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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한잔 좋은글

최후의 포장마차

작성자김종우|작성시간21.06.19|조회수29 목록 댓글 0

법이 앞서는가, 정의가 앞서는가? 사실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법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까? 이론은 그런데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한 경우를 많이 경험합니다. 흔히 독재정치를 해도 법을 이용해서 하니까 말입니다. 준법이라는 허울 아래 백성을 휘어잡는 것입니다. 하기야 악법도 법이라 했으니 어쩌겠습니까? 만든 자체가 잘못이지요. 그런 환경을 만든 우리 자신을 탓해야 하나요? 아무튼 우리는 법 없이도 정의가 실현되는 사회 속에서 살고자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거의 불가능하기에 법이라는 제도를 만듭니다. 자기가 만들어놓고 자신이 옭아드는 것이지요. 인생이 똑똑하면서도 어리석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목적지 선을 향해 가더라도 얼마나 헤매는지 모릅니다.

 

살인은 죄, 그 형벌은 사형. 그런데 인디언이 백인을 살해하면 죄가 되고 백인이 인디언을 살해하면 정당합니까? 이쪽에서는 준법이고 저쪽에서는 불법입니까? 법이란 것이 시간적 공간적 제약을 받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자주 개정되고 파기되고 새로 제정됩니다. 온전치 못하기에 수시로 바뀌는 것이지요. 정의란 사람이 언제 어디서든 공통으로 추구하는 공동선입니다. 이렇게 질문할 수 있습니다. 법을 지키기를 바랍니까, 정의를 실현하기를 원합니까? 재판석에 앉아서 판결을 해야 한다면 어느 쪽을 실현해야 하겠습니까? 잘 아는 대로 법도 운용하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적용됩니다.

 

왜 죽인 이야기만 합니까? 살린 이야기는 왜 하지 않지요? 죽인 사실은 죄가 되는데 살린 사실은 뭐가 되는 겁니까? 쓸모없는 짓입니까? ‘토드’는 가족이 살해된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살인자들이 일을 저지르고 도망하는 것을 똑똑히 보았습니다. 그들을 눈에 심었고 찾아서 하나하나 복수를 했습니다. 보안관이 범인으로 지목하여 토드를 쫓아다녔습니다. 드디어 붙잡아 모질게 끌고 이송합니다. 본래 백인이었지만 인디언 지역에서 인디언 여자와 결혼하여 살았습니다. 겉모습은 백인이지만 인디언처럼 살았습니다. 그러다 가족이 백인들에게 무참히 성폭력을 당하고 살해되는 비극을 당합니다. 분노로 가득 차 복수를 감행합니다. 살인범으로 쫓기다 결국 붙잡혀 끌려갑니다. 그것도 개 취급당하면서 끌려갑니다.

 

가는 길에 포장마차 일행을 만납니다. 신앙 좋은 몇 가족이 삶의 터를 찾아 이동하고 있는 중입니다. 어른들과 십대 청소년들로 보이는 아이들입니다. 무리 가운데 어울려 잠시 머무는데 아이들은 보안관과 죄수에게 흥미를 가지지요. 그런데 그 행동거지를 보면 죄수보다 보안관이 더 비인간적입니다. 쇠사슬로 한 손이 마차 바퀴에 묶여 지쳐있는 죄수가 안쓰럽게 보이지요. 음식은 고사하고 물조차 주지 않습니다. 보다 못해 한 아이가 죄수에게 동정을 보이자 보안관이 죽이려까지 합니다. 그 순간 토드가 떨어진 도끼를 들어 솜씨 좋게 던져서 보안관을 살해합니다. 모두가 놀랐지만 덕에 아이는 위기를 벗어납니다. 그러니 경계는 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습니다.

 

한밤중 아이들은 어른들 잠든 틈을 타서 근처 계곡으로 물놀이를 갑니다. 한참 후 돌아온 그들은 놀라운 사태를 직면합니다. 인디언 습격으로 모두 희생당했습니다. 물놀이 덕에 자기네만 살아남은 것입니다. 마차를 찾으니 토드를 매달고 계곡 밑으로 떨어졌습니다. 아이들 가운데 둘로 나뉩니다. 죄수를 왜 살려주느냐, 그래도 재판을 받아야 알지 않느냐? 아무튼 마차도 건질 겸 건져 올립니다. 의심과 동정이 엇갈립니다. 그러나 사태를 이겨나가려면 경험 있는 어른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토드는 길과 인디언 사정까지 잘 아는 사람이지요. 더구나 그 태도나 행동은 전혀 해롭게 할 사람이 아닙니다. 의심하는 아이들도 일단은 따라가야 합니다.

 

도중에 기병대를 만나지만 인디언의 수에 비하면 대적이 되지 않습니다. 역시 토드의 역할이 매우 유용합니다. 크게 희생을 치르지 않고도 적을 물리치고 무사히 요새까지 도착합니다. 함께 인디언을 물리치며 기병대 선임병은 토드의 정체를 감지합니다. 그러나 역시 악한 사람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요새로 들어온 토드는 그곳 사령관에게 넘겨집니다. 그리고 정식 재판을 엽니다. 아이들도 모두 참관합니다. 아이들은 이미 토드에게 어떻게 신세를 졌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의심도 다 사라졌습니다. 거기까지 살아서 온 것은 전적으로 토드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재판정에서는 피고이며 살인범입니다. 교수형으로 막이 내릴 판입니다.

 

사실 전체 이야기보다 바로 이 마지막 부분, 길지 않은 재판 과정이 이 이야기의 꽃입니다. 그 주고받은 말들을 다 기억할 수 없어서 안타깝습니다. 앞에서 말했지만 그런 이야기입니다. 토드를 좋아하게 된 젊은 여인 ‘제니’와 함께 하였던 아이들의 말과 행동도 감동이지요. 토드는 죄의 굴레를 벗고 새로운 삶의 터전을 향해 떠납니다. 좋아하는 사람과 행복한 여행을 그리며 마무리됩니다. 영화 ‘최후의 포장마차’(The Last Wagon)를 보았습니다. 1956년 작품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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