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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세심정혼/아픔을 딛고, 나는 글을 쓰네 / 오세리현

작성자김영중|작성시간26.06.23|조회수21 목록 댓글 0

세심정혼/아픔을 딛고, 나는 글을 쓰네  / 오세리현

 

뜻대로 성취되는 기쁨보다 의지대로 되지 않는 안타까움이 더 많은 것이 우리 삶의 현실이다. 인생에는 시련의 언덕이 있다. 번민과 고뇌의 바다가 있다. 또한 슬픔의 절벽 앞에 절망하는 험준한 난행 길이 있어도 사람들은 이승의 지옥이 저승의 천국보다 더 좋다한다. 인생에 있어서 고통을 살아 있다는 증거이다.

 

부산 광안리 바닷가에는 카톨릭 단체에서 운영하는 정신병동이 있다. 그곳에서 치료받는 아들을 위해 눈물로 새벽기도를 바치는 한 어머니가 있다. 그녀는 아들을 입원시키고 왔다고 말하며 눈가에 눈물이 맺힌다. 누구에게도 이야기할 수 없어 외로울 K 는 나의 오랜 지인이다. 어떠한 일에도 포기하지 않은 강인한 성품의 여성이다. 은퇴 할 나이가 지났지만 오로지 병환 중인 아들 뒷바라지에 온 힘을 다한다. 사랑하는 아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성실히 직장생활을 하며 애써 견뎌내는 모성애가 애잖다.

 

예전에 미국에서는 정신질환자의 보호자 의견만으로 환자를 입원시킬 수 있었으나 지금은 환자가 동의하지 않으면 입원은커녕 약 투여조차 할 수 없다고 한다. 환자는 기본 인권을 보호받게 된 셈이나 판단력이 부족한 환자의 건강보다 정신질환자의 인권을 우위에 두어서는 아니 된다는 생각을 한다. K 처럼 이곳에서는 치료할 방법이 없어 병이 깊어진 자녀를 바다 건너 먼나먼 곳에 있는 정신병원에 입원시켜야하는 가족의 심적, 경제적 부담이 오죽하겠는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총기 시용이 합법인 이곳에서 일어나는 대형 살상 사건과 사고의 대부분이 과거에 중증의 정신질환 병력이 있었거나 잠재해 있는 상태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한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 이런 불행이 발생할지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다. 안전지대가 없는 불안한 사회에 살고 있다.

 

미국이나 유럽처럼 선진국일수록 정신질환자의 인권문제가 자주 대두된다. 인권의 중요성만 강조하다보니 정신질환자의 가족이나 친지가 그러한 고통과 피해를 고스란히 당한다. 정신질환자의 인권이 보호받아야 한다는 것에 이의를 달 수 없지만 환자의 불안정한 상황이 타인에게 위해하는 위험과 불행을 자초하는 일이기에 문제가 날로 심각하다.

 

 

오래 전 이야기이다. 경험 없이 시작한 사업으로 한동안 위기를 맞게 되었다. 그로 인해 정신적 스트레스는 나로 하여금 무력하게 했다. 상당기간 우울한 기분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시달렸다. 가족과 같이 있으면서도 함께 있지 아니하고 사람을 기피하며 혼자만의 세계에 빠졌다. 마치 독방에 갖혀 있는 사람처럼 자폐증의 한 단면 현상이 일어남이 느껴졌다. 순간 나는 정신을 차리고 다시 일어나야한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 때 많은 분량의 책을 읽었고 특히 심리학에 관한 서적을 탐독했다. 독서하는 동안 나만이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라는 것에 위로받으며 서서히 회복되어 편안해졌다. 또한 아픈 기억을 소화시켜 유익한 교훈을 얻었다. 책을 통하여 좋지 않았던 일과 힘들었던 감정을 떠나보내는 치유를 경험했다. 양서는 번민과 고뇌를 승화시켜주는 명약 처방임에 틀림없다. 의학전문지에는 글을 쓰는 동안 질병이 치유된다고 한다. 작가가 자기감정을 솔직하게 쓴 글과 책은 그것을 단순히 읽는 것만으로도 치유될 수 있음이 내 경험이다. 문학은 다양한 삶의 방향과 목표를 제시해 준다. 또한 삶의 의미와 가치를 부여해 준다. 일상에 심적 여유를 갖게 하며 영혼이 숨 쉴 자유를 주는 것은 동서고금을 통해 알 수 있다.

 

인생은 고해이다. 세상에 아프지 아니한 사람이 어디 있을까. 산다는 것은 고통의 바다를 끊임없이 헤엄쳐 나가야하는 것이다. 나는 요즘 마음을 씻고 영혼을 맑게 한다는 세심정혼으로 글을 쓰고자 한다. 동녘 심해에서 힘차게 솟아오르는 밝은 태양처럼 매일 활기 찬 새 날을 맞이할 것이다. 언젠가는 K 의아들도 건강이 회복되어 집으로 돌아오고 나는 그녀와 지난날을 회상할 것이다. 우리는 삶에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고 새로운 인생을 만나게 될 것이다,

 

인간의 고통은 영속적이지 않다. 고난의 시간 뒤에 은총의 특혜를 받을 수 있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는 오뚝이 인생이 아닌가, 내 생명력이 곧 창의적 씨앗이 되어 나는 글을 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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