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성야 강론

작성자신티아|작성시간19.04.20|조회수96 목록 댓글 0


우리는 사순시기 동안 죄악을 끊어버리고 회개와 보속의 삶을 살았다. 죄악이란 무엇일까. 하느님에게서 도망가는 것이다. 그분의 자비를 뿌리치는 것이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초대하시는 영생으로 들어가려면, 회개와 보속을 통해 내 죄와 함께 죽는 것으로는 불충분하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것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우리는 예수께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사순시기와 성삼일을 통해 보았다. 예수께서는 대략 AD 30년 4월7일 오후 3시경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 부활은 4월9일 주일 아침 새벽에 발현하셨다. 역사와 성경학계에서 예수께서 부활하신 설명에 관해 6가지 이론이 있다.
예수님과 무관한 누군가가 시신을 치웠다. 2.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분의 시신을 훔쳐갔다. 3. 빈 무덤은 예수님의 무덤이 아니었다. 4. 산 채로 매장되었던 예수님이 나중에 무덤에서 빠져나갔다. 5. 이주자 예수님 6.부활의 발현은 육적이 아닌 영적인 것을 의미할까?

오늘날처럼, 예수님의 시대에도 일어난 충격적인 하나의 사건에 대한 여러 가지 소문들과 말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이렇게 6가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연구들은 존중받아야지만 참으로 믿음의 증거인 부활 신앙을 지워버릴 순 없을 것이다. 주님은 당신이 사랑하고 곁에 있다고 느낀 제자들 마음속에서 부활하셨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주님이 곁에 있음을 느끼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다시 매일매일 부활할 것이다.

오늘 복음에서 그 첫날 아침 새벽에 여인들은 준비한 향료를 가지고 무덤으로 갔다. 가보니 주 예수님의 시신이 없었다. 여자들이 당황하자. 눈부시게 차려 입은 남자 둘이 나타나 “어찌하여 살아 계신 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서 찾고 있느냐? 그분께서는...되살아나셨다. 그분께서 갈릴래아에 계실 때 너희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지 기억해보아라.”(루카24,5-6) 기억은 상대에 대한 최소한의 사랑인 듯하다.

부천의 김스테파노님이 있다. 그는 60대에 k-pop오디션 프로에 나갔다. 오디션심사위원이 물었다. 이렇게 늦은 나이에 오디션 프로에 나가니 부인이 뭐라고 하더냐? 그는 말했다. “부인은 20여 년 전에 죽었고. 사별했다.” “하지만 나는 부인이 남긴 명언을 기억하며 오늘도 힘차게 산다. 그 명언이란?” “산 사람은 살 준비를 하고, 죽을 사람은 죽을 준비를 하면 된다.” “이 말로 오늘까지 제가 살아왔고, 하고 싶은 것을 이렇게 하면서 이 오디션프로에 나왔다.”
예수님은 공생활에서 수차례 “사람의 아들은 죄인들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루카24, 5-7)

오늘 복음은 말한다. “어찌하여 살아 계신 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찾고 있느냐?” 예수님의 말을 기억하고 있던 여인들! 예수님의 무덤을 남자들 보다 먼저 겁 없이 찾아간 것도 여인들이었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일 먼저 당신의 부활을 드러내 보인 것도 여인한테였고, 부활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무서워하면서도 기쁨에 넘쳐서 그 소식을 전한 것도 여인이었다. 여인들 중에서도 귀부인이나 돈 많은 이가 아니라 보잘 것 없는 신분의 여인이었다. 바위를 소리 없이 부술 수 있는 건 물뿐이듯, 부드러움만이 강한 걸 이길 수 있다는 자연의 이치가 느껴지는 게 부활사건이 아닐까요? 그러니 진리요 사랑이신 주님, 그분의 진리는 아무리 죽여도 새로 태어난다는 것을, 당신의 사랑은 가장 낮은 이들 사이에서 살아 움직인다는 것을, 저희들이 어찌 믿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부천의 김스테파노님에게, 이웃들이 ‘당신의 부인은 이미 돌아가셨어.’ 하고 말할지라도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을 것이다. ‘그녀는 단지 잠자고 있을 뿐이네, 내가 그녀를 깨워 일으킬 것이다.’ 주님의 이 부활신앙으로 오늘도 그는 열심히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 죽음으로 성금요일에 “인간죽음의 세계인 저승”에 내려가셨다. 그렇게 그리스도의 죽음이 인간들의 죽음을 이겼고 지금 부활하셨다. 부활성야의 전례가 오늘날 전 세계에서 교회의 참 모습을 드러낸다. 부활전례는 복잡해 보여도 단 두 가지, 빛의 예식과 세례예식이 전부다. 모두 죽지 않고 태어나는 빛과 생명의 부활을 증거 한다.

우리는 모두 죽어야 하고, 현 세상과 작별을 고해야 하지만, 영성적으로는 우리가 이미 세례 때 성사의 신비 안에서 죽었고, 우리는 하느님의 아들로서 물에서 다시 일어났다. 성금요일이 부활주일과 만난 것이다. 그리스도의 죽음이 우리의 죽음을 이기시고 살리셨다. 사람은 죽어가지만 부활은 총체적인 삶, 안녕, 건강을 나타낸다. 전혀 다른 생명으로 나타나 그렇게 근본적인 치유로 다가온다.

북유럽 여행 중에 발생한 한 가지 체험이야기가 있다. 사람들이 안개로 길을 잃었다. 사람들은 소리를 계속해서 질렀다. 왜냐하면 서로 헤어지지 않고 함께 있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안개가 사라진 다음 즉시 사람 수를 세어보았다. 모두 살았다. 그들은 마치 처음 만나서 안 것처럼 ‘다! 살았다’며 서로 깊은 포옹과 악수를 하였다.

예수님께서 저승에 내려가심에 관한 외경의 기록을 보면 죽음의 그늘진 골짜기에 들어가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예수님은 그곳에 빛을 가져다 주셨으며 사람들은 다시 알아볼 수 있게 되었다. 예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손을 건네주시고 있고 성조들과 예언자들은 그들에게 손을 흔들며 안녕하며 인사를 나누고 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하나로 통하도록 일치의 상징으로 창조하셨다.

북유럽 여행 이야기처럼 날씨가 나빠 안개가 우리를 갈라놓아서 서로 알지 못하지만 우리가 서로 헤어지지 않도록 소리를 높이 높이 지른다면 부활신앙은 안개를 사라지게 할 것이다. 그럴 때 땅위에 살아있는 모든 이들과 손을 마주 잡기 시작할 것이다. 죽음이 처음 살아있던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눈을 감게 하는 것처럼 나타나더라도 오늘의 눈으로 그 것을 모두 새롭게 볼 수 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제가 시드니 한인성당에서 사목한지 세달 됐습니다. 그간 사목위원들과 단체장들 그리고 구역판공을 하며 대략 800명의 교우들과 고해성사 드리고 면담도 하였습니다. 특히 어르신 분들이 원하는 것과 젊은이들의 신앙생활에 대해 대화했습니다. 그런데 여러 어르신들께서 자기들을 위한 경로잔치를 하지 말아달라고 건의하셨습니다. 시드니 성당에서 유일하게 경로잔치를 하고는 있지만, 여러 가지 여건(장소협소, 위생, 건강, 안전문제 등)으로 보아 하지 말 것을 요청했습니다. 저는 즉시 구역반장님들을 통해 의견을 여쭸고, 대략 총 구역반원들의 76%는 이런 형태의 경로잔치를 하지 말자는 의견을 보였습니다. 혹 여라도 매번 하던 행사를 그만두게 돼 섭섭한 마음을 가지시는 분들께는 진심으로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저는 시드니 어르신들을 위해 보다 더 안전하고 건강하며 좀 더 낳은 공경과 돌봄을 위해 마음을 다해 준비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저는 우리성당이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야전병원”의 모습을 구현하여 나가길 바랍니다. 본당봉사자를 구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여러분들 스스로 봉사할 수 있는 용기를 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목위원들과 구역반장들과 함께 “한 마리 잃은 양을 찾아 가신 예수님처럼”, 마음을 다해보려고 합니다. 영적 잔치를 행하고 보여주신 예수님을 따라, 어르신 분들을 마음으로 모시고, 봉사자들이 지는 짐도 가벼워 서로 사랑하고 협력하는 부활공동체가 되고자 노력할 것입니다. 우리 성당이 누구라도 가볍고 기쁘게 봉사할 수 있는 영적인 부활 공동체가 되는데 “공동합의와 협력”의 2차 바티칸공의회의 정신으로 하나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 서로 사랑합시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지금까지의 모든 아픔, 몰이해, 갈등, 상처를 흔들어 깨워주실 것이고 그것들을 치유해주십니다. 그리고 새 살이 돋아날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옷자락, 마음자락을 꼭 붙들고 우리 함께 어깨동무하고, 한 걸음 한 걸음 시드니 한인 성당 우리 공동체 나아갑시다. 함께!!!

부활은 개인의 회복, 사회 공동체의 회복이다. 예수죽음의 첫째원인은 성전정화사건이다. 성전을 장사하는 집이 아니라 기도하는 집으로 만들겠다는 뜻이다.
예수죽음의 둘째원인은 예루살렘 입성사건이다. 예수님은 세상물질의 왕이 아니라 영적인 왕으로 입성하신 것이다. 우리의 성당도 “참으로 기도하는 성전”, 늘 “영적인 잔치를 벌이는 나라”로서 공동체가 되기를 함께 노력합시다. 이럴 때 우리의 성당은 부활 공동체로서 항상 기쁨과 사랑이 넘칠 것입니다. 서로 사랑합시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알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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