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인 포로다니 파크 호텔(Forodhani Park Hotel)에 여장을 풀자마자 바로 앞에 있는 응고메 콩웨(Ngome Kongwe)부터 돌아본 다음 프레디 머큐리 박물관을 찾아가기로 했다. 응고메 콩웨는 잔지바르 제도(Zanzibar Archipelago)의 중심 섬인 웅구자(Unguja) 섬의 서쪽 잔지바르 시의 유서 깊은 구도심 스톤 타운(Stone Town) 바닷가에 위치한 올드 포트(Old Fort)의 스와힐리어 이름이다.
'Stone Town(스톤 타운 )'이라는 이름은 아랍 건축 양식에 따라 주요 건축 자재로 산호석(珊瑚石)이 널리 사용된 데서 유래했다. 잔지바르에서 나는 독특한 돌로 지어진 건물들은 도시에 특유의 붉은빛이 도는 따뜻한 색감을 부여한다.
응고메 콩웨는 17세기 말 포르투갈인들을 몰아낸 오만 아랍인들이 외적의 공격을 막기 위해 방어 목적으로 건축한 요새로, 스톤타운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 중 하나다. 과거에는 요새뿐만 아니라 감옥, 형장으로 쓰였으며, 20세기 초 UK 보호령 시절에는 잔지바르 철도의 창고로도 사용되었다.
응고메 콩웨는 전형적인 직사각형 요새 구조다. 요새의 네 모퉁이에는 높고 둥근 망루 형태의 탑이 배치되어 있다. 산호석으로 쌓은 8~10m 높이의 견고한 성벽 상단에는 톱니 모양의 총안(銃眼)이 설치되어 있다. 요새의 중심부에는 가로 30m, 세로 40m 크기의 넓은 중앙 광장이 자리잡고 있고, 광장 주위에는 회랑(回廊)이 있다. 1994년에 복원된 구역은 계단식 객석을 갖춘 야외 극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야외 극장에서는 매년 잔지바르 국제 영화제(ZIFF) 등 다양한 문화 예술 행사가 열린다.
광장 내부에는 초기 포르투갈 교회의 잔해와 오만 요새의 원형 흔적들이 부분적으로 보존되어 있다. 인도양을 마주하는 메인 게이트 블록은 1946년에 재건되었으며, 육중한 아랍식 나무문이 특징이다. 성벽 위 망루와 서쪽 타워까지 접근할 수 있는 통로가 있다.
요새 내부에는 현재 관광 안내소, 현지 예술가들의 공예품, 팅가팅가(Tingatinga) 그림, 향신료 등을 판매하는 가판대와 카페가 들어서 있다. 팅가팅가는 1960년대 말 탄자니아에서 시작된 동아프리카의 대표적인 현대 미술학파이자 회화 스타일이다. 창시자인 에드워드 사이디 팅가팅가(Edward Saidi Tingatinga)의 이름에서 유래했으며, 아프리카의 자연과 동물을 강렬하고 유쾌하게 그려내는 것이 특징이다.
응고메 콩웨에서 프레디 머큐리 생가를 가려면 미징가니 로드(Mizingani Rd)를 따라 '더 터널(The Tunnel)'이라는 이름의 건물을 지나가야 한다. 더 터널 건물 중앙에는 차들이 오고갈 수 있는 커다란 아치형 통로가 있다. 이 건물에는 탄자니아 특산 보석인 탄자나이트의 채굴부터 가공 과정을 보여주는 박물관 및 매장인 더 탄자나이트 익스피리언스(The Tanzanite Experience), 레스토랑 부니 비스트로(Buni Bistro), 인도 커리 전문점인 실크 루트(Silk Route) 등이 있다.
더 터널 건물 2층 발코니 옆에는 후세인 알리 음위니(Hussein Ali Mwinyi) 잔지바르 대통령의 사진이 나온 'Stop GBV!' 홍보판이 걸려 있었다. GBV는 젠더 기반 폭력(Gender-Based Violence)을 의미한다. GBV는 불평등한 성별 권력 관계와 성규범에 기반하여 개인의 의사에 반해 가해지는 모든 신체적, 성적, 정서적, 경제적 학대 및 폭력을 총칭한다. 잔지바르에서는 전통적인 관습과 문화적 요인으로 인해 젠더 기반 폭력이 주요한 사회·보건 문제로 다루어지고 있으며, 이를 근절하고 피해자를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국제기구 및 NGO의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잔지바르는 탄자니아의 연합 자치령이다. 잔지바르는 본토와는 별도의 개별 자치권과 출입국 절차를 행사하는 독특한 지역이다. 과거 탕가니카와 잔지바르가 통합되어 영어와 스와힐리어를 공용어로 하는 현재의 탄자니아 연합 공화국을 이루었다.
응고메 콩웨 앞을 지나는 미징가니 로드 도로변에는 열대 지방의 대표적인 관상식물인 플루메리아 루브라(Plumeria rubra)의 붉은색 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속명 플루메리아 (Plumeria)는 17세기 프랑스 식물학자 샤를 플뤼미에(Charles Plumier)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플루메리아 루브라는 열대 및 아열대 지역에서 주로 자라는 협죽도과의 낙엽 활엽 소교목이다. 키는 높이 2~9m까지 자라며, 5개의 둥근 꽃잎이 모여 피어난다. 꽃은 분홍색, 노란색, 흰색, 빨간색 등 다양한 색상을 띤다. 강렬하고 달콤한 향기를 지녀 샤넬 No.5 등 고급 향수 원료나 관상용으로 인기가 높다. 아로마 테라피 오일로도 많이 사용된다.
플루메리아 루브라는 하와이를 상징하는 꽃목걸이인 '레이(Lei)'를 만드는 데 가장 많이 사용되는 꽃이다. 하와이 원주민들은 이 꽃을 환영의 의미로 목에 걸어주거나, 귀 뒤에 꽂아 연애 및 결혼 상태를 표현한다. 하와이의 낭만적인 분위기와 사랑,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꽃으로 널리 알려지면서 대중적으로 '러브 하와이'라 불리게 되었다. '러브 하와이'는 유통명이기도 하다.
플루메리아 루브라의 또 다른 이름인 '프랜지파니(Frangipani)'는 16세기 이탈리아의 유명 귀족 가문인 프란지파니(Frangipani)에서 유래했다. 프란지파니 가문은 가죽 장갑에 향을 입히는 최고급 향수를 개발했다. 이후 유럽인들이 카리브해와 열대 지방에서 이 꽃을 발견했을 때, 꽃에서 나는 달콤하고 매혹적인 향기가 프란지파니 가문의 향수와 매우 비슷하여 '프랜지파니'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콜럼버스의 선원이었던 식물학자 머큐시오 프란지파니(Mercutio Frangipani)의 이름에서 유래했다는 주장도 있다.
더 터널 건물 지하도를 빠져나오면 이탈리안 젤라또로 유명한 아이스크림 가게 마마 미아-젤라또 이탈리아노(Mama Mia - Gelato Italiano)가 있다. 이곳은 신선한 현지 재료로 만든 젤라또를 판매해 여행객과 현지인 모두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탈리안 젤라또는 중독성이 있어서 필자도 몇 번 이 가게에 들렀다.
젤라또(Gelato)는 이탈리아어로 '얼어붙은'이라는 뜻이다. 이탈리아 전통 아이스크림 젤라또는 일반 아이스크림보다 유지방 함량이 약 4~8%로 낮고, 공기 함유량이 적어 특유의 쫀득한 식감과 풍부하고 신선한 원재료의 맛을 느낄 수 있다. 일반 아이스크림은 공기를 80% 이상 주입해 가벼운 느낌을 주는 반면, 젤라또는 공기 함유량이 25~35%에 불과해 훨씬 밀도 있고 묵직하다. 젤라또는 크림보다 우유의 비율이 높아 유지방이 적으며, 일반 아이스크림보다 약간 높은 온도인 약 -10°C ~ -12°C에서 보관되어 입안에 닿았을 때 훨씬 부드럽다.
마마 미아-젤라또 이탈리아노 가게에서 미징가니 로드를 따라 남서쪽으로 200m쯤 걸어가면 케냐타 로드(Kenyatta Road)와 샹가니 스트리트(Shangani Street) 갈림길이 나타난다. 프레디 머큐리 박물관은 이 갈림길에서 케냐타 로드 쪽으로 엎어지면 배꼽 닿을 거리에 있다.
드디어 하드 롹, 헤비 메탈 매니아인 필자의 버킷 리스트 가운데 하나인 프레디 머큐리(Freddie Mercury, 본명 Farrokh Bulsara, 1946~1991) 박물관에 도착했다. 생가 건물에는 전성기 시절의 머큐리 사진이 걸려 있었다. 세계 각지에서 온 퀸과 머큐리 팬들이 그의 생가 건물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하얀 벽에 노란색 테두리가 인상적인 이 건물은 프레디 머큐리가 어린 시절을 보낸 장소로 알려져 있다. 건물 중앙 정면에는 통풍과 채광을 위한 타공형 블록인 브리즈 블록(Breeze Block )이 설치되어 있었다. 브리즈 블록은 격자 형태의 구멍을 통해 강한 직사광선을 차단하고 자연 채광과 통풍을 확보하면서도 외부 시선을 적절히 차단하여 건물 내부나 발코니의 독립된 공간을 유지해 준다.
브리즈 블록을 중심으로 왼쪽 건물은 4성급 호텔인 템보 하우스 호텔(Tembo House Hotel), 오른쪽 건물은 프레디 머큐리 박물관(Freddie Mercury Museum)으로 쓰이고 있었다.
프레디 머큐리는 1946년 9월 5일 당시 UK 보호령이었던 잔지바르 스톤 타운의 페르시아계 인도인 파르시족(Parsis) 가정에서 태어났다. 파르시족은 이슬람의 박해를 피해 8~10세기경 페르시아에서 인도로 이주한 조로아스터교(拜火敎) 신자 집단이다. 머큐리는 유년기에 잔지바르의 UK계 미션 스쿨에 다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머큐리는 8살 때 인도 뭄바이 인근의 판치가지니(Pachgani)에 위치한 영국식 기숙학교 세인트 피터스 스쿨(St. Peter's School)로 유학을 떠났다. 더 높은 수준의 영국식 교육을 제공하기 위한 부모의 결정이었다. 이 학교에서 머큐리는 피아노를 배우고 롹 밴드 ' 더 헥틱스(The Hectics)'를 결성해 본격적으로 음악적 열정을 키워 나갔다. 그리고 이곳에서 처음으로 '프레디'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
머큐리는 방학 때마다 잔지바르로 돌아와 가족과 함께 머물렀다. 음악에 남다른 열정을 보였던 그는 다양한 음악 스타일을 접하고, 가족과 친구들 앞에서 직접 노래를 부르거나 공연을 하며 음악적 재능을 키웠다. 어린 시절부터 남달리 화려한 것을 좋아했던 그는 잔지바르에 머무는 동안 형형색색의 옷을 입고 다녔으며, 때로는 화장을 하는 등 독특하고 자유분방한 개성을 마음껏 드러냈다.
머큐리는 17살이 되던 해인 1964년 잔지바르 혁명이 일어나자 아랍과 아프리카인들 사이의 갈등을 피해 가족과 함께 UK로 이주하여 정착했다.
잔지바르 혁명은 아랍계와 남아시아계 소수가 정치·경제적 권력을 독점한 반면, 다수를 차지하는 흑인 아프리카인들은 심각한 불평등과 차별을 겪었던 구조적 모순에서 비롯되었다. 특히 1963년 선거에서 흑인 다수 지지 정당이 득표수에서 앞섰음에도 의회 다수당이 되지 못한 것이 직접적인 도화선이 되었다.
잔지바르의 아프리카계 주민과 급진 세력은 연합해 무장 봉기를 일으켰다. 수적으로 우세한 혁명가들은 정부 요충지를 빠르게 타격했으며, 잔지바르 술탄 잠시드 빈 압둘라는 혁명 발생 7시간 만에 항복하고 해외로 망명했다. 혁명 과정에서 수천 명의 아랍인과 인도인들이 살해당하거나 추방되는 끔찍한 유혈 사태가 발생했다.
혁명의 결과 아랍계 지배 체제가 종식되고, 존 오켈로(John Okello)가 이끄는 혁명군이 잔지바르 인민공화국을 선포했다. 이후 아베이드 카루메가 대통령이 되어 사회주의 공화국을 통치했다. 정치적 격변 속에 1964년 4월 잔지바르는 인근 국가인 탕가니카와 통합을 선언하였고, 이는 오늘날의 탄자니아 연합 공화국 탄생으로 이어졌다.
1964년 영국으로 이주한 머큐리는 미술과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했다. 1970년 머큐리는 런던을 기반으로 브라이언 메이, 로저 테일러, 존 디콘과 함께 롹 밴드 퀸을 결성해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독보적인 작곡 능력과 4옥타브를 넘나드는 음역대를 바탕으로 UK 차트를 석권했다. 머큐리는 런던의 스튜디오에서 작업한 퀸의 시그니처 곡 'Bohemian Rhapsody'(1975)를 비롯해 'Love of my life'(1975), 'Somebody To Love'(1977), 'Good old-fashioned lover boy'(1977), 'Save me'(1980) 등 수많은 히트곡을 탄생시켰다.
1985년 UK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역사적인 자선 콘서트 라이브 에이드(Live Aid)에 참여한 머큐리는 전설적인 라이브 무대를 선보였다. 2년 뒤, 1987년 그는 에이즈(AIDS)로 인한 기관지 폐렴 합병증을 진단받았으나 이를 대중에게 숨기고 음악 활동에 전념하다가, 1991년 11월 23일 투병 사실을 공식 발표한 다음 날인 11월 24일 런던 자택에서 4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머큐리는 2004년 UK 음악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으며, UK 왕립 조폐국에서 그의 기념 주화를 발행하기도 했다. 그가 생전에 거주했던 런던 서부 켄싱턴의 저택 가든 로지(Garden Lodge)는 지금도 팬들에게 상징적인 추모 명소로 남아있다.
세계 최초의 프레디 머큐리 박물관 입장료는 성인 기준 보통 8~10 US 달러이며, 어린이는 6 US 달러다. 박물관 내부에서는 사진 촬영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 희귀 사진, 자필 가사, 의상 등의 저작권 및 전시품 보호를 위해 내부 관람 중에는 카메라와 휴대폰 사용이 불허된다. 다만 박물관을 상징하는 멋진 목재 문과 건물 정면, 'Freddie Mercury Museum' 로고가 박힌 입구에서는 기념사진을 자유롭게 찍을 수 있다.
전시장 중심부에는 머큐리가 어린 시절 실제로 연주했던 유서 깊은 블랙 베이비 그랜드 피아노가 자리잡고 있다. 피아노 위에는 1986년 웸블리 스타디움 공연 등에서 착용해 그를 상징하는 시그니처 아이템이 된 노란색 무대 의상 재킷이 걸려 있다.
메인 사진 갤러리 및 기록 벽면(Photo Wall)에는 퀸 프로덕션(Queen Productions)의 공식 협조를 받아 잔지바르와 인도 시절의 미공개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잔지바르에서 태어난 파로크 불사라(Farrokh Bulsara)가 인도의 기숙학교에 다니던 학창 시절 사진, 가족들과 함께 찍은 희귀한 빛바랜 흑백 사진들이 연대기 순으로 전시되어 있다.
벽면 곳곳에는 퀸의 수많은 명곡을 작사, 작곡할 때 머큐리가 직접 손으로 쓴 노랫말과 생전 인터뷰 중 남긴 인상적인 문구들이 새겨져 있다. 'I'm not going to be a star, I'm going to be a legend.(나는 스타가 되지 않을 것이다, 전설이 될 것이다.)' 등등.....
박물관에는 머큐리의 어린 시절을 기억하는 잔지바르 현지인들과 지인들의 생생한 일화 및 인터뷰 스크랩이 함께 전시되어 있어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다. 불사라 가족이 믿었던 조로아스터교의 종교적 배경과 인도-아랍-아프리카 문화가 융합된 잔지바르의 환경이 훗날 그의 독창적인 음악 세계에 어떤 영감을 주었는지 설명하는 역사적 가이드라인도 포함되어 있다.
전시장 안쪽에는 세계적인 밴드 퀸의 멤버로서 전 세계 투어를 다니던 시절의 압도적인 라이브 콘서트 현장 사진들이 대형 액자로 채워져 있다. 퀸의 명반 LP 커버와 솔로 활동 시절의 신문 스크랩도 함께 진열되어 있다.
박물관 외벽에는 'I'm not going to be a star, I'm going to be a legend.(나는 스타가 되지 않을 것이다, 전설이 될 것이다.)'라는 문구와 함께 퀸의 대표곡 'Don't Stop Me Now'의 유명한 가사 'Don't stop me now, I'm having such a good time(지금 날 막지 마, 난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까)'라는 구절이 검은 글씨로 쓰여져 있었다.
머큐리가 남긴 명언 'I'm not going to be a star, I'm going to be a legend.(나는 스타가 되지 않을 것이다, 전설이 될 것이다.)'라는 문구는 박물관 외벽 곳곳에 새겨져 있었다.
스타(Star)는 대중의 눈에 띄며 화려한 인기를 누리지만, 시간이 지나면 잊혀질 수 있는 일시적인 존재로 여겨지기도 한다. 반면에 전설(Legend)은 시대와 국경을 초월하여 영원히 기억되고, 문화적으로나 역사적으로 큰 족적을 남기는 위대한 존재를 의미한다. 머큐리의 말 속에는 단지 반짝하고 사라지는 스타가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 숨쉬는 아이콘이 되겠다는 야심찬 포부가 담겨 있다. 그는 단순히 많은 돈을 벌거나 당대의 유명세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수십 년이 지나도 사람들이 계속해서 듣고 감동할 수 있는 음악과 퍼포먼스를 창조하겠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진 뮤지션이었다.
박물관 외벽에는 머큐리의 어린 시절을 설명하는 안내판이 걸려 있었다. 안내판에 따르면 머큐리는 1946년 9월 5일 잔지바르 스톤 타운의 정부 병원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인 보미(Bomi)와 제르 불사라(Jer Bulsara)는 인도 출신의 파르시(Parsi) 공동체 일원이자 조로아스터교 신자였다. 그의 가족은 수이사이드 앨리(Suicide Alley) 근처에서 첫 생활을 시작했으며, 1950년대에는 이 건물(현재 박물관)의 최상층 아파트로 이사하여 1963년 12월 잔지바르를 떠나기 전까지 거주했다. 프레디는 8세 때 인도의 판치가니에 있는 기숙학교로 유학을 떠났으며, 방학 때마다 이곳 잔지바르 집으로 돌아와 가족들과 시간을 보냈다. 1963년 말 잔지바르가 독립을 준비하던 격동의 시기에 가족들은 영국 펠텀(Feltham)으로 이주를 결정했고, 프레디는 그곳에서 학업을 이어가며 세계적인 음악 여정을 시작하게 된다.
안내판 하단에는 'I'm not going to be a star. I'm going to be a legend.(나는 스타가 되지 않을 것이다. 전설이 될 것이다.)'라는 머큐리의 유명한 명언이 적혀 있었다.
스톤 타운에 위치한 수어사이드 앨리(Suicide Alley)는 과거 악명 높았던 노예상 티푸 팁(Tippu Tip)의 저택이 있던 좁은 골목 이름이다. 그가 화승총을 테스트하기 위해 노예들을 세워두고 사격을 했다는 끔찍한 전설에서 그 이름이 유래했다. 대대손손 천벌을 받아 마땅한 티푸 팁이다.
안내판 설명에 따르면 박물관 건물은 프레디 머큐리의 생가가 아니라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라고 하는 게 맞다. 머큐리의 생가는 수이사이드 앨리 근처에 있던 집이다.
프레디 머큐리 박물관을 떠나기 그의 사진 앞에서 전 인증 샷 한 장을 남겼다. 1975년에 발표한 퀸의 시그니처 곡 'Bohemian Rhapsody'를 떠올리면서 숙소로 돌아왔다.
2026. 1. 9. 林 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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