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직을 계약직으로 전환한다는 합의, 그 합의가 과연 유효한가?
1, 문제의 본질
정규직으로 10년 이상 근무한 근로자가 사용자와 합의하여 계약직으로 고용 형태를 바꾸는 것은 표면적으로는 쌍방이 동의한 계약 변경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노동법의 관점에서 이 문제는 훨씬 복잡합니다.
핵심 쟁점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그 합의가 진정한 의미의 자유로운 합의인가, 둘째, 합의가 있더라도 근로기준법상 강행규정에 위반되지는 않는가, 셋째, 전환 이후 2년이 경과하면 무기계약직으로 간주 되는가입니다.
1. 합의의 유효성 — 자유로운 의사표시 인가
근로계약의 변경도 민법상 계약의 일종이므로, 원칙적으로 당사자 쌍방의 합의가 있으면 효력이 인정됩니다.
대법원도 근로조건은 근로자와 사용자가 동등한 지위에서 자유의사에 의하여 결정하여야 한다고 거듭 판시하고 있읍니다(근로기준법 제4조).
따라서 근로자가 정말로 자유롭게 계약직 전환에 동의했다면, 그 합의 자체가 무조건 무효라고는 볼 수 없읍니다.
그러나 실무에서는 이 합의의 진정성이 자주 문제가 됩니다.
사용자가 정규직 유지를 조건으로 구조조정 위협이나 부서 이동, 직무 박탈 등을 시사한 상태에서 이루어진 동의는 강박 또는 착오에 의한 의사표시(민법 제110조·제109조)로서 취소 가능성이 있습니다.
대법원은 근로자가 사직서를 제출한 경우에도 사용자의 강압적 분위기나 권유에 의한 것이라면 진정한 의사에 기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시한 바 있고(대법원 2000. 4. 25. 선고 99두8873 판결), 이 법리는 고용 형태 변경 합의에도 동일 하게 적용됩니다.
따라서 계약직 전환 합의의 유효성을 판단할 때는 반드시 다음을 살펴야 한다. ① 합의 전후의 정황(구조조정 압박, 부서 변경 등의 여부), ② 근로자가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았는가, ③ 불이익을 감수할 합리적인 이유(임금 인상, 업무 변경 등의 반대 급부)가 있었는가 등입니다.
2. 근로기준법 강행규정과의 충돌
합의가 진정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 내용이 근로기준법의 강행규정에 반하는 경우에는 그 부분은 무효가 됩니다(근로기준법 제15조).
즉, 근로자에게 불리한 내용으로 근로기준법을 위반한 근로계약의 부분은 무효가 되고, 그 부분은 근로기준법에서 정한 기준에 따릅니다.
따라서 예를 들어 10년 이상 정규직 근로자를 계약직으로 전환하면서 임금, 퇴직금, 각종 수당 등을 기존보다 낮게 책정하거나, 정규직으로서 갖던 해고 제한 보호를 사실상 우회하는 구조라면, 이는 강행규정 위반의 문제를 낳습니다.
특히 퇴직금과 관련하여, 계약직 전환 시점에 퇴직금을 정산한다고 하더라도 실질적인 계속근로 관계가 이어진다면 퇴직금 분할 지급 약정은 무효이며(대법원 2010. 5. 20. 선고 2007다90760 전원합의체 판결), 최종 퇴직 시점에 전체 계속근로 기간을 기준으로 퇴직금을 다시 산정해야 합니다.
3. 기간제법의 적용 — 2년 이후 무기 계약 간주
이 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실무적 쟁점은 기간제법의 적용입니다.
기간제법 제4조 제2항은 사용자가 2년을 초과하여 기간제 근로자를 사용하는 경우에는 그 기간제 근로자는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본다고 규정합니다.
즉, 정규직에서 계약직으로 전환하더라도 그 이후 계약기간이 2년을 초과하는 순간 법률상 당연히 무기계약직(사실상 정규직에 준하는 지위)으로 전환됩니다.
다만 기간제법 제4조 제1항 각호에 규정된 예외 사유(55세 이상 고령자, 전문직 등)에 해당하면 2년 초과 사용이 허용됩니다.
고용노동부 행정해석도 기간제 근로자로의 전환 합의가 있더라도 기간제법 제4조의 2년 초과 사용 제한 규정은 강행규정으로서 당사자 합의로 배제할 수 없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읍니다(비정규직과-2275, 2009. 7. 10.).
4. 계속근로 기간의 승계 — 퇴직금, 연차 문제
정규직 10년 후 계약직으로 전환하는 경우, 그 전환이 실질적인 단절 없이 이루어졌다면 계속근로 기간은 단절되지 않습니다.
이에 따라 계약직 전환 시 퇴직금을 중간 정산하더라도 이후 최종 퇴직 시 전 기간을 다시 합산하여 퇴직금을 산정하여야 한다고 봅니다.
또한 연차유급휴가도 전환 전, 후의 계속근로 기간을 합산하여 산정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5. 불이익 변경과 취업규칙 절차
계약직으로의 전환이 임금 삭감이나 복리후생 축소를 수반하는 경우, 이는 취업규칙의 불이익 변경에 해당합니다.
근로기준법 제94조는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할 때에는 근로자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또는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를 반드시 받도록 규정한다. 개별 근로자의 동의만 받고 노동조합이나 근로자 집단의 동의 없이 취업규칙을 불이익하게 변경한 경우, 그 변경은 효력이 없읍니다.
대법원은 취업규칙의 불이익 변경에 해당 하는 경우 개별 근로자의 동의 여부와 관계없이 집단적 동의 절차를 밟지 않으면 그 변경은 무효라고 판시하였읍니다(대법원 2004. 2. 12. 선고 2001다63599 판결).
6. 갱신 기대권의 문제
10년 이상 근무한 정규직을 계약직으로 전환한 후 계약기간 만료를 이유로 계약을 종료하려 할 때, 갱신 기대권이 성립한다면 이는 부당해고와 동일하게 취급됩니다.
대법원은 "기간제 근로계약이 반복 갱신되어 갱신에 대한 정당한 기대권이 형성된 경우, 사용자가 합리적 이유 없이 갱신을 거절하면 부당해고에 해당 한다"고 판시 하였읍니다(대법원 2011. 4. 14. 선고 2007두1729 판결).
10년 이상 정규직으로 근무 하다 계약직으로 전환된 근로자는 단기간 고용된 계약직보다 훨씬 강한 갱신 기대권을 주장할 여지가 있습니다.
이 경우 계약기간 만료를 이유로 한 종료는 실질적으로 정당한 사유 없는 해고와 다름없이 취급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7, 요약 정리
정규직 10년 이상 근로자의 계약직 전환 합의는 그 합의 자체가 자유로운 의사에 기반하고 반대급부가 합리적이며 강행규정에 위반되지 않는다면 원칙적으로 유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① 합의의 진정성 결여 시 취소 가능, ② 2년 경과 후 기간제 법에 의한 무기 계약 간주, ③ 계속근로기간 승계로 인한 퇴직금, 연차 재산정 의무, ④ 불이익 변경 시 집단적 동의 절차 흠결로 무효, ⑤ 갱신 기대권 성립으로 계약 만료 종료 차단이라는 다섯 가지 법적 보호막이 여전히 작동합니다.
실무적 차원에서 단순한 합의서 한 장으로 정규직의 모든 법적 보호를 소멸시킬 수 없다는 점을 반드시 인식하여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