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김경자
"그럼 우리 아버지는 민주당이야, 아니면 자유당이야?"
쪼끄만 계집아이가 저보다 서너 살은 족히 더 돼 보이는 사내아이를 올려다보며 불안한 얼굴로 물었다. 자유당이 무엇이며 민주당은 무엇인지, 자유당은 왜 나쁘다는 건지 계집아이가 통 이해할 수 없는 말로 열변을 토하던 사내아이는 갑작스러운 계집아이의 질문에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걱정하지 마, 너희 아버지는 민주 경찰이니까 민주당이야."
사내아이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계집아이의 표정에 비로소 안도의 미소가 가득 번진다. 그 계집아이는 아버지가 근무하는 경찰서 지서 정문에 커다랗게 ‘민주 경찰’이라는 팻말이 붙어있는 걸 기억했다.
이승만 대통령 집권 시절로 4-19가 일어나기 전 그즈음 선거철이 아니었을까 짐작한다. 지방 국민학교 학생들조차 민주당이다. 자유당이다 떠들 만큼 전국이 시끄러웠던 그해, 금광으로 꽤 유명했던 충청남도 작은 지방 도시에서의 일이다. 아버지는 경찰이었다. 전근이 잦은 아버지 때문에 어머니는 여섯 남매를 데리고 일 년에 한 번씩 이삿짐을 싸야 했었고 나는 매해 새로 만든 친구들과 이별로 굉장히 소심하고 내성적인 아이로 자라고 있었다. 건강 역시 좋지 않아 한번 자리에 누우면 한 달 이상씩 학교에 다닐 수가 없었던 그 무렵, 나는 그 아이를 만났다. 반장이었던 그 아이는 우리 반의 절대적인 존재였다. 지금 내 기억으로는 키도 크고 씩씩하고 보기 좋은 얼굴이었다. 그 시절 지방에는 취학 연령이 한 참 지난 뒤에야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일이 흔했었다. 부모님은 유치원이 없는 곳이라고 나를 취학 연령보다 일찍 학교에 넣었으니 그 아이가 그렇게 크고 씩씩했다 기억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리라. 내 청소 당번 때면 힘들어 보이는 일은 나 대신해 주고 집까지 데려다주곤 했는데 금방 전학을 와 낯가림하는 어린 내가 안 돼서였을 게다. 그런 그 애가 믿음직스럽고 고마웠던지 어머니는 가끔 그 아이를 들어오게 해 간식도 주고 같이 숙제도 하게 했다. 내가 몸이 아파 학교를 결석할 때는 과제물을 집으로 가져와 뒤떨어진 공부를 도와주기도 했다.
숨이 턱턱 막히던 한여름 어느 날이었다. 커다란 트럭이 먼지를 뿌옇게 일으키며 지나가는 신작로를 걸어갔다. 그 뿌연 먼지 사이로 햇살이 노랗게 쏟아지고 있었고 나는 그날을 아주 이상한 느낌으로 기억한다. 학교가 파하자 그 아이는 자기 집에 맛있는 음식이 많은데 같이 가겠느냐고 물었다. 벌써 초대된 몇 아이들은 잔뜩 흥분되어 나를 부추겼다. 그 무렵 나는 어머니가 만든 음식 외에는 자꾸 탈이나 어머니는 나를 친척 집에 데리고 가는 것조차 꺼릴 때였다. 그러나 그 아이 말에 감히 ‘싫어’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도 없었지만, 그 아이 하고라면 어디라도 갈 수 있을 것 같은 신뢰가 있었지 싶다. 먼지와 뙤약볕이 범벅인 신작로를 한참 지나 산속 깊이 자리 잡은 어떤 암자 같은 집이었다. 산 중턱 언덕 위에 있었는지 아니면 산꼭대기에 있었는지 확실치는 않다. 다람쥐처럼 잽싸게 올라가는 다른 애들과 달리 징징거리며 자꾸 처지는 나 때문에 그 애는 가끔 나무 그늘에서 쉬어야 했다. 그 시절 대부분 산은 뻘건 민둥산이었을 텐데 왜 내 기억 속에는 빽빽한 나무 사이에 숨어있는 듯한 딱 한 채의 오두막이 떠오를까, 어쩌면 그 이상했던 날을 더 극적으로 기억하고 싶은 내 마음의 오류일 수도 있다. 잔가지 나무로 엮은 낮은 사립문을 들어서니 옹기종기 키 작은 꽃들이 울타리 밑에서 한가로웠다. 마당이랄 것도 없는 공간을 지나 문 앞 토방에 올라서자 갑자기 낯설고 두려운 느낌에 멈칫했다. 아이들이 스스럼없이 들어가며 열어 놓은 문 안에 한 발 내딛는 순간 컴컴한 방 안 구석에 길게 늘어진 하얀 휘장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살짝 열린 휘장 너머로 울긋불긋한 천과 무서운 그림들 그리고 이상한 칼 북 부채 등이 걸려 있었다.
“괜찮아 들어와”
금방 울 것 같은 날 향해 빙긋이 웃던 그 애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다. 아버지나 형제들의 얘기를 들은 기억이 없는 것으로 보아 아마 그 애는 어머니와 둘이서만 살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그 후 어머니에 대해 한 번도 묻지 않았다. 그 애 역시 설명해준 적이 없다. 그 기이한 경험을 내 어머니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어쩐지 그래야 할 것만 같았다. 굿이 끝나면 고기며 떡이며 과일들이 많았을 테고 그때마다 학교 친구들을 불러 그 음식들을 먹였으니, 학교 친구들은 으레 자기 차례가 오기를 손꼽아 기다렸으리라. 그때는 많은 사람이 배가 고팠던 시절이었다. 같이 갔던 아이들이 탐스럽게 음식을 먹던 기억은 있는데 음식을 차려 주었을 그 아이 어머니 모습은 하얀 치마폭만 희미한 윤곽으로 남아있다.
그날 밤 온몸이 불덩이였다. 그 집에서 먹었던 낯선 음식 탓이었는지 아니면 생전 처음 본 낯선 것들로 놀랐었는지 한 달 이상을 나는 몸을 추스르지 못했고 어머니는 내 머리맡에 새 운동화를 사다 놓았다.
“빨리 일어나서 이 신 신고 학교 가야지." 하면서 훌쩍이던 모습이 어렴풋이 기억에 남아있다. 아마 옛날에는 환자 머리맡에 새 신을 놓으면 낫는다는 그런 미신이 있었나 보다. 몸이 아파 집에 누워있는 동안 그 아이는 매일 우리 집에 들러 학교 얘기도 해 주고 만화책도 빌려다 주었다. 그 아이가 빌려온 만화책 중에는 '엄마 찾아 삼만리' '보름달‘ ’ 어사 박문수'가 아주 재미있었다. 그 만화책들을 읽으면서 펑펑 울었던 것 같은데 아마 내용이 굉장히 슬펐었나 보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늦가을이었다. 그 아이가 헐레벌떡 우리 집엘 왔다.
“강도가 잡혔어!! 지금 지서에 있대."
비가 오는 날이면 강도가 나타나 사람들을 해친다고 집 단속 잘하라고 어른들이 모이면 수군대던 소리가 생각났다. 그런데 그 강도가 잡혔단다. 그때 우리 집은 지서와 긴 복도로 연결돼 있던 관사에서 살았다. 그러나 아버지는 어머니를 비롯해 가족 누구도 사무실 근방을 얼씬 못하게 했다. 그런데 그 아이는 아버지가 아침마다 마루 끝 복도를 지나 지서로 통하는 문을 열고 출근하는 것을 벌써 알고 있었다.
"저 복도에 있는 문을 열면 지서 사무실로 들어가기 전에 창고가 있는데 그 창고에는 사무실을 들여다볼 수 있는 유리창이 있어 우리 거기로 들어가서 강도 구경하자.“
어른들한테 들키면 얼마나 혼이 날지 알면서도 우리는 살금살금 걸어가 긴 복도 끝 문을 열었다. 그 애의 말대로 그곳에는 갖가지 잡동사니가 쌓인 창고가 있었다. 우리는 그 잡동사니를 밟고 창문에 매달려 누렇게 바랜 커튼 사이로 사무실 안을 들여다봤다. 그러나 어디에도 뿔이 열 개 달린, 아니면 꼬리가 열두 개 달린 강도는 없었다. 나는 그때까지도 막연하게 강도는 사람하고 다른, 이상하게 생긴 다른 괴물로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저기! 저기! 강도, 강도가 저기 있다."
그 아이가 잔뜩 긴장해 갈라진 목소리를 죽여 가며 가리키는 쪽을 보니 그곳에는 꾀죄죄하고 삐쩍 마른 초라한 중년의 아저씨가 포승줄에 묶인 채 구석에 꿇어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