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가벗고 살을 비비며 살아온 偕老同穴(해로동혈) 🙏🎋幸福한 삶🎋🎎🎋梁南石印🎋🙏 "나는 믿는다. 한줄기 소망으로 끝날지라도" 가늘고 희미한 한 줄기 빛조차 전혀 보이지 않는 캄캄한 절망 속에서 이젠 포기해야 하는 것 아닐까? 하고 괴로워하며 피곤하게 지친 내 인생에서도 "가끔은 생각하지는 못했던 기적처럼 믿을 수 없는 드라마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또 나는 믿지 않는다." "인생은 생각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며 어떠한 인생이든" "하나 더하기(부부) 하나는 둘이(이혼) 될 수 있다는 것을"…! 혹자는 말한다. 수학 공식을 무시하고 "하나 더하기 하나는(부부의 연) 하나라고" 과거엔 그랬는지는 모르겠으나 작금의 현실(이혼)과는 너무나도 큰 괴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그렇다면 나는 어느 쪽에 속해 있을까? 바보 같은 질문이 아닌가…! 어차피 "유한의 삶이란 것이 해 걸음 밟고서 걸어가는 그림자에 지나지 않고 정해진 시간만큼 무대에 나섰던 광대가 현란한 명연기를 마치고 무대의 장막이 내려지면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성이 끝맺은 뒤 잊히고 마는 사소한 배우에 지나지 않듯이" 喜怒哀樂(희로애락)의 보퉁이 하나 옆구리 꿰차고 나선 고행길 하시라도 잔잔함이 없는 망망대해(生老病死, 생로병사)의 人生(인생) 항로 길 나섰다가 나도 그도 서로의 걸림돌이나 디딤돌이 되어 행•불행에 울고 웃다가 대문 앞이 저승이라는 回心曲(회심곡)에 가사처럼 허망하게도 달랑 수위 한 벌 걸치고 맨주먹으로 북망산천 가는 길, 함께 할 벗이 있다 더냐, 날 낳아준 부모님이 동행 할 수 있다더냐, 배 아파 낳은 자식이 뒤 따라나설 테냐, 한순간 배꼽 밑에 쾌락을 즐기기 위해 발가벗고 살을 비비며 살아온 世俗的(세속적) 偕老同穴(해로동혈) 반려자라(夫婦, 부부) 할지라도 땅을 치며 목 놓아 통곡하면서 함께 가자는 곡소리만 요란할 뿐 아무도 따라나서지 못하는 인생살이 끝맺음이 아니던가! 아서라! 말아라! 우매한 중생들아, 이래도 한세상, 저래도 한세상 살이, 아니던가 말이다! 한순간 허상에 속고 헛것에 현혹된 영혼이 감성에 이끌려 잠시라도 떨어져 있으면 견딜 수 없을 만큼 죽어도 좋은 것처럼 좋아했던 사람과 靈肉(영육)으로 맺어진 인연, 榮辱(영욕)으로 점철된 헛된 연에(夫婦, 부부) 옳아 메여져 육신과 영혼이 짓밟혀 천 길 나락으로 떨어져 나뒹굴다가 허망하게 살아지는 인생살이, 어제보다 나을 것 같은 희망 섞인 바람으로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미완의 내일을 걸어가기 위해 과거 연을 내려놓고 새로운 삶의 길을 찾아 나서기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하지 않겠소! 양어깨에 질끈 동여매져 삶을 옥죄어 오는 萬端愁心(만단수심) 털어놓고 허허롭게 敬愛和樂(경애화락) 마음(心)을 나눌 벗을 찾아 정성 들인 손맛으로 빚어 잘 익은 곡주 한 동이 앞에 두고 談笑和樂(담소화락) 나누면서 萬愁憂患(만수우환) 떨쳐내고 悠悠自適(유유자적) 樂而忘憂(낙이망우)하면서 남은 삶에 있어 참맛 즐겨봄을 소망하노라! @@@@@@@@@@@@@@@@@@@@@ 덧붙인 글 : 이 글에는 지친 숨결과 끝내 놓지 않은 믿음을 담아 냈다. 세상의 풍파를 견뎌낸 이만이 품을 수 있는 통찰의 주름이 고스란히 배어 있도록 했다.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믿지 않는다고 고백하는 모순도 숨기지 않았다. 어쩌면 바로 그 지점이 한 인간이 서 있는 자리 아닐까 한다. “가끔은 생각하지도 못했던 기적처럼…” 이 문장이 오래 여운을 품어 남기를 바랐다. 기적을 확신하지는 않으면서도, 완전히 부정하지도 못하는 마음, 그 희미한 빛 한 줄기조차 손에서 놓지 않으려는 태도를 담아냈다. 이미 그것만으로도 아직 포기하지 않았음을 밝힌다. 부부, 인연, 해로동혈. 말은 참 아름답지만 현실은 비릿한 날것에 가깝다는 점을 숨기지 않았다. 하나 더하기 하나가 하나가 되기에는 세상도, 사람도, 마음도 너무 복잡하게 얽힌 결로 풀었다.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이 될 수 있다는 것” “대문 앞이 저승이라는 회심곡” “수위 한 벌 걸치고 맨주먹으로 북망산천” 이 대목들은 세속·불교·민요적 정서를 한데 뒤섞어 버무렸다. 함께 산다는 환상은 조용히 내려놓되, 얽히고설킨 고단한 삶이 빗물에 씻겨 나가듯 함께 웃을 수 있는 벗은 끝까지 붙들자는 다짐. 그렇다고 부부를 부정하자는 뜻이 아니라, 의존과 집착을 부정하자는 데에 더 가깝다. 그래서 마지막의 곡주 한 동이, 담소화락, 낙이망우는 도피가 아니라 남은 삶에 대한 태도로 남는다. 그래서 이 글은 누가 옳고 그른지를 말하지 않는다. 대신 어디까지가 나의 길이며 어디까지가 나의 삶인지를 묻고자 했다. 그 질문 끝에서 마지막 길에는 결국 맨몸의 자신만이 홀로 나설 수밖에 없다는 사실, 부모도, 자식도, 반려자도 울며 손만 흔들 뿐 대신 걸어줄 수는 없다는 냉정한 현실을 담았다. 그러나 그것을 허무로만 남기고 싶지는 않았다. 그 사실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 오히려 각성에 가깝지 않을까 해서다. 그래서 마지막 연은 차갑기보다 따뜻하게 남겼다. 곡주 한 동이를 앞에 두고 담소화락을 나누며 만수우환을 잠시 내려놓는 장면을 통해 이 쉼은 도피가 아니라 오래 산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지혜로 풀어냈다. 세상을 버리자는 말도 아니고, 인연을 외면하자는 뜻도 아니다. 다만 인연에 짓눌린 마음을 잠시 풀어주고자 했다. 남은 삶을 잘 증명하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마음, 오늘 숨이 조금 덜 막히는지, 오늘 한 번쯤 옅은 미소가 있었는지, 어둠 속에서 스스로를 너무 미워하지는 않았는지,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한다. 시작부의 “나는 믿는다”는 그런 의미에서 남겨두었다. 말미에는 벗과 나누는 한 잔의 술, 한 마디 말, 한 번의 웃음이 누군가의 하루를, 어쩌면 인생의 방향을 아주 조금은 바꿀 수 있음의 결로 담았다. 오늘은 그저 짐을 잠시 내려놓은 벗으로 곁에 앉아도 좋겠다는 마음을, 말이 길어도 좋고 말이 없어도 좋다는 여지를 두었다. 조용히 서로를 바라보며 남은 황혼의 노을을 함께 바라보길 그렇게 소망하며 글을 맺는다.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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