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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팰러스(phallus)와 페니스(penis)의 차이

작성자이은봉|작성시간12.09.19|조회수3,038 목록 댓글 0

팰러스와 페니스의 차이에 대해서 텍스트로 초벌쓰기 해봤습니다.

생각보다 명확하게 개념이 잡히질 않는거 같습니다.ㅠㅠ

팰러스(phallus)와 페니스(penis)의 차이


 소략하게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페니스란 생물학적 남성의 성기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프로이트는 남자 아이는 페니스를 통해 전지전능한 우월감을 느끼지만 동시에 거세의 공포에 휩싸여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서의 경쟁의식을 극복한다고 했고, 여자 아이는 반대로 자신이 페니스가 없다는 열등의식에 아버지를 통해 우회적으로 페니스를 소유하려 한다고 설명하면서 생물학적 차이에 따른 분화된 섹슈알리티 형성을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프로이트에게 있어서는 페니스와 팰러스가 엄격하게 구분되는 개념이 아닙니다. 그러나 라캉에 오면 팰러스는 완전히 다른 중요성을 가지게 되는데, 이것은 하나의 전지전능한 가치, 힘을 뜻하는 기표로서 남녀의 생물학적 성차와는 무관한 보편적인 것입니다. 팰러스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고 어떤 기능을 수행하는지는 지금부터 구체적으로 설명해 나가겠습니다.


 팰러스를 알기 위해 우리는 먼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대하여 명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흔히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란 꼬마 소년이 어머니를 사랑하고 아버지를 미워하는, 또 반대로 소녀가 아버지를 사랑하고 어머니를 미워하는 일종의 금기의 러브 스토리라고 피상적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프로이드나 라캉 등의 정신분석학자들에게 있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그러한 감정 소요에 대한 문제가 아닌 모든 인간이 가장 원초적으로 느끼는 욕망과 주체 형성에 대한 문제입니다. 지난 수업에서도 나온 말이지만, 라캉은 구조주의자들이 ‘인간은 언어라는 시니피앙의 바다에 빠져든 후라야 사고할 수 있는 존재’라고 보는 입장의 연장선에 서서, 인간이 그러한 시니피앙의 세계로 진입하게 되는 ‘계기’로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제시합니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모든 인간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거쳐야만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데카르트적 코기토, 즉 사유하는 주체로서의 인간, 사회화된 인간으로 거듭난다는 것입니다. 나아가 사춘기의 반항, 신경증이나 강박증, 정신병 등의 증상들도 모두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진행되는 약 4세 즈음의 사건의 또 다른 전이된 형태라는 것이 라캉계열 학자들의 입장입니다. 팰러스는 이러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진행 과정에서 완성되는 가장 핵심적인 주체 형성의 기표입니다. 지금부터 일반적인 남녀가 각각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어떻게 겪어나가는지를 추적하면서 남성과 여성의 팰러스 형성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여성의 경우가 좀 더 복잡하기 때문에 남성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남아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모든 아이는 이전에 구강, 항문, 근육활동 등에서 성적 쾌락을 얻는 것에서 벗어나 3~4세 쯤 되면 그들의 페니스에 온 신경을 집중하게 되고 거기서 즐거움을 얻습니다. 눈에 잘 띄고, 손으로 만지기 쉽고, 성적인 쾌락을 주면서 동시에 발기하기도 하는 이 페니스를 보면서, 남자 아이는 ‘나는 페니스를 소유하고 있다’는 데 대하여 매우 큰 자부심을 느낍니다. 여기서 남아의 상상계가 작동하여, 자부심을 넘어 페니스를 숭배하기 시작합니다. 즉, 이 조그만 부착물(appendage)이 전지전능한 파워(omnipotence)와 남성성(virility)의 원천인 것처럼 인식되기 시작하는 것이죠. 그런데 동시에 역설적이게도 숭배의 대상인 페니스는 남자 아이에게 꼭 같은 이유로 인해 꼭 보호되어야만 할 취약성(vulnerability)과 연약함(fragility)의 상징이 되기도 합니다. 왜냐 하면, 오이디푸스 시기의 남자 아이는 여자의 몸에서는 자신과 같은 부착물이 없다는 것을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나 누이에게서 자신이 가진 전지전능함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 그 순간, 남자 아이는 그들이 거세되었다고 믿으면서 자기도 언젠가 거세될 수 있겠다는 심각한 걱정에 빠지게 됩니다. 이 순간이 중요합니다! 여기에서 남자 아이는 양자택일의 강요된 선택에 직면합니다. 어머니에 대한 남자 아이의 성적 욕망(incestuous desire)과 아버지에 의한 거세의 불안(castration anxiety)이 맞부딪치면서, 모든 남자 아이는 결국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팰러스를 지키기 위해 욕망을 포기합니다. 실제적 거세를 피하기 위해 자신을 상징적으로 거세하고 페니스가 아닌 팰러스를 그 상징적 거세의 기표로 세우는 것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거세의 불안(castration anxiety)은 절대로 생물학적 기관-페니스의 거세가 아닙니다. 앞서 남자 아이는 페니스를 그 자체의 물리적 기관이 아닌 상상계적 페니스-팰러스로 바라본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므로 거세의 불안이라는 것은 결국 페니스에 투영된 힘, 즉 남성성이 거세되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의미입니다.

 상징적 거세는 페니스에 투영된 남성성을 보존키 위해 부모에 대한 상상계적 욕망을 스스로 잘라내고 자신을 기표와 구조의 세계로, 즉 상징계로 이전시키는 작업입니다. 남자 아이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결국 소포클레스의 희곡 속에서 오이디푸스가 자기 눈을 찌르는 것으로 끝나듯이 남자 아이가 자신의 욕망을 포기하고 상징적 거세를 수행함으로써 팰러스-남성성을 보존하는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그때부터 남자 아이는 팰러스를 망상(특히 성적 판타지) 속에서가 아니라 상징계 속에서 발견 혹은 발명하게 되고, 사회화된 인간으로 거듭나게 되는 것입니다.


여아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여자 아이의 경우는 남자 아이보다 더 복잡하고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약 4세의 여자 아이는 남자 아이가 음경의 자극(penile excitation)을 느끼는 것과 비슷하게 음핵의 자극(clitoral excitation)을 느낍니다. 이 시기의 여자 아이는 남자 아이와 같습니다. 나는 팰러스를 가졌고, 전지전능하며 파워가 있고, 어머니를 성적으로 소유하고 싶다, 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자신이 남자 아이와 같은 눈에 띄는 페니스-팰러스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여자 아이는 자신의 팰러스가 박탈당했다는 생각에 고통받습니다. 그리고 이 고통은 어머니도 팰러스가 박탈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어머니에 대한 증오로 바뀝니다. 왜 내게 이 중요한 사실을 진작에 이야기 해주지 않았느냐는 생각에 자신이 기만당했다고 느끼기 때문이죠. 그래서 어머니에 대한 욕망에서 자신을 떼어내고, 남성이 가진 팰러스에 대해서 질투(jealousy)와 부러움(envy)의 감정을 갖게 됩니다. 질투와 부러움에 가득 찬 여자 아이는 이번에는 아버지한테 가서 팰러스를 자기에게 달라고 요구합니다. 이 요청이 거절당하면 여자 아이는 자신이 아버지의 팰러스를 소유할 수 없다는 생각에 자신이 직접 아버지의 팰러스가 되겠다는 생각에 다다릅니다. 아버지의 총애를 독점하겠다고 방향을 선회한 것이죠. 여기서, 팰러스에 대한 부러움(envy)이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겠다는 욕망(desire)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것은 역설적이게도, 아버지의 현재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 그동안 여자 아이가 증오했던 어머니에 대한 동경으로 바뀌어 어머니를 이상적인 여성의 전형(model of desired woman)으로 생각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팰러스가 되고픈 욕망조차 아버지에 의해 거절되고 나면, 여자 아이는 공상속의 아버지(fantasmatic father)를 무성화(desexualisation)하고 더 이상 자기를 사랑해주길 욕망하지 않습니다. 그때부터 여자 아이는 더 이상 신비화된 팰러스에 기대어 자신의 성 정체성을 가늠하지 않고 현실 속의 아버지를 인간으로서 바라보게 되고, 자신의 자궁(uterus), 질(vagina)을 발견하게 되고 여성이라는 독립적 성 정체성을 갖게 됩니다. 그러면서 점차적으로, 사랑하는, 사랑해주는 동반자를 욕망하게 되고, 그의 아이를 가지기도 욕망하는 것으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마무리하게 됩니다. 남성의 팰러스가 남성다움으로 귀착되었다면, 여성의 팰러스는 결국 사랑으로 귀착됩니다.


결론


조심해야 할 것은, 팰러스와 페니스를 혼동하여 마치 선천적 성의 우열이라도 있는 양 각종 경전이나 부조리한 관습 등을 들먹거리며 여성에 대한 남성의 우월성을 전제하는 태도입니다. 여성을 거세된 남성쯤으로 바라보는 태도가 남성 뿐 아니라 여성들 사이에도 만연한 것은 아닌지, 그래서 여성의 남성에 대한 서번트십만을 가르치며 마치 그것이 여성의 생물학적 요인으로 말미암은 자연스런 덕목인 것처럼 치장하려는 의도가 우리 일상뿐만 아니라 학계의 진지한 토론 속에서조차 은연중에 드러나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야 할 듯합니다. 그러한 일부의 생각은 팰러스와 페니스에 대한 근원적인 이해 부족의 소치일 뿐입니다. 실제적 거세란 존재하지 않으며, 상징적 거세만이 있을 뿐입니다. 상징적 거세는 남성과 여성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극복하여 진정한 사회인으로 뻗어나가는 데에 필수적인 과정이고, 인간의 언어화, 구조화 과정입니다. 페니스는 남성과 여성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발단이 되는 생물학적 기관의 이름일 뿐이지만, 팰러스는 페니스에 대한 상상계적 산물임과 동시에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통해 구조화된, 인간이 살아가면서 가장 소중한, 그리고 그것을 위해 목숨까지 내놓을 수 있는 그 무엇을 나타내는 이름입니다. 이것은 더 이상 성차와 성적 함의를 담을 필요가 없는 기표로서, 어떤 때는 히스테리와 노이로제의 원천이 되기도, 또 어떤 때는 인간의 예술적, 학술적, 기술적 추동력의 원천이 되기도 하는 그 무엇입니다.


끝.


<참고 도서 : Oedipus : The most crucial concept in psychoanalysis, Juan-David Nasio, SUNY press,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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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원문 : 김석수철학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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