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레, 향약, 품앗이......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⁴ 시험보기 위해 그저 달달 외던
단어들.
캐캐묵은 쌍팔년도를 떠올리게 하는,
무언가 낡게 느껴지는 글자들 앞에서.
저 단어들에서 멀어지는 만큼 우리의 삶이
더욱 팍팍해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기도 합니다.
137기 수업을 시작하며 한 주 한 주 지날수록
새 기수를 위한 보이지 않는 손길들의
엄청난 도움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어요.
겨우 3주차 초보들이 하는 포트럭 파티에
놀러와주신 선배들, 협찬해주신 매니저님 총무님
두레라는 마을 단위의 공동 노동을 몸소 보여 주셨고
가두리 공간 내어주시며 틈틈이 관심 가져 주신
수쁘에서 만난, 쏠땅이라는 이름의 먼 친척같던 선배들도 마을 단위의 자치 규약을 앞서 실천해 주셨네요.
품(노동) 앗이(받음) 이라는 뜻이라는 걸 오늘 검색해보고 알았어요. 문제는 내가 받은 만큼 반드시 되돌려 주는 것이 원칙이라는 군요.
하하하!!
어버버하는 사이에 다 사랑의 품앗이를 다 받아버렸으니
반드시 갚아야 되는 처지가 되어,
어제 저는 미어터지는 지하철을 타고
홍대에 왔었죠.
수쁘지기 하러요.
모두가 바쁠 크리스마스 이브가 수요일이고 보니,
달리 바쁠 일없는 제가 수쁘지기할 수 있는게
감사한 일일 수도 있겠군요.
미력하나마 얼결에 받은 뜨거운 관심과
사랑들 갚아나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발표회 하기 전까진 기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진 못 했어요.
쏠땅이라는 가문의 일원이 되었다 정도의
소감이었달까요.
뒷풀이 비 참여파 였으니
끈끈함이 생길 기회가 적었을 수도 있었겠네요.
그저 닉네임 알고 지내고,
심지어 닉네임과 얼굴을 일치 못 시키는
경우도 흔했습니다.
연습실에서 몇 번 연습을 하고도
저 분 닉이 뭐더라..
혼자 고민하다 쌉한테 가서 살짝 물어보기도 했죠.
오늘은 이 팀의 분위기가 저기압이고
내일은 우리 팀의 분위기가 폭풍 전야같은 날들의
연속이었지만,
연습실에서, 단톡방에서 날이면 날마다 부대끼다 보니
절로 정이 들어 갔네요.
내 땅고의 영원한 우군이 되어줄 울타리가 그 무렵 완성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 팀 음악이 더 근사한 것 같아서 불안하고..
저 팀 다음 순서로 하면 모자란 실력이 드러날까
조마조마하던,
모든 것들이 부정적으로 느껴질 즈음
발표회는 코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다들 밥도 안 먹고 잠도 안 자는지
하루하루 실력이 일취월장하는 발표회 동기들을
보니 내 일인듯 기뻐서 절로 물개박수가
나오기도 했어요.
모두들 입모아 두 번 못 할 짓이라며
아우성이었으나,
영원할 것 처럼 진지하게 열심히 임하는
모습이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그냥
어느 토요일에 모여 연습한 춤 한 번 추어보이는 게
발표회겠거니 생각한 건 저의 경기도 오산이었네요.
리허설에 최종 리허설까지.
생업에 바쁜 동기들과 외부 분들까지 모셔서
조명과 음악 동선까지
모든 것을 미리 맞추어 보던 발표회 전 날의
진지한던 시간을 잊을 수 없을 겁니다.
빙판 요정들, 피겨 선수들이나 하는 줄 알았던
드레스 리허설을 다 해보고요.
살다보니 주인공 역할도 해보고요.
몇 개의 드레스를 입어보고 춤춰도 봤으나
결국 최종일에 예상에 없던 옷을 입고
무대에 섰습니다.
뭐,
인생이 다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것.
그래서 더 기대가 되기도 하는 것.
삼대 구년 만에 분장도 해보고
스폿라이트도 받아보고,
좋은 연습실 빌려
쌉들 보호 아래 대기도 해보고
원없이 연습도 해보고..
무대가 터져 나갈듯 한 박수도 받아보고!
다린과 제가 한 일이라곤
그저 우리를 위한 춤을 많이 열심히 춘 것
밖에 없는데요.
그 덕에 탱고 실력 뽝 늘었고요.
그 외 모든 일은 우리를 위해
헌신해준 두레 향약 품앗이라는
조상 대대로 이어온 아름다운 전통에
입각한 쏠땅 가족들의 헌신과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발표회란 단어를 나와 가장 먼 곳에 던져 두고
그저 어느 밀롱가가 재밌을까에
진심이었던 제 자신을 반성합니다.
전생의 인연으로(?)
쏠땅 기수가 되었으니
면면이 이어지는 역사와 전통에
발맞추어 나가야지요.
발표회가 좋은건,
발표회 팀을 위해
개인적인 이유로 발표회 참여하지 못 한
기수들이 너무나 많은 희생과 지지를 해주는 걸
고스란히 받을 수 있다는 겁니다.
ㅋ
저처럼 이기적이고 계산적인 인간은
피죤님 니엘님 그랑블루님 후니님처럼 리허설부터
자신의 일인듯 뛰어들어 돕지 못 했을 것이고,
디아나님 클레어님처럼 발표회 날 내내
공연자들 뒷바라지에 뒷풀이 세팅까지
내 일처럼 뛰어다니며 해내지 못 했을 겁니다.
추운 날 젤 앞자리 맨바닥에 앉아 열열한 박수쳐 준
분들도 동기였고,
참여 못 해서 미안하다며 물심양면 후원해준 것도
결국 카미노 137기들 이었어요.
괜히 썼나봐요.
받은 게 너무 많아서 앞으로 어떻게 갚아야 하나
걱정만 하다 글을 마무리하게 생겼네요. ㅜ
황량한 사막같은 지구 생활에서
누군가가 주는 조건없는 사랑을
원없이 받아보고 싶다면
꼭 발표회에 참여해 보세요.
탱고에 대해 알쏭달쏭하다면
반드시 발표회에 몸 담궈보세요.
정신없이 연습하는 와중에
어느 날,
그 까칠하고 예민한 탱고가
달달한 손길을 내밀어 줄겁니다.
이 바닥에 있다보면 누구나 언젠가 받아볼 수
있는 손길이지만..
누군보다 빠르게 받아보실 수 있을 거예요.
힘들고 어렵고 지치고 후회하고 자책하는
순간들의 연속이 발표회 준비 기간이지만,
그걸 이기고 견뎌낸 순간 주어지는
성취감과
탱고에 한발짝 다가선 느낌은
모든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고도 남지요.
제가 좀 모든 면을 후벼파며 생각하는 인간이라서
남들은 재미로 지나간 발표회를
대하드라마로 써내려가는 경향이 없지 않아 있지만,
주저리 주저리 읊어내려 가는 것은.
초급 수업 듣고 의례적으로 하는
발표회 한 번으로
탱고를, 우리 동호회를 받아들이는
자세가 달라질 수 있고
그로 인해 향후 탱고라이프가 달라질 수 있음을
몸소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발표회 공연으로, 도우미로 축하부대로
마음의 응원으로 함께 해준 우리 137기 모든 기수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해요.
쌉들과 모든 선배님들, 후배님들 께도요.
두레 향약 품앗이,
아름다운 전통을 계승은 못 할 지언정
산통깨는 싸가지바가지가 되지는 말자고
어금니 꽉 깨물며
3부작을 마칩니다.
부족한 글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려요.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쥬니(솔땅총무.111기.124기품앗이) 작성시간 25.12.26 new
멋찐~ 여성 이네요🥰
롤님~~ 앞으로 솔땅의 든든한 기둥이 되어주실 분들♡
응원하고 사랑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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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피죤(CAMINO137) 작성시간 25.12.26 new
역쉬 롤님!!
솔땅의 결을 제대로 알려주시니 덕분에 많이 배웁니다.
탱고 대한 쌩뚱한 질문에도 명쾌한 답변 주시고
혼자 연습하다 망연자실할때도 나아갈 용기도 주시고.
저에겐 롤님이 진정한 동기애를 알려주신 분입니다.
그 여유!! 크흐!! 짱입니다앙!
우리 오래도록 웃으며 탱고 즐겨요.
선한 영향력을 일으키시는 롤님!! 늘 감사합니다.
히이잉… 아침부터 눈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