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리..
학교 다닐 때 국어시간에 배웠는지의 기억보다는 어릴 때 '이명우의 가시리'라는 노래로 지금도 아련히 귓가에 맴도는 인상깊은 노래이다. 작자, 연대 미상의 고려가요라고 한다. '이명우의 가시리'라는 노래의 가사에는 '청산별곡'과 '가시리'의 가사를 섞어서 만든 노래다. 그래서인지 가삿말에 정서가 더욱 비슷하게 느껴지기도 하다.
우리는 삶 속에서 시(詩)와 노래(歌)를 떼어 놓어 놓을 수 없을 정도로 가까이 접하며 살게 된다. 심지어, 음악이 없으면 일상생활이 안될 정도로 늘 귀에 이어폰을 꽂고 사는 중독증상을 가진 사람도 있다. 이러한 이유는 우리의 삶을 음계에 비유하자면, 의하여 존재를 성립하고 있는 본성은 모든 존재와 서로의 의미를 우호적이고 상존적으로 서로 호흡하며 어우러짐으로, 다양한 관계마다라는 다양한 음률로서 시간을 통한 아름다운 음악을 완성하는 다양한 리듬으로서의 일들로 받아 들이며, 긍정적인 마음으로 사는 삶이 본성이 원하는 삶이라 할 수 있는 이유에서 이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사뭇 동물처럼 현실이라는 하나의 대상과 늘 1:1의 관계라는 하나의 음계로 인식하게 되는 삶을 갖게 되는 이유로 스트레스가 해소되지 못하여, 일상에서 불만족감을 갖게 되는 이유로 음악을 듣게 된다 할 수 있다. 음악을 듣는 동안은 일정한 다채로운 음률의 반복으로서 엉킨 감정이나 사념을 맛사지 하는 효과를 나타내어 경직된 기분이 평온해짐을 느끼게 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의 삶의 의미를 찾고자함에 있어서 '사랑'이라는 단어를 빼놓을 수가 없다. 어근을 찾아보자면, '사'는 '사이'에서 '랑'은 친밀한 관계로서 다정다감한 대상을 존중하여 말할 때 붙는 접미사격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관계에 대하여 존중하여 표현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의하여 존재하므로 위하여 존재하는 삶으로 주어졌음에 대한 유일한 대상으로서의 이해로 자신이라는 존재함의 이유가 온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계에 대한 대상을 찾아보자면, 사람으로 태어나면 두 배우자와 두 개의 삶의 충족으로 만족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두 배우자란 태어나자마자 얻는 세상이라는 배우자와 이성의 남녀로서 배우자이며, 두 개의 삶이란 먹고 사는 물질적 삶과 이 순간 우주 속에 존재하는 '나'라는 존재의 정체성을 찾는 영적인 삶이라 할 수 있다. 이 두 배우자와 두 개의 삶이라는 원만한 관계 속에서 우리는 긍정적인 삶의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1. 세상이라는 배우자와는 마주치게 되는 수 많은 사람과 또는 제공되는 자연이라는 환경적 요인이라는 대상적 관계 속에서 알게모르게 만족과 불만족이 상존한다고 할 수 있다.
2. 이성의 남녀로서 배우자와의 관계 또한 이성에 눈을 뜨는 싯점부터 죽을 때까지 아이낳음을 위한 영속을 추구하는 본성의 지배에서 비롯된 대상적 관계 속에서 알게모르게 만족과 불만족이 상존한다고 볼 수 있다.
3. 먹고사는 물질적 삶에 있어서, 우리는 태어 날 때부터 육체라는 물질에 의존 또는 상존되어 태어나기도 하지만 태어나자마자 엄마의 젖이라는 물질에 의존하며 살게된다. 아울러, 음식이라는 외부의 물질을 배고플때마다 삼시세끼니를 찾아먹어야 하는 고민아닌 고민을 하며 살게되고, 또 성인이 되어서는 자신과 가족이 먹고 살기 위해 아등바등 싫거나 좋거나, 쉬고 싶은 마음도 무시하고, 자존심도 굽히며, 심지어 양심을 버리기까지 하여 물질적 삶의 기여가치를 상징하는 돈을 벌고 축적하기 위해 물질적 욕구의 노예가 되어 혈안되는 삶을 살게된다.
4. 이 순간 우주 속에 존재하는 '나'라는 존재의 정체성을 찾는 영적인 삶에 있어서는 태어나서 철이 들려는 시기 이전에는 주어진 환경인 가족과 접하는 주변의 환경이라는 대상적 관계 속에서 만족과 불만족이 상존하는 상태에서 살아지게 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사춘기의 무렵이나 철이 들려는 시기가 되면 대지(大地)의 세상이 무엇이고, 가족이 무엇이고, 사람들이 이루고 있는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이 과연 어떤 가치가 있고 옳은 것들인지에 대한 지적 호기심을 갖게 된다.
성인이 되기 이전에는 누가 말해주는 사람도 없고 존재함에 대한 근원적인 해답을 찾기 어려운 이유로 처음의 의문은 자신이라는 존재의 의미를 찾기도 전에 진학과 취업과 일에 매달려 희미하지게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자신이 하는 삶의 형식이 반복이 되고 삶의 의미가 퇴색되어가는 즈음에는 다시금 처음의 지적 호기심이 발동할 수 있다.
물론, 이 즈음에서 두 갈래로 나뉘어 질수도 있다. '나'라는 존재에 대한 정체성을 찾는 영적인 삶에 관심을 기울이는 부류와 현실적인 물질적 삶에 만족하며 영적인 삶에 대한 관심조차도 기울이 않는 부류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하여, 영적인 삶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그들이 잘 못 된 것이라고 할 수 만은 없다. 우주의 구성적 요소로서 성숙의 과정에서 서로의 역할로서 온전한 삶을 가지는 와중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꾸 이야기가 길어지는데 결론적으로, 우리는 이 4가지의 관계에서 공통적으로 잃음과 생김에 대한 상심과 기쁨의 마음을 일상 속에서 언제든지 가질 수 있다. 대표적인 관계가 이성의 남녀로서의 관계에 대한 감정이라 할 수 있으며, 표현되는 모든 감정은 위의 4가지의 대상을 통하여 갖게되는 감정과 같은 맥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가시리'라는 노래의 본래적인 의미는 깨달음이라는 궁극적인 의식(意識)을 구(求)하는 구도자의 갈망하는 마음을 노래 한 영혼(靈魂)의 노래라 할 수 있다. 기원 전후의 수 천년 전에는 요즘처럼 얼마나 이성간의 감정을 노래할 정도로 보편히 여기고 숭고히 여겼는지는 모르지만, 아무래도 민족의 혼이 깃든 노래이기에 궁중음악으로 사용되지 않았을까하는 마음이 든다.
이 시의 화자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호할 수가 있다.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는 유형의 육체라는 물질적 여건으로 남녀로 나눌 수는 있으나, 무형의 의식인 영혼은 생명자로서 동질자이다. 그러므로, 이 시의 화자를 찾으려함에 있어서 물질적 여건으로 남과 여라는 시각으로 찾는 것은 무의미할 수 있다. 이 시를 접하는 모든 사람들의 영혼이 화자일 수 있기 때문이다.
굳이 말하자면, 내 안에 내재하는 영혼의 이야기로서 생각케 하는 원천인 영(靈)은 원인자로서 남자격이며 아버지격이라 할 수 있으며, 영(靈)의 원천으로 생각하고 있는 모든 의미를 갖는 혼(魂)은 여자격이며 딸이라 할 수 있다. 성경의 이야기도 이 무형과 유형으로 이루어진 세상에 대한 바탕적 이해와 우주적 자아(神)와 개체적 자아(子女)에 의한 관계를 서사적(敍事的)인 형식의 문장으로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아리랑'의 가사처럼 가삿말이 요즘 보편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옛 말인 이유로 가삿말에 대한 의미와 뜻에 대하여 설왕설래만 난무하는 것 같아서, 어떠하든 깨달음의 의식에 준하여 풀이하여 보고 싶은 마음에서이므로 반신반의 하는 편안한 마음으로 보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 작자, 연대 미상의 고려가요 - 가시리 | |
| 원문 (原文) | 앱솔의 풀이 |
| |
가시리 가시었나요 (내게서) 버리고 가시었나요 (내게서) |
|
가시나요 가시는가요 (나는 여기 있는데) <1연> [ 가삿말에 표현된 예전의 언문을 이해하려면, 표현된 언문을 떠나서 먼저 화자의 갈망하는 구도적 감성에 동화되어야 본질적인 의미를 찾을 수 있을테고 현대어로도 표현될 수 있으리라 본다. ] * 가시리 : 요즘 말로 '잊으리'라는 독백하는 표현의 말이 있다. 원래는 한몸이었을 정도로 함께였으나, 지금은 자신에게 없다는 실연의 감정을 독백으로 한 '가시리'임. * 가시리 잇고 : '어찌 이럴 수 있는고'라는 표현으로서 '잇고'는 자신에게 없다는 것을 확인하는 독백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 나난 : "내게서, 내게로" '나는 여기에 있는데' 이 시의 모든 표현은 싯귀마다 화자를 중심으로 한 것이라 할 수 있으며, 요즘말로 '나는 어떡하라고' '나를 이렇게 두고' 이런 감정의 넋두리적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쉬운 이해로 '가족들이 나 어디 갔다가 없는 사이에 지네들끼리 맛있는거 다 먹은 후에 도착해서 따지듯이 '내-는?!!ㅠ.ㅠ"이라며 절규하며 울먹이는 감정에 비유할 수 있다. 염원의 당사자를 나타내는 주체어로서, 문장마다 전체적으로 외침으로 울리는 코러스(chorus)라 할 수 있을거 같음. * 위 : '우'와 모음 'ㅣ'의 합성으로서 '우리'로 보여짐. * 증즐가 : 이 시어의 주제어는 대상자와의 정겨움이라 할 수 있으며, '증'이 '더할 增'으로 보여진다. '즐'은 즐거움처럼 다정다감한 기쁨의 감정을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으며, '가'는 '증 과 즐'의 정겨움을 표현하는 접미사격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건배할때 '우리가! 남이가!"라며 외치듯. '즐거움이 더하다'는 뜻이나 넘치지 않는 기쁨인 '정겨움'의 정도로 풀이를 하여 봄. * 대평성대(大平盛代) : 큰,클大. 평평할,고를平. 담다,채우다盛. 대를이음,世世토록代. 혹자는 태평성대라고 볼 수도 있다고 하나, '태평'은 물질적임과 심적인 심신의 평안함을 추구함이라 볼 수 있으며, 여기서 표현된 '대평'은 물질적인 평안보다 영(靈)적인 평온이라 할 수 있다. | |
| |
날더러 어찌 살라 하고 버리고 가시었나요 (내게서) |
|
날더러 어찌 살라 하고 <2연> * 날러는 : 말 그대로 '날더러' 어찌 살라 하고 이다. * 위 증즐가 대평성대 : 반복되는 후렴구는 지속적인 염원의 연인적 감정을 나타내는 여흥의 코러스(chorus)라 할 수 있다. | |
| |
부여잡아 두고 싶지마는 (내게로)
섣부른 마음 보시면 아니 올세라 |
|
부여잡아 두고싶지만 (나에게로) <3연> * 잡사와 : 동등 이하의 연배나 물건에는 '잡는다'라고 할 수 있으나, 존칭어로서 '잡겠습니다'라는 뜻으로 '부여잡다'라는 표현으로 함. * 두어리마나난 : 본래 문장은 '두어리마나 나난'인데, '나'가 중복이 되어 생략된 것으로 보아 '나난'이라는 여흥의 후렴구를 살려줌. * 선하면 : 先 '마음이 앞서면' 또는 '섣부른 마음'이라는 뜻. | |
| |
설핏온 님 보내옵노니 (내게서) 가시는듯 돌아 오소서 (내게로) (우리의 정겨움으로 평온한 영혼에 머무르게 하소서) |
|
설핏온 님 보내옵노니 (나는 여기에 있는데) 가시는듯 다시 돌아 오소서 (나에게로) <4연> * 셜온 : 본래적 의미는 '슬슬'이라는 표시나지 않게 라는 뜻이나, 현실적인 어감으로 '설핏'에 가깝게 보임. - 국어사전) 설핏 : 발음 : [-핃] ① 생각이나 모습 따위가 잠깐 나타나거나 떠오르는 모양을 나타내는 말 * 가시난 닷 : 상실감을 갖게되는 싯점을 의미하며, '가시는 날 또는 때, 오늘이 가기 전에' '다시'라는 의미일듯 함. * 도셔 : '돌아'라는 요즘의 말. * 오쇼셔 : '오소서' '오라'는 존칭의 말. | |
가시리 가시었나요 (내게서)
버리고 가시었나요 (내게서)
날더러 어찌 살라 하고
버리고 가시었나요 (내게서)
(우리의 정겨움으로 평온한 영혼에 머무르게 하소서)
부여잡아 두고 싶지마는 (내게로)
섣부른 마음 보시면 아니 올세라
(우리의 정겨움으로 평온한 영혼에 머무르게 하소서)
설핏온 님 보내옵노니 (내게서)
가시는듯 돌아 오소서 (내게로)
(우리의 정겨움으로 평온한 영혼에 머무르게 하소서)
'깨달음'은 죽은 나무에 꽃을 피움에 비유할 수 있다. 깨달음은 인간으로서 마지막으로 가져야 하는 존재함의 의미로서 삶의 희망이자 종착역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깨달음에 근접한 의식을 가졌다 하더라도 현실에서 오는 상실감은 늘 이 희망의 끈이 약해지거나 흐려지게 할 수 있다. 이 '가시리'라는 싯귀에서도 약해지지 않으려는 자기염원이 짙게 배여 있는 듯 하기도 하다.
혹여나, '깨달음'이라 하여 불교적인 깨달음이 아니라, 우리 민족에게 불교가 들어오기 이전의 '천지인의 삼신신앙'에 바탕을 둔 구도자가 갈망하는 청순한 깨달음의 노래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싶다. 그리고, '아리랑'과 '청산별곡' '가시리'의 통속적인 싯귀를 통하여, 우리의 고대 민족은 민중이 함께하는 거대한 종교국가였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는 것이다.
이 시대의 우리의 삶에서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이 물질적 삶의 영화보다는 우리 민족 고대에 누렸던 영(靈)적인 영화를 이 시대의 우리가 부활하여야 할 책임성과 필요성이 있다. 또 하나의 '나'인 미래인류를 위하여!
다시금, 세계 속에 부활시킬 영성(靈性)의 한류를 위하여~!
두터운 외래(外來)의 겉 껍질을 버리고, 깨어나자~!! 한겨레여~~!!!
~ㅅ
제 목 : 가시리 / 노 래 : 전명신 / 전명신은 대한민국의 국악가수이며 대금 연주자이다.
( 대 금 : 홍경림 / 가야금 : 정현정 / 작 곡 : 류자현 )
----------------------------------------
가시리 고려 가요 | 브리태니커
작자·연대 미상의 고려가요.
님을 떠나보내는 이별의 안타까움을 노래했다. 〈귀호곡 歸乎曲〉이라고도 하며 전체 4절로 이루어져 있다. 후렴구를 제외한 각 절은 2행으로 나뉘며 각 행은 대개 3음보의 운율을 유지하고 있다.
1절에서 행 끝마다 반복되는 "나"은 시행의 앞에 있는 것으로 보고 주체를 강조하는 '나는'으로 해석하거나, 피리의 입소리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운율을 고려할 때 이는 3음보를 맞추기 위한 조자(助字)로서 고려가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조흥구(助興句)라고 보는 것이 통설이다. 매 절마다 반복되는 후렴구의 "대평성대"(또는 태평성대)를 제외하면 작품 전체가 우리말로 되어 있으며,단순하면서도 소박한 표현으로 이별의 안타까움을 묘미있게 나타냈다. 후렴구 "위 증즐가 대평성대"는 작품의 주조를 이루는 이별의 정조와는 달리 왕의 선정(善政)과 나라의 태평함을 드러내고 있으므로, 원래 민간에서 불리던 노래가 궁중의 속악(俗樂)으로 채택되던 과정에서 삽입된 것이라 추정된다. 말의 해석에 까다로운 부분은 없으나,
3절의 "선면"의 해석에 있어서는 이견이 있다.'서운하면,(그악이) 심하면, 사룻하면'의 뜻으로 보아 '님께 매달려 님을 서운하게 하면 나에게 돌아오지 않을까 보아'로 해석하는 입장도 있고,'눈에 선하면,얼굴을 마주보기만 하면'의 뜻으로 보아 '눈에 선할 정도로 보고싶으면 설마 아니오겠느냐'로 해석하는 입장도 있다. 작품의 정조로 비춰볼 때 전자의 해석에 타당성이 있다. 이에 따라 내용을 보면,
1절에서 님과 이별하는 상황에 부딪친 화자는 '가시리'를 세번이나 반복하면서 믿을 수 없는 상황에 대한 진위(眞僞)를 확인하고자 한다. 2절에서는 님이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걱정하며 이별이 구체화되는 데 따른 화자의 불안한 감정을 드러냈다. 3절에서는 님을 붙잡고 싶으나 서운하게 하면 님을 다시 못 볼 것 같아 애써 자제하는 모습이 나타난다.
4절에서 화자는 님을 떠나 보내기는 하나 빨리 재회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소망을 제시하면서 작품을 마무리짓고 있다. 각 절에서 보이는 시상전개의 방식은 한시의 절구(絶句)를 짓는 기승전결(起承轉結)의 방식과 대응된다는 지적도 있다. 여성화자를 설정하여 이별의 정한을 애틋하고도 절절하게 노래하는 이 작품의 정서는 근대시인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에도 맥이 닿아 있다.
|
--------------------------------------------------------------------------------
⇒임이 떠나는 것을 차마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이별의 사실을 거듭 확인하고 있다. 떠나지 말라는 애원을 담고 있는 표현
날러는 어찌 살라하고 ⇒이별에 대한 옛날 우리 여인의 전형인 수동적 자세가 드러나 있다.
님 잡아 둘 것이지만 ⇒떠나는 임을 붙잡고 싶지만 그러면 영원히 나를 떠나 버리지 않을까 하는 염려를 담고 있다. 임을 보내는 서러움이 절제된 가운데 드러나 있다.
서러운 님 보내옵나니 ⇒'셜온'의 주체는 임이 아니고 임과 서러운 이별을 하는 서정적 자아이다. '가시 듯 도셔오쇼셔'는 '가시자마자' 돌아오기를 기원하는 은근한 역설적 표현으로, 언제까지나 떠난 임을 기다리겠다는 간절한 기다림의 정서를 드러내고 있다. 함축적으로 주제가 드러난 부분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