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소화데레사는 “기도는 하느님 자녀에게 호흡과 같은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일상생활 가운데 숨쉬듯이 하느님의 생명을 가까이 하며 사랑하는 것이고,
그분의 사랑이 담긴 말씀을 침묵 속에서 묵상하고 음미함으로써 참 생명과 기쁨을 얻어
이 세상에서 하느님 나라를 실제로 살아가는 것이 바로 기도하는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이렇게 매 순간 하느님을 숨쉬고자 했던 소화데레사에게
하느님은 정겹고 가까운 분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녀 소화데레사의 예수님에 대한 사랑을 “단순한 사랑”이라고 부릅니다.
소화 데레사의 이러한 단순한 사랑은 물론 예수님에게서 배웠습니다.
오늘 예수님은 기도에 대해 가르쳐달라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다른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 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며,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며 시작하는 단 하나의 기도를 가르쳐주십니다.
예수님은 하느님께 기도하는 것에 대해서 복잡하게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이른 새벽에 일어나 고요한 시간에 머물며 하느님 아버지와 함께 있고자 했고,
하느님께 청해야할 것이 있다면 들어주실 것이란 믿음으로 끝까지 기도하셨습니다.
아픔과 고통이 다가와도 아버지 곁에 머물며 그분의 뜻을 청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께 기도하는 것에 대해서 무엇보다 먼저
몸과 마음을 다해 하느님 아버지를 가까이 하는 것에 대해 보여주셨던 것이죠.
제자들은 여전히 예수님께 저희에게 어떻게 기도해야 좋을 지 알려달라 예수님께 보챕니다.
어쩌면 이는 어떻게 기도해야 하느님 마음에
우리의 기도가 가 닿을 수 있을지 알려달라는 요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수님 곁에 있었던 제자들처럼 오늘을 사는 우리들 역시 어떻게 기도해야할지 고민합니다.
내가 왜 기도를 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기보다 “어떻게”에 더 많이 집중하고 있습니다.
마음을 다해, 힘을 다해, 정신을 다해 하느님을 사랑하듯 기도하는 것이
우리와 제자들이 예수님께 묻는 “어떻게 기도해야 합니까?”에 대한 답이 되면 좋겠는데,
여전히 우리는 어떻게 기도를 해야 저의 기도가 이루어질 것인지 묻습니다.
그리고 어떤 기도를 얼마만큼 바쳐야 이루질지 알고 싶어합니다.
그런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단 하나의 기도를,
그것도 하느님을 “압바, 아버지”라 부르며 그분 곁에 가까이 다가가
아버지의 포근한 사랑 안에 지금, 함께 하는 것이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 아버지께
빈말로 기도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남기신 이 기도는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 또는 어떤 기도를 얼마나 해야 좋은가?에 대한 답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왜 기도해야 하는가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사랑하는 제자들과 우리들에게 단 하나의 기도를 가르쳐주시면서
그분을 “아버지”라 부르며 가까이 머물기를 원하셨습니다.
다른 어떤 말이 아니라 당신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아버지의 이름과 공간과 시간 안에서 우리 마음을 내려 놓고 함께 하길 바라셨습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아버지의 품에 기댈 때,
우리에 대한 사랑 때문에 뛰는 그분의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고,
우리와 함께 하며 기뻐 행복한 그분의 마음을 비로소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 삶의 모든 순간에 절절히 체험하게 된 아버지 하느님의 사랑이
오늘 우리가 다시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이유가 되었으면 합니다.
예수님이 아버지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는 이유는 어떻게 혹은 어떤 기도를 바쳐야
그분 마음에 흡족해지기 때문이 아니라, 그분께서 나를 사랑한 아버지이셨기 때문이니까요.
오늘 우리도 예수님처럼 하느님 아버지에 대한 깊은 애정으로
“아빠, 아버지”를 부르며 주님의 기도를 한 번 정성껏 바칩시다.
“주님, 사랑합니다. 하느님, 사랑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