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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제 27장
=====27:1
다윗이 그 마음에 생각하기를...망하리니 - 본절과 같은 다윗의 생각과 판단은 자
연스러운 것이었다. 사실 사울은 다윗을 해치지 않겠다는 약속을 굳게 맹세하고서도
(24:16-22) 그 약속을 스스로 뒤엎는 등, 다윗으로서는 도저히 사울을 믿을 수 없는
짓을 저질렀었다. 따라서 다시는 다윗을 죽이지 않겠다고 했던 십(Ziph) 진(陳) 사건
(26:6-12) 직후의 사울의 약속(26;21, 25) 또한 다윗으로서는 믿을 수 없었다. 더구
나 사울의 주변에는 사우로 하여금 다윗을 죽이도록 부추기는 인물들이 있었으며
(24:9; 26:19), 특히 다윗의 은신처 주변에는 다윗의 행동을 밀고하는 `십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23:19; 24:19), 특히 다윗의 은신처 주변에는 다윗의 행동을 밀고하는
`십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23:19; 24:1; 26:1). 따라서 600명의 군사와 그에 딸린
남녀 가족들을 거느린 다윗으로서는 언제까지나 불안정한 도피 생활을 할수가 없었기
에, 당시 사울의 추격권으로부터 가장 안전한 `블레셋으로의 도피'를 결정하기에 이른
것이다.
블레셋 사람의 땅으로...들어가는 것이 상책이로다 - 당시 다윗이 자신에게 우호적
인 모압(22;3, 4) 보다 블레셋으로의 도피를 상책(上策)으로 생각한 이유는 다음과 같
다. 즉 (1) 자신과 600명의 군사 및 그에 딸린 가족들의 보다 안전한 도피 생활을 위
해서는 당시 이스라엘보다 약소국인 모압 보다는 강력한 군사력을 가진 블레셋이 더
좋다고 판단되었으며, (2) 또한 블레셋이 모압보다 이스라엘과 더 인접한 곳에 블레셋
이 모압보다 이스라에로가 더 인접한 곳에 있는 관계로, 유사시의 사건에 대비하는데
더 좋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일 것이다(J.P. Lagne, Commentary on the Holy Scripture)
아무튼 이방의 땅인 `블레셋 족속의 땅으로 들어 가는 것'은 다윗이 최악의 경우 취하
려고 했던 선택이었다(26:19, 20).
사울이...수색하다가 절망하리니 - 바로 이러한 목적을 위하여 다윗은 블레셋 땅으
로 피하여 들어가려고 했다. 따라서 그때 다윗은 블레셋 땅에서 오래 머물 생각은 전
혀 없었음이 분명하다.
=====27:2
일어나(* , 야캄) - 성경 용례상 이 표현은 종종 결정적인 그리고 중대한 의
지적 결단이 이루어지는 문맥에서 사용되는 단어이다.
함께 있는 육백 인 - 다윗의 휘하 추종 병력으로, 여기의 이 숫자는 앞에서와동일할
(23;13; 25:13). 한편, 600명이란 숫자는 분명 20세 이상으로 싸움에 출전할 만한 성
인 남자들만을 계수한 수효일 것이다(민 1:3). 따라서 600명의 병력에 딸린 가족들의
수효까지 모두 계산하면, 다윗이 거느린 일행의 총수효는 대략 2,500~3,000명 가량 되
었을 것이다.
가드 왕...아기스에게로 건너가니라 - 비록 블레셋은 이스라엘과는 적대국이었지만
, 그들은 자신들에게 막대한 타격을 가했던 사울 왕에 대해서 특별히 강한 증오심을
가졌던 관계로, 당시 사울의 강력한 경재 자상대이자 증오의 대상인 다윗에 대해서는
오히려 호감을 가졌던 것이다. 바로 이같은 사실을 기대하고 다윗은 블레셋 땅으로
도피해 들어간 것이다. 한편 여기서 `가드'(Gath)는 블레셋의 중요한 도시 중의 하나
로서(5:8; 수 11:22; 13:3 주석 참조), 그 위치는 당시 다윗과 그의 일행이 피신하고
있던 `십 황무지'에서 북서쪽으로 약 37km 지점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가드 왕'은
블레셋의 5대 방백 중의 한 사람임이 분명하다(5:8 주석 참조). 또한 `아기스'(Achis
h)에 대한 자세한 해석은 21:10 주석을 참조하라. 그런데 이때 다윗이, 전에 `아기스
'로 부터 도망나온 일이 있었으면서도(21:10-22:1) 다시 그에게로 도피한 이유는 아마
다음과 같을 것이다. 즉 (1)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나갔으며, (2) 다윗이 아기스의 대
적인 사울로부터 계속해서 핍박을 받고 있었음이 그에게까지 틀림없이 알려졌을 것이
며, (3) 또한 아기스는 다윗의 군사력을 이용하여 자신의 정치.군사적 세력을 확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마옥의 아들 - 여기서 `마옥'(Maoch)은 왕상 2:39에 나타나는 `마아가'(Maachah)와
동일한 인물인 듯하다(Keil, Smith, Fay). 그렇다면 아기스가 솔로몬이 즉위한 직후
까지 블레셋의 가드왕으로서 계속 살아 있었겠느냐 하는 점이 문제가 될 수 있다. 그
러나 아기스가 다윗의 즉위(B.C. 1010년) 직전부터 솔로몬의 즉위(B.C. 970년)직후까
지 약 50여년간 왕위에 있었다면 이 문제는 넉넉히 해결될 수 있다(Keil & Delitzsch,
Vol. II-ii. p. 255).
=====27:3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각기 가족을 거느리고 - 이것은 단지 몇명의 부하만을 데리
고 블레셋 땅에 들어갔던 21장의 경우와는 완전히 상이하다. 다윗과 그의 추종자들이
이처럼 가족까지 모두 데리고 블레셋으로 간 것은 가족들의 안전과 정착을 도모하기
위함이었다.
아히노암...아비가일 - 다윗의 최초 아내는 사울의 딸 `미갈'이었으나, 그녀는 사
울에 의해 다른 남자에게 다시 시집보내졌기 때문에 다윗 아내의 명단 중에서 빠져있
다(25:44).
=====27:4
사울이...수색하지 아니하니라 - 본절의 내용은 다윗이 블레셋으로 도망가기 직전
에 이미 예상했던 바였다(11절).
다윗의 도피 생활 - `엔겐디'동굴 사건 후 사울과 일시 화해한 다윗은 사무엘 사후
또다시 위험을 느끼고 `바란 광야'로 내려갔다. 이후 다윗은 다시 `십 황무지'로 돌
아왔으나, 십 사람들의 밀고 행위로 다시금 사울의 추격을 당한다. 그러나 십 진(陳)
사건으로 또다시 사울의 목숨을 해할 기회가 있었으나 다윗은 사울을 히하지 않았다.
이에 사울은 자신의 잘못을 반성했으나, 다윗은 더이상 사울의 변덕스런 마음을 신뢰
할 수 없어, 결국 블레셋 땅 `가드'의 아기스 왕에게로 도피한다. 그리고 아기스 왕
으로부터 식읍(食邑) `시글락'을 얻어 그곳에서 1년 4개월 동안 정착 생활을 하게 된
다. 이후 다윗의 목숨을 채던 사울은 길보아 전투에서 전사하게 되고, 다윗은 오랜
도피 생활을 마감하고 조국 땅으로 들어오게 된다(24:1-27:12).
=====27:5
내가 당신께 은혜를 받았거든 - 문자적으로는 `내가 당신의 눈에서 호의를 발견했
거든'(If I have found favor in your eyes, NIV, RSV)이란 뜻이다. 따라서 이것은
결국 다윗이 `아기스'와 용병(傭兵) 관계를 형성한 것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즉 다
윗은 아기스와 용병 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에, 필요에 따라 그에게 적절한 요구를
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아기스는 다윗과 바로 이같은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자신의
정치.군사적 세력을 확장하려고 했을 것이다.
당신의 종이 어찌...왕도에 거하리이까 - 당시 다윗의 군사가 약 육백 명이었다면(
2절). 그의 가족까지의 숫자를 모두 합칠 경우 거의 삼천 명은 되었을 것이다. 따라
서 이 많은 숫자는 `왕도'(王都) 가드의 시민들과 갈등을 일으킬 소지가 항상 있었다.
바로 이같은 점을 내세워서 다윗은 왕도 `가드'를 떠나려고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다윗이 가드를 떠나려고 했던 표면적 이유에 불과하였다. 즉 다윗이 지방 성
읍의 독립된 거주지를 요구한 진정한 이유는 (1) 우상 숭배가 성행하던 가드에서 가주
할 경우 자신의 백성들이 이교적(異敎的) 혼합주의에 빠져들 우려가 충분히 있었고(5:
8, 9; 26:19), (2) 다윗이 아기스의 궁전에 자주 출입할 경우 아기스의 신하들에게
시기의 대상이 될 우려가 또한 있었으며(21:11; 29:4, 5), (3) 그리고 다윗이 가드를
떠날 경우 아기스의 정치적 영향권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이점 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27:6
아기스가 그 날에 시글락을...주었으므로 - 아기스 왕에 대한 다윗의 간청이 즉각
적으로 받아들여졌음을 보여 주고 있다. 이것은 곧 아기스가 다윗과 자신을 호혜적(
互惠的) 관계로 인식하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가드 왕 아기스
가 망명객 다윗을 영접하고 그에게 식읍(食邑)으로서 `시글락'을 수여하는 등 다윗을
환대한 것은, 사울과 분명한 적대 관계에 있는 다윗과 그의 무리들을 자신의 신복(臣
僕) 내지는 용병(傭兵)으로 포섭하여 자신의 군사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정치적 계
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12절). 한편 여기 `시글락'(Ziklaq)은 가나안 정복 후 원래
유다 지파에게 할당되었다가(수 15:31), 그후 다시 시므온 지파에게로 넘어간 성읍이
었다(수 19:5; 대상 4:30). 그러나 시므온 지파는 사사시대에 그 땅을 블레셋에게 다
시 빼앗겼던 것 같고, 그 이후 그 성읍에는 사람이 거주치 않은 것 같다(Keil, Fay).
그 위치는 가사(Gaza) 동남쪽 약 24km 지점으로, 그때 다윗이 머물고 있었던 가드(Gat
h) 남서쪽 약 40km 지점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이같은 가드로부터의 먼 거리는 가드
를 떠나려고 했던 다윗의 진정한 목적(5절 주석 참조)을 넉넉히 충족시켜 줄만 했을
것이다. 더욱이 이같은 다윗의 목적과는 달리 아기스는 아기스대로 다윗을 그곳에 주
둔시킴으로써, 자신의 영토의 남쪽 변경을 다른 민족들이 공격해 들어오지 못하게 방
어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을 것이다(Klein).
시글락이...유다 왕에게 속하니라 - 여기의 `왕'(* , 말키)은 복수(plural)
이다. 따라서 `유다 왕'은, 정확히 하자면 `유다 왕들'이란 의미이다. 그런데 이 `유
다 왕들'이란 표현은 북왕국 `이스라엘의 왕들'에 대한 상대적 개념이다. 그렇다면
이 사실은 본서가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분할된 후(B.C. 930년) 기록되었다는 사실을
강력히 시사한다. 아울러 본서 전체를 면밀히 고찰할 때 본서에는 북왕국 이스라엘의
멸망(B.C. 722년)에 대한 암시가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여러 부수주의 학
자들은 본서(사무엘서)의 저작 시기를 분열 왕국 직후(B.C. 930년)로 부터 북 왕국 이
스라엘의 멸망(B.C. 722년)사이의 어간으로 본다(Steinmueller, Moeller, Young, Fay)
오늘까지 - 즉 본서가 기록된 때까지를 가리킨다(서론, 3 `기록 연대' 참조).
=====27:7
블레셋 사람의 지방 - 여기서 `지방'(* , 사데)은 사람이 별로 살지 않는
`빈들'을 언급할 때 사용되는 단어이다(6:1; 창 2;5; 왕상 11:29). 따라서 이것은 다
윗의 독립된 거주지 시글락이 변방에 위치했음을 시사해 준다.
거한 날 수는 일 년 넉달 - 여기서 `일 년'(* , 야밈)은 문자적으로는 `날
들'(days)이란 의미이다. 이같은 사실로 인하여 요세푸스와 칠십인역은 다만 `넉 달'
로 이해하였다. 그러나 여기의 `야밈'은 (1) 성경에서 `매년'의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며(1:3; 2:19), (2) 또한 `일 년'을 뜻하는 관용적 표현이라는 점에서(Klein; 삿 1
7:10; 삼하 14:26), 개역 성경의 번역대로 `일 년'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한편 다
윗은 바로 이 기간이 지난 후 헤브론으로 돌아가 유다의 왕으로 기름 부음 받았다(삼
하 2:1-4).
=====27:8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올라가서 - 여기서 `올라가서'(* , 알라)는 보통 저지
대에서 고재대로 오르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따라서 이는 당시 다윗이 침노한 족
속들이 시글락보다 고지대인 바란 광야의 북동쪽 산악 지대에 거주했음을 시사한다(Ke
il, Smith, Fay). 또한 이 표현은 성전(聖戰)에 있어서 이스라엘 군대가 이방의 군대
를 공격하는 것을 가리킬 때에도 사용되는 단어이다(수 4:19; 6:5; 8:11). 따라서 본
서 저자는 여기서 이같은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다윗이 비록 타국 땅에 도망나가 있기
는 했지만, 그는 거기서도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온갖 애를 쓰고 있었다는
사실을 강력히 시사한다.
그술 사람 - `그술'(* , Geshur)은 정확치는 않으나, `교랑'이란 의미인
듯하다. 그런데 이 종족은 아말렉 족속처럼 유랑 생황을 하던 족속으로서, 그 당시
어떤 한 지역에 모여서 살고 있지는 않았던 것 같다. 즉 그들 중 일부는 요단 동쪽
지방에(신 3:14; 수 12;5; 13:11, 13; 삼하 13:37). 또 다른 일부는 `가사'와 인접한
곳에서 거주하고 있었던 같다(신 2:23).
기르스 사람 - 여기의 `기르스'(* , Girz)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들이 제시
되었다. 즉 (1) 팔레스틴 중앙부의 그리심 산 근처에 살던 한 종족으로 보는 견해(Sm
ith), (2) 블레셋 땅과 이스라엘 땅의 남부에 거주하던 민족으로 보는 견해(IDB) 등이
있다. 그러나 첫째, (1) (2) 의 견해와 관계되는 민족들은 팔레스틴 남부에 위치하고
있던 다윗의 공격 목표가 될 수 없었으며 둘째, 그때 다윗의 또다른 공격목표였던 `그
술 사람 및 아말렉 사람'등이 모두 팔레스틴 남쪽에 거주하던 민족들이며 셋째, 본절
은 다윗으 공격 목표가 되었던 세 민족을 `술과 애굽땅으로 지나가는 지방' 곧 팔레스
틴의 남쪽에 사는 거민들로 말하고 있다는 점 등으로 미루어 위의 세 견해 중 (3)의
견해가 가장 타당한 듯하다.
아말렉 사람 - 이 종족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15:2 주석을 참조하라. 이 `아말렉
족속(the Amalekites)은 일찍이 사울의 군대에 의하여 심각한 타격을 받았지만(15:7,8
), 오랜 세월의 지난 그 당시 아말렉 족속은 다시 자신들의 세력을 규합한 듯하다(Fay
). 그래서 이들은 다시 이스라엘과 블레셋 모두에게 심각한 골치거리가 되었음이 분
명하다.
그들은 옛적부터...지방의 거민이라 - 원문에는 본 구절의 앞 부분에 `왜냐하면'이
란 의미를 갖는 접속사 `키'(* )가 있다. 그러므로 본 구절은, 다윗이 앞에 언급
된 세 민족을 침한 까닭을 말해준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바로 이같은 측면
에서 본 구절을 해석해야 하는데, 우선 본 구절을 히브리 원문에 따라 `왜냐하면 그들
은 옛날로부터 그 땅의 거민이었기 때문이다'로 바로 번역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말은 무슨 뜻인가? 이 말은 곧 그 땅의 거민들이 항상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혀
왔다는 사실과 연관시켜 생각해야 할 것이다. 즉 다윗은 그들이 이스라엘 백성을 괴
롭혀왔고 또한 괴롭히고 있는 민족이기 때문에 그들을 공격했던 것이다(Keil).
술과 애굽땅으로 지나가는 - 이것은 다윗이 공격했던 그 땅이 과연 어떤 땅인가를
설명해 주는 구절로 볼 수 있다. 우선 본 구절은 히브리 본문에 보다 가깝게 `너희가
애굽과 술로 들어갔을 때의'로 번역할 수 있다. 즉 본서의 저자는, 15:7에서 이스라
엘 백성이 아말렉 족속을 쳤던 영역에 대하여 `애굽 앞 술에 이르기까지'라고 언급한
것을 염두에 두고 본 구절을 쓴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본 저자는 `그 땅'을 하나님
의 군대로부터 엄중한 징벌을 받아야 하는 땅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15:1-3)
결국 본 구절은 앞에 언급된 세 민족에 대한 다윗의 침공이 하나님의 뜻과 합치되
는 정당한 것이었음을 입증해 주는 언급이라 할 수 있다.
=====27:9
다윗이...남녀를 살려두지 아니하고 - 다윗의 이같은 행위는 결코 종교적 목적에
따른 행동이 아니었다. 이같이 볼 수 있는 근거는 (1) 하나님께서든 다윗에게 그들을
`진멸하라'(* , 아헤라메템)는 명령을 내리지 아니하셨다는 사실, (2) 본
문에는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혹시 `진멸하라'는 명령이 있었다면, 그 거민들에게 속
했던 모든 가축 등의 재산도 동시에 진멸해야 했으나 다윗은 그것들을 진멸치 않았다
는 사실, (3) 본서의 저자는 다윗의 이같은 행위를 비밀 유지의 목적상 그렇게 한 것
으로 언급하고 있다는 사실(11절) 등이다.
양...소...나귀...약대...의복을 취하고 - 사실 이처럼 노획물을 획득하는 것이,
다윗이 이스라엘 남방의 세 민족을 공격했던 주된 목적이었다. 즉 다윗은 이러한 노
획물로써 (1) 자신에게 딸린 많은 식솔의 필요를 채워주어야 했으며, (2) 또한 생활이
어려운 유대 사람들도 도와야 했던 것이다(30:26-30).
돌아와서 아기스에게 이르매 - 다윗이 자신의 본거지 시글락(6절)이 아닌 왕도(王
都)가드로 향한 것을 가리킨다. 다윗이 이같이 한 까닭은 아기스에게 약탈물의 일부
를 바침으로써 그의 환심을 사기 위함인 듯하다(Smith).
=====27:10
오늘은 누구를 침노하였느냐 - 아기스는 자신에게 바쳐진 전리품(戰利品)을 보고
이같은 질문을 하였을 것이다. 한편 여기서 `오늘'은 그 당일에 이스라엘이 남방에
거주하는 민족들에 대한 침공이 행해졌음을 암시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것을 `이번에'란 의미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또한 `침노하였느냐'(* ,파솨트)
는 `벗기다', `강탈하다'란 의미로서, 주로 전리품의 탈취를 목적으로 한 노략과 공격
행위를 가리킨다(8절; 30:1; 31:8; 겔 16:39).
유다 남방...여라무엘 사람의 남방...겐 사람의 남방 - 이같은 다윗의 대답은 완전
한 거짓말은 아니다. 그러나 다윗은 여기서 지극히 애매한 답변을 함으로써, 자신이
아말렉 등을 약탈한 사실을 감추려고 한다. 한편 여기서 `유다 남방'은 브엘세바의
인근지역을 가리킨다(8:2; 삼하 24:7). 그리고 `여라무엘 사람의 남방'은 유다의 남
쪽 변방 지역을 가리킨다(30:29). 여기서 `여라므엘'(Jerahmeel)은 `하나님이시여 자
비를 베푸소서'란 의미인데, 이 사람은 유다의 손자이자 베레스의 아들인 헤스론의 장
자이다(대상 2:3, 5, 9). 다라서 `여라므엘 사람'(Jerahmeel)은 이 `여라므엘'의 후
손들을 가리킴이 분명하다. 또한 `겐 사람의 남방'은 `아말렉 사람'들이 살고 있었던
지역과 인접한 곳을 가리킨다. 이전에 사울은 아말렉 족속을 치려고 하면서 겐 사람
들도 피해를 입을까 염려하여, `겐 사람'(Kenites)들을 대피시켰던 일이 있었다(15:6
주석 참조). 아무튼 여기서 다윗이 아기스의 질문에 실제로 그가 침노한 그술, 기르
스, 아말렉 족속(8절) 대신 유다, 여라무엘, 겐 족속이라고 답변한 이유는 다윗이 유
다와 그 동맹.종속.우호 성읍들을 공격한 것처럼 아기스에게 믿도록 함으로써 아기스
의 신임을 더욱 얻고자 했기 때문이다. 한편 당시 다윗이 유다를 약탈하던 이방 종족
들을 공격한 것은 잘한 일이라 하더라도, 그러한 사실에 대하여 쉽사리 은폐.거짓말을
한 것은 당시 이방 땅에 머물러 있었던 다윗의 신앙이 연약한 상태에 있었음을 보여주
는 하나의 예이다. 즉 다윗의 답변은 자신의 입지를 구축하려는 인간적 기지(機智)에
서 나온 말로, 궁극적으로 하나님 앞에서는 선(善)이 되지 못한다. 이처럼 시글라 까
정착 시절에는 다윗의 신앙 상태가 연약해졌는데, 이는 블레셋의 시글락 정착 1년 4개
월 동안(7절) 다윗이 지은 시편이 하나도 없다는 데에서도 입증된다. 즉 당시는 다윗
에게 기도와 찬양이 메마른 때였다(F. B. Meyer).
=====27:11
본절은 다윗이 그술, 기르스, 아말렉 족속 등을 공격하면서 그곳 거민들을 남녀 불
문하고 몰살시킨 분명한 이유를 제시해 준다.
그 남녀를 살려 가드로 데려가지 - 이것은 패전국의 주민을 노예로 붙잡아가는 것
을 말한다. 이같은 일은 고대 전쟁에 있어서는 보편적이었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의
특수한 상황 때문에, 이같은 관습을 따르지 아니하고 모두 죽여버린 것이다.
이같이 행하는 습관이 있다 할까 두려워함이었더라 - 당시 다윗은 그술, 기르스, 아
말렉 등의 남방 족속들에게 자신이 행한 침노 행위가 가드 왕 아기스에게 보고될 것을
두려워 했다. 왜냐하면, 그러한 족속들은 주로 이스라엘을 괴롭힌 민족들로서 블레셋
으로서는 하등 공격할 이유가 없는 족속들이었기 때문이다. 다라서 다위의 행위는 블
레셋의 입장에서는 이적(利敵)행위가 되는 셈이다. 뿐만 아니라 다윗을 시기하던 아
기스의 신하들은 다윗에 의하여 끌려왔을 노예들로부터 전해들은 다윗의 행적을 과장
하고 악평하여 보고할 가능성이 많았으며, 또한 끌려왔을 노예들도 다윗에 대하여 앙
심을 품은 나머지 다윗의 행적을 과장해서 떠들 것이 분명했다. 아무튼 다윗의 행적
이 사실 그대로아기스에게 알려지면 그 사실이 과장됐든지 안됐든지 간에, 아기스는
다윗의 그같은 이적적(利敵的)인 공격 행위로 인하여 다윗을 의심하고 또한 경계하기
시작할 것이 뻔하였기 때문에, 다윗은 바로 이 점을 사전에 방지코자 한 것이다.
=====27:12
아기스가 다윗을 믿고 - 이것은 유다 남방 족속들을 공격했다는 다윗의 답변에 `아
기스'가 완전히 속아 넘어갔음을 뜻한다(10절). 따라서 아기스는 이제 다윗에 대해
가졌던 일말의 의구심과 경계심까지 풀기 시작한 것이다.
다윗이...이스라엘에게...미움을 받게 하였으니 - 다윗이 자신의 조국 이스라엘 및
그 동맹.우호.종속 성읍들을 침공 몰살시킴으로써, 스스로 그들로부터 증오의 대상이
되었다는 뜻이다. 이같은 아기스의 착각은 그가 다윗의 답변(10절)을 사실 그대로 받
아들였음을 반영해 준다.
영영히 내 사역자가 되리라 - 아기스는 동족을 무자비하게 친 다윗의 행위는 반드
시 동족유대의 증오의 대상이 될 것이고, 따라서 다윗은 더이상 조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몸이 되어, 이제 평생토록 자신의 심복 노릇을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확신했
다. 한편 여기서 `사역자'(* , 에베드)는 `종', `신하'란 의미인데, 전에 `아기
스'가 다윗을 이스라엘의 한 `왕'으로(21:11, 12) 본 것과는 많이 대조된다. 즉 이같
은 다윗에 대한 아기스의 인식의 전환은, 아기스가 다윗에 대해 품었던 경계심을 이제
덩 이상 갖고 있지 않게 되었음을 시사한다. 아무튼 이때 `아기스'는 다윗이 그 자신
의 동족을 침노하여 몰살시킨 일로, 다시는 조국 유대 땅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으로
오판했던 것이다.
사무엘상 제 28장
=====28:1
블레셋...이스라엘을 쳐서 싸우려고 - 여기서 `블레셋'은 가드 왕 아기스를 포함한
그들 모든 족속들을 가리킨다. 따라서 이 전투는 블레셋의 다섯 부족들의 연합군에
의해 발발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5:8; 29:2, 3). 그때 블레셋 사람들은 아벡 전
투(에벤에셀 전투)(4:1-11)이후 이스라엘과의 싸움에서 번번히 패전한 데 대하여 일대
복수를 하기 위해 대규모의 군사력을 총동원하였을 것이다(14;52; 17:50-53; 18:6,30)
너와 네 사람들이 나와...군대에 참가할 것이니라 - 이같은 아기스의 요구는 그로
서는 당연하였다. 왜냐하면 바로 이같은 일을 위하여 아기스는 위험 부담을 안채 다
윗을 자신의 수하에 두었기 때문이다(27:6, 12). 더구나 아기스는 이미 다윗이 자신
의 동족을 침략함으로써 그들과 원수지간이 된 것으로 알고 있다는 점에서(27:10, 12)
더욱 그러하다. 아울러 이번 기회를 통하여 아기스는 다윗을 완전히 자신의 수하에
예속시키려 했던 것이다.
=====28:2
당신이 종의 행할 바를 아시리이다 - 이 말은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밝히지 못하고
있는 다윗의 애매한 답변이다. 다윗이 이같이 애매한 답변을 한 까닭은, 그는 아기스
의 요구대로 자신의 동족을 공격할 수도 없고, 또한 그 요구를 거절함으로써 자신의
본심을 들켜 사울의 추격으로부터 안전히 피할 수 있는 훌륭한 은신처를 잃을 수도 없
는 난처한 입장에 처해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본 저자는 이와 같은 애매한 표현을
기술함으로써, 다윗이 극도의 심리적 갈등을 느끼고 있음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다.
그러면 내가...내 머리 지키는 자를 삼으리라 - 이것은 아기스가 다윗의 애매 모호
한 답변을 (1) 그가 전쟁에 참여하기로 결심한 것으로, (2) 그리고 그가 전쟁에 참여
하는 일에 대한 어떤 대가를 요구한 것으로 받아들였음을 시사해 준다. 그리고 `머리
지키는 자'는 `경호 대장' 또는 `시위 대장'을 가리킨다. 한편 하나님 나라 왕국의
왕으로 기름 부음 받은 위대한 전사(戰士) 다우시이 한낱 이방 왕의 경호를 맡게 된
것은 다윗 스스로가 자초한 비극적 결과였다. 즉 다윗은 하나님의 도우심과 보호의
손길을 전적 의뢰하여 조국 이스라엘 땅을 끝까지 떠나지 말았어야 옳았다. 따라서
당장 목전의 안전과 유익을 위해 다윗이 우상의 나라 블레셋 땅으로 스스로 찾아든 것
은, 기근을 피해 언약의 땅 가나안을 등지고 애굽으로 내려갔다가 실패하고 돌아온 아
브라함의 경우와 다름없다고 볼 수 있다(창 12:10-20).
=====28:3
사무엘이 죽었으므로...장사하였고 - 이 사실은 이미 25:1에서 언급되었다. 그런
데 본서 저자는 이같은 사실을 여기서 다시 언급함으로써, 사울이 이미 죽은 사무엘의
혼(魂)을 불러내려는 노력을 한 사실과 연결시킨다(8절).
사울은 신접한 자와 박수를...쫓아내었었더라 - 이같은 종교적 숙정(肅正) 행위는
분명히 사울의 집권 초기에 이뤄졌을 것이다(Smith). 이 같이 볼수 있는 까닭은 (1)
사울은 왕위에 오르는 예식이 행해질 때에 선지자 사무엘로부터 하나님의 계명을 철저
히 좇을 것을 명령받았으며(12:14), (2) 무당과 박수를 쫓아내는 일은 이스라엘 백성
의 지도자에게 강력히 요구되던 중요한 하나님의 계명(출 22;18; 레 19;31; 20:27; 신
18:10-14)인 바, 처음 사울은 율법 준수에 대한 열심으로 이러한 일을 시행할 가능성
이 높기 때문이다.
한편 여기의 `신접한 자'(* , 오보트) - 에 대해서는 어원학상의 여러 이
론(異論)에 따라 다양한 견해들이 제시되었다. 즉 (1) `오브'(`오보트'의 단수)를 비
히브리어계의 단어 `아브'에서 온 것으로 보고, 어떤 `제의적(祭儀的) 구멍'에서 유출
되는 영혼 혹은 유령이라는 해석(Hoffner), (2) `오브'를 어원학적으로 `조상' 및 `아
버지'의 의미가 있는 `아브'(* )에서 온 말로 보고, 죽은 조상들의 영혼을 불러내
기 위하여 사용되는 `형상' 및 `도구'라는 해석(Lust), (3) `오브'를 `가죽 부대'를
뜻하는 히브리 단어 `오브'(* )에서 온 말로 보고, 죽은 귀신이 들어가서 볼록
하게 튀어나온 `복화술사의 배'를 가리킨다는 해석(Smith), (4) `오브'를 `어리석은',
`공허한'이란 의미를 갖는 히브리어 `우브'(* )에서 온 말로 보고, `공허한 말
을 하는 사람'이라는 해석(Lange)등이 있다. 그런데 이같은 여러 견해 중 첫째, 본절
의 `쫓아내었더라'(* , 헤시르)란 말은 우상과 같은 유형적 형상의 제거를 가
리킬 때 흔히 사용되는 단어이며(왕하 18;4; 23:19; 대하 17:6; 30:14; 사 3:23) 둘째
7절의 `신접한 여인'은 문자적으로 `오브를 다스리는 여자'란 의미를 갖는다는 사실
등에서 볼 때, '오브'는 (2)의 견해처럼 죽은 사람의 혼(魂)을 불러내는 데 사용되는
어떤 '형상'이나 '도구'를 가리키는 듯하다. 그러나 보다 구체적으로는 그러한 미신
적 도구를 사용하여 죽은 자의 혼을 불러내, 사후(死後) 세계와 교통하는 자들을 가리
킨다고 볼 수 있다(레 19;31).
박수(* , 이드오님) - 이것은 `알다'란 의미를 갖는 동사 `야다'(*
)에서 파생된 단어로서, 점(占) 또는 마술 등의 방법을 통하여 미래에 관한 지식
을 알려주는 자, 곧 점장이나 마술사를 가리킨다(Lust, Fay).
=====28:4
브레셋 사람이...수넴에 이르러 - 여기서 `수넴'(Shunem)은 `두 개의 휴식처'란 의
미이다(Gesenius). 그 위치는 침공해 오던 블레셋 군을 및이하여 사울이 진을 쳤던
`이스르엘'(29:1; 수 19:17, 18)의 북쪽 약 5.6km 지점으로, 바로 이 지점은 `모래 언
덕(창 12;6)의 남서쪽 기슭이었다. 즉 이스르엘 계곡에 의해 분리되는 길보아 산 맞
은편의 소(小) 헬몬산 서쪽 경사 지대에 위치하고 있다(Conder, Robinson). 아마도
이때 블레셋 군대는 `아벡'(4:1; 29:1)에서 소집되어 `수넴'은 가나안 정복 후 잇사갈
지파에게 분배된 땅이며(수 19:18), 동녀(童女) 아비삭의 고향이고(왕상 1:3), 또한
엘리사를 영접한 귀한 여인의 고햐이기도 하다(왕하 4:8-10). 그리고 현재의 지명은
`술렘'(Sulem)이다(Eusebius).
사울이...길보아에 진 쳤더니 - '길보아'(Gilboa)는 사마리와와 갈릴리 사이의 에
스드렐론(Esdraelon) 평지 동쪽에 있는 길이 약 12.8km, 그리고 폭 약 8km 정도의 산
악 지대이다. 그곳 중 가장 높은 지대는 해발 약 565m 정도이다. 이 길보아 산악지
대의 특징은, 서쪽은 완만한 경사를 이루어 해발 약 10m의 에스들렐론 평지에 다다르
며, 반면 북쪽과 동쪽은 급격한 경사를 이루어 요단강에 이른다는 사실이다. 한편 이
때 사울은 바로 이 `길보아' 산악 지대의 북쪽 기슭에 위치한 `이스르엘'(Jezreel)에
진을 쳤다(29:1).
=====28:5
사울은 불과 수 마일 거리에서 진치고 있는 블레셋의 엄청 많은 군대로 인하여 심
히 두려운 마음을 갖게 되었다.
보고(* , 라아) - 미세한 것을 들여다 보듯이 세심하게 탐색하는 행동을 가
리킬 때 사용되는 단어이다(16:6; 23:23; 25:15; 왕하 7:13).
두려워서(* , 야라) - 이 말은 사울이 다윗에 대하여 점층적으로 더 큰 두려
움을 갖게 되었던 사실을 묘사할 때 사용된 단어이다(18:29). 본 저자는 바로 이같은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블레셋의 많은 군대를 보고 사울이 얼마나 극심한 두려움에 사
로잡혔는지를 강력히 시사한다.
떨린지라(* , 하라드) - 이 단어는 요나단과 그의 병기 든 자의 기습 공격으
로 인하여, 모든 블레셋 사람들이 나타냈던 당혹스럽고 어쩔줄 모르는 심리적 반응을
묘사할 때 사용된 단어이다(14:15). 바로 이같은 단어는 사울의 절망감을 잘 보여준
다(13:7; 사 32:11). 아무튼 사울은 과거 대(對) 블레셋 전투에서 연승을 거두었음에
도 불구하고(14:21-23, 31, 47; 17:53), 금번 길보아 전투를 맞이하여 `두려워 크게
떨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사울은 엘라 골짜기 전투(17:1-3) 이후 가장 대규모의
전투인 이번 전투를 맞이하여, 힘의 원천이요 전쟁을 주관하시는 능력의 하나님께서
더이상 자신과 함께 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패배에 대한 두려움
과 공포에 휩싸일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Keil, Clericus).
=====28:6
사울이...묻자오되 - 여기서 '묻자오되'(* , 솨알)는 '요구하다' 혹은 '문의
(問議)하다'란 의미로서, 사울은 이때 블레셋 군대를 물리칠 수 있는 방법에 관하여
하나님의 뜻을 물으려 하였던 것이다. 이미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 하지 않는다는
사실(15:26; 16:14)을 잘 알면서도, 이처럼 사울이 허둥지둥 여호와를 찾는 모습은 블
레셋 군대로 인한 사울의 두려움과 공포심이 얼마나 큰지를 잘 보여 준다.
여호와께서...대답지 아니하시므로 - 이같은 결과는 말할 나위없이 사울에 대한 하
나님의 징벌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계시의 희귀는 어느 인물 또는 어느 시대의 사
악성에 대한 징벌의 성격을 갖기 때문이다(3:1).
꿈으로도 - '꿈'(* , 할롬)은 사람이 자의식과 감정을 가라앉히고 잠을 잘
때, 외부의 벼노하 없이 인간 내면(內面)의 사고 작용 및 감각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인간에게 전달하시는 구약 시대의 계시(啓示) 방편이다(창 20:6; 민 12:6
; 단 2:4). 그런데 여기에 언급된 꿈, 우림, 선지자 등 3가지 계시 방편은 저급한 단
계에서 보다 고급한 단계의 순서인 것 같은데(Fay), 꿈은 그 전달 방법이 간접적이고
일방적이라는 점에서, 가장 비점진된 최하급의 계시 방편이라고 볼 수 있다(Erdman).
한편 여기서 사울은 자신이 직접 꿈을 통하여 하나님의 계시를 받으려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는 분명히 자신의 주변 사람에게라도 계시적(啓示的)성격의 현몽(現夢)이
내려지기를 간절히 소원하였을 것이다.
우림으로도 - 여기의 '우림'(Urim & Thummin)의 약칭이다(출 28:30 주석 참조; 민
27:21). 그런데 사울이 이 우림과 둠밈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묻지 못한 것
은 철저히 사울의 자업 자득(自業自得)이었다. 즉 사울은 우매한 판단으로 놉(Nob)의
제사장들을 몰살시킴으로써, 당시 유일하게 살아남았던 `아비아달'로 하여금 `우림과
둠밈'이 들어있는 '에봇'을 갖고 다윗에게로 피신하도록 한 것이다(22:18-20; 23:6).
그러나 당시 사울에게 '우림과 둠밈'이 없었고, 또한 '우림과 둠밈'을 사용할 대제사
장이 없었다고 볼 수는 없다. 추측컨대, 사울은 놉(Nob) 제사장 대학살 사건(22:18,1
9) 이후 성막을 기브온 자기 궁성(宮城)으로 옮긴 다음 엘르아살 계열의 아히둡의 아
들 '사독'(Zadok)을 대제사장으로 임명했던 것 같다(대상 16:39). 그리고 이에 덧붙
여 본래의 것을 본뜬 모조(模造) '우림과 둠밈'도 만들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이러한 사실은 사울 사후 다윗 시대의 두 명의 대제상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로써
도 입증된다(삼하 8;17; 15:24, 29, 35; 대상 15:11; 18:16). 한편 사울의 이러한 시
도는 (1) 놉 제사장 학살 사건 이후 민심(民心)을 수습하고, (2) 자신의 측근들로 제
사직을 독점하고자 한 정치적 계산 또는 왜곡된 종교적 열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따라서 이러한 사울의 '우림을 통한 문의'에 여호와께서 대답하실 리 만무한 것이다(K
eil & Delitzsch, Vol. II-ii. pp. 260-261; Smith, Fay).
선지자로도 - 하나님의 대선지자 '사무엘'은 이미 세상을 떠났다(3절; 25:1). 또한
그밖의 선지자들도 이미 하나님께서 버린(13:13, 14; 15:26; 16:14) 사울의 왕국을 떠
나 망명객 다윗에게로 도망을 쳤다(22:5). 바로 이같은 사실로 인하여 사울은 선지자
를 통하여서도 하나님의 뜻을 얻을 수 없었다. 아무튼 꿈과 우림과 선지자는 모든 구
약 시대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을 저냐 받는 방편이었다(15:10, 11; 23:9-12). 하지만
사울은 그 어는 것으로도 하나님의 응답을 받지 못했다. 그 이유는 그가 이미 불순종
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기 때문이다(15:1-23). 따라서 이러한 사실은
'만날 만한 때에', 즉 하나님께서 제공하시는 기회가 지나가지 전에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는 교훈을 절실히 암시해 준다(사 55:6; 고후 6:1, 2).
=====28:7
나를 위하여 신접한 여인을 찾으라 - 이같은 사울의 명령은 하나님께서 금하시고(
레 19:31), 또한 사울 자신이 세워놓은 규범(3절)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것이었다. 아
무튼 이것은 하나님께로부터의 계시가 완전히 단절된 상황에서, 비신앙적 인물인 사울
이 필연적으로 택할 수 밖에 없는 방법이었다. 한편 여기서 '신접한'(* -
, 바알라트 오브)은 문자적으로 '혼령을 다스리는'이란 의미로, 곧 '신접(新接)
한 여인'이란 죽은 자의 혼령을 통해 미래의 일을 알아보는 자를 가리킨다(Keil, 레 1
9:31).
물으리라(* , 다라쉬) - '자세히 묻다'란 의미이다(신 13:14; 시 9:12; 111:
2).
엔돌에...있나이다 - '엔돌'(Endor)은 '거주의 샘'이란 뜻이다. 그 위치는 다볼
산(Mt. Dabor) 남쪽 약 6.4km, 소(小) 헬몬 산 북쪽 경사 지대이다. 그리고 '수넴'으
로부터는 북동쪽으로 약 6~7km 정도의 지점으로 추정된다. 오늘날에도 소 헬몬산 경
사 지대에 '엔돌'이란 마을이 있는데(수 17:11), 무당들이 거처하기에 좋은 많은 동굴
들이 있다고 한다(Robinson, Thompson, Stanley).
=====28:8
사울이...변장하고 - 옷은 곧 그 사람의 신분을 상징한다는 점(18:4)에서, 사울은
왕의 표시가 되는 일체의 복장과 장식물을 제거하고 완전한 평민의 복장을 취했던 것
같다(Fay). 즉 아무도 자신을 이스라엘의 왕 사울로 알아보지 못하도록 변장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때 사울이 위와 같이 철저히 변장을 한 까닭은 신접한 여인이 살던
엔돌의 지리적 위치 때문이었을 것이다. 즉 사울은, '엔돌'이 블레셋의 진영과 인접
한 곳이었으므로, 혹 블레셋 사람들의 눈에 뜨일까 두려워한 것이다. 즉 만일 변장을
하지 않는다면, 블레셋 사람들의 눈에 뜨일 경우 그 의복에 의하여 그가 이스라엘 왕
사울임이 밝혀지고, 이에 따라 그들의 맹렬한 공격 목표가 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왕상 22:30).
밤에...이르러 - 사울은 변장한 것과 동일한 이유 때문에 일부러 밤 시간을 택해
엔돌의 신접한 여인을 찾아갔다. 이렇듯 변장한 채 엔돌의 신접한 영인을 찾아가는
사울의 모습에서 그의 철저한 타락상을 볼 수 있다. 한편 미신적(迷信的)인 발상에서
무당이나 점장이를 찾아가는 것은 하나님께서 언급하신 바 있는 영적 간음 행위이다
(레 19:31; 신 18:9-14). 그러므로 성도들은 급박한 상황이 닥칠 때일수록 더욱 하나
님을 굳게 의지하고 성경 말씀에 근거한 상담과 기도에 힘쓰는 등 끝까지 신앙적인 자
세를 지켜야만 할 것이다.
신접한 술법으로 - 히브리 원문대로 번역한다면 '유령' 혹은 '그것을 불러내기 위
한 도구'를 의미한다(3절). 한편 '술법'(* , 카삼)은 '점을 치다'란 의미가 있
는 동사에서 파생된 말로(겔 21:29; 미 3:6), 바로 이 동사에서 본서 6:2에서도 나타
나는 '복술자'(卜術者)라는 단어가 나왔다(신 18:10; 사 3:2; 슥 10:2). 따라서 사울
은 지금 신접한 여인에게 '복술'(卜術) 행위를 요청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복술
행위는 하나님께 가증한 행위로서, 율법에서 철저히 금지시킨 행위였다(신 18:10-14;
레 19:31; 20:27).
사람을 불러 올리라 - 즉 죽은 자의 영혼을 불러내는 행위를 가리킨다. 11절 주석
참조.
=====28:9
신접한 자와 박수 - 3절; 레 19:31 주석 참조.
어찌하여...올무를 놓아...죽게 하려느냐 - 이 말은 신접한 그 무녀(巫女)가 변장
한 사울을 몰라봤음을 말해 준다. 즉 이때 그녀는 사울 일행을 자신과 같은 점치는
사람들을 적발하여 죽이기 위하여(출 22:18; 레 20:27; 신 18:11) 왕의 명을 받고 그
곳으로 온 왕의 사신들로 알았던 것이다. 이같은 그녀의 판단은 (1) 이전에 사울이
복술 행위를 엄히 금지시켰으며(3절), (2) 사울 일행은 무녀의 눈에 매우 낯설었기 때
문에 지극히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한편, 비록 밤늦게 방문한 낯설은 사울일행에
대해서는 그 무녀(巫女)가 이같은 반응을 보였을지라도, 그당시 그녀는 주위 사람들에
대해서는 신통한 복술을 베풀어 유명한 무녀로 통했을 것이다.
=====28:10
본절에서 사울은 자신이 복술 행위를 적발키 위해 찾아온 싸람이 결코 아님을 밝힘
으로써 그 무녀를 안심시킨다.
여호와께서 사시거니와 - 여호와께서 사시는 것처럼, 또는 여호와께서 살아 존재하
시는 한 맹세한 사항이 확실이 이행될 것이라는 사실을 다짐할 때 사용하는 히브리 맹
세의 전형적인 표현 방식이다(25:26). 한편, 여기서 사울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키 위
해 하나님께서 가중히 여기시는 복술 행위를 여호와의 이름으로 요청하는등 그의 완악
해지고 굳은 심령의 타락 상태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28:11
내가 누구를...불러 올리랴 - 이같은 무녀의 질문은 고대 히브리인들의 음부관을
반영하고 있다. 즉 고대 히브리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일단 모두 '스울'(Sheol) 즉 '음
부'(陰部)라고 부르는 지하 세계로 들어간다고 보았다. 아마도 이러한 생각은 시체가
땅 속에 묻히는 것과 관련되어 파생된 단순한 개념인 듯하다(창 27:35, 반면 고대 히
브리인들은 하나님이나 천사는 땅 위의 어느 공간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욥 26:5-14 강해, '히브리인들의 음부 개념' 참조). 그러므로 죽은 자의 세계 또는
죽은 자의 혼과 교통할 수 있다고 믿는 접신녀(接神女)는 '스올'(음부)로부터 죽은 자
의 혼(魂)을 불러 올릴 수도 있다고 한 것이다.
사무엘을 불러 올리라 - 사울이 많은 사람 중 하필 사무엘의 혼을 요구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즉 (1) 사무엘은 자신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운 사람으
로서, 계속적으로 자신의 조언자 역할을 담당했었으며(10:1; 15:1), (2) 또한 사무엘
은 블레셋과의 전쟁에 직접 참여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7:10-12), 블레셋의 침공으로
인하여 고민하는 자신의 입장을 이해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사울
은 그때 이같이 사무엘을 부름으로써, 그로부터 블레셋과의 싸움과 관련해서 자신이
취할 행동에 대하여 조언을 받고자 하였던 것이다. 물론 사울은 다윗과 관련된 자신
의 미래 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이 있었을 것이다. 한편 사울이 접신녀(接神女)를 찾아
가서 문의한 이 사건은, 사울의 집권 초기에 그가 이스라엘 사회에서 모든 박수와 무
당들을 쫓아낸 것(3절)이 그 자신의 확고한 신념에 따른 행동이 아니었음을 증명해 준
다. 즉 사울은 (1) 하나님의 계명(출 22:18; 레 19:31; 20:27; 신 18:10-14)을 충실
히 지켜야 된다는 신념이나, (2) 또는 초혼술(超魂術)은 철저하게 미신적이어서 신뢰
의 대상이 못된다는 신념 등에 따라 박수와 무당을 축출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사
울은 다만 이스라엘 사회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사무엘과, 그리고 여호와 하나
님을 향한 순수한 신앙으로 막 발돋음해 가던(7:2, 5-11) 이스라엘 백성들의 환심을
사기 위한 인간적 목적에 따라 그같은 정책을 시행했다고 볼 수 있다.
=====28:12
여인이 사무엘을 보고 - 이 접신녀(接神女)가 실제로 사무엘을 보았는지에 대한 해
석은 구구하다. 그러나 그 해석은 크게 다음 몇 가지로 분류된다. 즉 (1) 실제로 사
무엘의 혼이 임한 것을 무녀가 보았다는 견해(Josephus, Klein, Keil, Lange), (2) 거
짓 혼이 사무엘의 혼인양 행세하면서 나타난 것을 보았다는 견해(Luther, Calvin, M.
Henry, Grotius, Patrick), (3) 본문의 '사무엘'(* , 쉐무엘) 앞에 '이름'
(* ,쉠)이라는 단어가 필사자의 실수로 탈락됐을 것으로 간주하고, 그 무녀(巫女)
는 사무엘의 어떤 형상을 본 것이 아니라 다만 사울의 입에서 나온 '사무엘'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뿐이라는 견해(Hertzberg), (4) 그냥 아무것도 본 것이 없으나 거짓
으로 본 척했을 뿐이라는 견해(Smith)등 네 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네가지의 견해 중 (1)의 견해는 첫째, 하나님께서 성도 특히 선지자의 영혼을 무당
의 술수에 이용되도록 하실 리 없으며 둘째, 혼이 땅에서 올라왔다는 13절의 언급은
성도들의 영혼은 하늘로 올라간다는(전 3:21; 눅 16:22, 23) 성경적 개념과는 배치되
며, 오히려 접신술(接神術) 등과 같은 거짓 사상과 합치된다(사 29;4)는 점 등에서 잘
못됐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3)의 견해는 뚜렷한 근거 없이 원문 중 '보고'를 '듣고'
로 변경시켜야 되는 문제가 있다는 점에서, 또한 (4)의 견해는 첫째, 12절의 '사무엘
을 보고'는 무당의 말이 아닌 본서 저자의 언급이며 둘째, 영매(靈媒)등은 주관적 혹
은 심리적으로 어떤 형상(혹은 환상)을 보기도 한다는 점 등에서 볼 때 타당성이 없
다. 따라서 본절에서 그 무녀가 본 것은, (2)의 견해대로 실제 사무엘의 혼이 아닌
사무엘을 가장한 사단의 어떤 형상을 봤음이 분명하다.
큰 소리로 외치며...당신이 사울이시니이다 - 이같은 무녀(巫女)의 언급은, 그녀가
그때까지는 자신에게 사무엘의 혼을 불러달라고 한 인물이 사울인 줄 몰랐음을 강력히
시사해 준다. 비록 사울은 거구의 소유자여서(10:23) 타인의 눈에 쉽게 띄일 여지가
많았으나, 그래도 당시 사울은 밤에 변장을 한 상태였기 때문에(8절), 무녀의 눈에 의
해서 간단히 분별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녀는 여기서 어떻게 자신에게 사
무엘의 혼을 불러달라고 요청한 사람이 사울인 줄을 깨달을 수 있었을까? 추측컨대,
그때 그 무녀(巫女)는 사울이 사무엘의 혼을 불러달라고 요청할 때까지만 해도 그가
사울인줄 몰랐으나, 사무엘의 형상을 보는 순간 그가 사울인 줄 깨달았을 것이다. 즉
그 무녀는, 블레셋의 침공이 격렬했던 그 당시의 상황에서 사무엘의 혼을 부를 사람은
그 전쟁으로 인하여 최악의 곤궁에 빠져있을 사울 밖에는 달리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Keil, Lange, Klein). 더구나 그녀는 사울의 큰 키를 이미 본 터였기 때문이다. 따
라서 그녀는 생명의 위협을 느낀 나머지(3, 9절) 두려움과 공포에 차서 즉각 큰 소리
를 내지를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28:13
왕이...이르되 두려워 말라 - 사울은 이스라엘에서 무당과 박수를 축출시켰던 장본
인이다(3절). 따라서 죽은 자의 혼을 불러내는 현장을 그 사울에게 목격당한 그 무당
여인으로서는 큰 두려움을 갖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9절). 바로 이같은 이유 때문
에, 사울은 그 무녀(巫女)에게 '두려워 말라'라는 말로 안심 시켰던 것이다. 이처럼
사울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키 위하여 하나님께서 가중히 여기시는 복술(卜術) 행위 조
차도 서슴없이 독려하는 자아 모순적인 작태를 드러내고 있다.
네가 무엇을 보았느냐 - 이 질문은, 그때 사울은 아무 형상도 보지 못했음을 시사
해 준다. 사실 그 무녀가 어떤 형상을 본 것은 초자연적 혹은 심리적 현상이었기 때
문에, 사울이 아무것도 못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또한 여기 사울의 이 질문은 사
울이 무당이 위치했던 곳과 어느 정도 격리되어 있었음을 말해 준다. 그러나 그렇다
고 해서 사울과 무당이 각기 다른 방에 있었다고는 볼 수 없다(Smith).
내가 신이 땅에서 올라오는 것을 보았나이다 - 여기의 '신'(* , 엘로힘)
은형태상으로는 복수이나 단수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즉 그 무녀는 자기가 본 어떤
형상에 대한 자신의 두려움을 반영하기 위하여 한 혼의 형상만을 보았으면서도, 그것
을 복수 곧 '장엄 복수'로 표현한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 '신'이란 단어가 갖는 의미
는 무엇일까? 이 '신'은 항상 어떤 '신'(god) 장체만을 의미치 의미치 않는다. 즉 이
말은 '신적인 존재' 곧 '영'(靈)을 의미하기도 한다는 점에서(Hertzberg, Klein), 어
떤 '영적인 존재' 곧 '유령'을 가리킨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Keil, Smith). 한편 '사
무엘을 불러 올리라'는 사울의 요청(11절)으로 접신녀가 불러 올린 사무엘에 대한 해
석은 매우 어려운 난제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접신
녀와 초혼술(招魂術)의 정체를 바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먼저 초혼술을 행사하는 접
신자는 우선 강신(降神)이라고 하는 특수한 심령적 경험을 통과한 사람으로서, 죽은
자위 혼을 불러 일으켜 현실의 인간과 의사 소통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매개체의 역할
을 하게 된다. 이것이 소위 초혼술(招魂術)이라고 불리우는 일종의 이교적 사술(邪術
)형태이다. 그러나 초혼술은 다음과 같은 성경적 근거에서 악령의 역사이며, 사단의
속임수이다. (1) 초혼 자체가 성립될 수 없다. 즉 성경은 사람이 죽게 되면 그 혼은
즉시 지상의 세계와 차원이 다른 처소(천국 혹은 지옥)로 옮겨지고 지상의 세계와 교
통하지 못하는 것으로 말하고 있다(눅 16:19-31; 23:43; 고후 5:1). 따라서 초혼이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결코 죽은 자의 혼이라 볼 수 없고, 다만 죽은 자의 혼을 가장한
사단 혹은 귀신의 역사에 불과할 뿐이다. (2) 초혼자는 사단의 역사를 위해 동원된
도구 역할을 하는 셈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초혼자는 사람들로하여금 하나님과의 바
른 교제를 방해하며 미혹하게 한다는 점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결코 용납해서는 안된
다(신 18:10, 11). 즉 성경은 신접자, 초혼자, 무당 등을 존재 자체부터 정하고 있는
것이다(출 22:18; 레 19:31; 20:27; 신 18:10-14). 결국 이런 이유로 여기서 접신녀
가 불러 올린 사무엘은 진짜 사무엘의 혼이 될 수 없다. 즉 '땅에서 올라온 그 신'은
루터(Luter)나 칼빈(Calvin)이 말한대로 사무엘의 형체를 입고 나타난 사단적 유령(곧
사단의 부림을 받은 귀신)으로 보아야 한다.
=====28:14
그 모양이 어떠하냐 사울의 이같은 질문은, 무당이 실제로 사무엘의 형상을 보았
는지의 여부를 확인키 위한 것이다. 따라서 이때 사울은 무당이 사무엘을 봤다는 언
급에 대하여 일말의 의심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한 노인이 올라오는데 - 사무엘이 83세에 죽었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25:1 주석
참조), 사단적 유령이 이같이 '노인'의 모습으로 무당에게 나타난 것은 자연스러운 일
이다.
그가 겉옷을 입었나이다 - 여기서 '겉옷'(* , 메일)은 발목까지 내려오는
긴 망토식 가운으로서, 특수한 계층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신분을 구별하여 나타내기
위하여 입었던 옷이다(출 28:4; 레 8:7; 삼하 13:18; 대상 15:27), 사무엘도 생전에
선지자의 외투로서 이같은 겉옷을 입었었다(15:27). 결국 그 무당은 자기가 본 형상
의 주인공이 '노인'이었다는 사실과 함께, 그가 이같은 '겉옷'을 입었다는 사실을 확
인한 순간, 그가 사무엘임을 넉넉히 느꼈을 것이다(Hertzberg).
사울이 그가 사무엘인줄 알고...절하니라 - 이것은, 그때 사울이 사무엘의 형상을
직접 봤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사울은, 그 접신녀가 '노인'과 '겉
옷'을 언급한 사실로 인하여, 그녀가 실제로 사무엘을 본 것으로 믿었다. 따라서 사
울은 무녀가 사무엘이 올라온 곳이라고 암시하는 곳을 바라보며 경외와 존경의 표시로
넙죽 절을 한 것이다.
=====28:15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 성경 기자는 여기서 마치 실제의 사무엘이 등장하여
말하는 것처럼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실상에 있어서 성경 기자는, 사무엘을 흉내내
어 나타났고 그 이름을 빙자하여 말하고 있는 악령을 편의상 간결하게 '사무엘'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을 뿐이다. 이때 악령은 초혼술(招魂術)에서 흔히 볼 수 있듯이, 영
매(靈媒)인 접신녀(接神女)의 입을 통해서 말하고 있었다.
나로 분요케 하느냐 - '분요케 하느냐'(* , 히르가즈타니)는 '격
분하다', '진동하다'란 의미를 갖는 '라가즈'(* )의 사역형으로서 '안식을 방
해하다'(disquit, KJV; disturb, NIV)란 뜻이다(렘 50:34). 특히 이 단어는 시돈의
왕 타브닛의 비문에서 무덤에 대한 모독 행위를 가리키는 단어로 사용되었다(Klein).
따라서 이 단어는 무덤을 평온하게 안식하는 장소로 인식하고 있는 고대 중근동의 내
세관과 잘 부합된다(Klein; 욥 3:13-19; 사 14:9). 아울러 이 말은 사람이 죽으면 경
건한 자나 불경건한 자를 막론하고 지하 세계인 음부(스올)에서 휴식을 취한다는 히브
리인들의 고대 사상을 반영한다. 그러나 계시(啓示)가 점진 완료된 신약 시대의 관점
에서 엄밀히 말하면, 죽은 자 중 성도는 낙원으로 가 위로와 안식을 누리고, 불신자는
지옥으로 가 고통을 당하게 되는 것이지, 어떤자도 음부에서 단순한 휴식을 취하지는
않는다(눅 16:19-31).
심히 군급하니이다 - 여기서 '군급하다'(* , 차르)는 대적의 맹렬한 공격으로
인하여 당하는 커다란 고통을 가리키는 단어이다(삼하 24:13; 욥 6:23; 7:11). 따라
서 영역본들(RSV, NIV)은 '커다란 재난에 처해있다'(be in great distress)란 말로 번
역했다.
하나님은 나를 떠나서 - 사울은 하나님이 자신을 떠나 다윗과 함께 하신다는 사실
을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23:17).
선지자로도 꿈으로도...대답지 아니하시기로 - 이러한 계시(啓示)의 단절은 악한
인물 또는 악 다 시대에 대한 징벌의 성격을 띠는 것으로서(6절; 3:1), 여기서는 곧
하나님께서 사울과 함께 하지 아니하신다는 사실을 확증해 주는 객관적 증거이다. 한
편, 그런데 여기서 사울이 6절에는 언급되어 있는 계시 수단인 '우림과 둠밈'을 생략
한 것은 '우림과 둠밈'(Urim & Thummin, 출 28:30 주석 참조)이라는 계시 수단은 다른
것과는 달리 자신의 극심한 잘못 때문에 상실하였기 때문일 것이다(Talmud, Berach, X
ii. 2). 즉 사울은 제사장들을 대량 학살하는 사건(22:18, 19)으로 인하여 '우림과
둠밈'이라는 계시 수단을 자신의 경쟁자인 다윗에게 넘겨주고 말았던 것이다. 6절 참
조.
행할 일을 배우려고 - '행할 일'은 블레셋을 물리칠 수 있는 방책(方策)을 가리킨
다.
=====28:16
네 대적이 되셨거늘 - 이 말은 칠십역(LXX)의 번역대로 '네 이웃의 편이 되셨거늘'
이란 의미로 이해함이 좋을 듯하다. 그렇다면 이 말은 하나님께서 사울을 떠나 다윗
과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가리키는 말이다(15절).
네가 어찌하여 내게 묻느냐 - 만일 하나님께서 사울에게서 등을 돌리셨다면, 사울
이 하나님의 선지자인 사무엘에게 묻는 행위는 가당치 않다는 뜻의 반문(反問)이다.
=====28:17
본절의 언급에 대해서는 15:27, 28 주석을 참조하라.
=====28:18
그의 진노를 아말렉에게 쏟지 아니하였으므로 - 이는 사울이 왕이 된 후 하나님께
불순종한 여러 사건 중 '아말렉 진멸 명령'(15:3)을 어긴 사실이 가장 치명적인 사울
의 범죄 행위임을 시사해 준다. 아마도 출애굽 후 가나안으로 향하는 선민 이스라엘
의 여정을 최초로 그리고 비겁하게 방해하고 적대한(신 25:17-19) 아말렉 족속에 대한
하나님의 회심(會心)의 복수전을 사울이 그의 사악한 탐심으로 말미암아 망쳤기 때문
일 것이다.
여호와께서 오늘날 이 일을...행하셨고 - 본절은 이때 사울이 당한 어려운 상황을,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15:3)을 이행치 않음으로써(15:9) 나타난 결과라
고 말한다. 그렇다면 15장에서 사무엘이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은 사울에게 왕위
(王位) 박탈 선언을 했다는 점(15:26)과 연결하여, 여기서 사울이 당한 어려운 상황은
사울을 왕의 자리에 더이상 앉아 있지 못하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추진하시는 작업
중의 한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28:19
이스라엘을 너와 함께...붙이시리니 - 여기서 '붙이시리니'(* , 나탄)란 말
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주권적인 의지로 어떤 당사자나 나라에게 확실한 승리를 부여할
때 사용되는 단어이다.
내일 너와 네 아들들이 나와 함께 있으리라 - '나와 함께 있으리라'는 말은 사무엘
처럼 '죽은자 가운데 있게 되리라'는 뜻으로, 곧 '죽을것'이라는 의미이다. 한편 '네
아들들'은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사울과 함께 죽을 사울의 세 아들, 곧 '요나단'과 '아
비나답'과 '말기수아'를 가리킨다(31:2; 대상 10:2).
=====28:20
사울이...땅에 온전히 엎드러지니 - 무릎을 꿇고 있던 상태에서 정신을 잃을 정도
로 쓰러져버린 것을 가리킨다. 즉 사울은 자기 앞에 나타난 악령을 진짜 사무엘의 영
으로 착각하고 그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던 것이다(14절). 그
러다가 자기가 기대하던 해결책은 얻지 못하고 대신 악령으로부터 자신의 멸망에 대한
예언을 듣게 되자(16-19절), 그는 (1) 큰 두려움의 엄습과 (2) 육체적 탈진으로 땅바
닥에 길게 엎드러지고 말았다. 이것은 하나님을 멀리 떠나 자행 자지(自行自止)하던
타락자 사울 왕이 머지 않아 비참한 종말을 맞이할 것에 대한 하나의 전조(前兆)였다.
(31:1-6).
종일 종야에...먹지 못하였음이라 - 사울은 전투에 앞서 금식을 하곤 하는 습관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14:24). 이와 유사하게 당시에도 (1) 사울은 엔돌의 이 접신녀
에게 자신이 행할 바를 묻기 위하여 (2) 그리고 엔돌로 향하는 과정에서 블레셋의 수
비망을 뚫고 가야한다는 어려움을 예상하여(Klein) 일부러 금식을 하였던것 같다. 그
러나 그러나 이 견해와는 달리, 먼거리를 오느라고 식사를 하지 못했으리라는 가정은
(1) 당시 이스라엘의 진지인 이스르엘(29:1)에서 무당이 거주하던 엔돌까지의 거리는
불과 8km 정도(Aharoni), 즉 두 시간 거리밖에 안되며 (2) 23절에서는 사울이 주위 사
람들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먹기를 거부한다는 사실 등으로 미루어 볼 때 결코 성립되
지 아니한다.
=====28:21
있었음을 시사한다. 바로 이같은 사실 때문에, 사울은 접신녀의 입을 통하여 나오
는 말을(15절) 마치 사무엘의 입에서 직접 나오는 말로 속아 넘어갈 수 있었을 것이
다. 더구나 그 접신녀는 자신과 사울 사이의 시계(視界)를 흐리게 할 목적으로 향을
피웠을 가능성도 있다(Smith).
그 심히 고통함을 보고 - 여기서 '고통함'(* , 바할)은 '두려워 떨다'란 뜻
이다(창 45:3; 출 15:15; 삼하 4:1; 시 6:2). 그리고 '보고'(* , 라아)는 자세
하게 관찰하는 행동을 뜻하는 단어이다. 따라서 이같은 행동 뒤에 취한 접신녀의 태
도는 국도의 공포로 떨고 고통스러워 하며, 또한 육체적 탈진으로 기력이 쇠잔해 있는
사울에 대한 동정심에서 비롯돈 것임이 분명하다(Hertzberg, Smith).
여종이 왕의 말씀을 듣고 - '왕의 말씀;은 사무엘의 혼을 불러 달라는 사울의 명령
을 가리키다(11절).
나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고 - 사무엘을 불러내라는 사울의 명령(11절)은 초혼(招
魂) 행위가 엄격히 금지된 그당시 상황으로 인하여(3절), 무녀에게는 자신을 함정에
빠뜨리려는 계책으로 들렸을 것이다(9절). 그러므로 그 무녀가 그같은 니한 일종의
모험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실상에 있어서는, (1) 사울로부터 목숨 보장에 대한
맹세를 이미 받았고(10절) (2) 또한 당시 사울에게는 하나님의 뜻을 물을 통로가 하나
도 없었기 때문에, 결국 사울이 자신을 찾을 수 밖에 없었음을 알고 있는 마당에서,
그 무녀(巫女)가 사울의 명령을 이행한 것은 결코 생명을 건 모험이라고 까지는 할 수
없었다. 따라서 여기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고'라는 무녀의 말은 자신의 공을 자찬
(自讚)하는 거짓말임이 분명하다.
=====28:22
본절에 언급된 무녀의 행동은 사울에 대한 일말의 동정심 때문에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그 접신녀의 이같은 동정도 사울로 하여금 고통을 당하게 하는 정신적이며 근
본적인 원인을 결코 제거할 수는 없었다.
=====28:23
내가 먹지 아니하겠노라 - 이것은 당시 만사가 귀찮은, 그리고 거의 자포 자기의
상태에 있는 사울의 탈진한 심리 상태를 잘 반영해 준다.
땅에서 일어나 침상에 앉으니라 - 이것은 사울이 자신의 낙담한 정신 상태를 어느
정도 수습했음을 보여 주는 행동이다. 따라서 사울은 지금까지 땅바닥에 엎드려져 있
던 자신의 몸을 일으켜 침상에 앉았던 것이다. 한편 여기의 '침상'(* , 밋타)
은 방의 벽을 따라 길게 배열된 푹신한 긴 의자를 가리킨다(Keil, Thenius, Smith).
=====28:24
살진 송아지...잡고 - 이것은 사울에 대한 무녀의 저성이 극진했음을 잘 시사해 준
다(창 18:7; 눅 15:23).
무교병 - 이것은 누룩을 넣지 않고 구운 빵으로, 급히 장만할 수 있는 음식이다(출
12:8, 15-20). 이때 그 무녀는 보다 먹기 좋은 유교병은 시간이 없었던 관계로 준비
하지 못한 듯하다.
=====28:25
그 밤에 가니라 - 날이 밝을 경우 (1) 블레셋 군대에게 발각될 위험과, (2) 그리고
블레셋의 공세가 본격화될 것이기 때문에, 휴식이 필요한데도 불구하고 사울은 이같이
급히 서두렀을 것이다(Klein). "실로 사울은 자신과 아들들과 백성들의 죽음과 패배
를 괴로워하고 슬러하기에는 그 양심이 죄로써 너무 둔감해져 있었다. 따라서 사울은
그의 강퍅한 심령을 이끌고 자신의 운명을 맞으러 갔다. 즉 한때 여호와의 신이 임했
으며, 기름 부음을 받아 이스라엘 최초의 왕이 되는 축복을 누린 자 - 사울은 이처럼
절망감 속에서 자신의 비참한 최후를 맞으로 간 것이다"(O.V. Gerlach; Keil & Delitz
sch. Vol. II-ii. pp. 269-270).
사무엘상 제 29장
=====29:1
본 절의 내용은 28:1, 4에 대한 또 다른 각도에서의 언급이다.
블레셋 사람들은...군대를 아벡에 모았고 - 블레셋 사람들의 1차 군사 집결지는
'아벡'(Aphek)이었다. 블레셋 족속은 특별히 다섯 방백에 의하여 다스려지는 부족 연
합 성격의 정치 체제를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에(5:8), 이처럼 집결지를 정해 그곳으로
각 부족의 군사들이 총집결했던 것이다. 한편 '아벡'은 '요새'란 뜻으로, 이와 동일한
지명이 팔레스틴 여러 곳에 있다. 혹자들(Keil, Fay, Conder)은 여기 '아벡'을 잇사갈
지파에 속하는 오늘날의 '엘 아풀레'(el-Afuleh)로 추정하여, '수넴'과 멀지 않은 곳
이라고 보고 있으나 확실치는 않다. 어쩌면 엘리 제사장 시절, 이스라엘을 공격할 때
블레셋 족속에 의하여 이미 병력 집결지로 사용되었던 '에벤에셀' 근처의 '아벡'일 가
능서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4:1).
이스르엘에 있는 샘 곁에 진 쳤더라 - '이스르엘'(Jezreel)은 '하나님께서 씨를 뿌
림'이란 뜻인데, 헬라식 이름으로는 '에스드라엘론'(Esdraelon)이다. 이곳은 길보아
산악 지대의 북쪽 기슭에 자리잡고 있으며(28:4), 기손 강의 영향으로 토지는 비옥하
고, 길게 평원 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한편 여기의 '샘'(* , 아인)은 '이스르엘'
동남쪽 약 2.8km 지점에 있고, 길보아 산지 북쪽에 수원(水源)을 갖고 있는 우물로서,
오늘날의 '아인 잘루드'(Ain Jalud, '골리앗의 샘'이란 뜻)와 동일 지역으로 인정되고
있다(Robinson). 그런데 이 우물은 화강암 절벽에서 흘러 내려온 물에 의하여 형성된
큰 웅덩이의 모양으로 되어있다고 한다(Conder). 한편, 70인역(LXX)은 여기 '샘'을
'엔돌'(* )로 번역하고 있는데 타당성이 없다(Keil, Smith, Fay).
=====29:2
블레셋 사람의 장관들 - 여기서 '장관들'(* , 세렌)은 본서의 다른 부분에서는
'방백'으로 번역된 단어이다(5:8, 11;6:4, 12, 18;7:7). 즉 이들은 블레셋의 다섯 부
족들을 그들의 수도 곧 가사, 가드, 아스글론, 아스돗, 에그론(수 13:3)을 중심으로
다스리는 최고 지도자들을 가리킨다(5:1-12).
수백씩 수천씩 영솔하여 나아가고 - 이것은 블레셋의 다섯 방백들 밑에는 천부장과
백부장이 있어서, 병력이 그들에 의하여 관리되고 있었음을 말해 준다. 또한 이같은
언급은, 블레셋의 군대가 병력도 많을 뿐만 아니라 제법 규모가 잡혀 있었음을 강력히
암시해 준다. 한편 여기의 '영솔하여 나아가고'(* , 오브림)는 '건너가다',
'목적지를 향해 어느 곳을 통과하다'란 의미를 갖는 동사 '아바르'(* )의 분사형
이다. 따라서 이것은 블레셋 군대의 행진이 중단없이 계속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Davidson). 그런데 여기의 '영솔하여'는 원문에는 없는 말로서 문맥상의 의미를 보강
하기 위한 번역자의 삽입이다. 그렇다면 이때 블레셋의 군대는 어디서 어디로 가는 중
이었을까 ? 이때 블레셋 군대는 자신들의 1차 집결지인 '아벡'<1절>을 떠나 자신들의
진(陳)칠 곳인 '수넴'<28:4>으로 가는 중이었다. 우리가 이같이 보아야 할 이유는 다
음과 같다. 즉 (1) '나아가고'(아바르)라는 동사는 먼 거리를 진행하는 행동을 나타낼
때 주로 사용되며(창 33:3;민 13:32;신 29:16), (2) 다윗이 '아기스'를 제외한 다른
블레셋 방백들의 거부에 의하여 회군(回軍) 하였을 때, 그당시 그 자신이 위치했던 지
점에서 '시글락'(27:6)까지 삼일만에 도착했다는 사실(30:1) 때문이다. 만일 다윗이
그당시 '수넴'(Shunem, 28:4)에 있었다면, 자신의 거주지인 시글락까지 결코 삼일만에
도착하지 못하였을 것이다(Smith). 그러나 '아벡'에서 '시글락'까지는 약 75km 정도이
므로, '아벡'에서 '수넴' 쪽으로 조금 진행한 지점에서 다윗의 군사가 다시 시글락까
지 회군(回軍)하는 데 삼일 걸렸다는 사실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다윗...아기스와 함께...나아가더니 - 다윗의 이같은 행동은, 다윗에 대하여 절대
적인 신뢰를 갖고 있던 아기스의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28:1). 가드 왕 아기스는 그
때 다윗을 자신의 영원한 사역자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27:12).
그 뒤에서 - 다윗과 그의 일행은 아기스의 후군(後軍)이 되어 본전투에 참여하였음
을 암시한다.
=====29:3
이 히브리 사람들 - 다윗과 그의 휘하 병력을 가리킨다. 여기서 블레셋 방백들이
이들을 이같이 '히브리 사람'(* , 이브림)이라고 표현한 까닭은, 방백들이
이들에 대하여 매우 부정적 시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13:7).
이스라엘 왕 사울의 신하 다윗 - 아기스의 이 말은 다윗이 전에는 사울의 신하였으
나 지금은 그와 원수가 되어 아기스 자신의 신하가 되었음을 암시하는 말이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 뿐만 아니라 심지어 블레셋 사람들까지도 다윗이 사울과 원수 관계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바로 이같은 사실로 인하여, 아기스는 자신의
말이 다른 방백들에게 설득력을 가질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나와 함께 있은지 여러 날 여러 해 - 여기서 '여러 날 여러 해'란 표현은 다윗이
충실한 신하로서 아기스 자신과 함께 오래 있었음을 강조하기 위한 독특한 표현이다.
실제로 다윗이 아기스와 함께 한 기간은 '일 년 넉 달'이었다(27:7).
내가 그의 허물을 보지 못하였노라 - 이는 아기스가 그때까지, 다윗이 자신 몰래
그술, 기르스, 아말렉 등 이스라엘 적대 세력들을 침노했던 사실을 알지 못했음을 시
사해 준다(27:8, 12). 그리고 사실 다윗은 이러한 남방 민족들을 아기스 몰래 침노한
사실 이외에는 아기스에게 충성을 다하여 큰 신임을 얻었던 것 같다(Smith).
=====29:4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이 그에게 노한지라 - 이는 다윗을 두둔하는 가드 왕 아기스
에 대한 블레셋 방백들의 반발이다. 즉 블레셋의 다른 네 방백들은, 아기스가 자신들
의 말보다 다윗을 더 신뢰하는 데 대하여 이같이 날카로운 반응을 보인 것이다. 한편
여기의 '방백'(* , 사르)은 '군주', '우두머리', '지휘관' 등의 의미로서, 왕보다는
낮은 계급의 소유자를 지칭할 때 사용된다(창 12:15;출 1:11;삼하 2:8). 아무튼 본절
은 블레셋 방백 회의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당시 블레셋에는 5인의 방백이 있었으며,
그 방백들 중에서 한 명이 블레셋 연방 체제(聯邦體制)를 대표하는 왕이 되었다(6:4,
16;수 13:3;삿 3:3). 하지만 이 왕은 절대적 왕권을 갖지 못하고 방백 회의에서 결정
된 사항을 따라야 했으며, 방백들의 제의를 무시하고 자의(自意)로 통치권을 행사하지
는 못했다(6:1-16). 여기서 아기스는 가드의 방백이면서 위와 같은 제한적 왕권을 지
닌 블레셋의 왕이었다. 따라서 블레셋 방백들이 다윗의 참전 문제에 거세게 항의하면
서 아기스 왕의 뜻을 꺾고 다윗을 되돌려 보내게 된 것은 바로 이러한 블레셋의 독특
한 통치 체제게 기인한다. 그러나 다윗이 길보아 전투에 참전할 수 없었던 궁극적인
이유는 그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강권적인 역사 때문이었다.
왕이...정하신 그 처소 - 즉 가드 왕 아기스가 다윗에게 식읍(食邑)으로 부여한
'시글락'(Ziklaq)을 가리킨다(27:6).
그는 우리와 함께 싸움에 내려가지 못하리니 - 이 말은 구체적으로 이스라엘 군대
가 진치고 있는 곳의 맞으편 언덕에 위치할 자신들의 진지에서, 전투를 위하여 이스라
엘 군대와 자신들의 군대 사이의 계곡 혹은 들판으로 내려가는 행위를 가리킨다(Keil,
Smith, Fay).
전장에서 우리의 대적이 될까 하나이다 - 이 말은 다윗이 막상 싸움에 임하여서는
블레셋을 배반하고 사울의 편에 서서 오히려 블레셋을 역공격하는 것을 뜻한다. 아마
도 블레셋 방백들은 이전에 믹마스에서 이스라엘과 전투할 때(13:5) 많은 이스라엘인
들이 투항하였지만, 그들이 다시 블레셋에 대항했던(14:21) 뼈아픈 경험을 잊어버릴
수가 없었을 것이다. 한편 여기서 '대적'(* , 사탄)은 정관사(* , 하)와 더불어
고유 명사로 쓰일 때는 악령의 두목 '사단'의 의미로 사용되는 단어이다(대상 21:1;욥
1:6;시 109:6;슥 3:1). 그러나 이 단어의 원래 의미는 '평강을 방해하는 자', 혹은
'은밀하게 대적하는 자'란 뜻이다(Hertzberg).
그가 무엇으로 그 주와 다시 화합하리이까 - 이는 다윗이 사울의 편에 다시 서기
위하여 어떤 예물을 그에게 가져갈 것이라는 확신적 질문이다. 여기서 '화합하리이까'
(* , 이트라체)는 '기쁘게 하다', '화해하다'란 의미를 갖는 동사 '라차'(*
)의 재귀적(再歸的) 사역형이다. 따라서 여기의 '화합하리이까'는 자신의 이기
적 욕심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사울을 즐겁게 하는 것, 즉 블레셋을 배반한 후 도리어
사울을 도와서 블레셋에 역공(逆功)을 펼치는 것을 가리킨다. 한편 또한 여기서 '그
주'는 사울 왕을 가리키는데, 이는 블레셋 방백들이 사울 왕에 대한 다윗의 신실함에
대해 의혹을 끝까지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시사해 준다. 그리고 이같은 사
실은, 아기스가 다윗을 자신의 '영원한 사역자'로 간주하고 있었던 것과는(27:12) 크
게 대조된다.
이 사람들의 머리로 하지아니하겠나이까 - 이것은 다윗이 사울과 화해하기 위하여,
즉 사울을 즐겁게 하기 위하여 많은 블레셋 병사들의 머리를 그에게 예물로 바칠 것이
라는 뜻이다. 이전에 다윗은 사울의 사위가 되기 위하여, 즉 사울을 즐겁게 하기 위하
여 블레셋 사람들의 양피 이백을 그에게 바친 일이 있었다(18:27). 아무튼 블레셋 방
백들의 이같은 언급은 그들이, 만일 다윗을 전쟁터로 데려가면 그가 블레셋 사람들에
게 큰 손실을 입힐 것임을 확신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시사해 준다.
=====29:5
본절은, 다윗이 전에 골리앗을 꺾은 엘라 골짜기 전투(17장)에서 사울과 함께 블레
셋에게 군사적으로 엄청난 손실을 입혔던 장본인이었음을 상기시키기 위한 언급이다
(21:11). 이전에도 가드 왕 아기스는 바로 이같은 언급을 부하들로부터 전해 들음으로
써, 자신에게 망명왔던 다윗에 대하여 의심을 품기 시작하였었다(21:12). 아무튼 다윗
의 무공을 칭송하는 이스라엘 여인들의 이 노래는 당시의 민심(民心)이 반영된 채 이
스라엘 인근 지역의 국가들 사이에도 익히 알려졌던 것 같다.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 18:7 주석 참조.
=====29:6
여호와께서 사시거니와 - 자신의 말의 신실성(信實性)을 강조적으로 표현하는 히브
리적 맹세의 한 방식이다(26:10). 그러나 여기에 언급되는 아기스의 이 맹세는, 그가
히브리인의 하나님 여호와를 믿었음을 시사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아기스는 신실한
맹세를 하고자 할 때 히브리인들은 바로 이같이 맹세한다는 것을 다윗으로부터 배운
후, 이제 오히려 그는 자신의 심경을 진지하게 표출하는 이 마당에서 도로 다윗에게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네가 정직하여 - '정직하여'(* , 야솨르)는 어떠한 악의(惡意)나 사심(私心)
없이 곧고 바르게 행동하는 것을 가리킬 때 사용되는 형용사이다(출 15:26;신 12:28;
수 9:25).
네게 악이 있음을 보지 못하였으니 - '네가 정직하여'와 동일한 의미이다. 아기스
는 이같은 동의어를 반복 언급함으로써 다윗의 의로움을 강조적으로 칭찬하고 있다.
한편 아기스의 이러한 말을 통해 우리는 당시 이방 사회에 거주하던 다윗이 어떠한 생
활을 하였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즉 비록 이방 땅으로 피신하는 실수를 저지르기는
했으나, 다윗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답게 신중하게 생활했다. 이 사실은 우리 기독교인
들에게 다음과 같은 성경적 삶의 원리를 일깨워 준다. (1) 성도의 어느 곳에 처하든지
정직하고 진실한 삶으로써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한다(마 5:13-16). (2) 하나님
을 믿지 않고, 또한 까다롭게 대하는 상전들에게도 성도는 하나님을 섬기듯 진실하게
봉사해야 한다(벧전 2:18). 이처럼 언제 어느 곳에서든지 실천적 삶으로써 하나님을
바로 섬기는 자가 산 믿음을 소유한 자요(약 2:26), 하나님과 사람에게 칭찬을 받는
자이다(롬 14:18).
군중(* , 마하네) - 군대의 진영 혹은 진지(陣地)를 가리킨다(4:3;13:17;17:
1).
=====29:7
너는 돌이켜 평안히 가서 - 사실 이 같은 아기스의 명령은, 다윗에게는 매우 기다
려지던 바였다. 사실 다윗은 그때 블레셋 군대와 합세하여 자신의 동족 이스라엘과 절
대로 싸우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어떻게 해서든지 그 전투에 참여치 않
으려 노력했었다(28:2). 그러므로 그때 다윗을 시글락으로 되돌려 보내기 위하여 이같
은 말을 하는 가드 왕 아기스는 다윗에 대하여 대단히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었겠지
만, 그 당사자인 다윗은 하나님의 섭리에 감사하였을 것이고, 내심으로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장관들에게 거슬려 보이게 말라 - 문자적으로는 '장관들의 눈에 악함이 보이지 않
도록'이란 뜻이다. 이러한 당부는 아기스가 다윗을 앞으로도 계속 자신의 '사역자'로
삼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었음을 시사해 준다. 즉 만일 다윗이 다른 블레셋 방백들에
의하여 더이상 눈 밖에 나게 된다면, 아기스도 다윗을 계속 자신의 휘하에 두고 싶더
라도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29:8
본절에 나타난 바 다윗의 이 항변은 분명히 그의 양심에 반(反)하는 것이었다. 사
실 다윗은 앞으로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야 하는 입장에서, 이스라엘과 전투를 할 수도
없었고, 또한 전투를 하고 싶은 마음도 결코 없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
이 이같은 거짓된 말을 한 까닭은, (1) 블레셋 방백들의 의심으로부터 자신을 변호하
고, (2) 또한 아기스가 한 말의 진실성을 시험해 보기 위함이었다(Keil). 만일 그때
다윗이 잠잠히 있었다면, 아기스는 다윗을 고소한 다른 방백들의 말(4, 5절)을 참말로
받아들였을 가능성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 주 왕의 원수 - 여기서 '내 주'는 다윗의 의도를 따른다면, 사울을 가리킬 것이
분명하다(McCarter). 이처럼 다윗은 '내 주 왕'을 내심 사울에게 적용시켰지만, 아기
스는 다윗의 교묘한 말투에 의하여 '내 주 왕'을 자신에 대한 명칭으로 받아들이고 있
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다윗은 이같은 말투를 사용함으로써, 아기스가 자신에 대하여
일말의 의심도 품지 못하도록 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양심에 대해서도 가책이 없도
록 하려고 하였다. 한편 여기서 다윗이 특별히 '내 주'라는 말을 사용한 것은, 블레셋
의 다른 방백들이 사울을 다윗의 '주'로 말했던 것<4절>에 항의하기 위함이었을 것이
다. 아무튼 다윗의 이같은 말투는 상대를 속이려는 의도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에서 '명
예스럽지 못한 테크닉'(word-play)이라 볼 수 있다.
=====29:9
하나님의 사자 같이 선한 - 여기서 '하나님의 사자'는 '하나님의 천사'를 의미하는
데, 아기스의 이같은 표현은 하나님께서 보낸 천사는 항상 인간들을 위하여 좋은 일만
한다는 일반적 관념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따라서 이 표현은 다윗의 정직함과 의로움
을 강조하는 말임이 분명하다.
내가 아나 - 여기의 '아나'(* , 야다)는 체험적으로 깨달아 자세히 아는 것을
뜻하는 단어이다.
그가...전장에 올라가지 못하리라 - 이것은 블레셋의 집결지 '아벡'으로부터 그들
이 진을 칠 곳인 '수넴'까지 진군하는 것을 가리킨다(28:4). 한편 '올라간다'는 말은
북상(北上)한다는 뜻과 아울러 블레셋의 진지인 '수넴'이 '모레 언덕'이라는 고지대
(高地帶)에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29:10
네 주의 신하들 - 이것은 말할 나위 없이 다윗의 휘하 병력들을 가리킨다. 그런데
여기서 이들을 이와 같이 표현한 까닭은, 다윗의 추종 병력들이 원래는 사울의 휘하에
있었으나 이후 다윗에게로 넘어온 자들이었기 때문일 것이다(22:2;23:13;대상
12:19-21).
새벽에 일어나라 - 이는 블레셋의 방백들이 다윗의 참전(參戰)에 대하여 이의(異
議)를 제기한 때가 거의 밤이었음을 암시해 준다.
밝거든 곧 떠나라 - 이같은 아기스의 명령은 다윗으로 하여금 블레셋의 다른 방백
들의 눈에 더이상 띄지 않도록 하려는 의도에 따른 것이었다. 즉 날이 밝은 그 다음
날 아침에도 다윗이 블레셋 방백들에 의하여 발견된다면, 다윗은 또다시 그들의 구설
수에 오르게 되고, 급기야는 블레셋 땅에서 완전히 떠나야만 하는 상황에 도달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7절).
=====29:11
다윗이...블레셋 사람의 땅으로 돌아가고 - 다윗이 이처럼 자신의 동족 이스라엘과
싸우지 않고 시글락으로 되돌아가게 된 것은, 블레셋 방백들로 하여금 다윗의 참전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케 하신 하나님의 섭리 때문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역사하심
으로써, (1) 다윗이 장차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르는 데 있어 장애가 없도록 하셨으며,
(2) 또한 때마침 아말렉의 침공에 의하여 납치되었던 자신의 가족등을 구출하도록 역
사하신 것이다.
일찌기 아침에 일어나서 떠나 - 다윗은 진퇴 양난의 위기에서 결국 동족 이스라엘
에게도 전혀 죄를 짓지 아니하고, 또한 아기스 왕에게도 전혀 의심받지 않은 상태로
자신의 거처인 시글락으로 떠났다. 한편, 본절은 B.C. 1010년에 발발한 길보아 전투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이 전투를 계획했던 블레셋 왕 아기스는 그당시 다윗을 상당히
신임하고 있었던 터라 다윗을 그 전투에 참가시키려 했던 것이다. 따라서 다윗은 어떠
한 행동을 취하든 결과는 반역자가 될 수 밖에 없는 궁지에 몰리고 말았다. 그러나 하
나님께서는 비록 당신의 뜻을 저버리고 이방인의 신하가 되어 있던 다윗이었지만, 그
를 들어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사용하시려는 당신의 계획을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표시
로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던 다윗에게 그 전투에 참전할 수 없도록 섭리하셨던 것이
다. 따라서 우리는 이같은 사실들을 통해 (1) 인간의 실수와 절망할 수 밖에 없는 상
황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성취해 가신다는 것(마 26:14-29)과 (2) 당신
이 택하신 자를 결코(그가 범죄의 자리에 있다 하더라도) 버리지 않으실 뿐 아니라 피
할 길을 예비해 주신다는 진리를 배울 수 있다(고전 10:13).
이스르엘 - 1절 주석 참조
사무엘상 제 30장
=====30:1
다윗...시글락에 이를 때. 이것은 다윗과 그의 일행이 블레셋 방백들의 거부로 인
하여 (29:3-5) 이스라엘과의 전투에 참여치 않고, 블레셋 군대를 떠나 다시 자신들의
본거지인 '시글락'에 돌아온 사실을 가리킨다(27:6).
제 삼일에 - 여기 '삼일'은 다윗 일행이 블레셋 군대로부터 떠난(29:11) 제 3일을
가리킨다(Keil). 이 기간 동안 다윗과 그의 군사들은 '아벡'으로부터 '시글락'까지 약
75km를 행군 했음이 분명하다(29:1).
아말렉 사람들이 이미 남방과 시글락을 침노하였는데 - 아말렉 족속들의 이같은 행
위는 (1) 이전에 다윗이 자신들에게 행한 침노 행위(27:8, 9)에 대한 보복의 성격을
지니며(Fay, Keil), (2) 또한 생존을 위한 약탈물 확보(Smith) 등이 그 목적이었다.
그런데 이렇듯 아말렉 족속이 시글락을 침범할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보다도 그곳을
지키던 다윗이 북쪽 '아벡'으로 이동함으로써, 그곳이 무방비 상태가 되었기 때문이었
다. 한편 여기서 '남방'은 유다의 남부 지역을 통칭하는 '네게브'(Negeb)를 가리킨다
(27:10). 그런데 원래부터 이곳은 항상 아말렉 사람들로부터 침략의 위협을 받던 지역
이었다(14:48). 그리고 '침노하였는데'에 해당하는 기본 동사 '파솨트'(* )는 '홑
뜨리다', '벗기다'란 의미로서, 이는 전쟁을 목적으로 하는 침략 행위라기 보다는 갑
자가 급습하여 필요한 노획물을 약탈해 가는 노략 행위를 가리키는 단어이다(27:8)
=====30:2
거기 있는 대소 여인들 - 다윗 일행의 가족들인(27:3) 이들은 여자들인 관계로 다
윗과 함께 전투에 참여치 않고 시글락에 계속 남아 있었다. 한편, 3절은 이 여자들 외
에도 자녀들까지 아말렉 사람에게 모두 잡혀갔음을 말하고 있다.
하나도 죽이지 아니하고...끌고...갔더라 - 아말렉 사람들이 이같이 사로잡아 간
까닭은 그들이 결코 인정이 많아서가 아니었다(15:2). 다만 (1) 무장하지 않은 연약한
자들이었으므로 그들의 공격에 대항치 않았으며 (2) 애굽에 노예로 팔 경우(창
37:25-28) 많은 수입을 올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실
리(實利)를 추구하는 이방 아말렉 족속의 관행을 오히려 선하게 이용하심으로써, (1)
하나님의 백성을 보호하셨으며 (2) 다윗 가문(家門)을 통해 나타내시고자 하시는 당신
의 계획을 차질없이 계속 진행시켜 나가셨다. 실로 세밀한 구석까지 친히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자애로운 손길을 느낄 수 있다.
=====30:3
아내와 자녀들 - 이들은 그때 시글락에 남아 있던 자들로서, 다윗과 그의 군사들에
게 딸린(27:3) 모든 식구를 가리킬 것이다(Klein).
=====30:4
다윗...울었더라 - 다윗의 이같은 비탄은 비단 자신의 아내들을 빼앗겼다는 사실
때문만은 결코 아니었을 것이다. 즉 다윗은 시글락을 무방비 상태로 비워 놓고 경솔히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나아간 자신의 실책으로 인하여, 자신의 모든 부하들의 아내와
자녀가 포로로 잡혀간 그 엄청난 사실로 인하여 큰 슬픔에 잠긴 것이다. 한편, 다윗에
게 닥친 이러한 큰 재난의 궁극적 원인은 목전의 안전과 정착을 도모코자 언약의 땅
이스라엘을 떠나 우상의 나라인 불레셋 땅으로 이주한 데 있었다. 그러므로 성도는 비
록 고생과 어려움을 당할지라도 언약의 땅에서, 언약의 백성과 더불어, 언약의 주를
바라고 믿으면서 울고 웃어야 한다.
=====30:5
본절은 다윗도 자신의 부하들처럼 동일한 환난을 당했음을 말해 준다. 저자는 이
같은 언급을 통하여 (1) 다윗도 다른 부하들처럼 동일하게 슬퍼할 수 밖에 없었으며,
(2) 그리고 동일한 피해자인 다윗을 돌로 치려고 한 백성들의 태도는 잘못된 것임을
암시하려는 듯하다(6절).
아히노암...아비가일 - 25:3, 42, 43 주석 참조
=====30:6
백성이...슬퍼서 - 여기서 '슬퍼서'(* , 마라르)는 '쓰리다' 혹은 '괴로워하
다'란 의미이다(왕하 4:27;사 24:9). 이 말은 어떤 괴로운 사실로 인하여 마음이 극도
로 낙망 상태에 도달하는 것을 가리킨다.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 백성들이 이처럼 말한 이유는 재난의 책임이 전적으로 다
윗에게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즉 그들은 (1) 다윗이 약탈을 생업으로 삼는 아말
렉 사람들의 신경을 건드려 놨으며(27:8, 9), (2) 또한 다윗이 블레셋의 가드 왕 아기
스의 말을 좇아 시글락을 비워 둔 채 군사들을 모두 북쪽으로 이동시키는 등, 백성들
의 보호자 혹은 지도자로서의 사명을 제대로 수행치 못했다고 본 것이다(Klein).
다윗이 크게 군급하였으나 - 여기서 '군급하였다'(* , 야차르)는 '답답하다',
'곤란하다'란 의미로서, 어떤 원인에 의하여 매우 난감한 상황에 처했을 때 느끼게 되
는 답답한 감정 상태를 가리킨다(창 32:7;삿 2:15;10:9;삼하 13:2).
그 하나님 여호와 - 여기서 '그'는 '그의' 혹은 '그 자신의'란 뜻이다. 그리고 '여
호와'란 신 명칭(神名稱)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과의 계약을 신실하게 이행하시는
분임을 강조할 때 사용되는 하나님의 명칭이다(20:12, 15). 결국 저자는 여기서 이같
은 하나님의 명칭을 사용함으로써, 그때 다윗이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인식했으며, 또
한 어떤 자세로 하나님을 신뢰했는지 분명히 보여 준다.
힘 입고 - 엄밀히 말하여 '...안에서'란 의미이다.
용기를 얻었더라(* , 이트하제크) - '힘을 내다', '견고히 하다'란 의미를
갖는 '하자크'(* )의 재귀적 사역형이다. 따라서 이 말은 '(여호와 안에서) 자신
을 위하여 스스로 힘을 내다'란 의미로 번역될 수 있다(삿 20:22;대하 12:13;17:1;겔
7:13). 즉 이것은 여호와를 의뢰하는 확고한 신념에 근거하여 적극적인 방향으로 마음
을 새로이 먹는 것을 가리킨다. 여기서 우리는 난관에 대처하는 다윗의 신앙을 엿볼
수 있다. 즉 이때 다윗은 휘하 군사들을 회유하는 설득이나 구구한 변명 대신 하나님
께 그 어려운 문제를 맡기고 그분의 도우심을 전적 바라는 신앙인의 모습을 견지했던
것이다. 이처럼 성도는 환난을 당할 때 사람보다 먼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통해서
문제 해결을 시도해야 한다. 실로 신앙인이 불신자보다 월등한 점은 고난에 처했을 때
환경과 사람을 바라보지 않고 그 상황의 배후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데 있다. 그
리고 당신만을 소망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힘과 위
로를 제공하신다(시 50:15;사 40:31).
=====30:7
아히멜렉의 아들...아비아달 - 아비아달(Abiathar)은 자신의 아버지 '아히멜렉'을
포함한 놉(Nob) 제사장들이 사울에 의하여 집단 학살됐을 때(22:18-20), 단신으로 다
윗에게 피신해 온 제사장이다. 그런데 그는 당시 다윗에게 도피할 때, 하나님의 뜻을
묻는 계시 수단인 '우림과 둠밈'이 부착되어 있는 에봇을 갖고 갔었다(23:6)
에봇을 내게로 가져오라 - 이는 '우림과 둠밈'(출 28:30 주석 참조)을 통하여 하나
님의 뜻을 묻기 위함이었다<14:18;23:9>. 이는 당시 다윗의 신앙적 행동의 출발이 어
디서부터인지를 잘 보여 준다. 즉 다윗의 신앙적 행동의 출발점은 하나님과의 대화와
교제에 있었다. 즉 그는 대제사장의 에봇을 통하여 하나님과 신령한 교신(交信)을 했
으며, 결국 이것이 올바른 행동과 승리의 관건이 되었다. 이처럼 성도들이 항상 복되
고 의로운 길을 걸을 수 있는 방책은 매사에 하나님과 교제하며 그분의 뜻에 따라서
생활하는 것이다(롬 12:1, 2;엡 5:17). 한편, 대제사장의 의복인 '에봇'(Ephod)에 대
해서는 출 28:6-14 부분의 주석을 참조하라.
=====30:8
다윗이...묻자와 가로되...쫓아가면 미치겠나이까 - 이때 다윗이 하나님께 질문한
것은 구체적으로 포로된 가족들을 구출할 수 있을 것인지의 여부였을 것이다. 한편
'미치겠나이까'(* , 나사그)는 원래 '잡다', '치다'란 의미로서, 상대를 공격하여
그들의 소유물까지 자신의 것으로 삼는 행동을 가리킨다(출 15:9).
여호와께서 대답하시되 - '우림과 둠밈'(출 28:30)은 항상 어떤 질문에 대한 '가
부'(可否)의 응답만을 했다. 따라서 '우림과 둠밈'이라는 계시 수단을 통해서 하나님
의 음성이 직접 들려지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대제사장의 입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이
전달될 뿐이었다(Fay, Hengstenberg). 한편 여기서 우리는, 사울에게는 하나님의 모든
계시가 중단되었으나(28:6), 다윗에게는 이처럼 하나님의 뜻이 계속적으로 계시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이같은 대조를 통하여 본서 저자는, 이제 사울의 왕권
은 완전히 쇠퇴하고 반면 다윗의 왕권은 일취 월장(日就月將) 흥왕하게 될 것임을 강
력히 예시하고 있는 것이다.
쫓아가라...미치고...찾으리라 - 여기의 이 대답은 다윗이 질문할 때 사용한 말인
'쫓아가면 미치겠나이까'보다 '찾으리라'는 말이 덧붙여졌다는 점에서 대단히 고무적
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30:9,10
이 부분은 다윗의 지도자적 역량을 부각시켜 주고 있다. 즉 다윗은 자신을 돌로 치
려 하는 큰 소요가 바로 전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분위기를 일순간에 반전시켜
그들 모두로 하여금 자신을 좇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백성들 모두
가 다윗을 좇은 것은 '우림과 둠밈'을 통해 전달된 하나님의 긍정적인 답변(8절)으로
인하여, 아내와 자식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함께 한 육백 명 - 이것은 한 명의 항명자(抗命者)도 없이 다윗의 부하 전원이 다
윗을 좇았음을 시사해 준다(27:2).
브솔 시내 - '시글락' 남쪽 약 24km 지점으로, 유다 산악 지대에서 발원하여 '가
사' 남서방을 통해 지중해로 흘러 들어가는 시내이다(Raumer). 헤르츠베르그
(Hertaberg)는 나름대로의 어원학적 분석을 근거로 하여, '브솔 시내'(Besor Brook)의
뜻을 '좋은 소식의 시내'로 본다. 한편 이곳은 오늘날 '와디 에스 쉐리아'(Wady es -
Sheriah)로 추정되어진다(Keil, Fay, Smith).
뒤떨어진 자를...머물렀으되 - 이같은 결과가 나타나게 된 까닭은 (1) 다윗과 그의
휘하 군사들은 '아벡'으로부터 '시글락'까지 약 삼 일 길을 이미 행군하였기 때문에
매우 피곤한 상태였으며(1절), (2) 거기다가 쉬지도 못한 채로 온 힘을 다하여서 아말
렉 족속을 밤낮 추적한 관계로 몹시 지쳤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다윗은 힘들어하는
200명을 브솔 시내에서 쉬게 하였던 것이다. 물론 추격의 시급성을 모르는 바 아니었
으나 지친 자들에게 무리한 강행군을 강요하지는 않았다. 이는 신앙에 기초를 둔 다윗
의 인도적 조처였다. 더욱이 여기서 다윗은 하나님께서 남은 400명과 함께 하신다면
600명 이상의 힘을 발휘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던 것이다(대하 14:11, 12). 이와 같은
다윗의 신념은 하나님의 구원이 사람의 숫자에 있지 않음(14:6)을 입증하듯 다윗에게
큰 승리를 안겨다 주었다(16-20절).
=====30:10
곧 피곤하여...머물렀고 - 이것은 다윗이 육백 명 중 사백 명만을 데리고 아말렉
족속을 쫓아갔던 이유를 제시해 주는 구절이다. 따라서 이 말은 '다윗은 사백 인을 거
느리고 쫓아가니라'라는 말 다음에 놓고, 본 구절의 초두에 나오는 '곧'(* , 웨)을
'왜냐하면'이란 뜻으로 봄이 좋다(이러한 해석이 히브리 원문에 충실한 해석이다).
브솔 시내를 건너지 못하는 - 여기의 이 '브솔 시내'(Besor Brook)는 유다 남방의
산악 지역에서부터 흘러 가사(Gaza) 지역을 통과한 후 지중해로 빠지는 하천이다. 그
러나 이 시내는 '와디'(Wady) 즉 '건천'(乾川)이기 때문에 우기(雨期)를 제외하고는
항상 강바닥이 말라있었다. 바로 이같은 점에서 이때 다윗과 그의 부하들은 강물을 건
너는 수고는 할 필요가 없었다. 다만 그 '브솔 시내'는 험한 골짜기를 따라 흘렀기 때
문에, 비록 강바닥이 말라붙는 건기(乾期)라 할지라도 그 골짜기를 건너기는 쉽지 않
았다. 그러므로 지친 군사들은 그 골짜기를 건너지 못하고 낙오할 수 밖에 없었다. 아
마 이들은 이때 뒤에서 짐을 지키는 역할을 수행했을 것이다(24절:25:13).
=====30:11,12
애굽 사람 - 이 사람은 아말렉 사람들이 애굽의 어느 변방 지역을 노략하면서 노예
로 붙들어 온 자였을 것이다<13절>.
무화과 뭉치 - 이것은 무화과를 재료로 하여 만든 과자를 가리킨다(25:18). 무화과
나무는 팔레스틴 지방의 메마른 땅에서도 잘 자랄 정도로 매우 강인한 생존력을 지닌
식물이다(민 13:23). 그러므로 바위와 돌이 많은 곳에서도 약 9m의 높이까지 자란다고
한다. 그리고 그 열매는 그 속에 꽃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자르지 않고서는 꽃을
볼 수 없다는 이유로, '무화과'(無花果)라는 명칭이 붙여졌다고 한다.
=====30:13
애굽 소년이요 - 이것은 다윗의 '어디로서냐'(어디 출신이냐 ?)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한편 '소년'(* , 나아르)은 완전한 성인(成人)은 아니지만, 전투를 감
당할 만큼 나이 든 젊은 남아(男兒)를 가리킨다(14:6).
아말렉 사람의 종 - 이것은 다윗의 '뉘게 속하였으며'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사흘 전에 병이 들매 - 여기서 '사흘 전'은 다윗이 아벡 근처에서 시글락을 향하여
출발할 즈음이다(29:10, 11;30:1). 이때 아말렉 족속들은 시글락에 대한 노략질을 마
치고 자신들의 본거지로 돌아가는 중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아말렉 사람들의 시글락
노략은 다윗이 아벡의 집결지에 도착했을 무렵에 이루어진 듯하다(29:1, 2). 한편 '병
이 들매'(* , 할라)는 '약해지다', '쇠약하다' 등의 의미로서, 병으로 인하여 움
직일 기력을 상실한 상태를 가리킨다(삿 16:7;사 57:10).
주인이 나를 버렸나이다 - 고대 중근동 지역에서 노예가 주인으로부터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언급이다. 즉 주인은 병들어서 노동력을 상실한 이 종에게 치
료를 해주고 먹을 것을 주는 등 보살필 경제적 가치를 느끼지 못하였을 것이기 때문
에, 마치 물건 버리듯 들에 내팽개쳐 버린 것이다.
=====30:14
그렛 사람의 남방 - '그렛 사람'(the Cherethite)은 그레데(Crete) 섬 출신의 가나
안 이주 민족이다. 이와 같이 보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즉 (1) '그렛'과 '그레데'라
는 단어는 상호 매우 유사하며, (2) 호머(Homer) 시대에는 그레데에서 '그렛'이라는
말이 사용되었으며, (3) 그리고 또 다른 그레데 출신의 민족들인 블레셋(4:1)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것처럼 성경에서 언급되기 때문이다(겔 25:16;습 2:5). 그러
므로 우리는 '그렛 사람'들이 블레셋과 밀접한 연관성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을 근거로
하여, 이들이 블레셋 사람들의 용병으로 활동했을 것으로 추측 가능하다(Klein). 그런
데 이들의 일부는 후일 다윗이 왕으로 있을 때 그의 친위대가 되어서, 다윗에 대한 여
러 번의 모반이 있을 때마다 항상 다윗의 편에 서서 온갖 충성을 다하기도 하였다(삼
하 15:18;20:7;왕상 1:38). 한편 이 민족의 거주지는 가나안 땅의 남서쪽 해안(海岸)
지대였다(습 2:5). 그렇다면 '그렛 사람의 남방'은 어디를 가리킬까 ? 이곳은 대체적
으로 블레셋 사람의 영토 중 남부 즉 시글락 주변 지역으로 추측된다.
유다에 속한 지방 - 이곳은 유다 땅의 남부 지역을 가리킨다(1절).
갈멜 남방 - 개역 성경의 '갈멜'은 '갈렙'(* , M.T;* , LXX;Caleb,
KJV)으로 번역해야 한다<25:3>. 이 '갈렙'은 이스라엘의 가나안 땅 정복기에 그나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에게 분배되었던, 헤브론을 중심으로 한 유다 남부 지역에 해
당된다(수 21:12). 결국 아말렉 족속이 침범했던 지역으로서 애굽 소년에 의하여 언급
된 세 지역 즉, '그렛 사람의 남방'과 '유다에 속한 지방'과 '갈멜 남방'은 팔레스틴
의 모든 남쪽 지역을 망라하여 가리키는 것이다.
침노하고 - 1절;27:10 주석 참조.
=====30:15
네가...그 군대에게로 인도하겠느냐 - 이같은 다윗의 요구는 아말렉 족속이 일정한
거처를 갖지 않는 유랑(流浪) 민족이라는 사실에 근거한다. 물론 그들도 목적상 일정
기간 동안 잠정적인 거처를 가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은 도시를 형성하고 살지 않는
유랑 민족으로서, 언제든지 이동할 가능성이 있는 부족이었기 때문에, 어떤 정보 없이
그들의 발자취를 추정하기란 여간 힘들지 않다. 따라서 병든 애굽 소년의 정보는 다윗
에게 매우 필요했던 것이다. 한편 하나님의 세심한 섭리가 여기에서도 잘 나타난다.
만일 이 부족이 다른 부족처럼 도시를 형성해 살아갔다면, 다윗은 안내자 없이도 그들
을 공격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당신이 나를 죽이지도 아니하고 - 애굽 소년의 이 말은, 적군의 패잔병을 안내자로
이용한 후 그 효용 가치가 없으면 후환을 없애기 위해 미련없이 죽여버렸던 고대의 전
쟁 풍습에 기인한다(Thenius, Smith). 즉 그 애굽 소년은, 다윗도 자신을 안내자로 이
용한 후 목적이 달성되면 자신을 죽일 것으로 염려한 것이다.
주인의 수중에 붙이지도 아니하겠다고...맹세하소서 - 만일 다윗이 종을 다시 주인
에게 돌려준다면, 그 종은 이적(利敵) 행위를 한 혐의로 인하여 분명히 무참한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다. 바로 이같은 이유 때문에 그 애굽 소년은 다윗에게 맹세를 요구하
였다.
하나님으로 - 여기 '하나님'(* , 엘로힘)은 이스라엘 사람들에 의해서는
창조주에 대한 호칭으로 사용되었지만, 이방인들에 의해서는 자신들의 이방 신에 대한
호칭으로 사용되었다(왕하 17:31, 33;대하 33:15). 따라서 여기 애굽 소년에 의해 언
급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아닌, 다만 자기가 섬기던 신(神)을 가
리킴이 분명하다.
=====30:16
도 아말렉 족속과 함께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진행 방향에 대해 알고 있었다. 더욱
이 다윗 일행은 맹추격을 한 반면, 아말렉 족속에게는 여자, 어린이, 가축 등 많은 약
탈물이 딸려 있었기 때문에 진행 속도가 느릴 수 밖에 없었다. 따라서 다윗 일행은 애
굽 소년의 안내로 쉽사리 아말렉 족속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 한편 애굽 소년의 이같
은 인도 장면은, 이스라엘의 미래 왕 다윗에게는 장차 국내외적으로 많은 협력자들이
있게 될 것임을 시사한다(Klein). 그러나 사울에게로부터는 국내의 협력자들까지 떠나
가지 않았던가(22:2) !
그들이...편만하여 - 여기의 '편만하여'(* , 나타쉬)는 무질서하게 여기 저기
흩어져 있는 상태를 가리킨다. 따라서 이 '편만하여'란 말은 당시 아말렉 족속들이 방
심한 상태에 있었음을 시사해 준다.
블레셋 사람의 땅과 유다 땅 - 14절에서 애굽 소년에 의하여 언급된 여러 지역들을
말한다.
먹고 마시며 춤추는지라 - 약탈을 생업으로 삼는 유랑 민족(베드윈)에게서 흔히 볼
수 있듯이, 성공적인 약탈 행위 이후 방탕하게 베푸는 주연(酒宴)을 가리킨다. 이때에
는 경계심을 푼 상태에서 모두 정신없이 먹고 마시며 취하기 때문에, 기습 공격은 그
대로 주효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이는 소수의 병력을 지닌 다윗의 공격 작전이 주효
할 수 있었던 주요한 요인이었음이 분명하다(삿 8:11).
=====30:17
다윗이 새벽부터 이튿날 저물 때까지...치매 - 여기서 '새벽'(* , 네쉐프)은
성경의 어떤 문맥에서는 '황혼' 혹은 '밤'을 의미하기도 하나, 여기서는 분명히 '새
벽'이란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욥 7:4;시 119:147). 만일 이것을 성경의 다른 문맥에
서 처럼(사 5:11;렘 13:16) '밤'으로 이해하게 되면, (1) 본절의 '저물 때까지'라는
말과 잘 조화되지 아니하며, (2) 간밤의 만취로 인해 완전히 저항 불능의 상태에 도달
하게 되는 새벽 무렵에 상대를 공격하는 것이 전술의 기본이라는 점에서, 매우 적절치
않다. 한편 '이튿날 저물 때'(* , 하에렙 레마하라탐)는 문자적
으로는 '다음 날 저녁'이란 뜻이다. 그런데 만일 이 말을 문자적으로 취한다면, 다윗
과 그의 부하들은 이틀간 아말렉과 싸웠다는 곤란한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러나 이
같은 문제는, 저녁 시간부터 하루를 계산하는 히브리 사람들의 날짜 계산 방식을 이해
한다면 능히 해소될 수 있다. 따라서 다윗과 아말렉 간의 접전은 새벽 무렵부터 그날
저녁 무렵까지 하루동안 진행된 것이다(F.R. Fay). 아무튼 '다윗이 새벽부터 이튿날
저녁까지...치매'라는 말은 다윗이 저항하는 아말렉 족속을 얼마나 철저하게 진멸했는
지를 잘 보여주는 언급이라 할 수 있다.
약대 타고 도망한 소년 사백 명 - '약대'는 팔레스틴 남방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공
격할 때 많이 사용한 동물이었다(삿 6:5). 한편 여기 소년들은 가축 관리의 임무를 맡
은 자들로 추측된다. 그렇다면 이들은 약탈한 가축들에게 먹이와 물을 주기 위하여 연
회장으로부터 어느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을 것이고, 그 결과 다윗의 기습 공격을 당
하여 자신들의 약대를 타고 도망침으로써, 간신히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30:18
도로 찾고(* , 나찰) - '건지다', '구원하다'란 의미로서, (1) 처음처럼 원래
의 상태로 회복시키는 것(삿 11:26), (2) 위급한 상황에서 구출하는 것(출 2:19;민
35:25;삼하 12:7)을 가리킨다.
구원하였고(* , 나찰) - 앞의 '도로 찾고'와 동일한 단어이다. 이는 다윗의
'완전한 회복'과 '더욱 풍성한 회복'을 강조한다. 즉 다윗의 아말렉 공격 사건에는 다
음과 같은 사실과 교훈이 깃들어 있다. (1) 이전에 탈취당했던 모든 것을 되찾았다
(18, 19절). 이와 같이 신앙으로 살아가는 자는 과거에 죄악으로 상실했던 모든 것을
회복하게 된다(요 8:32;14:27;15:11). (2) 전리품을 노획했다(20절). 말하자면 다윗
군대는 시글락 사건 이전보다 더욱 풍성한 소유를 누리게 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오직
신앙으로 나아가는 성도들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전화 위복(轉禍爲福)의 은총을 보게
된다. 실로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당신께 나아오는 자를 위하여 풍성한 은총을 예비해
놓고 계신다(요 10:10;엡 3:20).
=====30:19
도로 찾아왔고(* , 하쉬브) - '돌아오다', '보답하다'란 의미를 갖는 동사
'슈브'(* )의 사역형이다. 따라서 이것은 엄밀히 말해 '돌아오게 하였고'란 뜻이
다.
=====30:20
양떼와 소떼를 다 탈취하였더니 이 가축떼들은 전에 다윗이 빼앗겼던 가축들이 아
니다. 그 원래의 소유자는 알 수 없지만, 당시 아말렉이 다른 부족들에게서 빼앗아 자
신들의 소유로 삼은 가축떼가 분명하다. 만일 다윗이 잃었던 것을 다시 찾았다면 18,
19절에서 나오는 '나찰'(* )이나 '슈브'(* )와 같은 단어를 사용하였을 것이
다. 더욱이 이같은 사실은, 다윗이 이 가축들을 전리품으로서 유다 사람에게 나눠주었
다는 사실(26-30절)로써도 분명해진다.
그 가축 앞에 몰고 가며 - 이것은 '그 가축을 앞에서 몰고 가며'로 번역하는 것이
원문을 잘 살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자연스럽다(AV).
이는 다윗의 탈취한 것이라 - 이는 다윗의 업적과 무공(武功)을 환호하는 말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돌도 다윗을 쳐죽이려 했던 그들의 행동과는 매우 대조적이다(6
절). 그러므로 후일 다윗은 왕이 되었을 때 이처럼 변덕스러운 인간의 마음보다는, 바
위나 산처럼 늘 변치 않는 하나님만을 전적 의뢰하였다.
=====30:21
이왕에...브솔 시내에 머물게 한 이백 인 - 이들은 먼 거리를 급히 행군한 까닭에
(9, 10절) 낙오된 자들이었다. 대신 이들은 짐을 지키고 있었다(24절).
다윗이...문안하매 - 여기서 '문안하매'(* , 솨알 솰롬)는 '평강의
여부를 물어보다'란 뜻이다(삿 18:15). 이것은 다윗이 전투에 참여했던 자들에게처럼,
낙오한 자들에 대해서도 매우 호의 적 입장을 갖고 있었음을 말해 준다(25:5).
=====30:22
악한 자와 비류들 - 직역하면 '악하고 무익한 남자들'이란 뜻이다. 여기의 '비류'
(* , 벧리야알)는 본서에서 엘리 제사장의 아들들(2:12), 사울의 왕권을 부정
하려 들었던 자들(10:27). 그리고 다윗의 요구를 모욕적으로 거절했던 나발(25:17,
25) 등에게 적용됐던 단어이다. 따라서 이 단어는 '마땅히 행할 바를 알지 못하는 어
리석은 자'란 의미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분명 이전에(6절) '다윗을 돌로 치자'라
고 선동했던 자들도 바로 이들이었을 것이다.
함께 가지 아니하였은즉...주지 말고 - 이같은 비류들의 제안은 (1) 전투에 참여치
아니한 사람들에게도 전리품을 나누어 주었던 이스라엘의 역사적 관례와 상충되며(민
31:27) (2) 이스라엘이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도움에 따
른 것이었으며(8, 23절) (3) 후방에서 소유물을 지키는 일도 작전상 반드시 필요한 일
이었다는 점(25:13) 등으로 볼 때, 뒤에서 소유물을 지키던 자들에게 돌려져야 할 그
들의 분깃을 돌려주지 않겠다는 것, 곧 그것을 자신들만 나누어 갖겠다는 것은 매우
잘못된 생각이었다.
=====30:23
던 자들이나 다 한 아버지로부터 나온 같은 형제들이라는 공동체(共同體) 사상을 불
러 일으켰다(F.R. Fay).
여호와께서...보호하시고...그 군대를...붙이셨은즉 - 이것은, 다윗이 비류들의 제
안(22절)을 부당하다고 판단했던 논리적 근거이다. 즉 탈취물을 얻을 수 있게 하신 분
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인간은 탈취물의 처분에 대해서 왈가 왈부(曰可曰否)할 권리
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같은 다윗의 생각과 행위는 (1) 전쟁의 승리는 오로지 하나님
께서 주신 것이며 (2) 전리품 또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고(23절) (3) 따라서 전
쟁에 불참했던 용사들도 모두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같은 형제라는 연대 의식에 근거하
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 아래 모인 공동체는 '나눔'과
'사랑'의 실천장이어야 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행 2:44-47). 한편, 여기서 '보호
하시고...붙이셨은즉'은 하나님께서 다윗의 군대에게 금번 아말렉 전투에서 허락하신
모든 은혜를 통틀어 말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30:24
이 일에...너희를 듣겠느냐 - 이것은 비류들의 제안(22절)을 받아들일 수 없음을
시사해 주는, 다윗의 거부적 반문(反問)이다.
=====30:25
다윗이...율례와 규례를 삼았더니 - 전리품 분배의 규례는 이미 광야 시절 모세 때
로부터 있었다. 즉 당시 보세는 미디안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후, 여호와의 명을 좇아
노획한 전리품 중 절반은 싸움에 참전한 '군인들'에게, 그리고 절반은 진(陳)에 머물
러 있던 '백성들'에게 분배하도록 하는 규례를 세운 바 있었다(민 31:27). 그런데 본
절에서와 같은 다윗의 규례 제정은 그러한 광야 생활의 규례에 근거하여, 그 규례의
폭을 군인들 중 전투자와 비전투자 사이의 구별을 없애는 등, 확대 제정한 것이다. 한
편 이같은 규례 제정은 앞으로도 이같은 경우가 매번 발생할 가능성이 많았기 때문에,
구속력을 지닌 구체적인 규범의 필요성을 느낀 결과였다.
율례와 규례 - 성경 다른 곳에서는 '규례와 법도'라는 말로도 번역된 단어로서, 이
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진 신적(神的) 명령이나 규범 등을 강조하여 지칭하는 중언
법적(重言法的) 표현이다. 신 4:1 주석 참조.
오늘까지 이르니라 - '오늘'(* , 하욤 하제)은 본서의 기록 시기<서
론, 3. 기록 연대>까지를 가리키는 관용어구이다. 한편 '이르니라'는 다윗의 규례가
그의 후계자들에 의하여 계속 지켜졌음을 시사해 주는 말이다.
=====30:26
탈취물을 그 친구 유다 장로들에게 보내어 - 이에 대한 해석은 다음과 같다. 즉
(1) '친구'와 '유다 장로'를 동격(同格)으로 보고, 그때 다윗은 유다의 많은 장로들
중에서 오직 친구들에게만 탈취물을 주었다고 보는 견해(Keil, Lange, Smith), (2)
'친구'와 '유다 장로' 사이에 접속사 '그리고'(* , 웨)가 생략된 것으로 보고, 그때
다윗은 모든 유다 장로들 뿐만 아니라 자신과 친분이 있는 사람들에게도 탈취물을 주
었다고 보는 견해(LXX, Klein), (3) '친구'(* , 레레에후, 문자적으로는 '친
구에게')를 '성(城)에 따라'(* , 레에레우)의 오기(誤記)로 보고, 그때 다윗
이 유다 모든 성의 장로들에게 탈취물을 주었다고 보는 견해(Hertzberg, McCarter),
(4) '유다 장로'는 모두 다윗의 '친구'였던 것으로 보고, 그때 다윗은 모든 유다 장로
들에게 탈취물을 주었다고 보는 견해(NIV)등이 있다. 그러나 26-30절을 보면 첫째, 특
별한 성읍들을 언급함으로써 그때 다윗은 모든 유다 성읍의 장로들에게 탈취물을 준
것은 아니며 둘째, 또한 다윗과 그의 일행이 자주 드나들었던 지역의 사람들을 특별히
구분하고 있다는 점(30절)에서, 위의 네 견해 중 (2)의 것이 가장 타당한 듯하다. 아
무튼 다윗이 이같이 선심(善心)을 베푼 이유는 다음과 같다. 즉 (1) 자신이 비록 블레
셋 땅에 망명하고 있지만, 이스라엘을 사랑하는 마음은 결코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리며, (2) 사울에게 쫓기는 동안 물심 양면으로 자신을 도와준 성읍의 사람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시하며(30절), (3) 장차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에 앞서 자신의 지지
기반을 닦아 놓으려는 목적 때문이었다. 이에 대하여 독일의 주석가 크룸마허(F.W.
Krummacher)는 이러한 다윗의 행위를 미구(未久)에 이루어질 '왕적 하사(下賜) 행위의
전조'로 보았다.
여호와의 원수에게서 탈취한 것 - '여호와의 원수'는 다음과 같은 의미를 담고 있
다. 즉 (1) '여호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계약의 신실한 이행을 강조하는 하나
님의 명칭이며 (2) 이스라엘은 그 하나님의 계약 백성이라는 점에서, 곧 '여호와의 원
수'는 이스라엘의 원수였다. 여기서 다윗은 자신의 선물을 바로 이같은 자들로부터
'탈취한 것'이라고 함으로써, (1) 적지(適地)에서 망명 생활을 하지만 자신은 여전히
이스라엘을 사랑하며 (2) 하나님께서는 자신과 늘 함께 하셔서 자신을 승리로 이끌고
계심을 암시하고 있다.
선사하노라(* , 베라카) - 원문대로 직역한다면, 다만 '선물이다'란 뜻이다.
그런데 여기의 이 '베라카'라는 단어는 하나님의 축복을 가리키는 명사로서, 특별히
'하나님의 축복(은총)의 선물'(a gift of blessing)이란 의미이다(F.R. Fay). 그러므
로 여기서 다윗은 바로 이같은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자신의 선물이 하나님의 축복의
결과임을 분명히 시사하려고 한것이다.
=====30:27
벧엘에 있는 자 - 여기의 '자'(者)는 복수이다. 즉 이것은 한 성읍에 여러 명의 장
로가 있었던 사실과 잘 부합된다(16:4). 한편 '벧엘'(Bethel)은 그 이름은 같으나, 오
늘날 '베이틴'(Beitin)이라 불리우는 유명한 베냐민 지파에 속한 성읍(10:3)은 아니다
(Keil). 이같이 단정할 수 있는 이유는 (1) 27-30절에 나오는 모든 성읍들이 유다 땅
남부에 위치하는 것들이며, (2) 당시 유다 지파의 선무(宣撫)가 시급한 다윗이 베냐민
지파에게까지 눈을 돌릴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벧엘'은 '호라마'와 '시
글락' 근처의 '브둘'(수 19:4, 5)일 것으로 추정된다(Smith).
남방 라못 - 브엘세바(8:2) 남동쪽 약 30km 지점에 위치한 시므온 지파의 성읍으로
추정된다(수 19:8).
얏딜 - 에스드모(28절;수 15:50)의 남서쪽 약 8km 지점으로, 유다 지파에 속한(수
15:48) 제사장의 성읍이다(수 21:14).
=====30:28
아로엘 - 브엘세바 남동쪽 약 10km, 헤브론 남쪽 약 13km 지점에 위치한(대상
11:44), 오늘날의 '와디 아라라'(Wady Arara)란 폐허지로 추정된다(Robinson).
십못 - 유다 남방(네게브)에 위치한 한 성읍 정도로만 알려질 뿐이다. 다른 사본들
에는 '시브못'으로도 표기 되었다(Keil).
에스드모아 - 오늘날 '세무아'(Semuah)라고 하는 폐허지에서 찾아볼 수 있는 유다
의 산악 성읍으로(Schubert, Robinson), 헤브론 남서쪽 약 16km 지점에 위치한다(수
15:50;21:14;대상 6:57).
=====30:29
라갈 - 이 성읍은 헤브론 남동쪽 약 11km, 에스드모아 북동쪽 약 6.5km 지점에 위
치한 '갈멜'(25:2)로 추정되기도 하나(Thenius), 확실치는 않다(Keil, Smith, Fay).
여라므엘 사람의 성읍 - '여라므엘 사람'(the Jerahmeelites)은 유다의 손자이자
베레스의 아들인 헤스론의 장자, '여라므엘'의 후손들을 가리키는 듯하다(대상 2:4,
5, 9). 이들은 브엘세바의 남쪽 지역(네게브)에서 살았다<27:10>.
겐 사람의 성읍 - '겐 사람'(the Kenites)은 모세의 장인 이드로의 후손들로서, 출
애굽 당시 이스라엘의 안내자들이 되어 함께 가나안 땅에 들어온 후 그곳에 정착하였
다(15:6;민 10:29-32;삿 1:16). 이들은 유다 남방, 아말렉 사람들의 거주지 북쪽에서
거주했었던 것 같다<15:6;27:10>.
=====30:30
홀마 - 브엘세바 동쪽 약 11km 지점이다(수 15:30). 이곳의 원래 지명은 '스밧'이
었으나, 유다 사람들이 이곳에 살던 가나안 사람들을 진멸시킨 후 '진멸을 위하여 헌
신된'이라는 의미(Davidson)의 이름인 '홀마'(Hormah)로 바꾸었다(삿 1:17). 오늘날
'라크마'(Rakhma) 고원(高原)의 서쪽 경사 지대에 위치한 '세바다'(Zepata)로 추정된
다(Robinson, Ritter).
고라 산 - 네게브 지방의 변두리에 위치한 세펠라 지역의 한 부분인 '아산'과 동일
한 곳이다(수 15:42). 처음 시므온 지파에게 소속된 성읍이었으나(수 19:7), 후일 제
사장의 성읍으로 지정된 곳이다(대상 6:59).
아닥 - 이 성읍은 헤브론 북서쪽 약 24km 지점에 위치한 시므온 지파의 '에델'(수
15:42;19:7)과 동일 성읍으로 추정되기도 한다(tHERIUS).
헤브론 - 예루살렘 남쪽 약 22km 지점에 위치한 주요 성읍으로(수 10:3), 일찍이
아브라함이 거주했던 곳이다(창 13:18;23:1). 오늘날의 지명은 '엘 칼릴'(el- Khalil)
인데, 그뜻은 '벗' 또는 '친구'이다. 다윗은 나중에 이곳을 자신의 잠정적인 왕도(王
都)로 삼았다(삼하 2:1-4;5:3). 삼하 2:1 주석 참조.
왕래하던 모든 곳 -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도피 생활을 하던 여러 지역들을 가리킨
다. 이러한 지역 주민들은 대부분 억울한 도피자 다윗에게 먹을 것과 숨을 곳을 은밀
하게 제공하여 주는 등 분명 다윗에 대하여 호의적이었을 것이다(Fay). 바로 이같은
이유 때문에 본서의 기자는 이들을 다윗의 '친구'라고 기록하였다(26절).
사무엘상 제 31장
=====31:2
블레셋 사람들이 쫓아 미쳐서 - 여기서 '쫓아 미쳐서'(* , 다바크)는
'연합하다', '붙다'란 의미로서(창 2:24;신 28:60), 곧 '바짝 달라붙다' 혹은 '바짝
추격하다'란 의미이다(삿 20:42;삼하 1:6). 따라서 이스라엘 군사들은 완전히 분산되
고, 사울과 그의 세 아들들은 그들의 아무런 경호도 받지 못했을 것이다(Klein). 또한
이때 사울과 그의 세 아들들도 각기 흩어져 있었음이 분명하다.
요나단과 아비나답과 말기수아를 죽이니라 - 길보아 전투에서 전사한 사울의 세 아
들의 이름은 역대상 10:2과도 일치한다. 따라서 여기의'아비나답'은 14:49의 '리스위'
와 동일 인물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대상 8:33;9:39에 언급된 사울의 네 아들 중 네번
째의 '에스바알'은 사울 사후(死後) 아브넬에 의해 잠정적으로 사울의 후계자로서 옹
립되었던 '이스보셋'이다<삼하 2:8>. 한편, 우리는 여기서 특별히 다윗을 생명같이 사
랑한(18:1) 요나단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을 수 없다. 실로 요나단은 (1) 사울의 아들
이었으나 질투와 시기의 화신이었던 사울과는(18:29)대조적으로 참 사랑과 우정을 나
눌 줄 아는 자였으며(18:1-4:20:17), (2) 매우 지혜롭고 용감한 군인이었고(14:6-14),
(3) 훌륭한 신앙 인격을 갖춘 의인이었으며(19:1;20:30-42), (4) 왕위에 집착하지 않
는 겸손의 인물이었다(18:4;23:17). 그러한 요나단이 길보아 전투에서 패역한 사울과
운명을 같이한 사실은 다음의교훈들을 준다. (1)부친의 사악한 죄 때문에 그 자손들이
고난을 당하게 된다(겔 18:2). (2) 의인의 소망과 생명은 이 세상에 국한되지 않고 오
는 세상의 참되고 영원한 삶에 있다(잠 14:32). (3) 사악한 부친의 곁을 떠나지 않고
끝까지 운명을 함께 한 효성이 아름답다.
=====31:3
사울이 패전하매 - 이것은 문자적으로 '그 전쟁이 사울에게 무겁게 되었다'란 뜻이
다(왕상 12:10;대하 10:14;애 3:7). 이것은 결국 (1) 전황(戰況)이 지극히 불리하게
돌아가는 것, (2) 불리한 전화으로 인하여 극도로 낙심하게 되는 것 등을 말한다
(Klein, Lange).
활쏘는 자가 따라 미치니 - 여기서 '따라 미치다'(* , 마차)는 '발견하다',
'만나다'란 의미이다(창 36:24;신 22:23). 즉 블레셋 군대의 궁수(弓手)가 이스라엘의
왕 사울을 찾아 발견하고는 맹렬히 추격했다는 뜻이다. 한편 '활쏘는 자'는 문자적으
로 '활을 가진 자'란 뜻이다.
중상한지라(* , 야헬 메오드) - 이에 대한 해석은 다음과 같다. 즉
(1) '야헬'을 '고통하다' 혹은 '근심하다'란 의미를 갖는 동사 '훌'(* )에서 온
것으로 보고, '매우 떨었다'로 해석하는 견해(Keil, Smith, Klein, Lange,Wigram),
(2) '야헬'을 '다치다'란 의미를 갖는 동사 '할랄'(* )에서 온 것으로 보고, 개
역 성경의 번역처럼 '매우 많이 다쳤다'로 해석하는 견해(Hertzberg, Davidson) 등이
다. 그런데 본 단어 '야헬'은 신명기 2:25에서는 '근심하니라'로 번역되었으며, 또 그
렇게 번역될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위의 두 견해 중 (1)의 견해가 타당하다. 그러나
위의 견해 중 (2)의 것이 맞다고 보는 학자들은, 사울의 죽음을 다윗에게 알린 아말렉
소년의 증언 때문에 그같은 판단을 하는 듯하다. 즉 그 아말렉 소년은, 사울이 '엎드
러진 후에는 살 수 없는 줄을 알고' 사울을 죽였다고 말했던 것이다(삼하 1:10). 그러
나 그 아말렉 소년의 증언은 본장의 언급 및 대상10:1-6의 언급과는 전반적으로 상층
되는 위증(僞證)임이 분명하다(삼하 1:1-10). 한편 여기와 병행 구절인 대상 10:3에서
는 그 단어가 위의 (1)의 견해와 유사하게 '군급하여'로 번역되어 있다.
=====31:4
31:4 할례 없는 자들 - 이 말은 할례의 징표를 받은 아브라함의 후손(창 17:9-14)
이라는 선민(選民) 사상에 근거한 말로, 곧 이방인들은 이스라엘 사람들과는 달리 여
호와 하나님과 계약 관계하에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조롱하는 말이다(14:6;17:26,
36).
찌르고 모욕할까 두려워하노라 - 여기서 '모욕할까'(* ,히트알렐루)는
'더럽게 하다'란 의미를 갖는 동사 '알랄'(* )의 재귀적 사역형이다. 따라서 이
것은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더럽게 할까'란 의미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말은
사울을 죽인 후에 그 시체를 욕되게 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은 아니다. 이 말은 남에게
가혹한 잔악 행위를 가하는 것을 뜻하는 말로, 곧 블레셋이 이전에 삼손을 사로잡아
그를 욕보였던것처럼(삿 16:21-27), 블레셋 군대가 사울을 사로잡아 학대하고 욕보이
는 행위를 가리킨다(삿 19:25). 그러므로 사울은 그들이 자신에 대하여 이렇게 하는
것을 기피하여 스스로 죽음을 택한 것이다
병기 든 자가 두려워하여 행치 아니하는지라 - 병기 든 자의 이같은 처
신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일 것이다. 즉 (1) 자신은 왕의 생명을 끝까지 보호하는
책임을 맡은 자로서, 기호를 봐서 어떻게 해서는지 그긴박한 상황(3절)에서 벗어나야
만 한다고 생각했으며, (2)사울에 대하여 다윗이 가졌던 생각처럼(24:6) 기름 부은 바
된 왕에게 감히 칼을 댈 수 없다고 판단한 결과였을 것이다
이에 사울이 자기 칼을 취하고 그 위에 엎드러지매 - 칼 끝을 위로 하여 칼을 세운
후 그 위에 자신의 몸을 덮친 행위를 말한다. 한편 생명에 대한 주권이 오직 하나님께
만 있다고 믿는 히브리인들에게 있어 자살은 결코 흔치 않았으나, 여기 사울의 자살
행위는 그의 비극적인 종말을 더욱 생생히 전해주고 있다
=====31:5
31:5 병기 든 자 자기도 자기 칼 위에 엎드러져 함께 죽으니라 - 병기
든 자의 이같은 행동은 (1) 자신이 모시던 상전의 뒤를 라다라야 한다는 소박한 충성
심, (2) 자신의 주인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고 자살토록 방치한 혐의로 인하여 비록
자신이 살아난다고 하더라도 처형을 변치 못할 것이라는 염려(삼하 1:14, 15), (3) 사
울의 생각처럼 '할례 없는 자'에 의해서는 죽음을 당하지 않겠다는 히브리적 종교심
등의 이유로 이뤄졌을 것이다. 후일 유대 전승은, 여기서 사울의 병기 든 자는 에돔
사람 도엑이며, 그가 자살한 칼은 놉 제사장들은 쳐죽인 바로 그 칼이라고 하나
(22:18), 그러한 전승의 신빙성은 없다(Smith)
====31:6
그의 모든 사람 - 역대상 10:6에서는 '그 온 집'으로 말한다. 그러나 여기의 '그의
모든 사람'은 이 어구 앞에 '역시' 혹은 '또한'이란 의미를 갖는 '감'(* )이라는
접속사가 있다는 점에서, 본 어구 앞에 언급된 사울의 병기 든 자와는 다른 무리들 즉
사울의 모든 근위(近衛) 병사들을 가리킴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여기의 '모든'을 문자
적으로 받아들여서, 그 전투에서 사울의 군대가 완전 섬멸됐다고 볼 수는 없다. 아울
러 길보아 전투에서 사울의 가문이 완전 멸절된 것 또한 아니다. 사울의 사촌이다 군
대 장관인 '아브넬'(14:50)이 살아 남았고, 아마도 전투에 참여치 않았을 사울의 넷째
아들 '이스보셋'(에스바알, 삼하 2:8;대상 8:33;9:39)도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에,사울
사후에도 왕가(王家)의 명맥을 잠시 유지해 갔다.
=====31:7
골짜기 저편에 있는 아스라엘 사람 - 여기서 '골짜기'는 사울이 전사한 길보아 산
의 북동쪽 기슭으로 내려가면 만나게 되는 '이스르엘(Jezreel) 골짜기'(29:1)를 가리
킨다. 그리고 '저편'(* ,에베르)은 잇사갈, 스불론, 납달리 지파 등의 주민들이
사는 갈릴리 지역을 가리킨다. 당시 여기에 살던 사람들은 분명히 비전투 요원들이었
다. 그런데 이들이 사울의 군대와 합류치 못한 까닭은, 바로 이같은 연합을 방지하기
위하여 블레셋의 군대가 이곳 사람들과 사울의 군대 사이인 '수넴'(28:4)에 진을 쳤기
때문이었다(Aharoni).
요단 건너편에 있는 자들 - 요단 서편에서 볼 때 '요단 건너편'은 '요단 동부 지
역'(Transjordan) 전체를 가리킨다(Smith). 그러나 여기서는 전투 장소인 길보아 산의
맞은편 지역인 므낫세 반 지파의 거주 지역만을 가리킨다. 한편 길보아 산의 패배 소
식은 이곳까지 급속히 퍼져나간 것 같고, 따라서 이들은 보다 안전한 지역으로 남하
(南下)했던 것 같다.
이스라엘 사람들 - 길보아 전투에 참여했던 사울의 군사들로서, 이들은 주로 유다
지파, 베냐민 지파, 에브라임 지파 등에 속한 백성들일 것이다.
성읍들을 버리고 도망하매 - 이는 길보아 전투의 패배와 사울의 죽음이 이스라엘
온 땅에 큰 공포의 분위기를 몰고왔음을 말해 준다.
블레셋 사람들이 거기 거하니라 - 여기서 '거기'는 갈릴리 주변 지역을 가리킨
다. 이는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이 요단 강 동쪽 길르앗 땅에 있는 '마하나임'
(Mahanaim)에서 왕위에 올랐던 사실을 통해 알 수 있다(삼하 2:8,9). 또한 다윗이 사
울의 사망 직후 유다 지역에서 왕위에 오른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유다 지역도 당시
블레셋의 공략으로부터 점령되지 않았음이 분명하다(삼하 2:1-4).
=====31:8
그 이튿날 - 사울이 길보아 산에서 죽임을 당한 그 다음날을 말한다.
블레셋 사람들이 죽은 자를 벗기러 - 여기서 '벗기러'(* ,파솨트)는 일반적 의미의 약탈 행위를 가리킨다(27:10;30:1;삿 9:33;대하 28:18). 그런데 이 단어는 주로 의복을 벗기는 행위를 가리킬 때 많이 사용된다(욥 22:6;미 2:8). 아마도 이것은 그 당시 옷이 모든 약탈물 중 가장 귀한 것이었다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수 7:24).
사울과 그 세 아들이 죽은 것을 보고 - 의복, 무기, 식량 등 전리품을 획득하러 왔다가, 시체들 중에서 발견된 이스라엘 왕 사울과 그의 세 아들의 주검은 블레셋에게 있어 가장 가치있는 노획물이었을 것이다.
=====31:9
사울의 머리를 베고 - 이는 이스라엘에 대한 블레셋의 큰 승리를 증명키 위한 증거물로 삼기 위한 행동이었다(17:57). 이같은 행위는 고대의 전쟁에서는 일종의 관습이었다(Smith).
신당과 백성에게 전파하기 위하여 - 이는 사울의 머리를 벤 중요한 목적이었다. 블레셋 사람들에게 있어서 사울이라는 인물은 자신들에게 너무도 뼈아픈 패배를 안겨준 장본인이라는 점에서(14:47;17:52;18:6), 엄청난 공포와 증오의 대상이었다. 따라서 사울의 죽음은 그들에게 대단한 기쁨을 안겨줄만한 큰소식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신당 에게 전파한다'는 것은, 사울의 '머리'와 '갑옷'을 자신들의 신에게 봉헌한다는 의미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10절;대상 10:10). 이같이 적으로부터 빼앗은 대단히 중요한 전리품을 자신의 신에게 봉헌하는 행위는 (1)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에게서 빼앗은 언약궤를 다곤(Dagon)신당에 바친 경우<5:2>, (2) 다윗이 골리앗의 칼을 여호와의 성소에 보관한 경우(17:54;21:8,9)등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한편, 여기서 '신당'(* , 베트 아차베헴)은 문자적으로 '우상들의 집'이란 뜻이다. 그리고 '아차베헴'은 '새기다', '조각하다'란 의미를 갖는 동사 '아차브'(* )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그리고 특별히 여기서 '베트'(* )는 형태는 단수이지만, 복수(複數)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Lange, 출 6:14). 결국 이것은, 블레셋 땅에는 많은 신당(神堂)들이 있었음을 암시한다.
=====31:10
그 갑옷은 아스다롯의 집에 두고 - 이같은 블레셋 사람들의 행위는, 자신들의 신(神)에 대한 숭배와 봉헌의 성격을 띤다(9절;5:2). 즉 블레셋 족속은 자신의 신들이 자신들에게 금번 길보아 전투에서 승리를 가져다 주었다고 생각함으로써, 바로 이같은 봉헌 행위를 한 것이다. 한편 '아스다롯'(Ashtaroth)은 '아세라'(Asherah, 신 7:5), '아낫'(Anath) 등과 더불어 가나안 3개 여신 중 하나로서, 전쟁과 풍요의 여신(女神)이다(삿 2:13주석 참조). 그리고 '아스다롯'이란 복수(plural)형태인데, 성경 용례상 이 '아스다롯'이 복수로 사용되는 것은 이것이 항상 '바알'과 함께
여호와의 신적 저주의 대상으로 선포되어지는 문맥에서이다(7:3, 4;12:10;삿 2:13;10:6). 반면에 '아스다롯'의 단수형은 '아스타르테'(Ashtarte)로서, 시돈의 여신인 '아스토레트'(개역 성경에는 '아스다롯'으로 표기되어 있다)와 동일시된다(Klein, 왕상 11:5,33;왕하 23:13). 이 사실은 곧 블레셋 족속들이 가나안의 종교와 문화에 깊이 동화되었음을 강력히 시사해 준다. 그리고 여기 '아스다롯의 집'은 '아스글론'에 있었던 고대의 유명한 신전(神殿)으로 추정된다(Herodotus).
그 시체는 벧산 성벽에 못 박으매 - 여기서 사울의 '시체'는 '그 머리를 다곤의 묘(廟)에 단지라'라는 역대상 10:10의 언급을 통해서 볼 때, 머리가 없는 몸뚱이 뿐의 시체였던 것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12절의 언급을 통해서 볼 때, 이때 사울의 세 아들들의 시체들도 함께 성벽에 못박혔음도 분명하다. 그럼에고 불구하고 여기서 본 저자가 오직 사울의 시체에 대해서만 언급한 것은, 오직 사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치 않음으로 인해 죽어서까지 수치를 당하는 처참한 자리에 떨어지게 되었다는 사실을 중점적으로 보여주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Hertzberg, Keil). 한편 '벧산'은 요단 골짜기 근처 즉 이스르엘 골짜기의 동쪽 끝부분으로, 요단 강으로부터 서쪽으로 약 6.5km 지점, 그리고 갈릴리(긴네렛, 디베랴) 바다로부터 남쪽으로 약 19km 지점에
위치한 성읍으로, 당시 블레셋에 의해 점령된 성읍이다. 한편, 그런데 여기서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의 시체를 성벽에 못박은 행위와, 이전에 골리앗이 다윗의 시체를 공중의 새들과 들짐승들에게 줄 것이라고 그를 위엽했던 일(17:44)과는 어떤 상통점이 있음을 발견한다. 또한 고대 문헌에 따르면, 앗수르 왕 산헤립은 블레셋 정복 후 블레셋의 에그론 관리들의 시체를 그 성읍 주위의 기둥 위에 매달아 놓기도 했었다고 한다(Pritchard). 바로 이같은 사실들로 미루어 볼 때, 자신들에 의하여 패배된 적장(敵將)의 시체를 성벽에 못박는 등 모욕하고 또한 공개적으로 노출시키는 행위는 (1) 상대국 백성들에게 엄청난 수치심을 안겨주며 (2) 자신들의 승리를 공개적으로 확증하려는 당시의 전쟁 관습이었음이 분명하다. 아무튼 이러한 비참한 사건은 개인 사울에게 있어서는 하나님께 행한 그의 끈질긴 반역 행위에 대한 심판이었다고 할 수 있으며, 또한 선민 이스라엘에게 있어서는 하나님을 자신들의 왕으로 모시기를 거부하고 세속적인 왕을 원했던 그 반역 행위에 대한 돌이킬 수 없는 수모요 치욕이라 할 수 있다(8:4-8,19,20).
=====31:11
길르앗 야베스 거민 - '길르앗 야베스'(Gilead-Jabesh)는 갈릴리 바다 남쪽 약
30km 지점에 위치한 요단 동편의 므낫세 반 지파의 성읍이다(수 17:5,6). 이곳은 사울
의 즉위 초기에 '암몬 사람'들로부터 침공을 받았었다(11:1). 그때 사울이 '베섹'에서
군사를 모집하여 암몬 사람을 공격함으로써, 길르앗 야베스 거민을 구원했었다
(11:8-11). 그러므로 길르앗 야베스 거민들은 과거 사울이 자신들에게 베풀어준 이 은
혜를 기억한 것이다.
블레셋 사람들의 사울에게 행한 일 -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의 시체에서 목을 벤
후, 목은 다곤의 신당에 매달고(대상 10:10), 나머지 시체는 벧산 성벽에 못박아 사울
의 시체를 심히 욕되게 한 일을 말한다.
=====31:12
모든 장사 - 여기서 '장사'(* , 이쉬 하일)는 '남자'와 '유력'(有力)이
합성된 말로서, '기드온'(삿 6:12)과 '입다'(삿 11:1)등에게 적용되었다.
일어나(* , 쿰) - 이는 문자적 의미의 일어남을 의미치 않는다. 보다 함축적
인 의미로서, 특별한 행위를 실천하기에 앞서 거기에 대한 강한 결단의 태도를 보여
주는 관용적인 단어이다. 한편 '길르앗 야베스' 거민들의 이같은 결단은, 과거에 자신
들이 암몬 족속들로부터 침공당하여 극히 어려운 상황에 있을 때(11:1-3), 사울의 군
사적 행동으로 말미암아 자신들이 암몬 족속의 위협으로부터 구원받았던 사실을 기억
한 연고이다(11:11). 즉 길르앗 야베스 거민들은 사울에게 신의(信義)를 지키고 보은
(報恩)하기 위하여 블레셋 족속들에게 능욕당하고 있는 사울의 시체를 취하여 오기로
결단을 한 것이었다.
밤새도록 가서 - '길르앗 야베스'에서 사울의 시체가 못박혀있던 '벧산'까지는 약
21km 정도의 거리이다. 그러나 요단 강 계곡 등 길르앗 야베스로부터 벧산까지의 험한
지형적 요인을 감안한다면, 그때 그 거리를 최소한 약 5시간 정도 이상 행군했을 것이
다. 특별히 길르앗 야베스 거민들이 밤을 택하여 그같은 일을 결행한 까닭은, 말할 나
위없이 블레셋 사람들의 수비망을 뚫기 위함이었다(28:8).
블사르고(* , 사라프) - 왜 길르앗 야베스 거민들이 사울과 그의 세 아들들의
시체를 화장(火葬)하는 장사 방식을 택하였는지에 대하여 다양한 의견들이 제시되었
다. 즉 (1) 목이 자리는 등 매우 손상된 시체였기 때문에, 매장(埋葬)과 같은 일반 장
사법을 사용할 수 없어서 이같이 화장했다느 견해(Lange, Keil), (2) 매장과 같은 일
반적인 장사법을 사용할 경우, 블레셋 사람들이 재침공하여 그 시체를 파내고 다시 모
욕할까 염려하여 이같이 했다는 견해(Thenius, Smith, Philippson), (3) 죽은 지가 오
래되어 시체가 심하게 부패되어서 이같이 했다는 견해(Hertzberg), (4) 모압 암몬 등
의 이방 국가와 인접하여 살던 까닭에, 그들의 영향을 받은 길르앗 야베스 거민들이
훌륭한 용사들을 화장하는 이교적 장사법에 따라 이같이 했다는 견해(Rainey), (5)
'불사르고'(사라프)라는 단어를 '송진을 바르다'라는 의미로 이해하여, 길르앗 야베스
거민들이 여부스 사람들의 장사 방식에 따라 사울의 시체를 방부 처리했다고 보는 견
해(Driver) 등이 있다.그런데 이러한 견해들 중 (2)의 견해는, 사울의 매장지가 블레
셋 사람들의 영향권 밖인 요단 동쪽이라는 점에서 적절치 못하다. 그리고 (4)의 견해
는, 모압 암몬 등의 민족들은 화장(火葬)하는 방식의 장례에 별로 익숙치 않다는 점에
서 또한 타당치 않다(Klein). 오히려 그 민족들은 적의 시체를 불살라서 뼈를 가루로
만드는 등의 형벌적 성격으로 시체를 불살랐다(암 2:1). 따라서 존경심의 발로로 화장
(火葬)을 했던 길르앗 야베스 거민들의 생각과는 거리가 멀다. 또한 (5)의 견해는 시
체를 불사름으로써 뼈가 남았다는 명백한 언급이 있다는 점에서 그 타당성이 적다. 그
렇다면 (1)이나 (3)의견해를 적절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의
사건을 병행적(竝行的)으로 다루고 있는 역대상 10장은 사울의 시체를 불사르는 내용
은 언급치 않는다. 다만 뼈를 묻은 일에 대해서만 언급하고 있다(대상 10:12). 이는
산 사람 혹은 시체를 불사르는 행위를 악행에 대한 형벌의 관점에서 보는 모세 오경의
가르침에 따라서(레 20:14;21:9), 길르앗 야베스 거민들의 행위를 바르지 못한 것으로
이해하여 화장(火葬)은 생략하였기 때문인 듯하다(Klein). 혹은 화장(火葬)과 매장(埋
葬) 사이의 조화에 어려움을 느껴 시체 처리에 대한 결과만을 언급했기 때문일 것이다
(Keil).
=====31:13
에셀 나무 아래 장사하고 - 여기서 '에셀 나무'(the tamarisk tree, NIV)-대상
10:12에는 '상수리 나무'(the oak tree, Living Bible)로 표기되어 있다. 히브리 원문
은 위성류(渭城柳) 나무를 가리킨다-는 길르앗 야베스에 많았던 유명한 나무였다
(Smith). 그런데 길르앗 야베스 거민들이 사울의 뼈를 그 나무 아래 장사한 까닭은,
그들은 사울이 그 나무 아래 앉기를 즐기는 등 생전에 그 나무를 특별히 좋아했었던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22:6). 한편 그곳에 묻혔던 사울의 유골은 후에 다윗에
의하여 발굴되어 그의 아들 요나단의 뼈와 함께 베냐민 땅 셀라에 있는 자신의 아비기
스의 묘에 안장되었다(삼하 21:11-14).
칠일을 금식하였더라 - 아론이나 모세가 죽었을 때,이스라엘 백성들은 30일씩 애곡
을 했었다(민 20:29;신 34:8). 이같은 애곡은 고인(故人)의 죽음을 아쉬워하며, 그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키 위함이었다.여기의 '금식'도 애곡의 일종으로서 같은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다(삼하 1:12). 이처럼 길르앗 야베스 거민들은 사울의 시체를 벧산 성벽
으로부터 걷어다가 장사를 지내고 7일을 금식하였다. 즉 이들은 과거에 사울이 베풀어
준 은혜를 기억하고(11:1-11) 그 보답으로 이러한 선행을 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은
혜를 받는 일도 필요하지만 은혜를 기억하고 보답하는 일은 더 중요하다. 왜냐하면 은
혜레 대한 감사 행위는 더욱 큰 은혜를 가져오는 통로가 되기 때문이다. 성도들도 하
나님께 은혜와 축복만을 맹목적으로 간구하지 말고, 이미 받은 은혜를 잘 간직하고 감
사하는 생활을 해야 할 것이다. 아무튼 본서를 마무리짓는 사울의 비극적 죽음은 하나
님을 거부하고 열방과 같은 왕을 요구한(8:5,20) 이스라엘 백성들의 실패에 다름 아니
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실패를 구속 역사의 섭리 속에 승화시키사, 당신의
뜻에 합당한 한 인물을 이스라엘의 차기 왕으로 삼으셨으니(13:14;15:28;16:13), 그가
곧 다윗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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