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양실추(梁实秋)는 어떤 작가인가?
양실추(1902-1987)는 본명은 양치화(梁治华), 자(字)는 실추(实秋). 북경에서 태어났고, 1915년에 청화학교(清华学校)에 입학했다. 1923년에 빙심(冰心), 허지산(许地山) 등과 함께 배를 타고 미국으로 유학갔다. 미국에서는 문일다(闻一多)와 함께 살았으며, 1926년에 귀국한 후에 남경동남대학(南京东南大学) 등에서 교편을 잡았다. 1927년에는 신월사(新月社)에 가입, 중요 성원이 된다. 1930년대에는 문학의 계급성을 부정하여 좌련(左联)과 대립하고 루쉰(鲁迅)과 논쟁을 벌였다. 루쉰이 "자본가의 주구", "상가집 개"라고 공격한 것은 바로 양실추를 겨냥하여 한 말이었다.
중국이 공산화된 1949년 이후에 대만으로 건너가서 대만사범대학(台湾师范大学) 등에서 교수로 임직하다가 65세 이후에는 오로지 창작에 전념했다. 양실추는 거의 일생을 서재에 틀어박혀 학문에만 전념하고 창작을 즐거움으로 삼아 세상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는 생활을 했다. 그는 "책상 하나 의자 하나 침대 하나가 있어서 달게 자고 글을 쓰고 읽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고 다른 것을 구하지 않는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중국 내 셰익스피어의 최고 권위자로, 1930년대에 시작한 셰익스피어의 극들을 40년의 세월을 바쳐서 1970년에 모두 번역을 완성했다(극본 37권, 시 3권). 그리고 만년에는 7년의 시간을 들여 100만 자에 이르는 『영국문학사』를 저술했으며, 120만자의 『영국문학선』을 번역했고, 또 124권의 『세계명인전』을 번역했다. 그리고 30여 종의 영어 사전과 수 십 종의 영어 교재를 번역하고 편집했다. 1987년 11월에 대만의 대북(台北)에서 병으로 별세했다. 창작집으로는 『雅舍小品』,『雅舍杂文』,『秋室杂文』,『实秋杂文』,『实秋文存』,『槐园梦忆』 등이 있다.
양실추(梁实秋)는 예술지상주의 입장을 취한 작가였다. 그의 이런 문학관은 노신(鲁迅)과도 충돌하여 그로부터 '자본가의 주구, 상가집 개'라는 비판을 들어야 했다. 그는 중국 내 최고의 셰익스피어 전문이가이기도 하고, 여러 권의 영어-중국어 사전을 집필한 사전 편찬 전문가이기도 하다. 사진은 대만 체류 중의 양실추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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