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에 앞서 "국가자격 장례지도사 표준교육교재" -장례지도사교육원 발간-
교재 및 교육을 지침으로하고 요약 또는 보충 내용을 적어본 것이다.
제 1장 현실(現 實)
탄생! 삶! 그리고---
삶(생활)에서 죽음이란? 누구나 한번은 반드시 겪어야만 하는 피할 수 없는 엄연한 마지막 의례의 과정이고 順理(순리)이다.
“돌아가셨다”라고 하는 것이며 本鄕(본향)으로 回歸(회귀)를 말한다.
시대와 환경의 변화에 따라 장례문화도 많은 변화가 있었고 고대사회의 風葬(풍장):草殯(초빈)에서부터 고려사회에서는 주로 절(寺)에서 불교식으로 진행된 영향을 받아 火葬(화장)을 많이 하였고, 조선시대장례문화는 유교사상의 영향으로 조상숭배에 기반을 두었기에, 복잡하고 오랜 장례기간의 埋葬:埋藏(매장)문화였으며, 그 시대 대가족제도와 다산다복(多産多福)의 농경사회 문화에 맞는 풍습이라고도 여겨진다.
그 도리(道理) 즉, 예(禮, 冠婚喪祭의 通過儀禮: 관혼상제의 통과의례)를 다하고자 논의도 활발하였음도 있음직한 일이었을 것이고,
태평성대의 좋은 시대상황으로 너무 禮(예)에 지나치지만 않았다면 훌륭한 선현들께서 더 잘해보자고 論(논)하고 연구하고 얼마나 좋은 미풍양속이었습니까?
지나치고 實事求是(실사구시: 생산적)하지 못해서 경제는 뒤지고 어찌됐든 결과론적으로는 일제의 침략이 있었고
1934년 조선총독부의 의례준칙은 관혼상제의 의례행위를 5일장, 양복 및 완장 등장 등 인위적으로 많은 변화를 꾀하였고
해방 후 1959년 국민재건운동본부의 표준의례에서 3일장,
1969년 5·16정권은 허례허식 타파의 명분으로 가정의례준칙에서 화환·화분 진열금지, 굴건제복 착용금지, 조문객에 대한 음식물 접대 금지 등을 제정하였으나 강제규정이 없어
1973년 가정의례에 관한 법률, 시행령, 시행규칙까지 마련하여 법을 통해 적극적으로 개입함으로써 많은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현행 1999년 8월 31일 제정된 건전가정의례에서는 청첩장, 술·음식접대, 답례품, 화환진열, 부음(부고), 굴건제복, 만장 사용 등이 다시 허용되었다.
죽은 자가 있으면 반드시 그 死者(사자)에 禮(예)를 다하고자 가족, 일가친척들, 부락(동네)사람들, 가까운 지인들이 앞장서 유족과 슬픔을 함께하며 계, 울력, 두레, 품앗이 등 환난상휼(患難相恤)의 전통적인 미풍양속을 통해 가정이나 마을(동네)에서 장례를 진행해 왔다.
지금은 산업사회의 발전에 따른 분업화 및 핵가족화, 경제활동에 따른 시간적 제한, 많지 않은 가족 등 시대변화에 따른 장례식장과 전문장례행사 대행업체인 상조회사도 등장하는 등 과도기적 급변의 시대를 걷고 있다.
물론 집안, 지역, 종교 등 풍습에 따라 제각기 장례문화도 다양할 수밖에 없고 家風(가풍)과 風俗(풍속)을 우선한다지만 어쩌면 이를 핑계로 원칙과 기준도 없이 마치 잘못된 행위까지도 간혹은 이를 핑계로 포장되어지기도 한다.
한번쯤은 과거의 전통장례에 대해서도 심층 조사 연구가 필요하고 검토 후, 이를 기초로 현실에 맞고 행하기 쉽게 보완, 출판 및 보급의 필요성이 있다고 思料(사료).
1. 취지 및 목적
급격한 사회문화의 변화에 따라 장례문화도 급속히 변화되었다.
풍속과 문화는 존중되고 좋은 전통은 보존 ․ 계승되어야겠지만 원칙과 기준도 없이 모호하고 설령 잘못알고 있고, 行(행)하는 것까지도 가끔씩은 풍습이라는 핑계로 오도되는 경우도 있고, 모르는 젊은이들은 이를 踏襲(답습)하게 되는 愚(우)를 범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무엇을 크게 많이 한다는 것보다는 환경의 변화와 역사의 흐름에 따라 변천되어온 장례절차와 장례용어에 대해, 원칙과 기본을 이해하고 이를 어떻게 현실에 맞게 정립시킬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이를 심층 연구 현실에 맞게 보완, 출판 및 보급과 홍보를 취지와 목적으로 함.
2. 추 진 방 향
-. 고인에 대한 마지막 禮,
유족의 입장-경제현실 및 풍속, 종교 등을 종합 고려한 장례절차
-. 전통장례에 대해 깊이 고찰하여
장점 등 미풍양속은 현실에 맞게 계승발전 시킨다.
-. 유관 기관·단체 등과 유기적인 협조체계를 구축한다.
-. 지역민과 함께 호흡하며 연구 ․ 출판 ․ 홍보에 전력을 기울인다.
-. 일정 자격(교육 등)을 갖춘 현업종사자에게 장례지도사자격증 발급
3. 사업의 방향 및 특성: 비영리 단체 ․ 장례문화교육 및 홍보사업
4. 위 원 구 성
▣ 소 장: 이 동 수
1급 사회복지사 ․ 1급 장례지도사
한국장례복지연구소장 ․ 빛장례토탈서비스
전 조선대학교 평생교육원 사회복지 및 장례지도사 강사
▣ 고 문 및 자 문(無順)
김기홍 광주경실련 사무처장
김선호 광주시교육의원
최경천 前 KBS광주총국 어나운서 부장
장화동 광주시민센터 공동대표
정병문 광주시의원, 환경복지위원회
김황용 광주대 교수
송민석 나주영산중 교사
황덕주 前 전방 노조위원장
변지훈 가수(사랑은 무죄다)
5. 意義(의의)
-. 생(삶)의 마지막 과정인 의례이다.
-. 산사람(生人)이 중심이 되어 치른다.
故人(고인)의 일이지만 이미 고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 고인과 후손이 함께(영원)한다는 의미로 영좌를 마련하고 빈소를 지키고
장례 후에도 제사 ․ 시제 등을 모신다.
-. 산사람과 죽은 사람과의 분리 의례이고, 일상생활로의 전환의례이다.
-. 가장 전통적인 풍습으로 남아있다.
6. 特徵(특징)
-. 집안에 따라, 풍습에 따라, 종교에 따라 절차와 예법에 많은 차이가 있고 절대적 가치의 자존심이라 자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7. 현대식 장례절차에 대한 기본이해
□ 미리 영정을 준비해둔다.(예로부터 장례에 관한 물품을 미리 준비하여 두면 무병장수한다는
風說(풍설)이 전해지고 있어 회갑이 되면 윤달에 수의 등을 준비해두는 풍습도 있었음)
□ 유언: 후세에 전할 말들을 받아 적거나 녹취한다. 분쟁이나 오해소지가 없도록 명확한 근거
자료 보존 -고인이 남기고 가시는 말씀은 남아있는 유족들이 友愛(우애)하기를 바라는
것이고, 그 동안 소원했던 사람도 이런 기회를 통해 화해하고 화목하기를 바라는 것인데
그 깊 은 뜻을 모르니… 喪中(상중)에는 말도 조심하고, 행동도 삼가야 하는 것이다.
□ 임종이 가까워지면 遷居正寢(천거정침): 위중時 안방을 깨끗이 치워 아랫목에 모시고
흐느끼 는 소리 등이 없이 편안히 임종을 맞이할 수 있도록 경건한 마음으로 임종을 하고,
收屍(수 시): 손, 발 등이 굳기 전에 준비해둔 물로 가볍게 씻기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힌 다음, 손 ․ 발 등을 바로 잡아 거둔다.
사례편람( 도암 이재 저)에는 “만약 소홀하여 收屍(수시)를 잘 못하였다면 평생을 근심으로 후회하게 될 것이다”라는 내용이 있다.
▣너무 급하고 조급하다. 모르기 때문에 그렇고 경황이 없다고는 하나, 임종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 서두른다. 이제 몸이 식어갈 뿐이다. 몸이 차가워질 때까지는 소생을 기원하며 차분히
순리에 따라 임하는 것이다. 장례식장에 도착하자마자 안치실(냉장고)에 들어가는 것이다.
왜 차(장례식장 차)가 안 오느냐고 하고, 어디쯤 왔느냐고--- 故人(고인)은 무슨 생각을
할까요?
운명은 在天(재천)인 것이다. 3일을 훌쩍 넘겨서도 소생한 사람들의 얘기도 가끔 전해진다.
출동하여 모시러 가는 중에 소생하였으니 다시 연락 할 때 오라는 말도 듣는다.
멀리 있는 가족들은 어찌 할 수 없다 하더라도 차분하게 고인과의 정분을 기리며 가까이에
있는 가족들이 몸이 식기 전에 집에서 承顔(승안: 신이나 고인의 얼굴을 뵘)하고 와도 늦지
않는 것이다.
□ 병원에서 운명하셨을 경우 원무과에서 사망진단서를 여유 있게 (직장에 제출, 사망신고,
보험청구 등에 사용- 국·공·시립 매・화장 예약시 즉시 필요) 준비한다.
※. 장례식장을 기준으로 작성 해 보았음.
-. 급할수록 마음을 차분히 하고 급히 연락할 분에게 연락도 하고 상의도 하고,
장례식장(또는 상조회사 등)에 연락을 취한다. - 절대 서두르지 않고 차분하게 기다린다.
아직 몸도 식지 않았다. 장례식장에 도착하지마자 냉장고(안치실)에 들어갈 뿐이다.
(운구차가 도착하는 동안 영정 등 고인의 유품과 3일간 장례식장에서 보낼 긴급 물건
-핸드폰, 충전기 -등을 다시 한 번 점검한다)
-. 장례식장에 도착. - 收屍(수시) 또는 점검 및 안치.
-. 상담(가족사항, 분향소와 접객실, 종교, 음식(제물포함) 등 장례 전반)
-. 분향소이동
靈座(영좌)설치
招魂禮節(초혼예절)- 제물 (기독교-헌화 및 임종예배)
※. 喪(상)의 소식을 듣고 바로 움직이는 사람들은 가까운 친인척들이나
특별한 인연의 知人(지인)들이다.
마음이 급하고 바쁠 수밖에 없다.
옛날에는 차분하게 2~3일간 기다리며 蘇生(소생: 살아서 돌아오시기)을 기원하였다.
빨리 오라는 말을 절대 하여서는 안 된다. 그렇잖아도 마음이 초조한데 무슨 일이나 있는 줄 알고 급하게 움직이다가 사고 나기 쉽다.
될 수 있으면 차분하게 오라고 하여야 하는 것이다. 다 알아서 빨리 오는 것이다.
□. 주상이나 맏상제 또는 대표할 수 있는 유족 : 분향소에 도착,
① 점촉(點燭)=點化(점화): 일반적인 행사나 결혼식장 등에서는 잘 지켜지고 있는데
장례식장에서는 잘 지켜지지 않고 있음. 점촉은 행사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중요한 절차
중의 하나임. 행사시의 불(火)은 聖火(성화)라 하고 결혼식장에서는 양가대표가 점촉을
하는 것이고, 월드컵이나 올림픽 행사시 신성한 곳에서 採火(채화)하여 성스럽게 점화하는
광 경 등을 많이 보았을 것입니다- 중계방송에서는 聖火(성화)가 타오르고 있습니다,
라고 하고-
반드시 주상이나 맏상제 또는 유족을 대표할 수 있는 분이 하야야 한다고 思料(사료).
② 哭(곡)
③ 분향 목례(대화 하듯이) 또는 큰절: 1배(기독교- 헌화)하고 - 甦生(소생: 살아 돌아오시 길
기원)을 기원하고, 만에 하나,
혹시 운명 하셨다면 招魂(초혼): 靈座(영좌)에 魂(혼)을 초대하는 마음으로-
④ 영좌의 앞쪽 오른편 -靈(영)을 기준 左東右西(좌동우서)-에 자리함.
전통장례에서 상제들은 모두 빈소를 지켰음.
빈소는 지켰으나 대렴(입관)前까지는 성복도 하지 않고 조객도 받지 않았으며, 표시로
남자상제들이 두건을 쓰거나 상복을 입는 경우 한쪽 팔을 빼고 입었음. 男左女右(남좌여우)
○. 上食(상식)과 朝夕奠(조석전)
生人(생인)들이 밥을 먹기 전에 매끼마다 고인에게 먼저 드리는 음식을 上食(상식)이라
하고 조석에는 상식을 올리고 哭(곡)을 하였는데 이를 朝夕奠(조석전)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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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사람이 아니면 입관(성복) 후에 조문하고, 아주 가까운 사람이 성복前에 조문 할 경우, 靈座(영좌)에 哭(곡)만 하고 절은 하지 않으며 상주와 예절을 갖춤.
입관 전에는 매 식사 때마다 上食(상식)을 올리고 朝夕奠(조석전)을 올리는 것도 상주입장에서 너무 큰 슬픔으로 쉽게 받아들일 수 없어 손자 등을 시켜 하도록 하였음. 사례편람 |
※. 易服不食(역복불식)과 上食(상식) :임종에서 입관(대렴)전까지는 옷섶과 머리 등을 풀고
食飮(식음)을 全閉(전폐)하였으나 호상과 상을 돕는 분들의 식사전에 반드시 고인께
끼니마다 상식을 올렸다고 함.( 상제들이 易服不食(역복불식)하였으므로 성복 후
죽(미음)을 들면서 부터 상식을 올려다고도 함. 출처:장례표준교육원)
⑤ 가족 및 일가친척들과 지인들에게 발상(부고)하고 중요사안에 대해 협의하고 협조를 구할
일이 있으면 협조를 구함.
※ 奠(전)과 祭祀(제사), 그리고 靈座(영좌)와 祭壇(제단)
임종에서 매장 또는 화장까지의 일정을 장례기간이라 하고, 장례기간 동안 혼백을 모시는 곳을 靈座(영좌)라하고, 이때 酒果(주과)를 올리는 제사를 奠(전)이라 함.
장례(매장 또는 화장까지) 후 반혼(혼백을 거두어 집으로 옴)하고 나서 虞祭(우제)부터 奠(전)을 祭祀(제사)라 하고, 영좌를 제단이라 하며 魂魄(혼백)대신 位牌(위패: 神位(신위)-장지에서 하관 후 새겼음)를 사용하였다.
※ 招魂(초혼)과 入棺(입관) 등에 관한 風習(풍습)
장례時까지는 임종을 슬퍼하며 쉽게 인정하지 않았고, 살아서 돌아오시기를 기다리는 마음(甦生:소생)과 혼을 부르는 초혼(招魂)의식의 절차였으며, 입관前에는 상복도 입지 않았고 -입관 다음날 입었고 조객도 받지 않았음. -사례편람
상복을 입는 것은 상제와 조문객과의 구분차원에서이고 전통상복의 경우 한쪽 팔(男 : 왼쪽. 女: 오른쪽)을 빼고 입고, 양복을 입는 경우에도 완장은 착용하지 않는다.
입관 후, 목욕을 하고 마음을 다잡고 나서 전통상복에서는 팔을 끼워 완전하게 입고, 양복의 경우 완장을 착용하고, 이제야 여자상제들도 성복(상복을 입음)하고 成服祭(성복제)를 올린다.
➅ 입관(성복) 후 成服祭(성복제)를 올리고 나서
조문객 맞이 時 일어나서 가볍게 目禮(목 례: 눈인사)를 하고 조객이 靈座(영좌)에 절하는 동안 哭(곡)을 하고 절이 끝나면 맞절을 함.
말을 조심스럽게 하고 많이 하지 않았음. 그냥 두 손으로 꼭 감싸주는 애정과 고마 움의 표시가 자연스럽고 흠이 없음. (※. 상가에서 악수-허리 굽혀 두 손으로 감싸 주는 고마움을 표함이다 -나 건배는 하지 않는 것이다)
-. 조문객이 그냥가시는 일이 없도록 접객실로 안내하도록 한다.
입관 전 후 장례 전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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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분 |
대렴(입관)전 |
임종에서 매장 또는 화장 前 입관(대렴)후 |
매장 또는 화장 後 (장례 후-우제부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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拜(절:인사) |
목례 또는 1배 |
재배 |
재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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奠과 祭祀 |
전 |
제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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靈座와 祭壇 |
영좌 |
제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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魂帛과 位牌 |
혼백 |
위패(신위) | |
※ 喪(상)에 대한 三(삼)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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喪從死者(상종사자): 상례는 故人(고인)의 뒤(뜻)을 따르는 것이고 敬爲上哀次之(경위상애차지): 공경함이 最上(최상)이고 슬픔은 다음이며 非喪事不言(비상사불언): 喪(상)과 관련 없는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것이다. 禮記(예기) |
※. 喪從死者(상종사자): 알 수 없이 오묘하고 시작과 끝도 없으면서 영원한 것이 우주의 질서이고 순리인 것. 초연하게 이미 정해진 몸과 넋을 이어 받았고 또 永續(영속)하리니 오늘도 내일도 순환의 연속에서 고인을 따르는 것이 근본이고,
敬爲上哀次之(경위상애차지): 부모님께서 돌아가셨다면 자식 된 입장에서 얼마나 슬픔이 크겠는가? 너무 큰 슬픔을 술로 달래다 막상 정신을 차릴 쯤에는 이미 부모의 육신은 땅속에 또는 흩어져 없어져버린 뒤가 되는 것이다. 모든 마음을 내려놓고 공경함을 명심하고--- 슬픔은 그 다음인 것이고,
非喪事不言(비상사불언): 그 동안 소원했던 사람들과도 이런 大事(대사)를 통해 화해하라는 고인의 뜻이고 天命(천명)인데---
불필요한 언행으로 서로가 불편해 하는 모습들을 가끔 보면서-한번쯤 원칙을 상기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 상제들은 반드시 빈소를 지켜야 함.
부득이 화장실에 가야 할 경우 등, 특별한 경우에도 다른 상제들이라도 꼭 빈소를 비우는 일이 없도록 하여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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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문객에 대해 나와 보는 것도 禮(예)이고, 분향소를 지키는 것도 禮(예)이다. 喪禮備要(상례비요) |
※ 국․ 공 ․ 시립의 매 ․ 화장時 사망진단서( 사체검안서)
외인(사고)사인 경우 검사지휘서 -등 관련 서류 첨부하여 즉시 예약 한다.
‣ 입관시간에 대해
법적으로 24시간이 경과한 후에 입관하도록 되어 있음.
자연사(노환과 병사)인 경우, 가족의 동의를 얻어 통상적으로 임종다음날(2일차) 입관.
承顔(승안) 하는 자리이고 永眠(영면):永安(영안)을 기원하는 자리이므로 미리 모든 가족이 모일 수 있는 시간을 예정하여 입관.
☞ 龍顔(용안): 임금이나 신의 얼굴.
☞ 承顔(승안): 임금이나 신의 얼굴을 뵘.
☞ 永眠(영면): 영원히 잠들다.
☞ 永安(영안): 영원히 편안하다.
※ 비자연(외인. 사고)사인 경우. 반드시 병원을 경유하여 사체검안을 받은 후,
검안 내용에 따라 주무관(경찰)서에 신고하는 등 절차(예: 검사의 지휘서 내용)에 따라
행해야 함.
자연사란? 노환과 병사를 말한다.
‣ 발인시간
장지의 하관시간이 정해졌을 때, 집 또는 장례식장에서 장지까지 걸리는 시간과 노(거리)제를 지낸다면 그런 시간 등을 감안하여 발인시간을 정함.
8. 매 장 과 장 례 풍 습
일반적으로 상가에서는 哭(곡)은 있으되 웃음소리가 없고 특히 큰소리(싸움이나 다툼, 노래 소리 등)는 나지 않아야 한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일부 해안 및 도서지역에서는 마을사람들이 모두 모여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신명나게 노는 등 마치 경사스럽기까지 한 풍습을 가진 곳도 있다.
매장문화도 지역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다.
충청이북 강원지역 등에서는 탈관하고 생장 후 횡대(7개의 판)로 덮고 매장.
전북의 경우 棺葬(관장: 관 채로 매장)을 하든, 탈관 후 석관을 사용하든 天蓋(천개)를 뜯고 棺內(관내)에 부드러운 흙을 채운 후 다시 천개를 덮고 매장.
영 ․ 호남의 경우 관장을 주로 하였고 氣(기)가 빠져나간다하여 천개를 뜯는 것을 금기(禁忌)시 하였기 때문에 흙을 채우는 경우도 거의 없음. 장흥지역의 경우 석관 안에 목관을 넣는 풍습도 있다.
일부 해안 지역의 경우 지면에 柩(구: 시체가 있는 관)를 올려놓고 봉분을 썼던 곳도 있었으나 이는 바닷가의 물(水)과 濕(습)의 영향을 고려한 방법이 아니었을까 思料(사료).
여자상제들은 장례시 장지에 가는 예가 극히 드물었는데(근친 여상제들만 삼우제 때 동행하여 함께 제를 모시었다) 최근에는 여자상제들도 모두 장지까지 동행하고 함께 제를 올리고 같이 退所(퇴소)하는 문화가 되었다.
과거에는 복잡한 장례절차였으나 요즘에는 많이 간소화 되었다.
가정에서 장례식장으로, 상복이 삼베에서 양복으로, 만장은 거의 사라졌고, 운구도 상여에서 자동차로 많이 이용하고 있다.
운구행렬이 과거의 방상씨→명정 →영여→만장→공포→雲(운)亞(아)→喪輿(상여) →상제에서
지금은 선도차(영정)→장의버스(靈柩: 영구와 상주 및 유족) →기타 상제 차량 등으로 간소화
되었고
최근에는 運柩(운구)를 장의버스에서 케딜락리무진으로 하는 경우도 있다.
국가와 자치단체의 정책에 힘입어 기존의 매장문화에서 화장문화도 서서히 증가하고 보편화 되는 추세이고 최근에는 樹木葬(수목장)에 관한 법도 제정되어 활성화 되고 있다.
자연 환경보호와 국토의 효율적인 운용의 측면에서 획기적이고 항구적인 대책을 세워나갈 필요가 절실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