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를 시청하다
고재종
초록으로 쓸어놓은 마당을 낳은 고요는
새암가에 뭉실뭉실 수국송이로 부푼다
날아갈 것 같은 감나무를 누르고 앉은 동박새가
딱 한 번 울어서 넓히는 고요의 면적,
감잎들은 유정무정을 죄다 토설하고 있다
작년에 담가둔 송순주 한 잔에 생각나는 건
이런 정오, 멸치국수를 말아 소반에 내놓던
어머니의 소박한 고요를
윤기 나게 닦은 마루에 꼿꼿이 앉아 들던
아버지의 묵묵한 고요,
초록의 군림이 점점 더해지는
마당, 마당의 덩굴장미가 내쏘는 향기는
고요의 심장을 붉은 진동으로 물들인다
사랑은 갔어도 가락은 남아, 그 몇 절을 안주 삼고
삼베올만치나 무수한 고요를 둘러치고 앉은
孤衾의 시골집 마루,
아무것도 새어나게 하지 않을 것 같은 고요가
초록 바람에 반짝반짝 누설해놓은 오월의
날 비린내 나서 더 은밀한 연주를 듣는다
―『현대시학』 2017년 6월호
* 평생을 조용하고 고요하게만 살 수는 없다. 조용하고 고요한 날들이 계속되면 이내 누구나 다 지루해지기 마련이다. 지루한 날들이 계속되면 곧바로 아무라도 다 시끄러운 쪽으로 고개를 돌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시끄러운 일이 계속되면 그것도 오래 참기는 어려운 법이다. 이내 조용하고 고요한 세계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는 것이 사람이다. 그래서일까. 시인은 지금 “초록으로 쓸어놓은 마당을 낳은 고요” 속에 살고 있다. 이 고요는 깊고 깊어 “새암가에 뭉실뭉실 수국송이로 부”풀 정도이다. 뿐만 아니라 이 고요는 “날아갈 것 같은 감나무를 누르고 앉은 동박새가/딱 한 번”만 울어도 넓혀지는 “면적”을 갖고 있다, 감나무의 “감잎들은 유정무정을 죄다 토설하고 있”지만 말이다. 이들 고요와 함께하고 있는 시인은 지금 “시골집 마루”에 앉아 “송순주 한 잔”을 마시고서는 생각한다. “멸치국수를 말아 소반에 내놓던/어머니의 소박한 고요”와, “윤기 나게 닦은 마루에 꼿꼿이 앉아 들던/아버지의 묵묵한 고요”를 말이다. 시인이 바라보는 마당가에서 “덩굴장미가 내쏘는 향기는/고요의 심장을 붉은 진동으로 물들”일 정도로 진하다. “무수한 고요를 둘러치고 앉은/孤衾의 시골집 마루”에 앉아 그는 지금 “초록 바람에 반짝반짝 누설해놓은 오월의 날 비린내”로 해 더욱 더 은밀해지는 자연의 “연주를 듣”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