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공안파(公安派)'는 어떤 문학 유파인가?
'공안파(公安派)'는 중국 명대(明代)의 문학 유파이다. 공안삼원(公安三袁), 즉 원종도(袁宗道) · 원굉도(袁宏道) · 원중도(袁中道)의 원씨 3형제가 공안파의 대표 인물들로서, 이들은 적관(籍贯)이 호광(湖广)의 공안(公安)[현재는 호북성(湖北省)에 속함]이기 때문에 흔히 '공안파'로 불린다. 이 유파의 주요 성원으로는 강영과(江盈科) · 도망령(陶望龄) · 황휘(黄辉) 등이 있는데, 이들은 대개는 만력(万历) 시기의 사람들이었다. 명대 홍치(弘治) 이래 문단은 전후칠자(前后七子)에 의해 장악되었는데, 그들은 "산문은 반드시 진한, 시는 반드시 성당(文必秦汉, 诗必盛唐)"의 구호 아래 복고주의(复古主义)를 제창했다. 그러나 이 복고주의는 모방과 표절을 당연시하는 폐단을 낳아 문학 발전을 몹시 저해했다. 이런 문학 풍조에 대해서 귀유광(归有光) 등의 당송파(唐宋派) 작가들이 일어나 반대했지만 그 유폐를 바로잡을 수 없었다. 그 후에 이지(李贽)와 서위(徐渭) 등이 복고파를 비판했는데, 이들은 실제로 공안파의 출현을 선도하는 역할을 했다. 복고파를 강력히 비판하여 나름의 성과를 올린 것은 바로 이 공안파였다.
공안파의 문학 주장은 원종도로부터 비롯되지만, 실제적 중견이자 지도 인물은 원굉도였으며, 원종도은 그들의 주장을 좀 더 확대한 사람이었다. 그들은 복고적 문학 풍조에 반대하고 모방과 표절을 일삼는 왜곡된 문학 행태를 강하게 질타하여 복고파의 그릇된 문학 풍조를 시정하여 했다. 공안파의 문학 주장은 다음처럼 요약할 수 있다: 1. 표절(剽窃)을 반대하고 통변(通变)을 주장했다. 전후칠자들은 복고주의는 건설적 복고주의가 아니라 고대 작가들의 글들을 표절하고 모방하는 퇴영적 행태로 일관했다. 이에 대해 공안파에서는 문학이란 시대에 따라 변화하고 발전하는 것이며, 문학 창작을 속박하는 구속을 떨쳐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의 문학관에서 제기된 문학의 시대성과 상대성은 매우 진보적인 문학관으로 평가된다. 2. 시의 창작은 "독서성령, 불구격투(独抒性灵, 不拘格套)" 즉 시의 창작이란 순수하고 자유로운 시 정신의 직접적 유출, 그리고 규범과 격식에 억매이지 않는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3. 민가(民歌)와 소설(小說)을 높이 평가하고, 통속문학(通俗文学)을 제창했다. 공안파는 『수호지(水浒志)』를 『사기(史记)』보다 높이 했는데, 이것은 그들의 문학관과 관계가 있으며 또한 민간문학과 통속문학의 사회적 지위를 제고하는 데 적극적인 작용을 했다. 공안파는 문체(文体)를 해방하는 데 기여를 했으며, 그들이 지은 여행기(旅行記) · 서간문(书简文) · 소품(小品)은 특색이 있으며 빼어나고 산뜻하고 맑으며 활달하고 익살과 유머가 있어서 스스로 일가(一家)를 이루었다. 그러나 그들은 현실 문학 생활에서 소극적이었으며, '동심(童心)'을 위시한 문학 주장들도 추상적이고 우회적이었고, 시 작품들은 신변의 잡사(杂事)나 자연 풍경이 대부분이어서 창작 제재가 폭이 넓지 못하여 그들의 실제 문학 창작 실천은 자신들의 문학 주장의 수준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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