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삭빛의 질문에게

작성자코리아|작성시간26.06.21|조회수19 목록 댓글 0

질문에게 
 
​이삭빛 
 
​사랑이란 말은 너무 가볍고
삶이라는 날갯짓은 너무 무거워서
마음이 제 무게를 견디지 못할 때
하늘 한구석 외로운 눈썹처럼
새벽 달이 뜬다 
 
​가벼운 것은 바람의 영토로 흩어지고
무거운 것은 갯벌의 침묵 속에 가라앉는데
저 달은 어찌 저리 홀로 투명한가 
 
​그늘을 가져본 사람만이 빛의 문장을 읽듯
야윈 몸으로 어둠의 뼈를 갉아먹으며
달은 제 생을 지워 길을 낸다 
 
​모든 것을 다 잃었다고 생각했을 때
비움으로 가득 찬 자리가 비로소 붉어지고
가장 낮은 곳의 눈물을 닦으며
뜨거운 여명이 대지의 이마 위로 솟구친다 
 
​삶이란 내가 궁금하고
나는 다시 삶이 궁금해질 때
홀로 남겨진 고독의 정점에서
태양은 제 차가운 혀로 알려준다
어둠을 견딘 자만이 빛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음을 
 
​이제 어제의 나는 지는 달과 함께 저물고
상처 입은 자리에 돋아나는 새살처럼
나는 뜨는 태양 위에서 다시 태어난다 
 
​사랑은 이제 날아가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가장 깊은 절벽에 뿌리내리고
삶은 비로소 무거운 황홀이 되어
지상의 모든 그림자를 빛의 한가운데로 이끈다 
 
 
​[문학평론] 결핍의 심연에서 길어 올린 눈부신 존재론적 응답 
 
​— 이삭빛의 시 <질문에게>에 대하여 
 
​     시평 : 윤정 시인 
 
​이삭빛의 시 <질문에게>는 '가벼운 사랑'과 '무거운 삶'이라는 이분법적 고통에서 출발하여, 마침내 그 둘이 하나의 빛으로 수렴되는 존재의 부활을 극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시인은 인간이 마주하는 가장 근원적인 고독을 '새벽 달'이라는 야윈 상징에 투사하며, 비어 있음으로써만 가득 찰 수 있다는 역설의 미학을 완성한다. 
 
​특히 이 시에서 주목해야 할 지점은 '어둠의 뼈를 갉아먹으며 제 생을 지워 길을 내는 달'의 형상화다.
이는 단순한 자연의 순리가 아니다. 스스로를 소멸시켜 타자(태양)의 길을 여는 고귀한 희생이자, 상처 입은 자만이 도달할 수 있는 투명한 자기 성찰의 과정이다. 
 
시인은 '다 잃었다고 생각했을 때' 비로소 차오르는 여명을 통해, 상실이 곧 새로운 탄생의 전제 조건임을 선언한다.
​압권은 마지막 대목이다. 삶의 무게를 털어내려 애쓰는 대신, 오히려 그 무거움을 '황홀'로 승화시킨 지점은 이 시가 도달한 성숙의 정점이라 할 수 있다. 사랑을 허공에 날아가는 깃털이 아닌, 절벽 끝에 내린 강인한 뿌리로 재정의함으로써 시인은 절망의 그림자조차 빛의 중심으로 끌어안는 거대한 긍정의 에너지를 발산한다. 
 
질문이 곧 삶이고, 삶이 곧 대답이라는 이 잠언적 노래는 독자로 하여금 차가운 어둠조차 축복의 뿌리였음을 깨닫게 하는 눈부신 구원의 서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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