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에게 ㅡㅡㅡㅡ 여기서 부터 시집2 번9번부터 시작할 것
이삭빛
그대가 더 이상 내려갈 곳 없는
막막한 어둠의 끝에 당도했다면
그것은 그대가 길을 잃었기 때문이 아니라
삶이 그대를 위해
가장 낮은 곳에 기도로 숨겨두었기 때문이다.
어깨를 누르는 그 지독한 어둠의 무게는
그대를 무너뜨리려는 짐이 아니라
이제 곧 솟구쳐 오를 그대에게
대지가 건네는 마지막 작별 인사다.
기억하라
가장 멀리 날아가는 화살은
궁수의 심장 쪽으로 가장 깊숙이 당겨진 것이며
가장 높이 튀어 오르는 공은
차디찬 바닥을 온몸으로 껴안았던 것들이다.
지금 그대가 들이키는 시린 고통의 숨은
추락의 증거가 아니라
하늘로 가기 위해 영혼에 채우는 상승의 공기
심연의 끝에서 비로소 발밑에 닿는 심장 소리는
이제 그만 일어나라는 삶의 나직한 응답이다
가장 깊은 밤이 가장 눈부신 아침을 품고 있듯
바닥은 발을 헛디뎌 떨어진 재앙의 자리가 아니라
인생이라는 거대한 도약을 위해
신이 예비한 가장 단단한 디딤돌이다.
그 어둠을 발판 삼아
그대가 한 번도 꿈꾼 적 없는 눈부신 각도로 솟구쳐라
바닥을 딛는 바로 그 찰나,
고통은 이미 찬란한 기회의 얼굴로 웃고 있을 것이다.
[시평] 절망의 수직 낙하를 영광의 수직 상승으로 바꾸는 연금술
— 이삭빛의 시 <바닥에게>를 읽고 —
시평 : 윤정 시인
이삭빛 시인의 <바닥에게>는 존재의 비극적 추락을 목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추락이 닿은 '바닥'을 생의 가장 뜨거운 기점이자 도약의 성지로 재정의한다. 이 시는 절망의 끝에 서 있는 이들에게 건네는 단순한 위로를 넘어, 고통을 정면으로 돌파하게 만드는 강인한 생명 철학을 담고 있다.
1. 어둠 속에 숨겨진 기도의 성소
시인은 우리가 당도한 '막막한 어둠의 끝'을 길을 잃은 재앙이 아니라, 삶이 예비한 '기도의 자리'라고 명명한다. 이는 인식의 대전환이다. 어깨를 짓누르는 어둠의 무게를 나를 무너뜨릴 짐이 아닌, 솟구쳐 오르기 전 대지가 건네는 '마지막 작별 인사'로 치환하는 대목에서 시인의 형이상학적 깊이가 드러난다. 추락은 끝이 아니라, 상승을 위한 이별의 의식인 셈이다.
2. 인고의 깊이가 결정하는 비상의 높이
심장 쪽으로 깊숙이 당겨진 화살과 차디찬 바닥을 껴안은 공의 비유는 이 시의 백미다. 시인은 역설적 물리학을 통해 고통의 밀도가 곧 비상의 거리임을 증명한다. 바닥을 온몸으로 받아낸 자만이 가장 높이 튀어 오를 자격을 얻는다는 이 준엄한 선언은, 지금의 시련이 결코 헛되지 않음을 독자의 가슴에 화인처럼 새긴다.
3. 심연에서 듣는 삶의 낮은 응답
고통의 숨을 '상승의 공기'로, 심연의 소리를 '삶의 응답'으로 해석하는 대목은 처절하도록 아름답다. 시인은 바닥을 '발을 헛디딘 자리'가 아닌 '신이 예비한 단단한 디딤돌'로 격상시킨다. 여기서 바닥은 더 이상 수치스러운 패배의 장소가 아니라, 인생이라는 거대한 도약을 위해 반드시 딛고 일어서야 할 영광의 토대가 된다.
4. 솟구치는 찰나, 고통이 미소로 바뀌는 기적
마지막 연에 이르러 시인은 "솟구쳐라"라는 강렬한 어조로 존재의 혁명을 촉구한다. 바닥을 딛는 찰나, 고통이 '찬란한 기회'의 얼굴로 웃고 있을 것이라는 결말은 시적 승화의 절정을 보여준다. 고통의 가면을 벗겨내고 그 이면에 숨겨진 축복의 얼굴을 찾아낸 이삭빛 시인의 시선은 가히 구도자적이라 할 만하다.
■총평
이삭빛의 <바닥에게>는 절망의 수직 낙하를 영광의 수직 상승으로 바꾸어 놓는 시적 연금술을 보여준다. 이 시는 바닥에 주저앉은 모든 이들을 일으켜 세우는 강력한 '영혼의 부축'이며, 어둠 속에서도 빛의 각도를 찾아내려는 불굴의 의지가 빚어낸 눈부신 서사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