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고롱고로 와일드 캠프에서 아침을 맞았다. 숲속에서 들려오는 새들이 우짖는 소리와 함께 맞이한 평화로운 아침이었다. 아침 식사를 마치자마자 사파리 차량에 올라 응고롱고로 분화구로 향했다. 이틀 동안 세렝게티 국립공원 사파리를 마치고 오늘은 응고롱고로 분화구 사파리에 들어갈 예정이다.
옹고롱고로 와일드 캠프에서 응고롱고로 국립공원까지는 약 26~27km의 거리다. 사파리 차량으로는 1시간에서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응고롱고로 국립공원 전망대에서는 지름 약 16~19km에 이르는 세계 최대 규모의 칼데라 화구 전체를 360도 파노라마 뷰로 내려다볼 수 있다. 해발 2,286m의 고원지대에 자리잡고 있는 전망대에서는 600m 아래 펼쳐진 광활한 분화구 속 마가디 호수(Lake Magadi)와 초원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아침에는 '에덴동산'이라 불리는 분화구에 운해가 자욱하게 덮여 더욱 신비로운 풍경을 연출한다. 응고롱고로 국립공원은 탄자니아에서 세렝게티 국립공원과 함께 '동물의 왕국' 촬영 장소로도 유명하다.
응고롱고로 국립공원 분화구를 배경으로 인증 샷 한 장을 남겼다. 아프리카의 '에덴동산'에 언제 또 다시 '에던동산'에 올 수 있으려나?
'Ngorongoro(응고롱고로)'는 마사이어로 '큰 구멍(Crater)'이라는 뜻이다. 마사이족은 분화구를 큰 구멍이라고 표현한 듯하다.
한 가지 더..... 세렝게티나 응고롱고로 현지에서는 '사파리(Safari)'라는 말을 거의 안 쓰고 게임 드라이브(Game Drive) 또는 게임 트레블(Game Travel)이라고 한다. 사파리는 스와힐리어로 '원정, 여행'이라는 뜻이다. 아프리카에서 사파리는 동물을 관찰, 추적하면서 사냥하는 여행을 의미한다.
게임 드라이브는 아프리카 세렝게티나 마사이마라 등지에서 전문 가이드와 함께 차량을 타고 야생동물을 탐사하고 관찰하는 활동이다. 게임 트레블은 게임 드라이브를 포함하여 야생동물 보호구역에서 진행되는 전체적인 사파리 여행 일정을 포괄하는 표현이다.
응고롱고로 국립공원 전망대에서 약 600m 아래 분화구로 내려가면서 본격적인 게임 드라이브가 시작됐다. 그제도 보고 어제도 본 얼룩말은 분화구에도 살고 있었다.
응고롱고로 분화구는 사방이 약 400~600m 높이의 가파른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어 대형 동물들이 오르내리기 어렵기 때문에 종종 '동물들의 자연 요새' 혹은 '고립된 낙원'이라고도 한다. 기린 같은 둔한 동물은 애초에 분화구에 들어오지 못하며, 육상 동물들이 이 절벽을 타고 자유롭게 드나들기는 힘들다. 하지만, 분화구에는 1년 내내 마르지 않는 샘물, 풍부한 초원, 호수 등이 있어서 동물들이 굳이 밖으로 나갈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일런드영양(Eland)은 응고롱고로 국립공원에서 처음 만난 동물이다. '일런드(Eland)'라는 이름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공용어 아프리칸스어에서 '큰 사슴'을 의미하는 단어에서 유래했다. 18세기 말 네덜란드어권에서 '큰 사슴'을 뜻하는 '에일란트 엘크(Eland elk)'로 처음 불리기 시작했다.
일런드영양은 아프리카 사바나와 초원에 서식하는 소과 동물로, 지구상에 존재하는 영양 중 가장 덩치가 크고 무거운 자이언트일런드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영양이다. 소처럼 묵직한 체형을 가졌지만 최대 1.5m~2m 이상을 뛰어오를 수 있는 날렵한 점프력을 자랑한다. 이런 점프력으로 맹수의 공격을 피한다.
일런드영양의 몸길이는 최대 3.4m, 몸무게는 1톤에 육박할 정도로 거대하다. 암수 모두 나선형 모양의 뿔을 가지고 있다. 수컷의 뿔은 짧고 굵으며, 암컷은 가늘고 길다. 걸어갈 때 발의 인대와 뼈가 부딪히면서 '딸깍'거리는 큰 소리가 나는데, 이를 통해 무리의 위치를 파악한다. 일런드영양은 수십 마리에서 수백 마리까지 무리를 지어 생활하는 온순한 초식동물이다.
먹이 걱정도 없는 듯 풀밭에서 한가로이 쉬고 있는 사자 가족을 만났다. 응고롱고로 분화구는 사자 서식 밀도가 가장 높은 지역 중 하나다. 분화구에는 약 60~75마리의 사자가 독립된 생태계를 이루며 거주하고 있다.
이곳의 사자들은 풍부한 먹이와 천연 요새 같은 지형적 특성으로 인해 세계에서 가장 큰 사자로도 잘 알려져 있다. 600m 높이의 벽이 거대한 울타리 역할을 하여 외부와의 교류가 거의 없이 분화구 안에서만 번식하기에 유전적 다양성은 다소 낮지만, 풍부한 초식동물 덕분에 먹이 부족을 겪지 않아 지구상에서 가장 거대한 체구로 진화할 수 있었다.
응고롱고로 자연보존지역의 사자들은 사람의 거주나 가축 방목이 엄격히 통제되므로 밀렵이나 인간의 간섭 없이 안정적인 무리를 형성하며 살아갈 수 있다. 물이 마르지 않는 분화구에는 누, 얼룩말, 가젤 등 대형 초식동물이 항상 머물기 때문에 다른 지역의 사자들보다 사냥에 대한 스트레스나 이동 거리가 훨씬 적다.
검은꼬리누는 대규모 무리를 이루어 풀을 뜯고 있었다. 응고롱고로 분화구에는 푸른 초원과 호수가 잘 보존되어 있어 수많은 검은꼬리누에게 풍부한 먹이를 제공하는 야생의 낙원이다. 세렝게티의 누는 물과 풀을 찾아 수백 km를 이동하지만, 이곳의 누는 지형적 특성상 대이동을 하지 않고 분화구 내에서 연중 서식한다.
새끼를 거느린 엄마 누는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한적한 곳에서 풀을 뜯고 있었다. 응고롱고로 분화구에 서식하는 약 3만 마리의 대형 야생동물 중 절반 가량이 누와 얼룩말 무리라고 한다. 이들은 사자, 하이에나 등 포식자의 주요 먹이원이며, 누의 배설물은 초원의 영양분을 순환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마가디 호숫가 풀밭에서는 회색관두루미(Grey crowned crane) 한 쌍이 구애춤(짝짓기춤)을 추고 있었다. 그 바로 옆에서는 안장부리황새(Saddle-billed Stork)가 회색관두루미의 구애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회색관두루미의 구애춤은 번식기뿐만 아니라 일 년 내내 서로의 유대를 다지기 위한 행동으로 나타나는 화려한 퍼포먼스다. 구애춤은 날개를 넓게 펼치고 공중으로 높이 뛰어오르거나 고개를 끄덕이며 독특한 스텝을 밟는 등 우아하면서도 역동적인 동작으로 이루어진다. 구애춤을 출 때는 목에 있는 붉은색 울음주머니를 팽창시켜 크고 요란한 소리를 함께 내기도 한다. 구애춤에 미숙한 어린 개체들도 성체들과 어울려 춤을 즐기는 습성이 있다.
안장부리황새는 아프리카 사하라 이남에 서식하는 황새과의 대형 조류로, 현존하는 황새 품종 중 가장 키가 큰 종으로 꼽힌다. 키는 약 1.5m, 날개를 편 길이는 2.4~2.7m에 달한다. 다리와 목은 다른 황새들보다 길고 가느다랗다.
안장부리황새의 길고 단단한 부리는 붉은색과 검은색이 번갈아 나타나며, 부리 시작점 윗부분에 말안장 모양의 노란색 판이 있는 독특하고 화려한 외모가 특징이다. 몸통과 날개 일부는 흰색이며, 머리, 목, 등, 날개 끝부분은 광택이 나는 검은색을 띤다. 이 새는 눈의 홍채 색상으로 암수를 쉽게 구별할 수 있다. 암컷은 황금빛 노란색 홍채를 가졌고, 수컷은 갈색 홍채를 가졌다.
마가디 호수에는 분홍색을 띤 큰홍학(Greater Flamingo) 무리가 내려앉아 먹이활동을 하고 있었다. 큰홍학의 주식은 남조류(藍藻類)다. 남조류가 번성하기 좋은 염분과 알칼리성이 높은 이 호수에서는 연중 큰홍학을 관찰할 수 있으나, 특히 우기철에 개체수가 크게 증가하여 호수 주변을 분홍빛으로 물들인다. 마가디 호수에서는 큰홍학 외에도 펠리컨, 황새, 독수리 등 500여 종의 조류가 어우러져 살아간다.
큰홍학은 키 1.1~1.5m, 몸무게 2~4kg으로 홍학 중 가장 크다. 깃털은 전반적으로 연분홍색을 띠며, 날개죽지는 짙은 빨간색, 부리 끝은 검은색이다.
큰홍학이 먹는 남조류와 염수 새우 등 갑각류(甲殼類)에는 붉은색과 주황색을 띠는 천연 색소인 카로티노이드(Carotenoid)가 풍부하다. 큰홍학의 소화 기관이 이 색소를 소화할 때 간에서 분해, 흡수되면서 깃털, 피부, 지방층에 축적되어 분홍색을 띠게 된다.
처음 태어난 새끼 큰홍학은 깃털이 회색이나 흰색이지만, 어미가 주는 붉은 젖을 먹고 자라면서 점차 짙은 분홍색으로 변한다. 큰홍학의 소화기관인 소낭(嗉囊, 모이주머니)에서 분비되는 붉은 젖은 새끼를 키우기 위한 고농도의 영양분이다. 포유류가 아님에도 암수 모두 이 젖을 분비할 수 있다.
식도의 일부인 소낭에서 만들어지는 이 젖을 소낭유(嗉囊乳, Crop Milk)라고 한다. 소낭유는 번식기에 프로락틴 호르몬의 영향으로 분비가 촉진된다. 부모새는 부리를 통해 소낭유를 토해내어 새끼에게 먹인다. 큰홍학의 주식인 남조류나 갑각류에 들어있는 붉은색 색소 카로티노이드가 소낭유에 섞여 나오기 때문에 젖이 피처럼 붉게 보인다.
응고롱고로 분화구 습지에는 검은머리왜가리(Black-headed Heron)도 서식하고 있었다. 건조한 사바나 환경에 적응한 대형 조류인 이 새는 깃털이 주로 회색을 띠며, 검은색 머리와 목덜미가 흰색 목과 강렬한 대비를 이룬다. 다른 왜가리류처럼 느린 속도로 날아가며, 비행 시에는 목을 뒤로 S자 형태로 젖히는 습성이 있다.
마가디 호수에서 이집트기러기를 또 만났다. 이집트기러기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와 나일강 유역이 원산지인 오리과 물새이며, 기러기보다는 오리와 기러기의 중간 형태를 띤다. 이집트기러기속에 속한 종 가운데 유일하게 현재까지 존속하고 있는 종이다. 고대 이집트 나일강 계곡에서 그 이름이 유래했으며, 유럽 등지로도 퍼져나가고 있다. 주로 사바나 지역의 호수, 습지, 강가에 서식한다.
몸 전체는 회갈색을 띠고 꼬리는 검은색이다. 눈 주위에 진한 갈색 반점이 있으며 다리는 붉은색이다. 물속의 먹이를 사냥할 땐 오리처럼 꼬리를 위로 향하고 물구나무를 서서 먹이를 찾는 독특한 행동을 한다. 갈대, 풀잎으로 둥지를 지으며, 벼랑의 바위 턱이나 다른 새가 버린 둥지를 이용하기도 한다.
암수가 번갈아 알을 품으며, 새끼가 스스로 독립할 수 있을 때까지 부모가 곁을 지키며 철저하게 보호한다. 일부일처제를 유지하며 평생 같은 짝과 함께 생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매우 강한 영역 본능을 가지고 있어, 번식기에는 자신의 구역에 들어오는 다른 동물이나 새들을 매우 공격적으로 쫓아낸다.
마가디 호숫가에는 그레이트 화이트 펠리컨(Great White Pelican, 사다) 무리와 노랑부리황새(Yellow-billed stork) 무리가 거리를 둔 채 모여 있었다.
그레이트 화이트 펠리컨은 몸길이 최대 1.75m의 거대한 크기와 뛰어난 협동 사냥 기술, 그리고 유목민적인 이동성을 자랑하는 대형 조류다. 아프리카에 서식하는 가장 큰 펠리컨류 중 하나로, 주로 응고롱고로 자연보존지역 내 칼데라 호수나 마가디 호수 같은 알칼리성 담수호에 모여든다. 그룹을 지어 수영하며 물고기를 반원형으로 몰아넣은 뒤 동시에 부리를 물에 담가 퍼 올리는 고도로 조직화된 협동 사냥을 한다. 물에 젖지 않는 방수성 깃털과 물고기를 가두는 데 특화된 거대한 유연성 부리 주머니가 특징이다. 주로 300~600g 무게의 물고기를 하루에 약 1.45 kg ~ 2.25 kg 가량 잡아먹는다.
그레이트 화이트 펠리컨은 수백에서 수만 쌍이 함께 모여 번식 군락 (繁殖群落)을 형성한다. 포식자의 접근이 어려운 호수의 고립된 섬이나 습지대를 선호하며, 동아프리카 지역에서는 연중 내내 번식 활동을 하지만 주로 건기 시즌에 번식 집중도가 가장 높다. 유라시아 대륙에서 겨울을 나기 위해 아프리카로 날아오는 철새 개체군과 동아프리카 및 남아프리카에 상주하며 서식하는 텃새 개체군으로 나뉜다. 먹이와 수위의 변화에 따라 100km 이상을 날아 이동하기도 하는 뛰어난 비행 능력이 있다.
마가디 호수에 서식하는 노랑부리황새는 긴 노란색 부리와 붉은 주황색 다리, 눈 주위의 붉은 피부가 특징인 대형 물새다. 물고기와 개구리를 사냥하며, 먹이의 풍부함과 수위에 따라 유목민처럼 이동하는 조건적 유목형(facultative nomad) 특성을 띤다. 비행할 때는 검은색 날개 깃털이 뚜렷하게 드러나며, 다리를 뒤로 길게 뻗는다. 얕은 물에서 주로 활동하며, 부리를 물속에 부분적으로 담근 채 반쯤 벌리고 좌우로 흔드는 촉각사냥법(tactolocation)을 사용한다. 또 한쪽 발로 진흙을 휘저어 숨어있는 물고기나 수생 곤충을 쫓아내는 행동도 보인다.
노랑부리황새는 마가디 호수에 서식하는 하마나 악어 같은 대형 동물을 쫓아다니며, 이들이 움직이면서 진흙 속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물고기 등을 손쉽게 잡아먹기도 한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대표적인 물새로, 응고롱고로 분화구 같은 습지나 알칼리성 호수 환경에 잘 적응한다. 무리를 지어 생활하며, 다른 새들과 함께 아카시아 나무 등에 나뭇가지로 둥지를 짓고 번식한다. 암수가 협력하여 알을 품고 새끼를 키우며, 새끼들은 폭발적으로 먹이를 먹어치워 독일어권에서는 '결코 배부르지 않는 새(Nimmersatt)'라고 불리기도 한다.
마가디 호수에는 하마(Hippopotamus)도 살고 있었다. 하마 두 마리가 날이 더워서 그런지 물속에서 눈만 빼꼼 내놓고 있었다. 알칼리성 소다 호수인 이곳에 서식하는 하마는 혹독한 환경에 적응한 독특한 생태적 특징을 보인다. 이들은 뜨거운 낮에는 체온 조절과 자외선 차단을 위해 수심이 얕은 물속에서 무리를 지어 머무는데, 강한 알칼리 성분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 진흙을 두껍게 바른다. 일몰 후나 밤에는 호수 밖으로 나와 주변 초원에서 풀을 뜯어 먹는다.
무리 내 우두머리 하마 수컷 1마리는 여러 마리의 암컷과 새끼들로 이루어진 대규모 무리(하렘)를 거느린다. 우두머리 수컷은 자신의 영역을 엄격하게 방어하며, 번식권을 독점한다. 하마가 물속에서 배설하는 막대한 양의 영양분은 호수 내 플랑크톤과 미생물의 먹이가 된다. 이는 다시 플라밍고 같은 물새들을 모여들게 하는 요인이 된다.
하마들이 물가와 초원을 오가며 이동하는 길은 분화구 내의 자연스러운 물길과 통로 역할을 한다. 이 생태계는 약 260 km² 크기의 거대한 원형 칼데라 내에 형성되어 있으며, 외부와 완벽히 격리된 독립적인 공간이다.
하마에 이어 이번에는 톰슨가젤 무리를 만났다. 가젤 무리를 자주 보다 보니 이젠 그랜트가젤과 톰슨가젤을 쉽게 구별할 수 있겠다. 톰슨가젤과 그랜트가젤을 가장 쉽게 구별하는 핵심 기준은 옆구리 검은 줄무늬의 유무다. 옆구리에 선명하고 짙은 검은색 세로 줄무늬가 확실하게 그어져 있으며 톰슨가젤, 옆구리에 검은 줄무늬가 없거나 매우 희미하면 그랜트가젤이다.
응고롱고로 분화구 일대에 서식하는 톰슨가젤은 뛰어난 속도와 독특한 생존 방식을 가진 소형 초식동물이다. 풍부한 풀과 물이 있는 분화구의 환경에 적응한 톰슨가젤은 주요 포식자인 치타의 사냥을 피하기 위해 최고 시속 80~90km로 달릴 수 있도록 진화했다. 이는 치타, 프롱혼, 스프링복에 이어 지구상의 육상 동물 중 네 번째로 빠른 속도다.
톰슨가젤은 위험을 감지하면 전속력으로 도망치다가도 방향을 급격히 꺾거나 높이 뛰어오르는 행동(Stotting)을 하여 포식자의 시선을 교란한다. 새끼가 태어나면 어미는 냄새를 없애기 위해 새끼를 핥아주고, 새끼는 태어난 직후 풀숲에 가만히 엎드려 포식자의 눈을 피한다. 수컷은 건기에 뚜렷한 세력권을 형성하고, 암컷과 새끼들은 5~60마리 규모의 무리를 지어 이동한다.
마침내 사자, 아프리카코끼리, 아프리카물소, 표범과 함께 세렝게티와 응고롱고로 국립공원 빅 5로 꼽히는 검은코뿔소(Black Rhinoceros)를 만났다. 세렝게티와 응고롱고로 국립공원에서 빅 5를 모두 만났으니 소원이 다 이루어진 셈이다. 검은코뿔소는 얼룩말 무리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엎드린 채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아무래도 낮잠이라도 자고 있는 듯했다.
검은코뿔소는 멸종 위기에 처한 희귀종으로, 분화구에서 이 귀한 동물을 마주치는 것은 사파리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다. 분화구 중앙의 마가디 호수 주변을 주요 서식지로 삼고 있는 검은코뿔소는 주로 관목이나 나뭇잎을 먹고사는 초식성 동물이다. 입술이 뾰족한 갈고리 모양으로 발달하여 나뭇가지와 잎을 휘감아 뜯어먹기 좋다. 일반적으로 두 개의 뿔이 있으며, 앞뿔이 더 길다. 마가디 호수 일대의 얕은 물과 진흙에서 머드팩을 즐기며, 이를 통해 뜨거운 태양열로부터 피부를 보호하고 기생충을 쫓는다. 분화구의 천연 환경이 외부와의 이동을 막고 있어 개체들이 안정적으로 머물고 있다. 영역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단독 생활자로, 후각과 청각이 매우 발달한 반면 시력은 나쁘다.
코뿔소는 흰코뿔소와 검은코뿔소가 있다. 흰코뿔소는 입이 네모나고 넓다. 이름도 '넓은(wide)'을 뜻하는 아프리카어가 영어 '하얀(white)'으로 잘못 번역되어 흰코뿔소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검은코뿔소의 입은 뾰족하고 갈고리 같다. 흰코뿔소는 주로 바닥의 풀을 먹어 고개를 숙이고 다닌다. 검은코뿔소는 나뭇가지나 관목의 잎을 먹어 고개를 높이 들고 다닌다. 흰코뿔소는 덩치가 더 크고 무거우며, 목 뒤에 뚜렷한 근육 혹이 있다. 검은코뿔소는 크기가 상대적으로 작으며 목이 더 아치형이다. 흰코뿔소는 비교적 온순하고 무리 생활을 자주 한다. 검은코뿔소는 훨씬 성격이 포악하고 예민하며, 단독 생활을 한다.
검은코뿔소에 이어 빅 5 가운데 하나인 아프리카물소(African buffalo)도 만났다. 응고롱고로 분화구에 서식하는 아프리카물소는 거대한 칼데라호 환경에 완벽하게 적응했다. 이들은 풍부한 물과 초목을 바탕으로 무리를 지어 생활하며, 큰 덩치와 뛰어난 방어 본능을 지닌 것이 특징이다. 수십에서 수백 마리까지 큰 무리를 지어 생활하며, 천적인 사자나 하이에나의 공격에 매우 강력하게 맞선다.
아프리카물소는 몸무게 300~900kg, 어깨높이 1.5~2m에 달하는 거대한 체구와 중앙이 두꺼운 거대한 뿔을 가지고 있다. 붉은부리소딱새는 이들과 공생하며 진드기나 기생충을 제거하고 위험을 감지한다.
세렝게티 국립공원 사파리 투어를 하면서 매일 눈에 띄었던 혹멧돼지(Warthog)를 응고롱고로 분화구에서 또 만났다. 이곳에 서식하는 혹멧돼지는 천혜의 요새인 분화구 환경에 맞춰 독특한 생태적 특징을 보인다. 이들은 분화구의 풍부한 화산 토양과 수자원 덕분에 사자, 하이에나 등 포식자가 많음에도 번성하고 있다. 주행성 동물인 혹멧돼지는 주로 아침과 늦은 오후에 풀을 뜯어 먹는다. 특히 풀을 뜯거나 땅속의 뿌리, 덩이줄기를 찾을 때 앞무릎을 꿇고 이동하는 독특한 습성이 있다.
얼굴에 있는 혹은 수컷일수록 크며, 싸움을 할 때 얼굴을 보호하는 쿠션 역할을 한다. 위로 크게 굽은 거대한 엄니는 방어용으로 쓰인다. 혹멧돼지는 스스로 굴을 파지 않고 주로 땅돼지(Aardvarks)가 버리고 떠난 굴을 재사용한다. 이들은 사자, 치타 등 포식자를 피하기 위해 꼬리를 꼿꼿이 세우고 굴속으로 거꾸로 들어가는 특징이 있다.
다 자란 수컷은 단독 생활을 하거나 수컷들끼리 무리를 짓지만, 암컷과 새끼들은 모계 중심의 무리를 이루어 생활한다. 수컷은 새끼 양육에 관여하지 않는다. 계절에 따라 이동하는 다른 초식동물들과 달리 이곳의 혹멧돼지는 분화구 생태계 안에 정주하며 살아간다. 특히 건기에는 물웅덩이와 습지 주변 진흙에서 목욕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옹고롱고로 분화구에는 타조도 살고 있었다. 이곳에 서식하는 타조는 외부와 단절된 생태계 특성상 연중 풍부한 먹이와 수원 덕분에 광활한 세렝게티 초원과 달리 장거리 이동 없이 분화구 내에 정착하여 안정적인 번식과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600m 높이의 가파른 칼데라 절벽과 높은 동물 밀도 속에서 성체 타조는 강력한 다리 힘과 시속 약 70 km의 속도로 사자나 하이에나 등의 포식자로부터 자신을 보호한다. 분화구 타조는 주로 초원 바닥의 풀, 씨앗, 곤충 등을 섭취하며, 일부다처제 형태로 무리를 지어 생활한다. 거대한 크기의 알을 모래땅에 파인 둥지에 낳아 집단으로 부화시키고 양육한다.
다 자란 성체 타조는 깃털의 색과 생식기 형태를 통해 암수를 구별할 수 있다. 수컷은 몸통 깃털이 전체적으로 검은색이며, 날개와 꼬리 끝부분의 깃털은 흰색을 띤다. 암컷은 전체적으로 수컷보다 몸집이 작으며, 깃털은 회갈색을 띤다. 수컷은 목 아래쪽에 멱주머니가 있어 번식기에 특유의 울음소리를 내며, 깃털이 없는 머리와 다리 부분이 연분홍색을 띤다. 암컷은 수컷과 달리 깃털 없는 부위가 담갈색을 띤다.
사파리 차량에 탄 채 응고롱고로 분화구를 둘러보니 사파리 로드마다 먼지가 부옇게 일고 있었다. 오늘도 많은 사파리 관광객들이 분화구 사파리 로드를 따라 동물들을 찾아다니고 있었다.
응고롱고로 분화구의 사파리 투어는 막대한 관광 수입을 통해 멸종 위기 동물과 생태계 보전, 그리고 지역 마사이족 사회를 지원하는 중요한 재원이 된다. 사파리 운영 수익과 입장료는 보호구역 관리청이 야생동물을 보호하고, 지역 원주민 커뮤니티에 수익을 분배하는 핵심 자금이다. 지속적인 사파리 차량과 가이드들의 순찰 활동은 분화구 내 밀렵꾼들의 접근을 억제하는 효과도 있다.
그러나, 사파리 차량 밀집으로 인한 소음, 스트레스, 오염, 토양 훼손 등의 환경적 부담 역시 가중되고 있다. 사자 등 한 마리의 동물 주위에 너무 많은 사파리 차량이 몰려들어 사냥이나 휴식 등 자연스러운 행동을 방해하고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정해진 비포장 트랙을 벗어나는 오프로드 주행은 풀밭을 파괴하고 토양을 침식시킨다. 차량에서 배출되는 매연과 소음은 닫힌 생태계인 분화구 내부의 공기와 환경의 질을 떨어뜨린다.
탄자니아 야생동물 당국은 분화구 내 쏠림 현상과 환경 훼손을 막기 위해 하루 입장 차량 대수를 제한하고 있다. 동물 주변에는 최대 5대의 차량만 머물 수 있도록 규제하고, 동물을 직접적으로 압박하지 못하도록 거리를 두게 하는 수칙을 적용하고 있다.
마가디 호수 북쪽에 있는 작은 호수 만두시 히포 풀(Mandusi Hippo Pool) 쉼터에서 점심으로 가지고 온 도시락을 먹었다. 만두시 히포 풀은 하마와 조류를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는 사파리 명소다.
히포 풀 물가에는 아름드리 무화과나무가 서 있다. 이 무화과나무는 사파리 차량이 지나가는 길목에 위치해 있어 쉼터에 시원한 그늘을 제공하며, 히포 풀과 어우러져 경이로운 응고롱고로 분화구의 풍경을 완성한다.
만두시 히포 풀 언덕에 그림처럼 서 있는 우산아카시아나무에는 가지마다 베짜기새(Weaverbird, 織造鳥)들의 둥지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정교한 둥지를 짜는 뛰어난 건축가로 유명한 이 새는 우산아카시아 나무에 여러 개의 둥지를 매달아 독특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베짜기새 수컷은 둥지를 아주 화려하고 정교하게 지어 암컷에게 구애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 새들의 둥지는 뱀이나 다른 포식자로부터 알과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 입구가 아래쪽으로 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우산아카시아는 아프리카 사바나 지대의 대표적인 나무로, 넓은 그늘을 제공하여 하마나 다른 초식동물들이 뜨거운 태양을 피할 수 있는 쉼터 역할을 한다. 우산아카시아 나무에 수십 개의 베짜는새 둥지가 빼곡하게 매달려 있는 모습은 응고롱고로 분화구 사파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관 중 하나다.
응고롱고로 분화구 사파리를 마치고 응고롱고로 자연보존지역 공식 메인 정문 로도아레 게이트(Lodoare Gate)를 나서자 올리브 개코원숭이 무리가 도로를 가로질러가고 있었다. 게이트에서 여행객들이 가이드의 출입 허가증 발급과 등록 절차를 기다리는 동안 나무 위에서 뛰어놀거나 새끼를 돌보는 개코원숭이 무리를 쉽게 마주칠 수 있다.
이곳의 원숭이들은 사람과 차량에 매우 익숙해져 있다. 방심하고 차량 문을 열어두면 음식물을 훔쳐 달아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므로 주의해야 한다. 원숭이들을 귀엽게 여겨 과자나 과일 등을 주는 것은 생태계 교란과 안전사고의 원인이 되므로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
로도아레 게이트는 아루샤(Arusha)에서 서쪽으로 약 140km, 카라투(Karatu) 마을에서 약 14km 떨어져 있다. 여기서 B144 도로를 따라 카라투(Karatu)와 음토와음부(Mto wa Mbu)를 지나 A104 도로를 경유해 숙소인 패럿 호텔 아루샤(Parrot Hotel Arusha)까지 가는 데는 약 2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아루샤로 돌아가는 도중에 아프리카 여행에서 꼭 보고 싶었던 아름드리 바오밥나무(Baobab tree)를 만났다. 수천 년은 묵었음직한 바오밥나무는 언덕 위에 위엄있게 자리잡고 있었다.
바오밥나무는 척박한 사바나 환경에서 수천 년을 버텨내며 인간과 동물 모두에게 생존에 필요한 자원을 제공하는 '아프리카의 상징'이자 '생명의 나무(Tree of Life)'다. '거꾸로 선 나무'라는 별명은 가지가 마치 뿌리처럼 위로 솟아 있어 신이 나무를 거꾸로 심었다는 원주민 전설에서 유래했다.
바오밥나무 줄기는 대형 버스 길이와 맞먹을 정도로 거대하며, 겉모습이 술통을 닮았다. 술통 줄기는 거대한 천연 물탱크다. 우기 동안 몸통과 가지에 최대 12만 리터 이상의 물을 저장하여 극심한 가뭄을 견뎌낸다.
바오밥나무의 평균 수명은 약 3,000년에 달하며,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 사는 식물 중 하나로 '살아있는 화석'이라 불린다. 잎, 열매, 줄기 껍질까지 모두 인간과 동물(특히 코끼리)의 식량, 약재, 섬유 등으로 사용되어 아프리카 생태계의 핵심 역할을 하기에 '생명의 나무'라고 불린다.
바오밥나무는 원주민들에게 '숲의 어머니'로 통하며, 마을의 중심에서 지혜를 구하거나 신성한 의식을 치르는 신앙의 대상이다.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 왕자'에서는 별을 파괴하는 거대한 나무로 등장한다.
2박3일 일정의 세렝게티 대평원과 응고롱고로 분화구 사파리를 마치고 아루샤 도심에 있는 숙소인 패럿 호텔 아루샤로 돌아왔다. 이번 사파리에서는 아프리카 빅 5를 비롯해서 수많은 동물을 만났다. 사파리 가이드 말로는 사파리에서 아프리카 빅 5를 모두 본 것은 행운이었다고.....
필자가 묵는 패롯 호텔 아루샤 객실에서는 아루샤 시가지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지리를 모르니 어디가 어딘지 알 수가 없었다.
가이드로부터 관광객들은 아루샤 밤거리를 조심하라는 전달이 있었다. 저녁 식사는 희망자에 한해 한국인이 운영하는 아루샤 소재 한식당에서 삼겹살에 김치찌개, 소맥이다. 당연히 신청했다. 그러나, 과도한 기대는 금물이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한식당의 음식은 그런대로 먹을 만했다. 외국 여행을 할 때마다 절실하게 느끼는 것은 역시 한식이 최고라는 것이다!
내일은 탄자니아 잔지바르 섬으로 떠난다. 잔지바르는 UK 롹 밴드 퀸의 프론트맨 프레디 머큐리 생가가 있는 곳이다. 기대가 많이 된다.
2026. 1. 8. 林 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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