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함께한 유럽, 늦은 보상 같은 여행 / 한성득
"여행은 아이가 자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자라는 시간이었다." — 한 아버지의 여행노트에서
아들이 대학에 입학했다. 입학을 축하하며 조심스레 물었다. "뭐 하고 싶니?" 망설임 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여행요." 그 말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어릴 때부터 남다른 아들이었다. 그 아이와 어디론가, 함께 떠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벅찼다.
아들은 4학년부터 홈스쿨을 시작했다. 처음 시작할 땐 집안의 반대가 거셌다. "왜 똑똑한 애를 망치려고 해?" "너희 같은 게으른 사람들이 뭔 홈스쿨이야." 그렇지만 우리는 우리의 방식으로 아이를 키워가고 싶었다.
계획은 고등학교 때 보딩스쿨에 보내는 것이었다. 우리의 계획대로 방학이면 아이는 더 바빴다. 대학에서 주관하는 영재 프로그램, 각종 캠프들... 비용이 만만치 않았지만, 다행히 혜택을 많이 받아 거의 무료로 참여할 수 있었다.
아들의 전공은 해양동물학이다. 아주 어릴 적 '프리 윌리'라는 영화를 반복해 볼 때부터 알았다. 우리는 샌디에고 씨월드 캠프를 없는 돈에 여러 번 보냈다. "난 고래, 돌고래, 상어 같은 걸 공부할 거야." 자신 있게 말하던 아이였다.
SAT 점수도 좋았고, 아이비리그를 갈 수 있는 조건이었지만 아들은 방향을 달리했다. 한 여름방학, 참가한 해양 프로그램에서 만난 교수가 "학부는 하와이 대학이 좋아." 그 말 한마디에 학교를 아이비리그에서 하와이 주립대학으로 선회했다.
우리는 하와이 대학 방문을 직접 했다. 아들은 캠퍼스를 둘러보며 단번에 말했다. "여기에요. 전 여기 가고 싶어요." 결국 아들은 하와이 대학을 선택했고, 학교에서는 장학금과 좋은 지원으로 아들을 맞아주었다.
그래서 이번 여행은 보상이자 축하, 그리고 늦은 감사의 표현이었다. 우리는 두바이에서 시작해 이탈리아, 체코, 독일, 프랑스, 그리고 영국까지 약 25일간 유럽을 돌았다.
첫 여행지 로마에서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지하철을 타고 교회로 가던 중이었다. 아들은 내 뒤에 서 있어 안심했는데, 내가 잠시 방심한 사이 소매치기를 당했다. 가방에서 지갑만 없어졌다. "아빠, 어떡해?" 아들은 당황했다. 나는 억지 웃음을 지으며 "괜찮아,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말했지만, 사실 막막했다.
그 일 이후 우리는 경비를 아끼며 여행해야 했다. 호텔 대신 저렴한 숙소를 찾고, 현지인들이 가는 음식점을 찾아다녔다. 오히려 이 경험이 여행의 깊이를 더했다. 아들은 한 번도 불평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경험도 재밌어요, 아빠"라며 나를 위로했다. 아들은 나보다 성숙했다.
아들과 나는 성격부터 정반대다. 나는 감성적인 INFP, 아들은 정확하고 철저한 ISTJ. 나는 즉흥적인 여행을 즐기지만 아들은 꼼꼼하게 계획을 세우고 움직이는 사람이다.
내가 낮에 "오늘 저녁은 스시 먹자!" 하고는 저녁 무렵, "그냥 여기 햄버거집 가자" 하고 말을 바꾸면, 아들은 속으로 끓는다. 표정은 잘 숨기지만 나중에 아내에게 조용히 털어놓았다고 한다. "아빠... 진짜 이해 안 돼요." 아내는 웃으며 넘긴다. "원래 네 아빠가 그래."
이런 아들이 홈스쿨을 끝까지 잘 해냈다는 게 자랑스럽다. 스스로 계획하고, 스스로 공부하고, 조용히 목표를 향해 걸어가는 아이였다.
한편으로는 늘 미안함도 있다. 앤도버, 엑시터 같은 명문 보딩스쿨에 합격했지만 2008년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장학금 정책이 바뀌었다. 전액 장학금이 사라지고, 나눠주는 형식으로 바뀐 것이다. 형편상 한 아이는 보낼 수 있어도 곧 이어 고등학교에 들어갈 둘째를 생각하면 결정을 쉽게 할 수 없었다.
나는 아들에게 솔직히 말했다. "전액 장학금이 아니면 보낼 수가 없다. 동생도 있는데 너만 갈 수는 없잖아. 퍼블릭 스쿨을 갈래, 아니면 홈스쿨을 계속할래?" 결정을 아이에게 넘겼다.
목사로서, 가장으로서 가장 괴로운 시간이었다. 아내가 일하고 있었지만, 목사 월급으로는 보딩스쿨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아들은 조용히 말했다. "그냥 홈스쿨 계속할게요." 아들에게 한 달의 기회를 주고 선택하도록 했다. 아들은 억지로가 아닌 이성적으로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였다. 아들의 선택은 아빠로서 마음이 아프고 어쩐지 더 마음을 울렸다.
그런 아들이 고마워서, 이 여행은 정말 '준비된 선물'이었다. 여행 중 아들은 묵묵히 나와 걷고, 가끔은 내 잘못된 길안내에도 불평하지 않았고, 서툰 예약에도 웃으며 넘겼다. 돌이켜보면, 그 아이가 나를 데려간 여행 같기도 하다.
나는 아들의 어깨를 바라보며 "아, 저렇게 자라주었구나..." 속으로 몇 번이고 되뇌었다. 돌고래와 고래를 꿈꾸던 소년은, 이제 바다를 향해 스스로 항로를 그려가는 청년이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