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밤
우한용 (시인, 소설가/서울대 명예교수)
산봉을 넘어 가는
고라니 울음에
달빛이 흔들린다.
아래 동네 개들도
발이 시린지
하늘의 별을 짖는다
흔들리던 달빛
창에 어룽져
은침으로 댓잎에 박혔다.
[시평] 고적한 겨울 밤, AI 시대에 되찾아야 할 우주적 교감과 서정의 미학
- 우한용 교수님의〈겨울 밤〉을 읽고
이삭빛 (시인·문학박사)/문학평론가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옙스키는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김영붕 박사님의 뜻깊은 주선과 소개로 노상근 박사님, 홍성학 시인님과 함께 전주를 찾은 대하소설의 거장이자 서울대 명예교수이신 우한용 교수님을 모시고 만남을 가졌던 그 특별한 시간, 필자는 문학이 지닌 영원한 생동감과 연대의 깊이를 온몸으로 느꼈다. 그 귀한 만남의 여운 속에서 필자가 다시 펼쳐 든 시 〈겨울 밤〉은 단 몇 줄의 압축된 언어로 세상의 본질적 아름다움을 건넨다.
특히 우리 문단에서 굵직한 소설가로 너무나 유명한 우한용 교수님이 시의 형식을 빌려 건네는 이 짧은 문장들은, 대하소설 속 거대한 서사가 압축된 영혼의 결정체와도 같다. 생성형 AI가 인간의 서사마저 순식간에 대체하고, 고도의 디지털 문명이 도리어 아날로그적 고독을 심화시키는 오늘날, 필자는 이 시가 기술적 수치로 환산할 수 없는 원초적 서정의 세계를 깨우고 있음을 직감한다. 마치 메마른 콘크리트 틈새를 뚫고 피어나는 한 송이 들꽃처럼, 이 작품은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왜 귀한 정신적 자산이자 시사적 경종이 되는지 우 교수님과의 뜻깊은 만남을 기념하며 필자의 문학적 안목으로 규명해보고자 한다.
필자가 주목한 이 시의 전반부는 겨울 밤의 적막을 깨는 자연의 소리를 통해 우주적 흔들림을 감각적으로 시각화하는 지점이다. 산봉을 넘어가는 고라니의 울음소리는 단순한 동물의 외침에 그치지 않고, 하늘의 달빛을 흔드는 거대한 파동으로 확장된다. 작품 속 화자의 눈에 비친 이 장면은 마치 "고요한 호수에 던져진 하나의 돌멩이가 파문을 일으키듯", 미미한 존재의 울림이 거대한 우주적 배경과 조화를 이루는 극적인 순간으로 다가온다. 무분별한 개발과 기후 위기로 삶의 터전을 잃어가는 야생 생명체의 서글픈 울음과 빛의 일렁임을 포착한 이 대목에서, 필자는 완벽한 디지털 알고리즘으로는 결코 계산해 낼 수 없는 인간과 자연의 생태적 연결성을 서정적인 전이로 읽어낸다. 차가운 데이터의 장막을 걷어내고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는 이 호흡은 오직 인간의 문학만이 지닌 고유한 특권이다.
2연에서 필자의 시선이 머문 곳은 산골 마을의 서사적 풍경으로 이동하며 소설가로서의 치밀한 묘사력이 빛을 발하는 대목이다. 발이 시려 하늘의 별을 향해 짖는 개들의 모습은 겨울 밤의 매서운 냉청(冷淸)을 여실히 드러낸다. 여기서 '별을 짖는다'는 시적 화자의 표현은 고립된 존재들이 저 높은 우주적 존재와 소통하고자 하는 처절하면서도 아름다운 몸짓이다. 소설가로서 인간사 전반을 세밀하게 관조해 온 대가의 시선이기에, 이 짧은 묘사 속에서도 생명을 향한 뜨거운 서사가 전해진다. 효율성과 생산성만을 강조하는 기술관료주의 사회에서 소외된 채 추위라는 근원적 고통을 겪는 미물들을 향해, 우한용 교수님이 보내는 따스한 시선이 필자의 마음에 깊이 와닿는다.
프롬프트 입력어로는 결코 재현할 수 없는 이 생명 연민의 태도는, 감정이 거세된 포스트휴먼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필자가 던지고 싶은 깊은 도덕적 울림이기도 하다.
마지막 연에 이르러 시적 긴장감은 절정에 달하며, 흔들리던 달빛이 창에 어룽져 '은침(銀針)'이 되어 댓잎에 박히는 응축의 미학을 선보인다. 이 정경은 필자에게 한 폭의 차가운 수묵화가 눈앞에 펼쳐지는 듯한 시각적 경이로움을 선사한다. 거시적인 인간 삶의 서사적 궤적을 치밀하게 좇던 소설가 우 교수님은, 이제 시인으로서 미시적인 댓잎의 은침에 우주의 온 빛과 광활한 서사를 단숨에 담아내고 있다. 그 정교한 미학은 마치 밤새 내려앉은 서리가 나뭇가지 위에 눈부신 수정궁을 짓는 것처럼 섬세하다. 차가운 디지털 스크린의 픽셀과 가상현실이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이 정교한 생명 감각의 조화는, 필자가 보기에 인간의 손을 넘어선 신비로운 예술적 성취 신공귀부(神工鬼斧)의 경지라 평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결론적으로 소설가로서 한 시대를 풍미해 온 우한용 교수님의 〈겨울 밤〉은 차가우면서도 투명한 정신의 공간을 창조해 낸 현대시의 수작이라고 필자는 확언한다. 서사문학의 거장이 시의 형식으로 건넨 이 서정의 세계는, AI 기술이 고도화되고 삭막한 시사적 현안들이 산적할수록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결국 '아날로그적 교감 능력'임을 역설하고 있다. 새벽녘의 차가운 이슬이 대지를 적시듯, 귀한 분들과 함께 전주에서 나눈 이번 만남을 통해 확인한 문학적 교감은 기계와의 공존 속에서 인간 소외를 느끼는 현대인들에게 영혼을 어루만지는 시치유(詩治癒)적 위안을 안겨줄 것이라 믿으며, 이 시가 AI 시대 속에서 인간 문학의 영원한 가치를 증명하는 든든한 이정표로 빛나기를 바란다.
겨울 밤
우한용
산봉을 넘어 가는
고라니 울음에
달빛이 흔들린다.
아래 동네 개들도
발이 시린지
하늘의 별을 짖는다
흔들리던 달빛
창에 어룽져
은침으로 댓잎에 박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