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 본동 댁
나는 개구쟁이 두 아들, 그리고 남편과 함께 서로를 아끼며 단란하게 살아가고 있는 가정주부입니다.
남편은 아이들에게 다정한 아빠이자, 나에게도 늘 웃음을 주는 유머 감각이 있는 남편이고요.
아이들은 또래 보다 제 할 일을 스스로 찾아 할 줄 알고 예의가 바른 편이라 걱정이 없습니다.
우리 집은 그야말로 행복이 가득한 집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깜짝 놀랄 소식을 들었습니다.
시골에 홀로 계신 엄마가 3 일을 굶어 쓰러진 채로 발견된 것입니다.
심장이 쿵 내려앉았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농사일에 집안일까지 정정하게 하시던 엄마인데.
무슨 까닭인지 몰라 시골집으로 가는 내내 가슴을 졸였습니다.
억척 엄마. 엄마는 그랬습니다.
아들 넷, 딸 넷을 혼자 몸으로 키우느라 밤낮없이 일만 했습니다.
일찍 남편을 떠나 보낸 후, 시골에서 품을 팔아가며 8 남매를 올곧게 키워내는 것,
그것이 엄마 인생의 목표였습니다.
쉼 없는 노동. 그 대가로 엄마는 농사지을 땅을 소유했고
자식들이 머물 수 있는 집을 가졌으며 8 남매 모두 잘 성장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인생의 즐거움을 누려야 할 때, 엄마에게 치매가 찾아왔습니다.
그토록 강인한 정신력의 엄마에게 치매가 왔습니다.
자식들이 모두 떠나가고 지독한 외로움에 시달리셨던 걸까?
나는 엄마를 그냥 둘 수 없어 집으로 모시고 왔습니다.
엄마에게는 일곱 번째 자식이지만 그냥 내가 모시기로 했습니다.
너무 늦게 엄마의 고통을 알게 되어 죄스럽기만 합니다.
다행히 남편은 아픈 장모님을 집으로 모시는 것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오히려 엄마를 나보다 더 살갑게 대하며 가슴으로 껴안습니다.
역시 멋진 내 남편입니다.
그렇게 3년이 흘렀습니다.
우리 집의 아침 풍경은 언제나 비슷합니다.
아이들을 챙기고 남편도 살뜰히 챙겨 출근시키고 나면 엄마가 나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이가 되어버려서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엄마.
40년 전 엄마가 아기인 나에게 해준 것처럼 아기가 된 엄마를 돌봅니다.
씻기고 먹이고 입히고 화장실에 시간 맞춰 데리고 가고.
아직은 엄마가 내 이름을 불러주니 다행입니다.
언젠가 는 그마저도 기억에서 지워버릴 것 같아 겁이 납니다.
"승애 야, 지금 나가야 하는데."
"엄마, 어디 가고 싶은데?"
"송광 굴에 가서 일해야 혀."
"무슨 일... 이젠 안 하셔도 돼."
"콩도 심고 밭도 갈고."
엄마에겐 땅(송광굴)이 세상 무엇보다 소중하신가 봅니다.
그 땅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었고 모든 것이 나왔습니다.
그곳에서 거둔 것들로 8 남매를 먹이고 키워냈습니다.
땅 없이는 불가능했겠지요.
그러니 매일 돌보러 나가고 일해야 하는데, 그 땅이 이곳엔 없습니다.
엄마는 창 밖으로 보이는 아파트 단지를 보며 안절부절 못하십니다.
그 땅에 건물이 들어서서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올해 일흔일곱 살 김종례. 엄마는 '본동 댁'이라고 불립니다.
한 동네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평생을 살았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입니다.
할 일이 없다는 건 평생을 노동으로 살아오신 분에게 견디기 힘든 고통인가 봅니다.
그래서 평일 낮 동안 치매 노인 보호 센터로 보내드립니다.
엄마에게는 거짓말을 합니다.
"엄마, 그곳에 가서 일하면 하루 7천 원에서 만 원 정도 버니까, 돈 벌러 가시는 거야. 알았지?"
"그럼, 일해야지. 일해야 돈을 벌지."
당뇨, 고혈압에 관절염까지 겹쳐 한 움큼씩 약을 드셔야 하는 불편한 몸으로 엄마는 기꺼이 일하러 가십니다.
엄마는 그 시간이 즐겁다 하십니다.
엄마는 거울 속의 자신을 보고 '우산 댁'이라 합니다.
'우산 댁'은 엄마의 엄마, 그러니까 나에게는 외할머니이십니다.
외할머니가 살아 돌아오셨다고 믿는 엄마.
엄마는 거울을 보며 외할머니 끼니를 챙겨드렸냐고 묻습니다.
물론 나도 식사를 잘 챙겨드렸다고 응수합니다.
엄마에게 가장 그리운 사람은 외할머니였을까?
엄마에게도 엄마가 있습니다.
엄마도 언제나 엄마의 품을 그리워하며 보고 싶어 하셨을 테지.
그 사실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처음엔 인정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우리 엄마는 영원히 건강할 거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내 기억 속에서 엄마는 강하고 엄한 분이셨습니다.
그런 엄마였는데, 한순간에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엄마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시간 날 때마다 장모님 옆에 나란히 누워 시답잖은 농담을 주고받으며 껄껄 거리는 남편과,
사위 앞에서 수줍은 듯 입을 가리고 웃는 엄마,
그리고 자신들보다 할머니에게 엄마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두 아들에게서
힘을 얻었습니다.
엄마는 불청객이 아니라 우리 가족이었고
그 변함없는 사실은 우리 가족을 더 끈끈하게 이어주었습니다.
명절이 되어 고향 집으로 가는 길, 쉬지 않고 5시간을 내리 달립니다.
벌교 집에 가족들이 모두 모였습니다. 이번이 여기에서 보내는 마지막 명절입니다.
엄마는 본동으로 돌아와 즐거운지 웃음이 그치지 않습니다.
부엌에선 며느리들과 딸들이 설음식 준비로 부산합니다.
몇 년 전만 해도 명절이면 엄마가 주방의 수장으로 호령하며 음식 준비를 도맡았는데,
이제는 멀찍이 떨어져 물끄러미 부엌을 바라보십니다.
아내로 엄마로 새벽부터 밤까지 노동으로 살아온 인생.
그 고단한 인생의 끝에서 치매를 만나는 것은 너무 가혹합니다.
예전부터 남편은 명절이 끝나고 돌아갈 때면 가장 늦게 올라가자 했습니다.
많은 가족이 붐비다가 홀로 남으실 장모님 생각에 발길이 안 떨어진다 했습니다.
손수 농사지은 먹거리를 잔뜩 싸주시며 잘 지내라는 말을 연거푸 하시는 장모님의 외로운 웃음을
보기가 힘들다 했습니다.
혼자라는 사실 앞에서 엄마는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오늘도 엄마는 나갈 문을 찾아 온 집 안을 빙빙 도십니다.
콩을 심어야 할 때라고 밭에 나가봐야 한다는 엄마.
이어지는 실랑이에 엄마의 마음을 편하게 해 드릴 방법을 궁리하다가 슈퍼에 가서 흰 콩과 검은콩을 사 왔습니다.
한데 섞어 엄마 앞에 내려놓았습니다.
엄마는 흰 콩과 검은콩을 따로 담느라 손을 부지런히 놀리십니다.
할 일이 생겨 집중하는 엄마.
색깔 별로 잘 고르시다가도 흰 콩이 검은 콩 그릇으로 가기도 하고 검은 콩이 흰 콩 그릇으로 가기도 하고,
끝이 없습니다.
콩 고르기는 엄마의 큰 일감이 되었습니다.
올봄 초등학교에 입학한 작은 아들은 할머니가 오신 후부터 예민해졌습니다.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하다가 할머니 존재 때문에 힘든가 봅니다.
그래도 아이들은 할머니가 오신 후에 달라진 삶을 오히려 어른보다 잘 받아들였습니다.
그런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고맙습니다.
좀 더 신경 쓰지 못해 속상하지만 이런 부모의 모습을 보며 잘 성장하리라 믿습니다.
오늘은 엄마를 모시고 병원에 다녀왔습니다.
처음 엄마를 집으로 모시고 왔을 때는 30점 중 16점이었는데, 지금은 7점으로 더 안 좋아지셨습니다.
첫 검사에서 이미 중증이었지만 정성으로 보살펴드리면 나아질 거라 믿었는데 현실은 내 편이 아니었습니다.
뇌 부피가 더 작아졌고 언제 시설로 보내드려야 할지 이제는 생각해봐야 한다는 의사의 말이 가슴에 와서 박힙니다.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뭐가 부족한 건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모르겠습니다.
더 이상 해드릴 수 있는 게 없으니 더욱 가슴이 아픕니다.
엄마와의 시간이 얼마나 지속될까요?
엄마는 아직 딸을 잊지 않았습니다. 언젠가는 내 이름과 얼굴을 잊을 때가 올지도 모릅니다.
존재가 지워지는 날, 그날이 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길 수 없는 싸움.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
하지만 오래도록 할 수만 있다면 그 싸움을 계속하고 싶습니다.
내 곁에 오시고 몇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엄마와 함께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
엄마는 여전히 우리 엄마고 나는 그녀의 딸입니다.
엄마와 나의 시간은 오늘도 흐릅니다.
그 사실 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엄마 옆에 내가 있고 내 옆에 엄마가 있기에, 기쁨도 슬픔도 함께 나누기에,
우리 집은 행복이 가득한 집입니다.
- MBC 휴먼 다큐 사랑 10년의 기적 '지금, 사랑' 중에서 -
TV로 방영되어 많은 이들의 눈물을 훔친 휴먼 다큐 '사랑'이 책으로 발간 됐습니다.
그중 '우리 엄마 본동 댁' 내용의 일부를 담았습니다.
사연을 읽고 댓글을 남겨주세요.
= 따뜻한 말 한마디로 힘이 되어주세요 =
<옮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