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의 고통과 자학을 통해 존재성을 확인하는 어긋난 인물들의 비뚤어진 여정.
지난 번에 한번 소개한 적이 있는 와타야 리사의 < 발로 차주고 싶은 등짝 >과 함께
2004년 130회 아쿠타카와 상의 공동수상작인 < 뱀에게 피어싱 >은
수상 당시 말도 많고 참 탈도 많던 작품이었다. 작품 자체에 대한 평가가 심하게 엇갈렸다는 애
기이기도 한데 저자인 가네하라 히토미는 초등학교 5학년때부터 등교거부를 일삼고 결국 그 이
후 학교에 다니지 않았으며 몇몇의 습작 수준의 단편들을 발표하다가 이 작품으로 수상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소설 < 뱀에게 피어싱 >은 어둡고 고독했던 10대 시절의 끄트머리에 저자가 겪은 일들에 대한 일
종의 회고담 성격이 짙다. 그래서인지 일부 평단은 < 뱀에게 피어싱 >은 그 이전에 숱하게 나온
바있는 "젊은 시절의 허무한 방황과 고독의 여정"의 상투적 반복일 뿐이라며 냉소적인 시선을 보
냈으나 심사위원들은 주저없이 이 작품을 택하며 부정적인 시선에 대해 이렇게 언급했다.
" 문단에는 지나치게 장식적인 문체와 현학적인 묘사,무거운 주제를 선호하는 경향이 짙다.
이런 문단내의 작품에 대한 "편애"는 일본 문학의 작품의 폭을 좁히고 일부를 "서열화"함으로써
일반 독자들과의 거리감을 유지하려고 한다. 이는 오늘날 일본 문학 스스로가 초래한 비극이다.
< 뱀에게 피어싱 >과 <발로 차주고 싶은 등짝 > 이 두 작품은 그런 획일적 경향에서 탈피하여 신
선하고 젊은 시선으로 세상을 다시 재조명하고 오늘날 문학계의 젊은 기량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좋은 작품들이다. 그건 이론의 여지가 없으며 그런 점에서 이 두 작품
에 아쿠타카와 상 수상은 지당한 일이다. "
< 뱀에게 피어싱 >은 사실 공동수상작품인 < 발로 차주고 싶은 등짝 >과 어느정도 유사한 시선
을 은연중에 내재하고 있는 작품이다. 와타야 리사의 작품과 마찬가지로 가네하라 히토미의 이
작품은 세상의 변두리에서 뚜렷한 목적의식없이 헤매고 다니는 마이너한 인물들에 대한 초상이
며 저자의 과거와도 밀접한 연관성을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 뱀에게 피어싱 >는 < 발로 차주고
싶은 등짝 >보다 하드하며 폭력적이며 자학적인 분위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그 과정의 여정
역시 훨씬 불길하고 어둡다. < 발로 차주고 싶은 등짝 >에서 와타야 리사는 마이너리틱한 각 캐
릭터에 대한 자신의 애정을 굳이 숨기지 않으며 불가항력적인 체제 속 소외와 대립에서도 동시
에 작은 희망의 징조를 놓치지 않고 있지만 < 뱀에게 피어싱 >은 절망과 허무로 침잠하는 주인
공에 대한 스스로의 건조한 응시 이외의 어떤 감상적 빈 틈을남겨두지 않으며(이것은 모순된 애
증의 감정에 가깝다.) "아마"라는 인물을 통해 부분적으로 드러나던 작은 소통의 가능성조차 흔
적없이 소멸시켜버린다. 그래서인지 가네하라 히토미의 이 소설은 와타야 리사의 작품보다 다
소 불편하게 읽힐 소지가 다분하다. 혀 피어싱이나 문신에 대한 자세한(그래서 섬뜻한) 묘사라든
가 왠지 관계의 연역성을 초월한 듯 쾌감과 허무를 집어먹고 살아가는 인물들에 대한 예리한 시
선은 마치 우리에게 " 당신의 삶은 도대체 타자에게,혹 당신 스스로에게 무슨 의미입니까?"라고
냉소적으로 묻고 있는 것 같다.
소설의 주인공 루이는 실제적으로 생을 초월한 듯한 느낌이 진하게 배어있다. 저자와 마찬가지
로 루이는 어린 나이에 무계획적으로 집을 나와있으며 당연히 학교하든가 어떤 곳에 소속되어있
지도 않다. 펑크스타일이지만 여린 맘을 지닌 아마라는 남자친구랑 동거하면서 술을 마셔대며
빈둥빈둥 살아갈 뿐이다. 그녀는 타자와의 소통에는 애시당초 관심이 없는 듯 보인다. 남자친구
라 할 수 있는 아마라는 존재에 대해 맘에 들어하면서도 그닥 크게 동요치않으며 피어싱가게 주
인인 스킨헤드 시바랑 남몰래 정사를 벌인다. (그녀는 사디스틱한 시바와의 관계를 은연중에 즐
기는 성적취향도 드러낸다.) 도대체가 소통과 이해의 욕구가 거세되어있는 듯한 이 주인공이집
착하고 즐기는 것이 있다면 단 하나 "피어싱"이다. 그녀의 피어싱은 단순히 드러내보이기 위함
이 아니라 기괴한 소유욕에 기인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세상과의 교류를 포기함으로써 타자
에 대한 소유욕을 포기하지만 동시에 그 허전함을 피어싱을 통해 해소하려한다. 그녀는 시바에
게 용과 기린의 문신을 받으며 그 강력한 소유욕을 관조어린 음성으로 언급한다.
문제는 그녀가 인식하는 뿌리깊은 허무주의의 소산이 "감정"을 완전히 통제하고 있지 못하는데
있다. 소설의 말미에 능욕을 당한 뒤 누군가에게 살해당한 남자친구 아마의 부재에서 루이는
처음으로 쓰라린 "고독"과 "그리움"의 감정을 절망적으로 느끼기 시작한다. 마치 세상의 누구와
도 정상적인 인과율을 유지하지 못할듯 보이던 그녀는 역설적으로 누구보다도 인간적인 아픔에
절규한다. 저자 가네하라 히토미는 이 시점에서 그녀의 무절제하고 의미없이 부유하는 행위들
이 (그리고 본질적으로 "생"에서 도태되려는 듯한 정신이) 자신의 연약함을 감추기 위한 초라한
무기였음을 깨닫게 해주고 있다. 어찌보면 통속적이랄 수도 있는 이런 소설의 과정은 가네하라
히토미의 서늘한 문체를 통해 새롭게 독자들에게 각인된다는 점이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저지 가네하라 히토미가 선택한 말미는 매우 의미심장하다. 남자친구 아마처럼 갈라진
혀를원해서 혀피어싱을 늘려가던 그녀가 마지막 0GA 피어싱을 행하면서 새로운 자아를 꿈꾸고
동시에 새로운 "무"로의 귀화를 위해 스킨해드족 시바를 받아들인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시바는
남자친구 아마를 죽였을 가능성이 농후한 사디스트족이다. 그러나 루이는 무미건조하게 읊조린
다. 그런 것들이 무슨 상관이냐고. 그녀에겐 그녀를 보호해줄 "표피"가 필요할 뿐이다.
그런 점에서 아마를 향한 슬픔 역시 타인에 대한 애정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위
기의식에 기인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사랑에 집착하는 인물들과 그것을 이용하는 인물
이 벌이는 이 사디스틱한 이야기는 확실히 저자 히토미가 보여주는 삐뚤어지고 왜곡되고 지쳐있
는 인간군상의 외로운 종말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허무라든가 절망이라든가 이런 말은 이제 문학에서 너무나 흔하게 언급되고 통용되는
주제의식인지라 새삼스레 이런 "비극"을 다룬 작품들에서 무엇을 더 애기할 수 있는가.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을런지 모른다.
그러나 진정한 문제는 어떤 주제를 다루는냐가 아니라 우리가 은연중에 가슴 속에서 갖게 되는
작은 절망과 회의를 받아먹고 서서히 자라나는 체념과 허무의 열매들이 얼마나 문학적으로 설득
력있게 구현되느냐 일 것이다.
그저 절망들을 그럴듯하게 전시해놓고서는 설득력없는 사탕발림 희망을 결말에 배치하며 "그래
도 잘 살아보세."라고 외치는 문예소설들이 판을 치는 요즘 시대에
고독도 절망도 아픔도 허무도 온전히 우리의 업이요 몫이라고 부르짖는 작품 < 뱀에게 피어싱 >
은 가슴뿌듯한 뭉클함도, 한껏 기분좋게 만들어주는 유희정신도 없지만 우리의 껍질을 벗고
우리 자신을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을 선사한다.
처녀작으로서 이렇게 섬뜻하게 가슴을 져미는 소설을 써낸 약관 21살의 가네하라 히토미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정말 한결 성숙한 차기작을 벅찬 가슴으로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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