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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이 강대국이 된 이유

작성자lee님|작성시간26.06.12|조회수5 목록 댓글 0

이스라엘이 강대국이 된 유

/한태완 목사

하나님이 여시면 닫을 자가 없고 하나님이 닫으시면 열 자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이기게 하시면 질 자가 없고 하나님이 지게 하시면 이길 자가 없습니다. 이 말씀을 지금 굳게 붙잡고 있는 나라가 바로 이스라엘입니다.

 

이스라엘은 강원도 땅보다 조금 클 것입니다. 경상남북도 합한 면적 정도의 작은 나라입니다.

 

서울보다 인구가 적습니다. 아랍 사람까지 약 700만명 정도가 사는 작은 나라입니다. 그러나 강대국에 속합니다. 이들은 미국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쏘련도 의지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하면 어떤 것이 생각나십니까? 저는 두 가지가 생각납니다.

 

첫 번째는 쉐마교육을 시키는 민족이 생각납니다.

 

이스라엘 백들이 많은 고난과 위기를 만나서 나라가 풍전등화 같은 상황에서도 곤난을 극복하고 지금은 세계를 이끌어가는 민족이 된 것은 전적으로 이 쉐마교육에 있다는 것입니다.

 

명성교회 김삼환 목사님의 설교 가운데 쉐마교육에 대해서 설교를 했는데 일부를 소개하겠습니다.

 

이 목사님의 말씀에 의하면 쉐마 교육을 받은 유대인은 오늘 세계를 지배한다고 말합니다. 노벨상 받은 사람이 299명인데, 유대인이 3분의 194명이랍니다.

 

우리 전 아시아 다 해도 몇 안되는데 조그만 한 나라가 노벨상 받은 사람이 나온다는 것은 대단한 민족이라는 것입니다.

 

지금 전 미국의 대학교수의 35%가 유대인이고, 모든 교육계, 세계 정치계, 세계를 움직이는 위대한 예술분야, 과학에 유대인이 다 들어가 있답니다.

 

세계 돈도 다 갖고 있답니다. 이런 위대한 민족이 될 수 있어던 원인은 쉐마교육이 있었기 때문이랍니다.

 

쉐마교육은 히브리말로 들으라라는 어원을 갖고 있습니다. 유대교육은 어머니 태에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교육이랍니다. 어머니는 말을 배우기도 전에 아이들에게 말한다는 것입니다.

 

너는 들어라 너의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이신 여호와시니 너는 일생동안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을 계속해서 가르친다는 것입니다. 부모님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고, 정부가 가르치고, 학교도 가르친답니다. 제사장이 가르치고, 사회가 가르치고, 언론이 가르친다는 것입니다.

 

모든 유대인의 교육은 이 쉐마 교육인데 이 쉐마 교육에 온 나라가 다 같이 참여하는 한다는 것입니다. 집에 있는 부모님이나 학교 선생님만 가르치는 교육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 목사님은 이야기 합니다.

 

이 교육이라는 것은 1-2년에 끝나는 것이 아니랍니다. 그런가 하면1020년에 끝나는 것이 아니랍니다. 특정한 장소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랍니다.

 

교육은 항상 계속해야 한답니다. 앉았을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밖에서나 집에서나 항상 이 교육을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입으로만 하는 것도 아니랍니다. 손에도 손목에도 이 쉐마를 써서 기록하고 달고 다니고 이마에도 붙이고 다니고 문설주에도 바르고 밖의 문에도 바르고 온 집이 쉐마로 온 교육이 쉐마로 가득 채우는 교육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너는 하나님 잘 섬겨라, 잘 믿어라. 영원히 영원히 하나님 한 분을 중심해서 살아야 된다는 것을 백번 천번 만번 십만번 억만번 반복하고 반복하고 또 반복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끊임없는 반복만이 가장 좋은 자녀교육이랍니다. 이목사님은 쉐마교육은 바로 반복교육이라고 말합니다.

 

가정에는 이 쉐마교육인 반복교육을 해야 비로써 성공하는 교육이라고 말합니다.

 

두 번째는 이스라엘 나라는 많은 고난과 슬픔을 당한 민족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많은 고난을 당한 민족입니다. 그렇게 많은 고난과 압박과 슬픔을 당하면서도 야웨신앙과 하나님 중심의 신앙을 잃지 않고 지금까지 지켜온 민족입니다. 결국에는 당당하게 나라를 건국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애굽의 노예 생활을 430년간 했습니다. 바벨론 포로 생활을 했습니다. 예수님 시대에 AD7년에 예루살렘 완전히 함락된 후에 유대인들은 나를 잃고 유랑민족이 되어, 2천년간 나라 없는 생활을 했습니다.

 

나라가 없는 민족이지만 이 민족은 전 세계 각지에서 구약성경을 지키고 유대교도로서의 단결을 유지하면서, 각국의 종교˙문화 속에 묻히지 않고, 하나님의 선민으로서 살아나간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알듯이 나라가 없는 없다는 것은 얼마나 큰 설음인지 모릅니다. 나라가 없기 때문에 민족은 가족 간에 민족 간에 뿔불히 흩어져 이 나라 저 나라에 살아야만했습니다. 민족이 당하는 받은 설움과 압박을 받아도 어디에도 호소할 수도 없습니다.

 

1차 세계대전 때 독일의 히틀러가 무고한 이스라엘 백성 6백만을 죽일 때도 나라가 없기 때문에 비참하게 죽어가야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1948년 나라를 건국하고 아랍으로부터 위협을 받았습니다. 다시는 나라를 빼앗기지 않겠다는 각오로 죽음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나라를 지켰습니다. 결국에는 4차례의 중동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나라를 지켰습니다.

 

인터넷에 독립전쟁이라는 제목으로 중동전쟁 상황의 기록하고 있는데 일부를 소개하겠습니다.

 

아랍의 작전계획은 단순하기 짝이 없었다. 남부로부터 강력한 이집트 육군 2개여단 1만 병력이 네게브를 석권한 다음 1개여단은 텔아비브를 향하여, 다른 1개여단은 예루살렘으로 진격한다는 것이었다.

 

동쪽에서는 트랜스요르단의 아랍군단 이 요르단 강을 건너 유엔이 아랍국가의 일부로 규정한 팔레스타인 중부지역을 재빨리 점령한 다음, 예루살렘의 구도시를 장악하고 신도시를 포위하게 되어 있었다. 북쪽으로는 레바논, 시리아, 이라크의 군대가 갈릴리를 분쇄 돌파하고, 하이파로 밀고 들어간 다음 해안평원을 따라 텔아비브로 진격하게 되어 있었다.

 

1주일 후, 아니면 늦어도 2주일 후면, 유대국가는 소멸되고, 그 시민들은 어느 아랍 지도자가 예언했던 대로 '몽고 대학살'의 희생자가 될 것이었다.

 

무제한으로 보이는 보급품을 확보하고, 21500병력의 일선부대 (이스라엘 인들보다 훨씬 많은 인구 가운데서 차출한)를 휘하에 두고 있는 상황이었으므로, 이집트의 파루쿠 왕과 트랜스 요르단의 압둘라 왕과 같은 아랍지도자들은 별로 걱정하는 빛이 없었다.

 

 

그들과 맞선 이스라엘군은 지하군대에서 끌어 모은 남녀 혼성군과 야전군, 지역방위군 등 약 6만 명의 병력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스라엘군은 숫자상으로는 아랍군을 능가했지만, 빈약한 장비로 전쟁을 시작했다.

 

1948514일 현재 그들은 통틀어 겨우 1만정의 소총과 소총 1정당 50발의 탄환, 낡은 대포 4, 그리고 3600정의 기관단총 밖에 없었다.

 

그 이전 몇 달 동안이나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의 전략은 결사적인 방어였다. 단 한 치의 땅도 사수하고, 각 정착촌을 요새화하며, 마지막 한 자루의 총에 한 발의 총탄이 남아 있을 때 까지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와 같은 전술로써 이스라엘 인들은 아랍의 진격을 감속 시키켰다.

 

그것은 지극히 위험한 전술이었으나, 다른 방도는 없었다. 이 전술에 생존의 가냘픈 희망이 걸려 있었고 승전의 희망은 더욱 희박했다.

 

5 14 ~ 15일의 밤중, 어둠을 틈타 이집트 침공군이 국경을 넘어 네게브 사막으로 진격했다. 대규모의 병력이 니림이라는 작은 유대인 정착촌 외곽에 집결했다. 그 마을의 무기라고는 17정의 소총, 경기관총 1정 그리고 기관단총 4정 뿐이었다.

 

가시 철조망으로 에워싸인 이 마을에다가 이집트군은 맹렬한 포격을 개시했다. 뒤이어 4대의 전차, 여러 대의 장갑차와 자주포의 지원하에 수백명의 보병이 공격해 왔다. 정착민들은 보병들이 사거리 안에 들어 올 때까지 사격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이집트군이 철조망에 접근했을 때 그들은 맹렬한 사격을 가했다. 별다른 저항이 없으리라 예상했던 농촌 출신의 이집트 병사들은 겁에 질려 뒤로 물러났다.

 

이집트 장교들은 수차에 걸쳐 사병들을 재집결 시키고 돌격대를 편성하여, 그들로 하여금 이스라엘 진지를 공격케 했다. 그러나 번번이 그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쉽게 승리하리라 예상했던 그들의 부하 사병들은 완강한 이스라엘의 저항에 부딪칠 때마다 예외없이 혼란에 빠졌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다수의 아랍 정치가들, 특히 이집트의 지도자들은 그 전쟁을 단시간에 재산을 늘릴 수 있는 기회로 여기고 있었다. 식량, 군화, 무기의 구입비로 떼어 놓은 자금은 전장의 장병을 지원하는 데 사용되지 않고 정치가들의 호주머니로 들어갔으며 텔아비브를 향한 아랍군의 성공적인 개선행진으로 예상되었던 전투는 교착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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