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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

지혜와 인내, 용기 있는 삶-린다 수 박, {사금파리 한조각}

작성자이은봉|작성시간04.10.07|조회수248 목록 댓글 0
지혜와 인내, 용기 있는 삶
―린다 수 박, {사금파리 한 조각}, 서울 문화사, 2002


이은봉


이 글에서 검토하려고 하는 것은 재미 한인 작가인 린다 수 박의 동화 {사금파리 한 조각}이다. 저자인 린다 수 박은 두 분 부모님을 모두 한국인으로 두고 있는 만큼 한국인이라고 해야 마땅하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동화가 처음부터 한국어로 씌어진 것은 아니다. 미국 일리노이 주에서 태어나고 자라 스탠퍼드대학 영문학과를 졸업한 것이 저자인 린다 수 박이다. 혈통과는 달리 그의 모국어는 영어인 것이다. 따라서 그가 이 동화를 영어로 쓰게 된 것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일이다. 이 동화가 미국 최고의 아동문학상인 뉴베리상을 받을 수 있었던 것 자체가 바로 그 때문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 동화는 한국문학의 성과가 아니라 미국문학의 성과라고 해야 옳다. 과거 우리나라의 한 시기, 즉 12세기 고려의 한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는 하더라도 이 동화가 한국문학의 범주 속에 포함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정작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이 동화가 한글어 판으로 출판되는 과정에 명확하게 번역의 과정을 거쳤다는 점이다. 이 동화의 문체가 그다지 유연하고 부드럽지 않은 것은 다름 아닌 이 때문이다. 번역을 맡은 시인 이상희의 아름다운 문체가 십분 발휘되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마찬가지이다.

이 동화의 주된 공간은 12세기 고려 사회의 주된 도자기 생산지인 줄포로 설정되어 있다. 물론 중심 인물인 목이의 행동 반경에 따라 공간은 부여로, 송도로, 다시 줄포로 이동되는 과정을 밟는다. 당시의 고려사회에서 전북의 줄포는 전남의 강진과 더불어 최대의 청자 생산지이다. 그러니 만큼 이 동화가 청자와 얽힌 이야기를 담게 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청자와 얽힌 이야기 중에서도 상감기법과 관련된 일종의 가공된 세계를 그럴 듯하게 꾸며내고 있는 것이 이 동화이다. 그렇다. 이 동화는 막 상감청자가 태어나는 시기에 있었을 법한 이야기를 아름답게 상상해내고 있다.

이 동화에서는 아주 정통적으로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있다. '이야기'를 만들어지는 핵심 대상, 즉 사건의 주체는 목이라는 12살쯤 되는 어린 소년이다. 도공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주인공 소년인 목이가 계절을 바꿔 가며 1년 반에서 2년 정도 사이에 겪는 체험 및 행동을 이 동화는 집중적으로 추적하고 있다. 민영감으로 대표되는 훌륭한 도공으로 성장하는 것이 이 동화의 중심인물인 목이의 꿈이다. 목이의 이러한 꿈이 이루어져 가는 과정과 관련해보면 기본적으로 이 동화는 성장 소설의 구조를 지닌다. 도공의 자격을 얻게 되는 목이라는 인물의 행동을 그려내고 있는 것이 이 동화의 주요 내용이기 때문이다.

목이가 정식으로 도공이 되어 가는 과정은 목이의 신분이 상승되어 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일단은 목이가 두루미 아저씨와 함께 이른바 집도 절도 없는 고아로 설정되어 있다는 점을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작가가 이처럼 비천한 곳으로 목이와 두루미 아저씨의 주거공간을 설정한 것은 당연히 그들의 출신 성분이 보잘것없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목이가 두루미 아저씨와 함께 다리 밑에서 거주하게 된 까닭은 별로 복잡하지 않다. 부모가 열병으로 죽자 스님이 목이를 삼촌이 살고 있는 줄포로 보내지지만 이미 삼촌이 줄포를 떠나버려 목이의 갈 곳이 막연해졌기 때문이다. 덧붙여 말하면 줄포의 절에도 열병이 돌아 목이를 맡아줄 수 없게 되자 두루미 아저씨의 다리 밑으로 보내져 이들이 함께 거주하게 된다는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한 쪽 발이 오그라들고 뒤틀린 두루미 아저씨는 외모와는 달리 매우 인정이 많은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인자하면서도 자존심이 강한 인물인 두루미 아저씨는 나이는 목이보다 훨씬 많지만 목이의 유일한 친구로서 목이에게 많은 사랑을 베풀고 있다. 뿐만 아니라 두루미 아저씨는 목이에게 사람살이의 풍부한 지혜를 가르쳐 주는 스승으로 존재하기도 한다. 목이가 보여주는 모범적 가치, 즉 긍정적 자아는 대부분 두루미 아저씨와의 관계를 통해 터득되고 있다. 목이가 자신의 자아를 발견할 수 있도록 이 동화의 이곳저곳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들려주고 있는 것이 두루미 아저씨이다. 그가 목이에게 "학자들은 이 세상의 고귀한 단어들을 읽어내지. 그러나 너하고 나는 세상 그 자체를 읽는 법을 익혀야 한다"고 말하는 대목에서도 이는 익히 확인이 된다.

하지만 목이가 도공으로 입문을 하는 데 정작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은 민영감과 아줌마이다. 목이의 꿈이 민영감과 아줌마의 양아들이 되면서 비로소 이루어진다는 점을 살펴보더라도 이는 잘 알 수 있다. 목이의 성장과정과 관련된 그밖의 주변 인물로는 줄포의 강영감, 왕실의 감도관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이들 인물 역시 목이가 도공의 꿈을 이루어 가는 과정에 의미 있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 인물에 의해 둘러싸여 있는 목이에게 작가인 린다 수 박이 부여하는 캐릭터는 자못 다양하다. 목이가 보여주는 캐릭터는 기본적으로 긍정적이다. 물론 이 때의 긍정적인 인물, 즉 목이가 보여주는 캐릭터는 두루 보편적인 특징을 갖는다. 그렇다. 12세기 고려의 어린 소년으로 등장하고 있지만 목이는 오늘을 살아가는 긍정적 인간형, 즉 근대적 인간형으로도 전혀 손색이 없다.

오늘의 청소년 사회에는 이른바 범생이가 존재하지 않는다. 모범생을 뜻하는 범생이는 바보나 멍청이로 취급받고 있는 것이 지금의 청소년 사회이다. 이러한 풍조는 미국 사회라고 해도 다를 바 없다. 아니, 그것은 오히려 미국적 가치가 보편화되면서 강화되어온 감이 없지 않다. 그러나 린다 수 박의 이 동화는 청소년 사회의 이러한 풍조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있다. 린다 수 박에 의해 창출된 이 동화의 중심인물인 목이야말로 범생이기 때문이다.

우선 목이는 지혜로운 존재, 즉 꾀가 많은 존재로 그려지고 있다. 동화의 앞 부분에는 어떤 아저씨가 지고 있는 지게의 가마니에서 흘리는 쌀을 주어 모으는 에피소드가 실려 있다. 더 많은 양을 줍기 위해 가마니에서 쌀이 흘러나오도록 한동안 지켜보는 것은 목이가 마냥 순진한 인물만은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그런가 하면 이 동화가 본격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부분에는 이웃집 강영감에 의해 처음으로 시도되는 상감기법을 목이가 훔쳐보는 에피소드가 실려 있다. 이렇게 훔쳐본 상감기법은 잠깐의 고민 끝에 목이의 스승인 민영감에게로 고스란히 전해지게 되고, 그로 인해 민영감은 왕실의 감도관에 의해 크게 주문을 받는 도공으로 자리잡게 된다. 이 부분에 드러나 있는 목이의 행동도 그가 매우 꾀가 많은 어린아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또한 목이는 자존심이 강한 인물, 즉 인간으로서의 자기 존엄성이 투철한 인물로 그려져 있다. 인간으로서의 자기 존엄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목이가 두루미 아저씨로부터 끊임없이 교육받아온 내용이기기도 하다. 구체적으로 그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남의 물건을 훔치거나 구절하지 않는 생활 태도로 나타나고 있다. 집도 절도 없는 고아에 불과하지만 목이와 그의 친구인 두루미 아저씨는 어떠한 한계 상황에서도 남의 물건을 훔치거나 남에게 구걸을 하지 않는다. 목이 스스로도 "훔치거나 구걸하는 건 사람을 개만도 못하게 만드니까요"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있을 정도이다. 그만큼 정직하고 당당한 인물로 그려지고 있는 것이 목이이다.

세 번째로 목이는 인내심이 강하면서도 매우 겸손한 인물로,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인물로 그려져 있다. 새삼스러운 얘기이기는 하지만 이 동화는 목이가 예술가적 기질이 매우 강한 도공인 민영감의 양아들이 되어 정식으로 도공의 자격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다. 이 과정에 벌어지는 여러 에피소드를 통해 목이가 보여주는 가장 큰 덕목이 다름 아닌 인내와 겸손이라고 할 수 있다. 목이의 이러한 캐릭터는 특히 목이가 민영감이 도자기를 만드는 장면을 엿보다가 들켜 꾸중을 듣는 대목, 민영감의 일을 돕게 되어 산에 가서 나무를 하는 대목 등에 의해 확인이 된다. 자신의 꿈을 이루는 과정에 목이가 보여주는 어른을 공경하는 겸손한 마음, 어른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고통을 감내하는 마음은 더없이 정겹고도 아름답다.

네 번째로 목이는 호기심이 강하면서도 용감하고 담대한 인물로 그려져 있다. 이는 곧 목이가 진취적이고도 개척적인 인물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이러한 캐릭터는 우선 목이가 별다른 두려움 없이 민영감이 도자기를 만들고 있는 장면을 엿보는 대목에서부터 드러난다. 마침내 민영감에게 들켜 자신의 본심을 털어놓는 대목 역시 목이가 호기심이 강하면서도 용감하고 담대한 자아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준다. 목이가 지니고 있는 이러한 캐릭터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자청해서 민영감을 대신해 새로 구운 상감청자를 지게에 지고 송도로 향하는 대목에서 절정에 이른다. 부여의 낙화암에서 강도를 만나 싸우는 대목, 깨어진 도자기 파편, 즉 사금파리 한 조각만을 들고 송도로 가서 감도관을 만나 담판을 지는 대목 등이야말로 목이의 진취적이고도 개척적인 캐릭터를 잘 말해준다.

이처럼 린다 수 박은 이 동화를 통해 목이라는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인물형을 제시하고 있다. 모범적이고 긍정적인 어린 소년을 아름답게 형상화함으로써 나날의 사람살이 전반에 희망을 주고 싶었던 것이 그인 셈이다. 긍정적인 인물형의 관점에서 보면 두루미 아저씨나 민영감, 그리고 민영감의 아내인 아줌마 경우도 다를 바 없다. 특히 아줌마가 보여주는 너그러움과 넉넉함이야말로 목이의 결단과 실천에 자신감을 주는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목이의 용기 있는 도전을 푸근한 마음을 받아주고 있는 감도관도 충분히 긍정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여유 있고 긍정적인 인물형들을 통해 자라나는 청소년들 모두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있는 것이 린다 수 박의 동화 {사금파리 한 조각}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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