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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묵상(연중)

(마태 6,4)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작성자나는 별 아저씨|작성시간26.06.17|조회수24 목록 댓글 0

오늘 복음 중 예수님의 말씀 가운데 반복되는 대구가 3번 나오는데,

예수님은 마태오 복음 6장 4절, 6절, 17절의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를

1절, 5절 16절에 나오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라는 말의 대구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서로 반대되는 구절이 3번씩 반복되어 대구를 이루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3번의 대구는 각각 선행과 기도 그리고 단식이라는 세 가지의 예로 제시합니다.

이런 선행과 기도와 단식으로 대표되는 봉헌 행위는

하느님께 마음을 온전히 여는 최선의 신앙 행위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믿음 안에서 최선을 다 하는 신앙의 실천을 "숨어서"하라고 하십니다.

여기에서 "드러나지 않게"하라는 것은 먼저 그 의미를 되새기라는 것인데,

이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신앙의 실천과 지속적인 기도 생활뿐만 아니라

단식으로 대변되는 철저한 자기 내적 투신을 살아야함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신앙은 믿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신앙이 더 깊어지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믿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신앙은 살아있는 체험이 되어야 합니다.

 

도시에서 자라난 아이들은 하늘에 별이 있다는 이야기를 책으로 배웁니다.

분명히 하늘에 별이 있기에 도시의 밤하늘에 별이 보이지 않아도 믿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들이 시골에 가서, 혹은 아주 외진 곳에 놀러갔다가

밤하늘에 펼쳐진 수많은 별의 모습을 보게 되면 어떨까요?

하늘에 별이 있다는 믿음이 책에서 보던 사실이 아니라

자신의 눈 앞에 펼쳐지는 거대한 아름다움이 될 때 아이들은 꿈을 꾸기 시작합니다.

보이지 않는 더 먼 곳을 볼 수 있는 꿈을 꾸고, 상상을 하고, 새로운 이야기

즉 신비를 체험하게 됩니다.

 

우리는 자주 기도하고, 자주 성당에 나와 미사를 봉헌하고, 성체를 받아모십니다.

그렇게 하느님께 우리의 신앙을 “믿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자주 또는 가끔은 선행도 하고, 자기 욕심을 참아가며 금욕적인 신자 생활도 합니다.

선행과 기도와 단식이라는 이 신앙의 중요한 봉헌을 다 하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주 “지금 나의 신앙은 하느님 앞에서 어떤가?”라고 물으면,

자신있게 하느님을 온전히 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신앙은 믿음뿐만 아니라 체험되는 과정이 필요한데,

우리에게는 신앙체험의 심오한 기억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체험을 필요로 합니다.

하느님 사랑에 대한 우리 마음(영혼) 깊숙한 곳에 새겨진 아름다운 기억이 있을 때,

우리의 신앙고백은 단순히 “믿습니다.”라고 입으로 내는 소리가 아니라,

마음에서 울리는 절절한 고백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신앙의 기억이 필요합니다.

하느님 사랑에 대한 기쁨을 느끼며 행한 선행, 봉사, 착한 일들,

하느님이 자기 삶에 절절히 필요하고 그분이 좋아서 드린 기도의 시간들,

그리고 가끔은 자기 욕심대로가 아닌 신자가 되고 싶어 참고 희생했던 순간들의 기억들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그 기억들은 조용히 숨어서, 드러나지 않게 하라고 하십니다.

그것은 자기 자랑으로 교만하지 말라는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사실 그 조용히, 숨어서, 드러나지 않게 한다는 것은 그런 믿음의 행위들이

마음 깊은 곳에 새겨지는 “기억”으로 만들어 간직하라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늘 가득한 별의 기억을 가진 사람은 새로운 신비를 꿈꿀 수 있습니다.

깊은 사랑의 기억을 가진 사람은 그 사랑을 그리워하고 그 사랑을 다시 꿈꾸며 삽니다.

하느님을 체험한 사람은 어떨까요?

AI 시대, 논리와 과학의 시대, 유투브와 틱톡과 같은 순간적이고 피상적인 것이 지배하는 시대에도

신비에 대해 생각하고, 새로운 세상에 대해 꿈을 꾸는 사람이 됩니다.

 

우리는 그것은 신앙의 창조성이라고 부릅니다.

하느님 안에서, 하느님 때문에 무엇이든 가능하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죠.

하느님 체험은 결코 갑자기 눈 앞에서 기적을 찾는 감각적인 자극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우리가 다다르기를 바라는 하느님 체험은

우리의 선행과 기도와 단식과 같은 희생이 우리의 깊은 내면 안에서 만나는 신비입니다.

숨어서, 드러나지 않게 하느님과 함께하는 기쁨들이 체험될 때

우리는 하느님의 신비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안에 하느님이 깊이 머물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눈을 감으면 하늘에 수많은 별이 빛나는 것처럼

여러분의 마음 안에 하느님 사랑의 기억이 가득하길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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