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의 비겁하고 음흉한 5.18북한군 거짓말
전두환의 1995년 검찰조사에 대한 “1980년 5월 북한군 동향” 답변은 당시 박정희 시해사건 합동수사본부장과 중앙정보부장서리를 겸임했던 실세가 혼란스러운 국정공백기간에 대북경계 및 국방의 정신적 자세가 참으로 올바르게 갖추어져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김대중을 정점으로 한 재야세력이 무력시위를 내세워 최규하 과도정부를 무너뜨리고 권력을 획득하려는 음모를 간파했던 예리한 정세파악과 함께 전두환의 대내외적 정국수습 과정은 참으로 괄목할만한 그의 업적이라고 하겠다.
전두환의 1980년 5월 북한동향 보고서에 나타난 “북한군 후방교란 예측”
전두환이 1980년 5월 북한군동향을 어떻게 파악하고 있었는지 그가 1995년 검찰의 질문에 서면으로 답변한 내용으로부터 알아본다.
검찰의 질문: (1995년 5월1일 서울지방검찰청 공안1부 장윤석 부장검사)
이른바 신 군부가 근거도 희박한 북괴의 남침 설을 강조한 것을 정권장악을 위한 조치들인 비상계엄 전국 확대, 국회해산, 비상기구 설치, 정치활동규제 등의 명분을 찾기 위한 것이었다는 주장에 대하여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전두환의 답변:
첫째, 1980년 5월10일 전두환 중앙정보부장 서리가 신현확 총리에게 보고한 북한 남침첩보는 중국 북경당국이 일본방위청에 제보하고 미국에도 통보한 내용을 일본내각조사실(우리나라의 중앙정보부 기능을 수행하는 기관임)이 중앙정보부에 공식 통보한 것이며 이른바 “신군부세력”이 날조한 것이거나 과장한 것이 아니었음.
둘째, 중국은 북한과 군사동맹을 맺고 있고 북한의 국내사정에 대하여 어느 나라보다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나라임. 이러한 위치에 있는 중국이 북한의 남침 가능성을 제보한 것은 상당한 근거를 토대로 한 것이고 중국도 북한의 군사동향에 대하여 심각한 우려를 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었음. 따라서 정부나 군 당국은 북한의 남침첩보를 중시하고 첩보내용의 신빙성을 신중히 검토하는 한편 대응책을 수립하는 것으로 이는 정부나 군의 당연한 임무인 것임.
셋째, 중앙정보부와 국방부는 일본이 제보한 북한 남침첩보를 분석한 결과 북한의 전면남침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신현확 국무총리와 1980년 5월11일에 열린 임시국무회의에 이 사실을 보고하였으며 북한의 남침 가능성을 강조한 사실이 없음.
넷째, 중앙정보부부 및 국방부가 북한 남침첩보와 관련하여 북한이 무장간첩을 침투시켜 후방교란을 목적으로 한 비정규전(게릴라전)을 전개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은 당시의 북한의 군사동향에 비추어 타당하고도 합리적인 것이었음.
북한의 대남전략은 1차적으로 무장공비 등 5열에 의한 후방교란을 통하여 그들이 말하는 결정적 시기가 되면 전면남침을 감행하여 적화통일을 이룬다는 것임. 그런데 1980년 5월 당시의 북한의 군사동향은 전쟁준비에 전력을 기울이는 한편 무장간첩을 대량 남파하여 우리나라 후방 교란을 획책하고 있었고 심지어 경북 포항 만까지 북한 간첩선을 출몰시키고 있었음.
또한 북한은 대남간첩지령을 통하여, 한국의 정세가 매우 유리하게 전개되고 있으니 대담하게 사업을 전개할 것이며 시위조직을 확대하여 반정부 투쟁을 강화하고, 시위군중이 폭도로 변질되도록 “점화 기폭조”를 잠입시키라고 남한 내 간첩들에게 지시하고 있었으며, 한국 내 소요사태가 더욱 악화되면 재일 공작원을 침투시켜 시위대를 거리로 우도, 군중과 합세토록 하고, 재야세력 중 중요인사를 암살함으로써 국민의 우발적 반감을 일으키며 대대적인 민중봉기의 계기를 조성하라고 조총련에 지령을 내리는 등 우리나라의 사회혼란조성에 혈안이 되어 있었음.
전두환의 2016년 5월 “5.18북한군개입에 대한 음흉한 거짓말”
2016년 5월17일 신동아 기자가 전두환을 만나 5.18 당시의 상황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을 던졌는데, 그 중에서 그가 1995년에 검찰에서 답변하고 그토록 정확하게 예측했던 북한군의 후방교란 전략들은 전혀 없었던 일인 것처럼 능청스럽게 거짓말을 늘어놓았던 내용을 들어 본다.
신동아 기자: 역사적 책임감으로 사과할 의향은 없느냐?, 전두환: 광주에 내려가 뭘 하라고요?, 신동아 기자: 5.18 당시 보안사령관으로서 북한군(광주)침투와 관련된 정보보고를 받은 적이 있느냐?, 전두환: 전혀 없다, 고명신: 북한특수군 600명 얘기는 연회동에서 코멘트 한 일이 없다, 전두환: 뭐라고? 600명이 뭔데? 정 전의원: 이북에서 600명이 왔다는 거예요. 지만원씨가 주장해요. 전두환: 오, 그래? 난 오늘 처음 듣는데.
전두환은 1995년 5.18폭도 세력과 빨갱이들의 인민재판을 앞두고 검찰의 조사를 받을 때는 그래도 지푸라기라도 잡겠다는 심정으로 1980년 5월 당시의 북한군동향을 그토록 상세하고 정확하게 진술 했었는데, 전라도와 빨갱이들에게 죽음보다 더한 치욕을 당하고 지금도 그 마녀사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의 신세를 잘 알고 있을 2016년 5월17일에는, 21년 전 자신의 진술을 새까맣게 잊었다는 듯이 능청스런 거짓말로 일관한다.
1980년 5월 북한군 동향 보고서에서 그토록 정확하게 예측했던 북한군의 후방교란전술이 5.18광주에서 10일 간 여지없이 전개되었던 사실을 알면서도 전두환과 군부 그리고 정보부는 광주에 침투되었던 불순세력을 밝혀내서 국민 앞에 발표하지 못했다. 5.18당시에는 북한 특수군이 워낙 거세고 치밀하게 계엄군을 몰아친 바람에 광주를 포기하고 퇴각했던 과거는 전두환에게는 잊고 싶었던 사건이었을 것이다.
10일 동안에 전개되었던 북한군의 후방교란적전 징후들 이를테면, 20사단 지휘부 기습작전, 아시아자동차공장 차량탈취작전, 전라도소재 무기고 탈취적전, 장갑차에 의한 군경 공격작전, 광주교도소 습격작전, 간첩 손성모의 광주 전라도지역 활동 등의 북한특수군 징후들에는 전두환이 권력을 획득한 후 김대중 세력을 5.18재판에서 단죄할 때 전혀 관심도 없었고 철저하게 파헤치려는 의지도 없었음이 1981년 대법원 재판결과에서 알 수 있었다.
권력에 심취해 오직 김대중 세력을 제압 하는데 만 집중했던 것이었는데, 그것은 전두환 스스로가 정확하게 예측한 1980년 북한군의 후방교란작전(게릴라전)을 5.18 광주에 침투하여 광란의 폭동반란을 야기했던 당시에 효과적으로 막지도 못하고 후에 그 사실을 밝혀내지도 못한 무능 혹은 중대한 직무유기의 범죄가 국민들에게 알려질까 봐 무시하고 덮어버리기에 급급했음을 드러낸 5.18재판 결과였다.
보수우파에게는 애증이 엇갈리는 장군 전두환, 그 아수라장 1980년을 그나마 슬기롭게 대처했던 당신이, 아무리 5.18폭도들과 빨갱이 세력으로부터 죽음보다 더한 박해를 받고 있기로서니, 이제 와서 무슨 자존심과 영예를 지키겠다고 자신의 과거 잘못을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고 그들의 5.18왜곡날조 역사에 아부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까? 전두환 당신이 그렇게 거짓말로 5.18세력에게 항복하는 모습으로 생을 마감한다면, 당신은 보수우파 대한민국 국민들로부터도 “참 나쁜 인간 전두환”으로 낙인찍힐 것입니다.
이상.
2016.11.9. 만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