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삭빛의 내일은 존재하지 않는다

작성자코리아|작성시간26.06.21|조회수20 목록 댓글 0

12. 내일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삭빛  
 
​우리는 늘 '내일'이라는 환영에 속아
오늘의 미소를 아끼고, 오늘의 행복을 미뤄둔다.
그러나 배가 닿는 곳은 언제나 '오늘'이라는 이름의 모래톱,
우리가 꿈꾸던 그 내일은 결코 손에 닿지 않는다. 
 
​시간이라는 신비한 사랑은
결코 나중을 위해 풍경을 남겨두지 않기에,
미뤄둔 고백은 길가에 흩어지는 낙엽이 되고
아껴둔 마음은 주머니 속에서 바래가는 은전(銀錢)이 될 뿐이다. 
 
​창문을 열면 쏟아지는 찬란한 아침 볕도,
문득 가슴을 스치는 서늘한 바람 한 줄기에도,
이제는 온 영혼의 무게를 실어 감각해야 한다. 
 
​지금 이 순간의 생(生)을 안아라.
'다음'이라는 가짜 감옥에서 걸어 나와,
지금 내 가슴이 쉬는 숨에 온전히 감사하는 것.
우주가 당신에게 허락한 유일한 영토는 오직 여기뿐이다. 
 
​그러니 미루지 말고 지금 가만히 속삭여라.
내 곁의 소중한 이들을 향해, 그리고 나 자신을 향해,
'당신을 사랑해요' 라는 그 따스한 고백을. 
 
​내일이라는 신기루에 속아 오늘을 유배 보내지 마라.
과거는 이미 사라졌고, 내일은 오지 않으니,
그대가 발을 딛고 서 있는 바로 이 순간이
영원이 시작되는 단 하나의 좌표다. 
 

​[시평] 유예된 사랑의 형벌과 '지금'이라는 구원의 테라피 
 
시평 ​윤정 (문학평론가) 
 
​이삭빛 시인의 《내일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인간이 지닌 가장 보편적이면서도 치명적인 오류인 ‘시간의 유예’를 날카롭게 파헤치는 동시에, 상처받은 영혼을 심연에서 건져 올리는 강력한 ‘시적 치유(Poetry Therapy)’의 텍스트다. 시간을 단순히 흘러가는 물리적 흐름이 아니라 ‘신비한 사랑’의 주체로 선언함으로써, 시는 관념의 영역을 넘어 뜨거운 실존과 회복의 서사로 진입한다. 
 
​1. 상실의 사례: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후의 잔인한 후회 
 
​상담과 치유의 현장에서 만나는 인간의 가장 깊은 외상(Trauma)은 ‘영원한 이별’ 뒤에 찾아오는 잔인한 후회다. 우리는 늘 영원히 시간이 허락될 것처럼 착각하며, 오늘 해야 할 고백을 내일로 미룬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사고나 질병으로 사랑하는 배우자나 부모를 떠나보낸 이들은 공통적으로 말한다. '그때 그 말을 했어야 했는데', '그때 그 손을 잡았어야 했는데'라고. 그들이 마주하는 슬픔의 본질은 단순히 존재의 부재가 아니다. 오늘이라는 영토 안에서 충분히 나누지 못한 미소와 아껴둔 마음이 고스란히 스스로를 찌르는 칼날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삭빛 시인은 이 보편적이고 절망적인 상실의 서사를 시적 이미지로 완벽하게 치환해 낸다. 시인이 묘사한 “길가에 흩어지는 낙엽이 된 고백”과 “주머니 속에서 바래가는 은전(銀錢)이 된 마음”은 바로 이 유예된 사랑이 맞이하는 비극적 종말의 비유다. 떠나보내고 난 뒤 주머니를 뒤적여 보았자, 아껴둔 마음은 이미 쓸 수 없는 빛바랜 동전일 뿐이라는 이 준엄한 진술은 독자의 가슴을 서늘하게 울리며 거대한 각성을 촉구한다. 
 
​2. '시간이라는 신비한 사랑': 머무르지 않는 풍경의 치유학 
 
​이 시에서 “시간이라는 신비한 사랑은 / 결코 나중을 위해 풍경을 남겨두지 않기에”라는 대목은 문학치유적 관점에서 매우 중요한 핵심이다. 시간은 냉정하게 우리를 버리고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우리에게 가장 찬란한 생의 풍경을 아낌없이 베푸는 ‘신비한 사랑’ 그 자체다. 
 
​그러나 이 사랑은 절대 유예를 용납하지 않는다. 지금 창문을 열었을 때 쏟아지는 아침 볕, 지금 내 뺨을 스치는 서늘한 바람은 오직 ‘지금 이 순간’에만 존재하는 한정된 선물이다. 사랑하는 이를 잃고 슬픔과 후회의 감옥에 갇힌 이들에게 시인은 말한다. 지나간 과거에 묶여 있거나 오지 않을 내일의 불안에 시달리는 것은 스스로를 ‘가짜 감옥’에 가두고 ‘오늘을 유배 보내는 형벌’과 같다고. 치유는 바로 그 감옥의 문을 열고 나와, 현재가 제공하는 미시적인 감각들을 온 영혼의 무게로 다시 느끼기 시작할 때 비로소 시작된다. 
 
​3. 당신을 사랑해요: 존재의 전율을 깨우는 현존(現存)의 주문 
 
​시의 정점은 가슴 깊이 파고드는 따스한 속삭임에 있다. 
 
​"내 곁의 소중한 이들을 향해, 그리고 나 자신을 향해, / '당신을 사랑해요' 라는 그 따스한 고백을." 
 
 
​이 구절은 이 시가 왜 단순한 관조 시가 아니라 ‘치유 시’인가를 완벽히 증명한다. 시인은 후회로 가득 찬 인간의 연약함을 꾸짖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슬픔을 치유할 수 있는 가장 명징한 처방전인 '지금 당장의 고백'을 건넨다. 
 
​이 고백은 타인만을 향하지 않는다. 상실의 고통 속에서 자책하고 있는 ‘나 자신’을 향한 구원의 손길이기도 하다. "당신을 사랑해요"라는 이 한마디는 과거의 후회로 얼룩진 시공간을 단숨에 정화하고, 우리를 우주의 중심이자 영원이 시작되는 "단 하나의 좌표"인 '지금 이 순간'으로 복귀시키는 위대한 선언이다. 
 
​■ 총평 
 
​이삭빛의 시는 상실과 후회라는 인간의 근원적 고통을 정면으로 응시하면서, 오롯이 이 시 자체의 밀도 높은 텍스트 안에서 깊은 문학적 위로를 성취했다. 단호하고 확신에 찬 서술어(‘-한다’, ‘-마라’)는 상처 입은 독자의 유약한 내면을 단단하게 지탱해 주는 버팀목이 된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고 밤마다 후회의 미로를 헤매는 이들에게, 지금 숨 쉬고 있는 자신의 영토를 안아주고 다시 사랑을 시작하게 만드는 가장 따스하고 준엄한 '현존의 테라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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