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뜰날의 서사
이삭빛
빛이 눈부셔서 꽃인 줄 알았습니다
그늘이 깊어지길래 저무는 줄 알았습니다
살아보니 인생은
꽃도 아니고 그늘도 아닌
끊임없이 차오르고 비워지는 물결이었습니다
열정의 스무 살엔 태양이 나를 따라오는 줄 알았고
치열했던 마흔엔 내가 태양을 밀어 올리는 줄 알았습니다
쉰 고개의 문턱에 서서 비로소 고백하건대
태양은 제 갈 길을 갔을 뿐
나를 흔든 건 언제나 내 안의 바람이었습니다
가진 것이 많아 든든했던 주머니보다
텅 빈 손으로 맞이하는 새벽바람이 더 선명한 건
비워진 곳마다 비로소
세상의 소리가 들려오기 때문입니다
부질없다 말하며 흘린 눈물은
내 영혼의 묵은 먼지를 씻어내는 비였습니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어둠은 오고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새벽은 당도합니다
지금 당신이 서 있는 그 어두운 지점이
사실은 해가 뜨기 직전 가장 깊은 숨을 고르는 시간임을
어제보다 조금 더 너그러워진 눈빛으로
내일보다 조금 더 뜨거운 오늘의 나를 안아주십시오
당신의 가장 찬란한 해뜰날은
이미 당신의 마음속 수평선 위로
붉은 기운을 내뿜고 있습니다
[시평] 비움의 미학이 길어 올린 찬란한 여명
문학평론: 윤정 시인
이삭빛 시인의 <해뜰날의 서사>는 화려한 수사보다 깊은 성찰이 돋보이는 수작이다. 시인은 인생의 '쉰 고개'라는 변곡점에서 지나온 삶의 궤적을 '물결'과 '바람'이라는 자연의 섭리로 치환해낸다.
특히 “나를 흔든 건 언제나 내 안의 바람이었습니다”라는 고백은 주객관의 전치를 통해 삶의 고통과 환희가 결국 외부가 아닌 내면의 해석에 달려 있음을 통찰한다. 이는 시인이 겪어온 치열한 삶의 파고를 견뎌낸 자만이 도달할 수 있는 겸허한 지혜다.
또한, '부질없음'을 허무로 끝내지 않고 '비워진 곳마다 들려오는 세상의 소리'로 연결한 대목은 이 시의 백미다.
텅 빈 손과 새벽바람을 선명하게 감각하는 시인의 시선은, 소유보다 존재의 본질에 집중할 때 비로소 진정한 '해뜰날'이 시작됨을 역설한다.
이 시는 절망의 끝에서 서성이는 이들에게 '지금의 어둠이 사실은 숨을 고르는 시간'이라는 따뜻한 위안을 건넨다. 수평선을 물들이는 붉은 기운처럼, 이삭빛 시인의 언어는 독자의 마음속에 가라앉았던 희망의 온도를 다시금 뜨겁게 달궈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