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하는 시 한편
(시와문화 2026년 여름호 게재)
멈추지 않는 감정의 파편들
강미영
9월, 가을비를 재촉하는 비가 내린다. 비가 내린 후에도 더울 거라고 했지만 아침저녁으로 선선하다. 그래, 여름이 가면 가을은 움직이며 우리에게 온다. 늦은 폭염이 이어질 거란 말을 뒤로 하고 강릉으로 달린다. 이른 새벽 달리는 창밖으로 바람과 비가 강릉까지 이어지고 있다 강원도 쪽으로 비가 거세게 내린다. 올해 강릉에는 비가 내리지 않아 생활 수로 사용하던 오봉 댐까지 바닥을 보이면서 시민들의 생활이 불안과 초조로 이어지고 있으니 오늘 내리는 비는 정말 금비라고 말해야 할 것 같다.
시를 읽어본다. 차갑지 않고 따뜻하게 고통을 감싸며 나의 내면의 뭉클함까지 일깨워주는 시. 삶을 진정성 있게 바로 읽게 해주는 힘의 시.
마른하늘에 번개처럼
어느 날 갑자기 눈물이 난다
살아온 길, 돌아온 길, 그 발자국 너무 깊어
망연히 창문 바라보며 문풍지처럼 울었다
창문에 맺힌 빗방울 툭툭 어깨를 치며 달려온다
생활비 모자라 이 집 저 집 달려가 차용증 썼던 눈물,
사막을 뛰었던 모래언덕, 그 언덕 자갈밭 길,
넘어지고 깨진 무르팍, 발뒤꿈치에 등 떠밀어
절벽으로 떨어뜨리던 배후의 한 사람,
그 절벽, 그 난간에서 팔딱이던 들새 한 마리
기적적으로 난간에서 살아난 들새 한 마리
아물지 못한 그 날갯죽지 아직도 피가 흐르는데
머-언 산 메아리 혼자 서럽다
-이영춘「해일과 해일 사이에서」 《시와 정신》, 2025 여름호
해일은 거친 모서리를 둥근 곡선으로 만들고 파도의 반복된 접촉은 시간의 인내나 감정을 유화 시킨다. 또한 창은 우리를 사유에 잠길 수 있게 하고, 자유에 대한 갈망과 세상과의 관계 맺음을 상징하는 아주 중요한 존재이다. 창을 바라본다는 것은 밖으로 나가고 싶은 욕망을 의미하기도 한다. 창은 바깥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마음 속 창을 열어 거울 속 ‘나’를 마주하는 행위이며 자신의 내면을 보게 만드는 장치가 되기도 한다. 고요한 오후 창가에 앉아 멍하게 응시하는 순간,우리는 과거를 회상하거나 현재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화자는 창을 바라보며 해일처럼 거칠게 살아온 삶을 떠올린다. “생활비 모자라 이집 저집 달려가 차용증 썼던 눈물,/ 사막을 뛰었던 모래언덕, 그 언덕 자갈밭 길,” 그리고 “절벽으로 떨어뜨리던 배후의 한사람,”까지 말이다. “망연히 창문 바라보며” 감정은 “마른하늘의 번개”로 해일처럼 둥근 곡선을 만들며 밀려왔다. 화자는 순간 단단히 움켜주고 살아온 삶의 감정들이 반복된 접촉들로 무너지며 서럽다. 매일 밀려오던 삶에 골은 깊었던 걸까. 가슴속에 숨어있던 감정의 편린(片鱗)이 무너지며 “문풍지처럼 울었다”로 화자의 감정 선을 표출한다. 해일처럼 쏟아지는 감정의 잔물결은 바람까지 끌어와 밤새 잠 못 든다. 파도처럼 문풍지 소리로 어깨까지 들썩이며 운다. 이런 화자의 감정편린(片鱗)은 잠시 내게 동해바다 방파제 앞에 서게 한다. 바다의 파도가 시인의 슬픈 울음소리로 내게 들린다.
감정이 순간 쏟아지면 높은 해일을 몰고 오는 파도 같을 때가 있다. 억눌려 있던 슬픔이나 분노가 갑자기 몰아치면 평소에 잘 지내던 사람도 그 정에 휩쓸릴 수밖에 없듯 말이다. 아마 시인도 방파제 앞 같은 창을 바라보다 감정 선이 밀도 있게 높아진 것일 것이다. 말하고 싶을 때, 누군가에서 털어놓지 못 할 때, 무심히 창을 보고 있다가 거울처럼 창에 비춰주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서러워진다. 창밖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어쩌면 어떤 억압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무의식적인 충동의 표현 일 것이다. 창이나 거울을 통해 감정을 온전히 마주하는 건 쉽지 않다. 시인의 울음처럼 말이다.
달리는 내내 동해바다의 해일이 엉겨 우리에게 동력이 되는 것들로 끝말잇기처럼 따라 왔다.“해일과 해일 사이에서”의 주목하는 시 한편까지. 시는 현실에서 잠시 발을 뺄 수 있는 시간에 읽기 좋다. 그러다 따스함으로 포옹하고 싶은 시인의 이름을 만나면 엄마 같다.
우리 주변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응시하는 용기를 가르쳐 주는 詩와 그리고 선생님. 시를 읽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주목하는 시는 이런 힘으로 천천히 내게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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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미영:2004년《시와 세계》으로 등단. 시집으로 『Y는 느티나무』, 『브로콜리 마음과 당신의 마음』 등이 있음.
<시와 세계>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