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의 봄을 가져올 노래의 해일을 준비하다 – 이소선합창단의 자체 연습실 ⟪공간 소선⟫ 첫 수요 정기 연습 – 김동원의 글터 (kdongwon.com)
이소선합창단은 2022년 10월 12일 공간 소선에 모여 수요 정기 연습을 했다. 이 연습은 매우 뜻깊은 연습이다. 공간 소선이 이소선합창단이 방배동에 마련한 자체 연습실이기 때문이다. 이 날의 연습은 이 새 연습실에서의 첫 연습이다.
그동안 합창단은 자체 연습실이 없어 이곳저곳을 떠돌며 일주일에 두 시간을 임대하여 연습해왔다. 임대하던 입장에서 이제는 시간 단위로 임대를 해주는 전혀 다른 입장이 되었다. 합창단으로선 한 획을 긋는 큰 일이다. 새 연습실은 내방역 1번 출구로 나가면 5분 거리에 있다.
새 연습실 공간 소선을 찾아가는 일은 쉽지가 않았다. 근처까지 갔는데 아직 간판이 없어 옆의 건물들을 기웃거리게 만들었다. 지하라는 말을 들어 특히 옆건물의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을 기웃거리게 되었다. 지하로 내려가는 한 계단에 체게바라의 그림이 걸려있어 혹시나 여긴가 싶었다. 이소선합창단도 노동 해방을 꿈꾸는 합창단이란 점에서 체게베라와 뜻이 같기 때문이었다. 골목으로 들어가서야 일러준 건물명을 한자로 내걸고 있는 건물을 보게 되었다. 1층이려니 하고 들어간 층이 벌써 3층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지하층에 마련된 연습실의 문을 처음으로 열 수 있었다. 알았으면 대로에서 곧바로 이어지는 통로로 들어갈 수 있는 구조였다.
이미 와 있던 단원에 더하여 연습시간인 일곱시반까지 단원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누군가 예전에는 우리 연습시간까지는 들어가지도 못하고 바깥을 서성이며 기다리곤 했는데 이제는 일찍 와도 얼마든지 들어와서 기다릴 수 있어서 우리의 공간을 마련했다는 실감이 난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의 공간으로 단원들이 모이고 새 연습실 마련한 것을 기념하여 케이크에 촛불 하나를 꽂고 연습실의 탄생을 축하했다.
그리고 연습이 시작되었다. 내게 합창단의 연습은 어떻게 말이 노래가 되는가를 보여주는 시간이다. 그 시간엔 우와 같이 그냥 늘어놓았으면 아무 의미도 없었을 말들이 리듬에 실려 의미있는 노래의 일부가 된다. 그런 면에서 노래는 놀랍기 짝이 없다. 마치 그런 부분들이 세상에 하찮은 사람이란 없고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의미있다는 응원 같기도 하기 때문이다.
연습은 지휘자 임정현에게서 노래의 설명을 듣는 시간이기도 하다. 임정현은 발음이 연결되도록 하라고 했다. 말이 자꾸 끊어진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노래를 아는 사람만 알 수 있는 어떤 섬세한 부분일 것이다. 또 소리를 부끄러워지 하지 말고 노래를 부르라고 했다. 소리를 부끄러워하다니. 우리는 부끄러우면 얼굴이 홍조를 띄고 눈을 피하게 된다. 노래가 그런 부끄러움을 지우고 얼굴을 드는 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천에서 있을 합창축전에 대비하여 솔로 네 명에 대한 특별한 연습이 있었다. 솔로 부분의 첫부분을 여는 베이스 조문희에게 임정현은 성대를 명치로 내리라고 했다. 나로선 도무지 알 수가 없는 말이었다. 아니, 성대는 목에 고정되어 있는 건데 그걸 어떻게 명치로 내리라는 것인지. 가끔 노래의 세계는 불가사의하다. 노래를 하는 사람들은 성대를 몸의 여기저기로 옮겨 다닌다.
임정현은 소리를 크게 내는 것과 음정을 높이는 것은 다르다고 했다. 테너가 소리는 충분히 큰데 음정이 자꾸 떨어진다는 지적끝에 나온 애기였다. 이곳은 내가 구별못하는 것이 구별되는 섬세한 세상이다. 노래를 알고 잘 부른다는 것은 그런 구별을 한다는 얘기이기도 할 것이다.
임정현은 가끔 한 파트만, 가령 테너나 알토 파트만 따로 노래를 불러보게 했다. 나는 그때마다 모든 파트가 함께 내는 소리가 정말 얼마나 엄청난 것인가를 깨닫곤 했다. 합창은 그 자체가 함께의 힘을 보여주는 장르다. 그 힘은 때로 한 파트만 노래를 부를 때 더욱 실감난다.
임정현은 미묘하게 웃기는 얘기도 한다. 테너가 좀 재수있게 노래를 불렀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는 피식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왜 그렇게 재수없게 부르냐고 했다면 기분 나빴을 것이다.
노래에 관한 도움말은 계속된다. 임정현이 힘을 주면 소리를 억압하게 된다면서 자꾸 힘을 주게 되는 것은 욕심을 내서 그렇다고 했다. 그렇다면 노래란 욕심을 버리는 일이기도 하다.
정확하게 할수록 음악이 좋아진다는 말도 인상적이었다. 글을 쓸 때도 그렇다. 표현이 정확해야 좋은 문장이 된다.
재미난 장면도 있었다. 테너 이응구가 베이스 파트로 자리를 옮긴 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토요일에 급하게 참여하게 된 공연이 있는데 베이스 참여자가 한 명 뿐이어서 나온 궁여지책이었다. 토요일의 공연 참여자만으로 잠시 연습을 했다. 공연 참여자가 적었지만 나는 마치 합창단이 모두 참가하는 줄 알았다고 했다. 지휘자가 왜 또 이러시냐고 했다. 합창단에 대한 내 애정은 깊어서 정확한 판단력을 해칠 정도이다.
중간의 휴식 시간이 끝나고 다시 연습에 들어갈 때 정단원이 된 테너 김용우와 알토 김정은에 대한 축하의 시간도 있었다. 두 사람에겐 장미꽃이 건네졌다. 꽃에 어울리는 두 사람이었다.
노래가 노래를 부르고 듣는 행위가 아니라 노래 부르는 사람이 갖고 있는 것을 관객에게 주는 행위라는 것을 암시하는 말도 있었다. 내 안의 소리를 바깥으로 다 버리듯이 쏟아내라고 했기 때문이다. 가지고 있지 말고 관객에게 주라 했다. 나는 노래를 들을 때 사실은 소리를 얻는다.
마지막 연습은 <봄소식>이었다. 인천에서 있을 합창축전에서 부를 노래이다. 이 봄은 매년 계절이 바뀌면서 어김없이 찾아오는 그 봄이 아니다. 이 봄은 아주 특별한 봄이다. 노동의 세상에 오는 봄이기 때문이다. 때문이 이 봄은 해방의 봄이다. 연습하는 것을 들으며 노동의 봄이 아주 미약하게 오는 것 같은데 어느 순간 모두의 연대 속에 우리의 세상으로 마치 해일처럼 쏟아져 들어올 것이라고 노래가 예고하는 듯했다.
이소선합창단은 매주 수요일 연습을 한다. 단순히 노래를 잘하기 위한 연습이 아니다. 의미없는 짧은 말들이 노래 속에 어울려 의미를 갖고, 해방의 봄을 예고하던 노래가 실제로 해일처럼 쏟아져 나가 세상 모두의 봄이 되도록 준비하는 일이다. 새연습실에서 이소선합창단의 많은 노래들이 준비되고 있다. 2022년 10월 12일은 그 첫 연습날이었다. 연습이 끝나고 연습실의 가운데로 모여 기념 사진을 찍었다. 모두의 얼굴이 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