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 부엌 창에 불이 꺼졌다
김경자
달빛 같은 불빛이 환하게 나를 마중한다. 저녁 끼니를 위해 어두운 부엌에 들어서면 옆집 부엌 창 불빛이 숨어들어 식탁에도 냉장고 위에도 따뜻하게 머물러있다.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매일의 일거리가 언제부터인지 즐거운 저녁이 된 이유이다. 옆집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위해 브로콜리를 삶고 닭 껍질을 벗기고 있을까? 까다로운 할아버지 입맛이 짜증나 냄비 뚜껑을 꽝 닫고 있을지도 몰라. 나는 저녁마다 그 불빛을 타고 할머니 부엌으로 넘어가 얼굴도 모르는 할머니와 저녁준비를 하고 그 노부부와 함께 저녁을 먹는다. 함께 늙어가는 다정한 고부처럼 이 얘기 저 얘기 두런거리고 어느 날은 할머니의 굴곡 많았던 삶의 하소연에 같이 한숨을 쉬다가도 기억조차 아득한 첫사랑 얘기에 할아버지 몰래 킥킥대기도 한다. 불빛만큼 참 따뜻한 저녁이다.
몇 년 전 작은 타운하우스로 옮겼다. 마당이 넓은 옛집에는 딸이 살고 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남편과 나의 삶도 더불어 성장한 곳이다. 지나온 내 인생에서 가장 완벽했던 시절의 추억이 곳곳에서 꼬물거리는 그집을, 차마 낯선 남에게 팔 수 없었다. 혼자 감당하느라 절절매면서도 떠나지 못하는 나를 보다못해 딸이 나와 타협을 한 셈이다. 새로 이사온 집 발코니 앞에는 제법 큰 연못이 있다. 그 연못은 온종일 햇빛으로 가득 차 반짝인다. 연못을 빙 둘러 작은 산책길이 나 있고 나무 그늘 밑에는 군데군데 벤치도 놓여있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앙증스러운 강아지와 함께 산책하는 할머니들을 쉽게 볼수 있다. 나무 그늘 밑 벤치에는 편안하게 나이 들어가는 노부부가 아직도 못다한 얘기를 나누고 있고 돌봄이가 미는 휠체어에 앉아 해바라기를 하는 노인이 종종 지나가기도 한다. 나는 거실에 앉아 물끄러미 내다보고만 있을 뿐 아직도 밖에 나가 그들과 어울리지 못한다. 은퇴한 노인들이 많이 사는 아름답고 조용한 이곳에 시도 때도 없이 구급차가 요란한 소리를 앞세우며 들이닥쳐 그날의 공포를 떠오르게도 한다. 이사를 오고 오랫동안 어둠이 스멀스멀 스며드는 저녁이면 내 귀에서는 언제나 귀뚜라미가 울었다.
캘리포니아에 사는 딸 집에 한달쯤 머물고 돌아온 지난 가을이다. 저녁준비를 위해 부엌에 들어가며 할머니는 오늘 저녁 무엇을 만들까 생각을 하니 살짝 설렜다. 여행을 떠나기 전 닫아놓은 부엌 창 브라인드를 열자 왈칵 쏟아 져 들어와 안길 환한 불빛을 기대했던 내게 옆집 창 하얀 격자무늬만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할머니 집 부엌 창에 불이 꺼졌다. 내 마음도 내 부엌도 캄캄해졌다. 웬일일까? 내가 할머니의 이웃으로 이사 온 이래 그 집 부엌 창에 불빛이 꺼졌던 적은 없었다. 내 기억이 그렇다. 어제까지 손주와 함께 시끌벅적 먹던 저녁이 떠올랐다. 가슴 한편 알 수 없는 통증에 서러웠다. 이튿날도 또 그다음 날도 나는 혼자서 저녁을 먹었다. 저녁마다 내 귀에는 귀뚜라미가 다시 울었다. 옆집 할머니 할아버지를 직접 만난 적은 없다. 자그마한 할머니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는 뒷모습을 창을 통해 한 번쯤 본 것 같기는 하다. 할머니가 혼자 사는지 아니면 할아버지와 함께 사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그냥 내 상상 속에는 선한 눈매의 후리후리한 할아버지가 언제나 그 할머니 곁에서 미소짓고 있다. 그들은 내 앞에서 서로의 접시에 음식을 덜어주고 그윽하게 바라보며 와인잔도 부딪친다.
지난 주말 외출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옆집과 내 집 주변까지 차들이 빼곡하게 주차되어 있었다. 낯선 사람들이 줄을 서서 할머니 집엘 들락거렸다. 할머니 집 현관 앞 estate sale 사인을 본 순간 막연하게 불안했던 마음이 툭 소리를 냈다. 어떤 이는 한 손에 또 어떤 사람은 양손에 한때는 할머니 손에서 소중하게 다루어졌을 물건을 들고 환하게 웃으면서 나왔다. 욘포세의 ’사람은 가고, 사물은 남는다’라는 구절이 떠올랐다 할머니는 갔지만, 할머니의 어떤 사물은 다른 이의 필요한 사물로 남는다는 것이 조금 위안이 됐다.
어젯밤엔 불 꺼진 창을 멍하니 바라보다 두 분과 함께 크루즈 여행을 떠났다. 멋지게 차려입고 두 분이 춤추는 곳에 나도 있다. 옛 음악이 흐르고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어깨에 기댄 채 할아버지와의 첫 댄스를 추억하며 천천히 훌로어를 돌고 있다. 며칠 전 저녁엔 할머니의 손주 결혼식에 초대도 받았다. 그 손주가 여리여리 자랄 적에 이 녀석이 장가가는 걸 볼 때까지 살 수 있을까, 나이를 계산해본 적도 있었다고 옆에 앉은 내게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해 주었다. 지금 두 분은 크루즈를 타고 세계 곳곳으로 둥둥 여행 중이다. 내가 그 사람과 꿈꾸었던 것처럼.
겨울 동안 그 집은 어떤 이에게 팔린 듯하다. 요즘 그 집 앞에는 날마다 건축회사 트럭이 세워져있다. 차고 앞에는 부엌이나 화장실에서 뜯겨 나왔을 낡은 캐비닛이 쌓여있고 어느 날은 오래된 카펫이 둘둘 말린 채 실려 나가길 기다리고 있다. 머지않아 이 집에는 새 주인이 들어올 것이다. 그도 밤마다 귀뚜라미 소리가 들리는 외로운 사람이라면 어떨까, 그도 떠들썩 살았던 추억을 떠나 이 외로운 섬으로 옮겨오는지 모른다. 저녁이 어둑하니 내릴 때 부엌 불을 환하게 켜놓으면 내 부엌의 불빛이 그의 창으로 건너가 그의 저녁을 마중한다. 우리는 저녁마다 불빛을 타고 함께 도란도란 음식도 만들고 살아온 얘기를 한다. 이왕이면 내 옆에 따뜻하게 나이들은 할아버지 하나 세워주면 그의 마음속 서사는 더욱 근사하련만… 할머니가 창 건너 낯선 이에게 따뜻하고 환한 추억을 남겼듯이 나도 그의 어두움에 환한 추억이 되는 꿈을 꾸고 있다. 이 나이가, 젊은이 짐작만큼은 늙지 않았다 해도 내 생각처럼 젊은 것만도 아니라는 걸 이제 받아들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