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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시감상

오장환의 시

작성자이은봉|작성시간04.10.07|조회수784 목록 댓글 0
오장환(吳章煥)

1918-?. 충북 회인 출생. 안성보통학교 졸업, 휘문고보 중퇴, 일본 지산중학교를 거쳐 명치대학 전문부 문예과 중퇴. 1933년 {조선문학}에 시 [목욕간]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그후 {낭만}(1936), {시인부락}(1936), {자오선}(1937) 등의 동인으로 참여하는 가운데 시인으로서 두각을 드러냈다. 해방 후엔 조선문학가동맹 서울시지부 사업부 위원, 문학대중화운동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다가 월북했다. 시집으로 {성벽}(1937), {헌사}(1939), {병든 서울}(1946), {나 사는 곳}(1947) 등이 있다.


姓氏譜
―오래인 관습, 그것은 전통을 말함이다


내 성은 오씨. 어째서 오가인지 나는 모른다. 가급적으로 알리워 주는 것은 해주로 이사온 一淸人이 조상이라는 가계보의 검은 먹글씨. 옛날은 대국숭배를 유심히는 하고 싶어서, 우리 할아버지는 진실 이가였는지 상놈이었는지 알 수도 없다. 똑똑한 사람들은 항상 가계보를 창작하였고 매매하였다. 나는 역사를, 내 성을 믿지 않아도 좋다. 해변가에로 밀려온 소라 속처럼 나도 껍데기가 무척은 무거웁구나. 수퉁하구나. 이기적인, 너무나 이기적인 애욕을 잊을려면은 나는 성씨보가 필요치 않다. 성씨보와 같은 관습이 필요치 않다.
―{조선일보}, 1936. 10. 10.


溫泉地


온천지에는 하루에도 몇 차례 은빛 자동차가 드나들었다. 늙은이나 어린애나 점잖은 신사는, 꽃 같은 계집을 음식처럼 싣고 물탕을 온다. 젊은 계집이 물탕에서 개구리처럼 떠 보이는 것은 가장 좋다고 늙은 상인들은 저녁상머리에서 떠들어댄다. 옴쟁이 땀쟁이 가진 각색 더러운 피부병자가 모여든다고 신사들은 두덜거리며 가족탕을 선약하였다.
―{시인부락}, 1936. 11.


暮村


초라한 지붕 썩어 가는 추녀 위엔 박 한 통이 쇠었다.
밤 서리 차게 내려앉는 밤, 싱싱하던 넝쿨이 사그러붙던 밤, 지붕 밑 兩主는 밤새워 싸웠다.
박이 딴딴히 굳고 나뭇잎새 우수수 떨어지던 날, 양주는 새 바가지 뀌어 들고 초라한 지붕, 썩어 가는 추녀가 덮인 움막을 작별하였다.
―{시인부락}, 1936. 11.

漁浦


어포의 등대는 鬼類의 불처럼 음습하였다. 어두운 밤이면 안개는 비처럼 내렸다. 불빛은 오히려 무서웁게 검은 등대를 튀겨놓는다. 구름에 지워지는 하현달도 한잠 자옥한 안개에는 등대처럼 보였다. 돛폭이 충충한 박쥐의 나래처럼 펼쳐 있는 때, 돛폭이 어스름한 해적의 배처럼 어른거릴 때, 뜸 안에서는 고기를 많이 잡은 이나 적게 잡은 이나 함부로 튀전을 뽑았다.
―{시인부락}, 1936. 12.


The Last Train


저무는 역두에서 너를 보냈다.
비애야!

개찰구에는
못 쓰는 차표와 함께 찍힌 청춘의 조각이 흗어져 있고
병든 歷史가 화물차에 실리어 간다.

대합실에 남은 사람은
아직도
누굴 기둘러

나는 이곳에서 카인을 만나면
목놓아 울리라.

거북이여! 느릿느릿 추억을 싣고 가거라
슬픔으로 통하는 모든 路線이
너의 등에는 지도처럼 펼쳐 있다.
―{사해공론}, 1938. 9.


北方의 길


눈 덮인 철로는 더욱이 싸늘하였다
小盤 귀퉁이 옆에 앉은 農軍에게서는 송아지의 냄새가 난다
힘없이 웃으면서 차만 타면 북으로 간다고
어린애는 운다 철마구리 울듯
車窓이 고향을 지워버린다
어린애가 琉璃窓을 쥐어뜯으며 몸부림친다
―시집 {헌사}, 1939.


聖誕祭


산밑까지 내려온 어두운 숲에
몰이꾼의 날카로운 소리는 들려오고,
쫓기는 사슴이
눈 위에 흘린 따뜻한 땀방울.

골짜기와 비탈을 따라 내리며
넓은 언덕에
밤 이슥히 횃불은 꺼지지 않는다.

뭇 짐승들의 등 뒤를 쫓아
며칠 씩 산 속에 잠자는 포수와 사냥개,
나 어린 사슴은 보았다.
오늘도 몰이꾼이 메고 오는
표범과 늑대.

어미의 상처를 입에 대고 핥으며
어린 사슴이 생각하는 것
그는
어두운 골짝에서 밤에도 잠들 줄 모르며 솟는 샘과
깊은 골을 넘어 눈 속에서 하얀 꽃 피는 약초.

아슬한 참으로 아슬한 곳에서 쇠북소리 울린다.
죽은 이로 하여금
죽는 이를 묻게 하라.

길이 돌아가는 사슴의
두 뺨에는
맑은 이슬이 내리고
눈 위엔 아직도 따뜻한 핏방울…….
―{조선일보}, 1939. 10. 24.


고향 앞에서


흙이 풀리는 내음새
강바람은
산짐승의 우는 소릴 불러……
다 녹지 않은 얼음장 울멍울멍 떠나려간다.

진종일
나룻가에 서성거리다
행인의 손을 쥐면 따뜻하리라.

고향 가차운 주막에 들려
누구와 함께 지난날의 꿈을 이야기하랴.
양귀비 끓여다 놓고
주인집 늙은이는 공연히 눈물지운다.

간간이 잔나비 우는 산기슭에는
아직도 무덤 속에 조상이 잠자고
설레는 바람이 가랑잎을 휩쓸어간다.

예 제로 떠도는 장꾼들이여!
商賈하며 오가는 길에
혹여나 보셨나이까.

전나무 우거진 마을
집집마다 누룩을 디디는 소리, 누룩이 뜨는 내음새……
―{인문평론}, 1940. 4.


붉은 山


가도, 가도 붉은 산이다.
가도 가도 고향뿐이다.
이따금 솔나무 숲이 있으나
그것은
내 나이같이 어리고나.
가도 가도 붉은 산이다.
가도 가도 고향뿐이다.
―{건설}, 1945. 12.





깽이 있다
깽은 고도한 자본주의 국가의 첨단을 가는 직업이다.
성미 급한 이 땅의 젊은이는 그리하여 이런 것을 받아들였다.
알코올에 물 탄 양주와
댄스로 정신이 없는
장안의 구석구석에
그들은 그들에게까지 이러한 사실을 알려주었다.

아 여기와는 상관도 없이
또 장안의 한복판에서,
이 땅이 해방에서 얻은 북쪽 38도의 어려운 住所와
숱한 '야미'꾼으로 완전히 막혀진 서울 길을
비비어 뚫고 그들의 행복까지를 위하여
전국의 인민대표들이 모였다는 사실을……

그러나
깽은 끝까지 직업이다.
전국의 생산이 완전히 쉬어진 오늘에
이것은 확실히 신기한 직업이다.
그리하여 점잖은 의상을 갖춘 자본가들은
새로이 이것을 기업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들의 번창해질 장사를 위하여
'한국'이니 '건설'이니 '청년'이니
'민주'니 하는 간판을 더욱 크게 내건다
―{인민보}, 1945. 11.


병든 서울


8월 15일 밤에 나는 병원에서 울었다.
너희들은 다 같은 기쁨에
내가 운 줄 알지만 그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일본 천황의 방송도,
기쁨에 넘치는 소문도,
내게는 곧이가 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저 병든 탕아로
홀어머니 앞에서 죽는 것이 부끄럽고 원통하였다.

그러나 하루 아침 자고 깨니
이것은 너무나 가슴을 터치는 사실이었다.
기쁘다는 말,
에이 소용도 없는 말이다.
그저 울면서 두 주먹을 부르쥐고
나는 병원에서 뛰쳐나갔다.
그리고, 어째서 날마다 뛰쳐나간 것이냐.
큰 거리에는,
네거리에는, 누가 있느냐.
싱싱한 사람 굳건한 청년, 씩씩한 웃음이 있는 줄 알았다.

아, 저마다 손에 깃발을 날리며
노래조차 없는 군중이 만세로 노래부르며
이것도 하루 아침의 가벼운 흥분이라면……
병든 서울아, 나는 보았다.
언제나 눈물 없이 지날 수 없는 너의 거리마다
오늘은 더욱 짐승보다 더러운 심사에
눈깔에 불을 켜들고 날뛰는 장사치와
나다니는 사람에게
호기 있이 먼지를 씌어주는 무슨 본부, 무슨 본부,
무슨 당, 무든 당의 자동차.

그렇다. 병든 서울아,
지난날에 네가, 이 잡놈 저 잡놈
모두 다 술 취한 놈들과 밤늦도록 어깨동무를 하다시피
아 다정한 서울아
나도 밑천을 털고 보면 그런 놈 중의 하나이다.
나라 없는 원통함에
에이, 나라 없는 우리들 청춘의 반항은 이러한 것이었다.
반항이여! 반항이여! 이 얼마나 눈물나게 신명나는 일이냐

아름다운 서울, 사랑하는 그리고 정들은 나의 서울아
나는 조급히 병원 문에서 뛰어나온다.
포장 친 음식점, 다 썩은 구루마에 차려놓은 술장수
사뭇 돼지구유같이 늘어선
끝끝내 더러운 거릴지라도
아, 나의 뼈와 살은 이곳에서 굵어졌다.

병든 서울, 아름다운, 그리고 미칠 것 같은 나의 서울아
네 품에 아무리 춤추는 바보와 술취한 망종이 다시 끓어도
나는 또 보았다.
우리들 인민의 이름으로 씩씩한 새 나라를 세우려 힘쓰는 이들을……
그리고 나는 외친다.
우리 모든 인민의 이름으로
우리네 인민의 공통된 행복을 위하여
우리들은 얼마나 이것을 바라는 것이냐.
아, 인민의 힘으로 되는 새 나라

8월 15일, 9월 15일,
아니, 삼백예순 날
나는 죽기가 싫다고 몸부림치면서 울겠다.
너희들은 모두 다 내가
시골구석에서 자식 땜에 아주 상해버린 홀어머니만을 위하여 우는 줄 아느냐.
아니다. 아니다. 나는 보고 싶으다.
큰물이 지나간 서울의 하늘이……
그때는 맑게 개인 하늘에
젊은이의 그리는 씩씩한 꿈들이 흰 구름처럼 떠도는 것을……

아름다운 서울, 사무치는, 그리고, 자랑스런 나의 서울아,
나라 없이 자라난 서른 해,
나는 고향까지 없었다.
그리고, 내가 길거리에 자빠져 죽는 날,
'그곳은 넓은 하늘과 푸른 솔밭이나 잔디 한 뼘도 없는'
너의 가장 번화한 거리
종로의 뒷골목 썩은 냄새 나는 선술집 문턱으로 알았다.
그러나 나는 이처럼 살았다.
그리고 나의 반항은 잠시 끝났다.
아 그 동안 슬픔에 울기만 하여 이냥 질척거리는 내 눈
아 그 동안 독한 술과 끝없는 비굴과 절망에 문드러진 내 쓸개
내 눈깔을 뽑아버리랴, 내 쓸개를 잡아떼어 길거리에 팽개치랴.
―{상아탑}, 1945.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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