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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8년 3월 15일 당대의 유명한 움브리아 출신 건축가 갈레아초 알레씨 (Galeazzo Alessi, 1512-1572년)는 교황 비오 5세 (Pio, 1566-1572년)의 부탁을 받고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심장인 포르치운콜라를 품에 안은 마리아께 봉헌된 대성당 도면을 완성하였다.
1569년 3월 25일 기공식을 마치고 이듬해인 1570년 3월 12일에 대공사가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
교황 그레고리오 14세 (Gregorio, 1572-1585년)는 교황 비오 5세 사후에 그분의뜻을 이어받아 성당 완공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양쪽 벽면에는 각각 다섯 개의 경당이 있으며 성당 내부에는 많은 예술가들의 작품이 있어 이곳을 방문하는 신앙인들에게 영감을 불어 넣고 있다.
대성당의 가로와 세로가 교차되는 중앙에는 프란치스코회의 기원을 알리는 건축학적으로 귀중한 유물인 포르치운콜라와 통과 경당을 감싸는 알레씨 수사가 세운 도움이 우둑 솟아 있다.
이곳에는 대성전과 더불어 박물관, 경당, 장미의 정원, 수도원, 도서관 등이 있다.
그 복도 끝을 돌아 도착하는 곳이 바로 장미의 경당이다. 이는 원래 프란치스코 성인이 금욕과 단식으로 쇠약한 몸을 뉘였던 보잘 것 없는 오두막이 있던 자리로 보나벤투라 (Bonaventura) 성인이 1260년경에 이곳에 경당을 마련하였다.
경당 제대 앞과 양쪽 벽면에는 프란치스코 성인의 생애의 중요한 사건을 재현한 프레스코화가 있다.
순례객들 중 누군가가 그림 위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어서 보는 이로 하여금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중간쯤에는 프란치스코 성인이 성 가정을 방문하여 아기 예수님을 경배하는 실물크기인 구유가 나온다.
이어서 성물판매소가 등장하고 많은 순례객들이 성지 방문을 기념하고자 크고 작은 성물들을 사간다.
이 작은 공간에서 자연의 생물들과 소탈하게 이야기를 주고받았던 자연애찬론자인 청년 프란치스코를 만날 수 있다.
/최금자 글, 김용길 사진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