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그만 사랑노래 .....
황동규
어제를 동여맨 편지를 받았다
늘 그대 뒤를 따르던
길 문득 사라지고
길 아닌 것들도 사라지고
여기저기서 어린 날
우리와 놀아주던 돌들이
얼굴을 가리고 박혀 있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추위 환한 저녁하늘에
찬찬히 깨어진 금들이 보인다
성긴 눈 날린다
땅 어디에 내려앉지 못하고
눈 뜨고 떨며 한없이 떠다니는
몇 송이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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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직 재수할 때 에이포 용지 보다 조금 작은 흰 종이에다
손으로 직접쓰고 눈도 몇 개 그려넣은 시다.
'즐거운 편지' 같은 작품은 물론 훌륭하지만,
황동규의 시가 굉장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열 편을 읽으면 그중에 7,8 편은 태작이고,
마음에 와닿는 건 1편이 될까말까라고 언제나 속으로
혹평해 마지 않았는데,
요즘은 황동규 시를 대하는 내 마음에 겸손이 조금쯤
생겨난 것 같다. 좋다는 말이다.
처음은 물론 이 <조그만 사랑노래> 때문이었다.
첫번 째 읽었을 때는 그저그런 시 같았다.
마지막 구절에서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어서
처음부터 다시 읽었을 때는 마음이 열렸고,
세번째 읽었을 때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어제를 동여맨 편지' 앞에서 반가웠을 것이나
편지 속 내용에 번민했을, 혹은 아파했을 시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늘 살아오는 일상이지만 일상의 어느 언저리에서
갈 길을 잃고 우왕좌왕하고 있는 한없이 여린
'그대'. 그런 그대에게 시인은 아무런 도움이 되어 주지
못한다.
시인역시 '그대'와 똑같은 생활인이며
어떻게 살아갈야할지에
대한 답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세상이, 머릿속이 새하얗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추억들도 등을 돌리고 세상에 혼자 버려진 기분.
겨울 밤. 맑은 하늘에서 별이 반짝인다.
하늘에 금이 간 것 처럼, 짜잘한 별들이 반짝이는 모습은
자기자신의 사랑 고백처럼 애처롭다.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아무리 몸부림쳐도
저 먼 그대에게는, 혹은 누구에게도 전달되지 않는다.
어느 새 눈발이 날린다.
마음을 안온하게 덮어줄 포근한 함박눈이 아니다.
구원은 쉽게 찾아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긴 눈. 신산스럽고, 오히려 마음을 더 얼게 만드는 성긴 눈.
그런데, 가만히 눈을 들여다 보니
나 자신과 닮았다.
누구에게도 내려앉지 못하고, 어디에서도
내가 있을 장소를 발견하지 못하는,
세상 앞에 한 없이 무력한 나 자신과 닮았다.
세상의 모든 여리고 작아서 소중한 것들,
혹은 사람들에게
바치는 사랑노래 같다.
열심히 살다가 문득 뒤를 돌아 보았을때,
지금까지 걸어오던 길이
앞으로 걸어나갈 길로 연결되지 못하고
망연자실해 질 때가 있다.
그런 순간에 다가 온 시라
아무도 해 주지 못하는 종류의 위로를 해 줄 수 있었던 것 같다.
이제 황동규 시들을 뒤져 보니
보물창고 같은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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