
생의 마지막 남은 시간을 병상의 혼돈 속에서도 찾아온 친구, 지인들과 차분하게 전심을 다해 마무리하셨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좋은 인연과 이별의 시간이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한 장면 하나하나가 가슴으로 느껴져 에이듯 아프고 또 몹시 그리워진다. 인연이 다 하면 모든 것은 인연 따라 흩어지고 사라지는 것임을 알아내는 것이다
인생에 있어서 인연은 신비스럽고 친밀하며 깊은 연대감을 갖게 한다. 혈육을 나눈 한 가족의 인연으로 태어나 내 인생에 다시없는 행복을 가져다준 내 사랑 손녀에게 거는 기대와 믿음은 손녀가 순리적으로 아름답게 자라 제 몫을 멋지게 해주길 바라는 믿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