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삭빛의 떠나는 뒷모습

작성자코리아|작성시간26.06.21|조회수18 목록 댓글 0

14.

떠나는 뒷모습 
 
​시인 이삭빛 
 
​낙엽에게도 날개가 있다.
가지 끝에 매달려 온몸으로 바람을 맞받으며
허공 속에서 홀로 온몸을 달구던
붉은 이별의 날개가 있다. 
 
​가을 숲길에 서서
바닥에 누운 것들의 이름을 가엽다 마라.
바스러지는 저 바스락거림 아래로
가장 눈부신 새 봄이 자라고 있나니,
깃털을 꺾어가며
기꺼이 떨어져 내리는 저 낙엽도
뿌리의 깊은 갈증을 채워줄 먼 비행을 멈추지 못한다. 
 
​[시평] 아픔을 아는 이가 건네는 가장 다정한 눈물 한 방울
​— 이삭빛, 〈떠나는 뒷모습 ㅡ 1〉에 대하여 
 
​시평 윤정 문학평론가 
 
​1. 외롭고 상처받은 이들을 품어 안는 온기의 시학 
 
​이삭빛 시인의 시학이 지닌 가장 큰 힘은 화려한 수사나 거창한 사상이 아니라, 지친 인간의 마음에 가만히 손을 얹어주는 ‘다정한 연민’에 있다. 우리의 삶에서 이별을 맞이하거나 무언가를 떠나보낸 뒷모습은 언제나 외롭고 쓸쓸하다. 시인은 계절의 끝자락에서 홀로 떨어져 내리는 낙엽을 바라보며, 그 안타까운 뒷모습이 결코 허무한 사라짐이 아님을 이야기한다. 이 시는 상실의 아픔으로 가슴이 먹먹해진 세상의 모든 이들에게 건네는 다정한 위로이자, 우리 삶의 아픈 순간마저도 따스하게 보듬어 안으려는 시인의 인간적인 선함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작품이다. 
 
​2. 홀로 견뎌낸 시간들이 만들어낸 ‘이별의 날개’ 
 
​첫 연에서 시인은 “낙엽에게도 날개가 있다”라며 낙엽의 등 뒤를 가만히 쓸어내린다. 우리는 흔히 떨어지는 잎을 보며 그저 바람에 쓸려가는 힘없는 존재로만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시인의 눈에 비친 낙엽은 다르다. 높은 가지 끝에서 차가운 바람을 온몸으로 맞서고, 허공 속에서 외롭게 제 몸을 붉게 달구며 이별을 준비하던 뜨거운 시간이 있었던 존재다. 이는 마치 자식을 품 안에서 키워내고 마침내 더 넓은 세상으로 눈물지으며 걸어 나가게 하는 어머니의 마음처럼,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비워내는 인간적인 결연함과 용기를 보여준다. 홀로 슬픔을 삼키며 의연하게 서 있는 서글픈 뒷모습을 시인은 낙엽의 ‘붉은 날개’로 따뜻하게 덮어준다. 
 
​3. 바스락거리는 슬픔 속에 숨겨둔 새 봄의 약속과 헌신 
 
​2연으로 이어지며 시인은 가을 숲길 바닥에 쓰러진 낙엽들을 가엽게만 보지 말자고 나지막이 타이른다. 프랑스의 문학가 알베르 카뮈는 "겨울의 한복판에서, 나는 마침내 내 안에 결코 꺾이지 않는 여름이 있음을 알았다"라고 말하며 삶의 회복력을 이야기했다. 이삭빛 시인 역시 낙엽이 밟히며 내는 ‘바스락’ 소리를 소멸의 비명이 아니라, 대지 아래 숨죽여 자라나는 ‘새 봄’을 조심스럽게 깨우는 다정한 노크 소리로 읽어낸다. 
 
​특히 2연의 후반부에서 낙엽이 제 몸의 깃털을 꺾어가는 아픔을 견디면서도 비행을 멈추지 않는 이유가 드러난다. 그것은 바로 자신을 길러준 ‘뿌리의 깊은 갈증’을 채워주기 위함이다. 자기 몸을 다 태워 세상을 밝히고 눈물처럼 촛농을 흘리며 사라지는 촛불의 온기처럼, 낙엽은 땅에 내려앉아 스스로 부서짐으로써 나무를 다시 살려내는 따뜻한 밑거름이 된다. 나보다 타인의 아픔을 먼저 살피고, 내 슬픔을 쪼개어 누군가의 갈증을 채워주려는 이 눈물겨운 헌신은 이삭빛 시인이 늘 시를 통해 실천해 온 ‘휴머니즘’의 아름다운 절정이다. 
 
​4. 상처 입은 이들의 등을 어루만지는 위로의 미학 
 
​결국 이 시에서 ‘떠나는 뒷모습’은 슬픔의 잔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아픔을 겪어본 이가 또 다른 상처 입은 존재를 위해 스스로를 내어주는 사랑의 뒷모습이다. 상실과 이별로 마음이 시린 이 시대의 모든 이들에게, 시인은 낙엽의 날개를 빌려 다정하게 어깨를 토닥인다. 당신이 걷고 있는 그 쓸쓸한 퇴장의 길은 외로운 실패가 아니라, 누군가의 삶을 다시 꽃피우기 위한 가장 눈부신 동행이라고 말이다. 이 시는 거칠고 차가운 세상 속에서 지친 영혼을 위로하고, 인간이 인간에게 줄 수 있는 가장 따스한 눈물 한 방울의 가치를 일깨워주는 참으로 고마운 치유의 서정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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