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과 배신
본문: 사무엘하 4:1~ 12 • 찬송 290장 (통 412장)
‘다윗이 브에롯 사람 림몬의 아들 레갑과 그의 형제 바아나에게 대답하여 그들에게 이르되 내 생명을 여러 환난 가운데서 건지신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삼하 4:9)
이솝우화에 나온 얘기입니다. 아기 사슴이 사냥군에게 쫓기게 되었습니다. 힘을 다해 도망쳤지만 아직 너무 어린 아기 사슴은 더 이상 사냥꾼을 피할 힘이 없었습니다. "어떻게 하지? 혼자 멀리 가지 말라는 엄마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사슴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습니다. 마침 그곳에 무성하게 우거진 포도덩굴이 있었습니다. 제법 가지도 넓고, 잎이 무성하게 우거진 포도덩굴이었으므로 그 속에 숨으면 사냥꾼의 눈에 띄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사슴이 그 포도덩굴에 몸을 숨기자 잠시 후 사냥꾼이 숨을 헐떡이며 달려왔습니다. 사냥꾼이 지나가자 숨어 있던 사슴은 "휴우, 살았다"하며 크게 한숨을 쉬었습니다.
사슴은 이제 안심해도 좋다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배가 고파졌습니다. "포도덩굴이 참 무성하구나!" 사슴은 씩 웃더니 자기를 숨겨 주었던 포도덩굴의 잎사귀를 마구 따먹기 시작했습니다. 포도나무 잎사귀들은 아파서 괴로워했지만 사슴은 아랑곳하지 않고 잎사귀들을 배불리 따먹었습니다. 그때 방금 지나갔던 사냥꾼이 되돌아오고 있었습니다.
"참 이상하군 분명히 이쪽으로 갔는데..." 주위를 살피던 사냥꾼은 바람도 불지 않는데 포도덩굴이 흔들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각사각'하고 잎사귀 먹는 소리까지 들렸습니다. "옳지, 그 사슴이 저기에 숨어 있구나." 사냥꾼은 살그머니 다가와 사슴을 잡았습니다. 그때서야 사슴은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내가 생명의 은인을 저버려서 신이 나를 벌 주시는구나!" 화장실 갈 적 마음과 나온 뒤의 마음이 다르듯이 자신이 아쉬울 때는 손을 내밀다가 그 순간이 지나면 은혜를 잊는 사람은 반드시 벌을 받습니다. 가룟 유다나 예수님께 고침 받은 아홉 명의 문둥병 환자처럼 은혜를 잊은 자(눅17:12-19)가 아닌지 나 자신을 돌아봅시다. 말세에는 사람들이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합니다.(딤후3:1-4)
성경에 보면 예수님을 배신한 두 얼굴이 있습니다. 베드로와 가룟유다입니다. 둘 다 예수님의 촉망받는 제자였고 둘 다 십자가 사건 앞에서 실패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한 사람은 멋지게 회복되어 교회사의 으뜸 인물이 되었고 한 사람은 만고청사에 길이 빛나는 배신자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제가 처음 예수를 믿을 때 유다는 엄청나게 나쁜 사람이고 베드로는 훨씬 덜 나쁜 사람인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읽으면서 유다보다는 오히려 베드로가 훨씬 더 비겁하고 치사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까짓 계집종 앞에서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씩이나 주님을 부인하다니...
그런데 왜 유다는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자살로 인생을 마감하게 됐을까요? 그는 처음부터 주님을 한 번도 신뢰한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에게서 자신이 바라는 메시야상을 기대했으나 결국 수포로 돌아가자 실망한 나머지 은 삼십에 그분을 팔고 말았습니다. 나중에 자신이 행한 일의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깨닫고 후회하지만 메시야를 잘못(?) 선택한 자신에 대한 분노를 삭이지 못하고 목매달아 죽고 말았습니다. 유다는 한 번도 주님 앞에 도움의 손길을 구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는 철저히 자신의 생각과 계산을 떠나지 못했고 자신의 자존심 때문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에 못잖은 실수의 사람 베드로는 어떤가요? 주를 부인한 괴로움에 통곡하며 울던 베드로는 주님이 내미는 회복의 손길을 덥석 붙잡습니다. 그는 자신이 연약하여 넘어질 때마다 주님의 십자가 앞에 나가는 사람이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실수를 용서받는 데에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잘못하는 것보다 더 큰 용기가 필요합니다.
이밖에 성경에 나타난 배신자로는
(1) 들릴라가 삼손을 배신하였고(삿16:17,18)
(2) 세바가 다윗을 배반하고 반역을 꾀했다가 죽임을 당했으며(삼하20: 1-22)
(3) 압살롬이 아버지 다윗에게 반역을 했다가 죽임을 당했으며 (삼하15: 1- 12)
(4) 욥의 아내가 하나님과 욥을 배반하였으며(욥2:9)
(5) 데마가 이 세상을 사랑하여 바울을 떠났으며(딤후4:10)
(6) 부겔로와 허모게네가 바울을 배신(딤후1:15)한 것 등을 볼 수 있습니다. 은혜를 저버리고,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는 심판을 받게 됩니다.(살후2:11,12)
"여호와를 배반하고 좇지 아니한 자와 여호와를 찾지도 아니하며 구하지도 아니한 자를 멸절하리라"(습1:6)
"도를 배반하는 자는 엄한 징계를 받을 것이요 견책을 싫어하는 자는 죽을 것이니라"(잠51:10)
"오늘날 너희가 돌이켜 여호와를 좇지 않고자 하느냐 너희가 오늘날 여호와를 배역하면 내일은 그가 이스라엘 온 회중에게 진노하시리라" (수22:18)
오늘 본문은 ‘진실과 배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사울 왕의 죽음으로 사울 왕가는 몰락의 위기에 처했습니다. 이때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에게는 마지막까지 믿고 의지하는 두 충복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아나와 레갑 형제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까지 왕의 아들에게 신임을 얻고 충성하던 자들이었으나 상황이 바뀌자 다윗을 따르는 것이 자신들에게 더욱 유리하다고 판단하게 됩니다. 기회주의적인 그들은 역모를 꾀하며 이스보셋이 잠든 틈을 타 그를 죽이고 그의 머리를 베어 다윗에게 바쳐 잘 보이고자 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이스보셋의 죽음으로 사울 가문과의 긴 싸움이 끝나 결과적으로 자신이 왕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지만, 신의를 저버린 배신과 살인은 인간적 도리는 물론이거니와 하나님의 뜻에도 합당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그들의 죄를 엄히 다스립니다.
살면서 위기가 찾아오고 자신이 불리해질 때 우리는 이리저리 인간적인 꾀를 내보게 됩니다. 그중 한 가지가 잠시 남을 속이고 자신의 유익을 구하려는 것입니다. 세상이 힘들어질수록 남을 속이고배신하는 일들이 흔해지지요.
믿는 우리는 어떠해야 할까요? 우리의 목표는 잠시의 출세와 유익이 아니어야 합니다. '진실과 거룩함'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아무리 어렵고 힘들더라도 하나님과 이웃이 믿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려운 가운데서도 진실하고 정의로운 삶을 통해 거룩하기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케 하심이 아니요 거룩케 하심이니’(데살로니가전서4:7)
우리가 인생을 살다가 보면 때로 어두운 밤을 맞이할 때도 있지만 그 때에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말고 말씀과 믿음으로 좁은 길을 통과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감사하고 어떤 환난과 시험에도 변함없는 하나님의 충성된 일꾼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기도: 살아계시는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겪는 어두운 밤이 유혹의 시간, 배반의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을 만나 더욱 정금같이 순결해지는 믿음의 시간이 되게 하옵소서. 자신의 유익을 위해 쉽게 배반하고 무섭게 살아가는 세상에서 주님을 본받아 겸손하게 하시고 충성하게 하옵소서. 끝까지 충성스런 믿음의 사람으로 주님과 교회를 위해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과 이웃에게 신의를 지키며 진실하게 살 수 있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