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금의 시대는 매월 남편들이 월급을 받게 되면 그 돈은 고스란히 주부의 저축통장으로 전액 송금되는 세상이다. 그런데 남편들의 월급이 언제부터 주부들의 통장으로 송금되는 시작되었는가를 내용을 아는 남편들과 주부들은 얼마나 될까?
그것은 국회를 통한 의결사항도 아니고,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재임시절 초기에 전대통령이 불문율로 마치 대통령령이듯 공무원 사회를 향한 강력한 ‘엄명’에 의해 시작되었고, 이어서 전 월급사회에 퍼진 것이다.
전대통령의 엄명이 있기 전 월급사회의 남편들은 월급봉투를 받기도 전에 가불해서 술값 등으로 탕진하여 월급날이면 부인에게 빈 봉투나 아니면 소액의 월급봉투를 내주기가 비일비재여서 월급날은 부부의 고성시비가 떠들썩한 가정불화가 자심 했었다.
이제 한국사회는 남편들이 월급봉투에 손을 대기는 커녕 보지도 못하고 주부들의 통장으로 송금되는 것을 당연시 하는 세상이 되었다. 월급이 많고 적고 간에 주부들은 송금받는 월급은 곰곰 떠져가며 가계부(家計簿)를 적는데 희망이요, 즐거움이 되었다. 따라서 전두환 대통령은 한국주부들에게 남편 월급에 대한 희망을 갖게 해주어 주부들은 기립박수를 쳐 환호할 일이다.
▲2008년, 부산 청사포 해월정사 큰법당에서 이성철대종사 열반제일에 추모사를 하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법철의 논단(www.bubchul.kr) | |
전대통령이 남자의 월급과 가정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여단장 시절이었다고 한다. 아내가 없는 즉 가정이 없는 총각 대위가 가정이 있는 대위에게 돈을 빌리는 것을 알았다. 물론 가정이 있는 대위가 월급 외에 부모에게 받은 유산이나, 여유돈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군대의 월급만으로 사는 같은 대위들이었다. 총각대위는 자신의 호기(豪氣)와 유혹, 주위의 권유로 인해 월급을 가불해가면서까지 받아 술자리 등 낭비벽에 월급 때면 빈 봉투요, 오히려 주위에 급전(急錢)을 빌려야 하는 딱한 신세였든 것이다.
반면에 가정에 충실한 대위는 월급을 전액 아내에게 전달하여 화목한 가정을 이루었다. 그때부터 전대통령은 남자의 월급은 전액 가정으로 직행해야 한다는 것을 절감했다. 월급 전액을 아내의 통장에 전해주는 엄명은 전대통령이 여단장 시절의 부대 내에서 첫출발이었다.
일반사회에도 호기(豪氣), 유혹, 주위권유의 음주, 도박성 등으로 월급이 통째로 날아가 버리는 남편들은 비일비재(非一非再)하다. 아내의 손에 전달되지 않는 남편의 월급 때문에 처자는 굶주려야 하고, 무엇보다 부모를 봉양하는 사람은 불효의 표본이었다. 또 자녀들은 학비가 없어 진학과 참고서적조차 사볼 수도 없었다. 급기야 낭비된 월급에 대한 불만이 폭발하여 아내가 집을 나가고, 이혼이라는 가정파탄이 나는 이야기는 흔해 빠진 이야기다. 돈을 낭비한 남편은 돈 때문에 몹쓸 궁여지책(窮餘之策)으로 범죄를 자행하여 인생을 망치는 경우도 있다.
전대통령이 남편들의 월급을 주부의 통장으로 직행하도록 엄명한 뜻은 두 가지였다. 첫째, 저축성의 장려요, 둘째, 가정의 화목을 위한 배려였다. 초기에는 자신의 월급을 제마음대로 쓴 남편들의 일부는 반발이 심했다. 전대통령을 원망하고 독재자의 강압이라고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 자신에게 고유권한이 있는 월급을 마음대로 쓰지 못하고, 오히려 주부에게 작은 일일 용돈을 받아 오는 것에 반발한 것이다. 그러나 남편들의 사회에서 훗날 전대통령의 엄명이 가정과 나라를 위한 엄명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순응했다.
돈이 있는 곳에 힘이 생기는 법이다. 남편의 빈 봉투같은 월급에 희망을 잃은 주부들이 월급전액을 송금받자 힘이 생겼다. 또하나의 여권신장(女權伸張)을 전두환 대통령이 해주었다고 볼 수 있다. 월급봉투를 쥐고 있는 주부는 남편과 자녀들과 사회에서 존중했고 권위조차 있었다. 모든 상인들은 남편보다는 주부에게 아부해야 했다.
제 5공화국이 시작되면서 전두환 대통령은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분야에 정화를 하고, 민생의 규제를 풀었다. 연좌제의 폐지, 신원조회의 간소화, 전과기록 말소, 해외여행 자유화, 민원서류의 간소화, 야간통금 완전해제 등등이다.
야간통금해제는 당시 사법부와 경찰의 반발이 심했다. 통금해제는 범죄 상승과 직결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 대통령은 과감히 통금해제를 단행했다. 결과는 범죄상승은 기우였다. 한국인 모두에게 자유를 안겨주었고, 직장인들의 귀가 수준이 향상되었다.
특히 흡혈충(吸血蟲)같이 선남선녀를 괴롭히는 사회악 깡패 등의 정화는 전두환 대통령만이 할 수 있는 ‘단호한 조치’였다. 상기도 기억이 나는 것은 뉴스 시간에 전대통령이 나와 엄숙한 표정과 단호한 음성으로, “국헌을 문란하여 사회혼란을 가중 시키면, 본인은,(이때 입은 한일자로 굳게 다물었고 눈이 사납게 빛났다) 부득히 ‘단호한 조치’를 취할 수 밖에 없다”는 말이었다. 그 단호한 조치라는 말에 범죄자들은 도주하거나 범죄를 포기, 애써 선량한 척 하기도 했다.
또 전대통령은 대한민국 선진화의 첫 출발점인 올림픽을 유치했다. 당시 외환 보유고의 최상승은 물론, 한강 준설공사(浚渫工事)를 통해 오염으로 다 죽다시피한 한강을 살려내고, 한강을 국민들의 놀이터요, 관광지로 만들어 주었다. 무엇보다 전대통령은 민주화를 위해 장기집권을 꾀하지 않고 떠나갔다. 그러나 민주화를 부르짖는 문민정치인들은 권부를 떠나간 전대통령을 향해 뒤통수를 치듯 사상 최대의 모략중상 흑색선전을 가했다.
전두환 대통령에 대한 흑색선전의 정점은 ‘광주사태’와의 연계이다. 전대통령이 5,18 때 광주시민을 다 죽이려 음모하고, 명령했다는 흑색선전이다. 당시 국군 통수권자는 최규하 대통령이고, 계엄사령관은 이희성 대장이었다. 어떻게 보안사령관인 전두환 장군이 마음대로 계엄군에게 광주시민을 향해 뱔사 명령을 할 수 있다는 것인가? 군대를 갔다온 사람은 군지휘체계를 알 수 있어 전대통령을 향해 극도의 모략중상 흑색선전을 한다는 것을 통찰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국군이 광주사태를 조기 진압하지 못했다면? 광주사태는 제2의 한국전의 기폭제가 되었을 것이라는 것이 대다수 애국지사들의 분석과 결론이다. 따라서 광주 진압군으로 간 애국장병은 요원의 들불같이 번질지 모르는 초기반란을 잠재운 대한민국의 영웅이요, 유공자들로 기립박수를 받아야 마땅하다. 또, 광주시민이 장갑차 등으로 무장하여 국군을 향해 총격전을 벌이는 것이 온당한 민주화 운동이었다면 왜 서울, 부산, 대전, 대구 등 전국적으로 동조하지 않고, 우려속에 국군이 조기진압을 바랐을 것인가?
DJ, 노무현은 어떤 정치로 결론을 맺었나? 그들은 첫째, 조국통일을 빙자, 대북퍼주기를 하여 북한의 북핵으로 대한민국을 겨냥케 하는 선군무장을 돕는 국가반역죄를 자행했고, 둘째, 국민에게 동의를 구하지 않고, 대통령의 권력으로 국민혈세를 국내 종북좌파들을 지원했고, 셋째, 본인과 친인척 등이 천문학적 부정축재를 하고, 청와대를 떠난 것은 대한민국 아동주졸(兒童走卒)도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진짜 민주화를 위해서는 민주팔이로 대통령이 되어 국가반역질, 종북 좌파들의 양성, 도적질하는 시대를 이제 과감히 마감해야만 대한민국의 미래가 있다는 것을 확신해야 한다. 특히 정치계에 혁명적인 개혁을 하여 대한민국을 망치는 종북 좌파들은 정치계에서 투표로서 몽땅 축출해야 한다는 것을 강력히 주장하는 바이다.
끝으로, 작금의 대한민국에는 북한이 조종하는 국내 종북 좌파들의 민주화 타령과 흑색선전에 기만당해 진짜 대한민국의 영웅적 지도자인 이승만 대통령, 박정희, 전두환 대통령을 외면하여 매도하는 자들이 부지기수이다. 정신 나간 똥개 한 마리가 폐폐(吠吠)하면, 동네 개떼가 마구 짖어대듯이, 대한민국의 영웅들을 모욕해대는 자들이 있는 것이다. 이제 계사년부터는 대한민국 영웅들이 제자리에서 대우받는 시대를 열기를 국민 여러분께 간절히 바라면서, 전국의 남편 월급전액을 송금받는 아내들에게 월급봉투가 직행하게 된 원인이 전두환 대통령이었다는 것을 알고나 살자는 취지에서 재강조한다. ◇
李法徹(bubchul.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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