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6:1-13
-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사 고향으로 가시니 제자들도 따르니라
- 안식일이 되어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많은 사람이 듣고 놀라 이르되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것을 얻었느냐 이 사람이 받은 지혜와 그 손으로 이루어지는 이런 권능이 어찌됨이냐
-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못함이 없느니라 하시며
- 거기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어 다만 소수의 병자에게 안수하여 고치실 뿐이었고
- 그들이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더라 이에 모든 촌에 두루 다니시며 가르치시더라
- 열두 제자를 부르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시고
- 명하시되 여행을 위하여 지팡이 외에는 양식이나 배낭이나 전대의 돈이나 아무 것도 가지지 말며
- 신만 신고 두 벌 옷도 입지 말라 하시고
- 또 이르시되 어디서든지 누구의 집에 들어가거든 그 곳을 떠나기까지 거기 유하라
- 어느 곳에서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거기서 나갈 때에 발 아래 먼지를 떨어버려 그들에게 증거를 삼으라 하시니
- 제자들이 나가서 회개하라 전파하고
- 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발라 고치더라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막6:3)
예수님은 가버나움을 떠나 제자들과 함께 고향으로 가셨다.
예수님의 고향은 나사렛이다.
예수님은 다른 지방에서 하셨던 것처럼 회당에서 가르치셨고, 그 당시 회당에 있었던 많은 사람들은 30년간 봐 왔던 예수님의 가르침에 놀랍다는 반응을 보인다.
예수님에게 어떻게 그런 지혜와 권능이 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어떻게 태어났고 자랐는지 그 집안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예수님 당시의 나사렛은 40~100가구 정도이고 인구는 200~500명 수준의 매우 작은 도시로 알려져 있다.
100가구라고 해도 집의 구성원과 집의 내력쯤은 서로 다들 알 수밖에 없는 규모다.
작은 시골 동네는 서로 집의 숟가락이 몇개인지도 알고 지내는 정도로 가깝고 친밀하다.
나사렛이 그랬고, 마을 주민들은 빵 굽는 공용 화덕에 모여 서로의 집안 이야기와 자녀들 이야기로 늘 수다를 떨었을 것이다.
그러니 예수가 누구인지, 어떤 아이였는지, 그의 형제와 누이들이 어떤 아이들이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사람들이 그 동네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예수님을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라고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
예수님은 아버지 요셉을 따라 목수의 일을 배운 듯 하다.
카톨릭에서는 마리아가 성령으로 예수님만을 낳았고, 그 후로도 계속 동정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예수님의 형제들을 사촌이라고 주장한다.
동방정교회에서도 마라아가 평생 동정녀여야 한다는 전통적인 신앙을 설명하기 위해 예수의 형제들과 누이들은 요셉의 전처에서 낳은 자식들이라고 주장한다.
가설을 세우고 억지로 맞추는 식이다.
예수님의 형제들 중에 야고보는 야고보서를, 유다는 유다서를 기록했다.
전승에 의하면 시몬은 야고보의 뒤를 이어 예루살렘 교회의 두 번째 감독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요셉과 다른 누이들에 대해서는 전혀 알 수가 없다.
예수님의 형제들도 처음에는 예수님을 신뢰하지 않았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 사건을 경험한 이후로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삶을 살게 된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7에서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라는 기록을 남김으로 예수님께서 부활 이후에 야고보를 찾아가셨음을 알려주고 있다.
야고보는 예루살렘 교회의 최고 지도자가 되었고, 중요 회의 때마다 중요한 결정을 내렸으며, 훗날 야고보는 돌에 맞아 순교한 것으로 전해진다.
야고보는 죽는 순간에도 예수님을 자신의 형제로 이야기하지 않고 '주님'으로 고백하며 목숨까지 내 놓았다는 것은 초대교회의 매우 강력한 역사적 증언 가운데 하나이다.
나사렛에서 예수님은 환영받지 못하셨다.
그래서 기적도 많이 행하시지 않으셨고, 소수의 몇몇 병자들만 고치셨다고 기록한다.
사실상 예수를 가장 잘 안다고 생각했던 마을 사람들은 예수를 배척했다.
심지어 그의 형제들 조차도 처음엔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
우리의 앎이라는 것이 때로는 하나님을 경험하는데 방해가 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지식이나 재물이 하나님을 경험하고, 믿음 가운데 서는 것을 방해하기도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
후에 예수님은 제자들을 둘씩 보내며 전도하게 하셨고 제자들에게 귀신을 쫓고 병을 고치는 능력을 주셨다.
그 대신 제자들에게 양식이나, 배낭이나, 돈이나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말라고 하셨다.
이는 하나님만의 의지하라는 일종의 훈련으로 여겨진다.
예수님도 하나님의 일을 함에 있어서 그 어떠한 것도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빈 손으로 가라고 하셨다.
먹을 게 없는 절박함 속에서, 잘 곳이 없는 절박함 속에서, 가진 게 없는 절박함 속에서 오직 예수님께서 주신 능력으로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다.
그 가운에 제자들을 맞아들이는 사람들의 집에 거하고, 그들에게 삶을 의탁하라고 하셨다.
오늘날의 선교는 어쩌면 가진게 너무 많아서 문제가 되는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지혜자 아굴은 이렇게 기도했다.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잠30: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