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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계산기

작성자이승훈|작성시간04.04.13|조회수182 목록 댓글 0
.1 고대의 셈

인간이 셈을 하기 시작한 것은 이미 선사시대부터 였다고 한다. 뼈 조각이나 조약돌을 사용한, 지금의 유치원생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선사시대 사람들은 계산과 내용을 기록할 목적으로 점토로 구운 석판과 파피루스(papyrus)를 고안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 기원전 1800년경 바빌로니아에서는 복리계산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 지역에서 발굴된 점토판 위에 곰보자국으로 쓰여진 설형문자는 연리 20%일 때 곡식을 두 배로 늘리려면 몇 년과 몇 달이 걸리는가를 분명히 말해 주고 있다고 한다.

현대에 계산기하면 컴퓨터 또는 전자계산기(calculator)를 대표적으로는 생각한다. 그리고 조금 더 거슬러 생각하면 주판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인류 최초의 계산기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손이다. 손을 사용하는 그 첫번째 방법은 물건과 손가락을 일대일로 대응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계산법은 10을 넘어 가면 계산이 불가능해 지역마다 다른 방법으로 이의 해결 방법을 모색하게 되었다.

인도와 중국남부에서는 손가락 마디를 이용하여, 28까지 헤아릴 수 있었다. 뉴기니의 파푸스족은 열손가락, 손목, 팔꿈치, 눈, 코, 귀, 발가락, 엉덩이를 이용하여 41까지 계산하였다고 한다. 이와는 달리 몇 사람의 손가락을 모아서 보다 큰 숫자를 표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일대일 대응에는 한계가 있었다.

두 번째 방법으로 두 손을 부호화하기 위한 노력들이 더해졌다. 예를 들어 주먹을 쥐면 50을 의미한다든지, 손바닥을 아래로 향하면 100을 의미한다고 하는 등 여러 가지 방법이 모색되었다. 이미 수메르인들은 60진법을 사용했는데 신체를 어떻게 이용하여 왔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었다.

현대에서 셈을 한다면 손가락만을 가지고도 0에서 210(1024)-1까지 계산이 가능하지만, 잉카지역에서는 손가락을 쓰지 않고 기푸(guipu) 라는 도구를 사용하여, 인구, 통계자료, 세금, 노동자들의 급료 등을 계산하였다고 한다.

이외에도 현대의 credit card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는 새김눈에 의한 계산방법이 있다. 즉 무른 나무막대기나, 동물의 뼈에 눈금을 새겨 수를 표시하는 방법이다. 이는 아직도 우리 일상 생활에서 여전히 쓰이고 있다.

중세시대 각지를 떠돌며 장사를 하던 상인은 부목이라는 것을 사용하였다. 부목은 두개의 나무 작대기를 나란히 두고 사고 판 만큼의 양을 두개의 막대기에 그어 이를 당사자가 나누어 가지고 있다가 후에 외상값을 계산할 때 등에 사용하였다. 현재의 사인하다(sign) 라는 표현이 눈금을 긋다라는 라틴어 signare에서 유래한 것을 보면 이의 사용을 짐작케 한다.

그런데 한가지 놀라운 사실이 발견되었다. 현대 컴퓨터의 원리와 완전히 일치하는 기계식 계산기가 뉴기니의 북서부 해안에서 출토되었다. 기원후 850년경으로 보이는 이 계산기는 노끈과 도르레만으로 구성된 훌륭한 멀티플렉서(multiplex)이다. 결국 이 기본 게이트들을 엮어서 현대의 전자식 컴퓨터와 같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두수의 아날로그적 합도 구할 수 있다. 그 복잡한 정도라든지 어떻게 이용했는지는 아직 알려진 것이 없다.

1.2 고대의 계산기

고대사회에서는 계산기의 필요성에 대한 요구가 있기는 하였으나, 이전에 밝힌 정도의 진척이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필요는 발명을 이끌었다. 로마는 대형제국을 형성하며 그만큼 많은 양의 계산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기원후 1세기경 개발된 로마의 휴대용 계산기는 이전의 계산 패나 부목과는 달리 제법 형식적인 틀을 갖게 되었다. 휴대용 계산기는 계산 판과 계산말로 구성되었다. 계산 판은 금속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0개 안팎의 홈이 세로로 파여 져 있다. 그 홈 위로 계산 알들이 굴러 다니며 계산을 하도록 되어 있다.

중국식 주판이 발명된 것은 이보다 2세기 정도가 늦은 기원후 3세기경이었다. 주판은 컴퓨터가 개발되기까지 십 수세기를 계산기의 왕자자리를 지켜 왔다.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주판은 2차 대전후 일본에서 개량된 것이고, 원래 중국식 주판은 가로막대를 기준으로 위에는 2개, 아래에는 5개의 알이 있었다. 이외에도 아직 컴퓨터가 제대로 보급되지 않은 동남아 일부에서는 주판이외에 스초티라는 러시아식 주판이 쓰이고 있다고 한다.

1.3 초기의 계산기

동양에서는 운지법 등의 향상을 도모한 반면 서양에서는 계산기기 자체의 개량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17세기 스코틀랜드의 수학자인 존 네이피어(John Napier, 1550-1617)는 복잡한 수의 간단한 계산을 위해 대수표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의 노력은 오트레드의 도움으로 계산자(slide rule)로 발전하였다. 이는 컴퓨터보급 이전까지 흔히 볼 수 있었던 공업용 계산자의 효시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로그(logarithm)를 발명함으로써 인류의 계산역사에 하나의 또 다른 지평을 열었다. 또 로그의 부산물로 네이피어는 사망하기 1년 전인 1617년 곱셈용 계산도구를 개발하였다. 네이피어의 계산봉(Napier's Bones)으로 불리우는 이 계산봉은, 1652년 파스칼이 만든 수동식 계산기의 등장으로 인기를 잃고 퇴장하게 되었다.

지방 세리인 아버지를 위해 1642년 19세의 파스칼은 계산기구를 만들었다. 파스칼린(pascalin)으로 불린 이 계산기구는 덧셈만을 수행할 수 있었다. 즉 톱니바퀴를 이용하여 기계적으로 덧셈을 하도록 만든 것이다. 이 계산기는 구두 상자만한 크기의 단순한 기계였지만 이후의 계산기 발달에 세 가지 중요한 원칙을 세웠다.

첫째 자리올림은 자동적으로 수행될 수 있고, 둘째 뺄셈은 다이얼을 역으로 회전시킴으로써 수행될 수 있으며, 세째 곱셈은 덧셈의 반복적인 수행으로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파스칼의 계산기는 (나중에 여러 종류가 개발되었지만) 일을 매우 능률적으로 처리할 수 있었지만 덧셈과 뺄셈이외의 연산은 할 수가 없었다.

파스칼의 계산기는 덧셈만이 가능하기에 큰 반응을 불러 일으키지는 못했다. 이를 해결한 사람은 바로 독일의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tz, 1646-1716)이다. 라이프니츠는 1672년 파리에 머물고 있는 동안 호이겐스와 같은 수학자와 연구를 하며, 천문학적인 숫자의 계산을 할 수 있는 계산기구를 발명하려고 마음먹었다.

본질적으로는 파스칼린과 같은 톱니바퀴식이었지만, 이 계산기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stepped cylinder로서, 9개의 이를 가진 커다란 기어들을 사용하였다. 각각의 기어는 크기가 달라, 보다 작은 기어들이 그 위에 위치하며, 각각의 기어들은 피승수를 표시하고, 커다란 기어의 대응되는 숫자에 맞춰질 수 있도록 위치해 있다. 커다란 기어들 각각의 완전한 회전 한번은 일단 피승수로 기록되며, 승수는 큰 기어들의 회전수로 표시된다. 비록 기계는 작동했지만, 그 결과는 대부분 믿을 수 없는 수치였으며 사용하기에 불편했다.

이러한 라이프니츠의 구상은 천공카드 시스템을 개발한 홀러리스를 거쳐 현대 전자식 컴퓨터의 기초가 되었다고 한다. 라이프니츠는 알고리즘과 관련해서 현재의 전자계산기에 원리의 가까운 발상을 가졌었다.

1786년 독일인인 뮬러(J.H. Muller)가 미분기(Difference Engine)라고 불리는 계산기를 발명했다. 뮬러 자신이 이 기계를 직접 제작하지는 않았고, 이와 유사한 기계들이 30년 동안에 걸쳐 찰스 배비지(Charlse Babbage, 1792-1871)에 의해 설계되었다. 배비지는 초대형 미분기(Largest Difference Engine)를 개발하려고 시도했는데, 이 기계는 숫자를 20자리까지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으며 인쇄된 결과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1812년에 배비지는 미분기(Difference Engine)가 로그(logarithm)와 같은 수학적 테이블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그러나 20년 동안의 노고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이 계산기를 만드는 작업을 중단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1832년 배비지는 미분기에 흥미를 잃고 새로운 기계를 고안해 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의 사후 그의 아들인 헨리 배비지가 1888년 1월 그의 아버지의 설계도에 의한 미분기를 만든다. 현재 그 초기의 작품은 오스트레일리아의 한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1.4 베비지의 해석기관

1833년 배비지는 해석기관(Analytic Engine)을 그의 일생을 마칠 때까지 사재를 들여 고안하였다. 이 기계는 미분기와 같이 결국 만들어지지는 못하였으나 현대에 들어 와서 배비지의 생각은 커다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왜냐하면 이 해석기관은 현대의 범용 디지탈 컴퓨터(general purpose digital computer)를 구성하는 기본적인 부분들, 즉 제어부분, 산술연산부분, 기억장치, 입출력장치 등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해석기관은 모든 범용 디지탈 컴퓨터의 본체가 된다.

배비지는 자신이 만든 기계의 작동을 제어하기 위하여 두 종류의 천공카드를 사용하려고 했다. 그는 기계의 산술연산부분과 산술연산의 형태, 또는 기억장치로부터 자료를 이동시키기 위하여 제어카드들을 사용하곤 했다. 설계된 대로라면 기억장치는 약5만개의 자리수를 포함할 수 있으며, 산술연산장치는 덧셈이나 뺄셈을 1초동안에 수행할 수 있어 약1분에 걸쳐 50자리의 숫자를 곱하거나 나눌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기계였다.

배비지의 해석기관에 대한 착상은 기발한 것이었지만 당시의 공학적 기술이 이를 뒷받침해 주질 못했다. 1871년 배비지가 죽을 때 그는 세상 사람들에게 단순한 괴짜로 보였지만, 그의 수학적 정밀 기계에 대한 개념은 오늘날에 와서 그 시대 과학의 업적들보다 휠씬 앞서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18세기동안 파스칼과 라이프니쯔가 발명한 기계들의 신뢰도를 증가시키기 위한 여러가지 시도가 이루어졌지만 그 당시의 공학기술은 더 정밀한 기계를 생산해 낼 능력이 없었다. 상업적 이용이 가능한 기본적 연산을 모두 수행할 수 있는 최초의 기계는 계수기(Arithmometer)이다. 그러나 19세기 말엽의 20년 동안은 계산기가 상업적 용도로 광범위하게 사용되지 못했기 때문에 약1,500대 밖에 제작되지 못했다.

1.5 상업적인 계산기

실제로 상업적으로 성공한 최초의 기계는 1884년 버러프(William Seward Burroughs, 1857-1898)에 의해 발명된 가산기(adding/listing machine)이다. 부기계원이었던 버러프는 1884년에 크랭크를 이용한 키셋가산기(key set adding/printing machine)를 개발하는 데 성공하자 이 기계를 생산할 회사를 설립하였다. 이 기계는 현대의 가산기가 갖추고 있는 대부분의 모형을 다 갖추고 있다. 이 기계가 도입됨에 따라 파스칼 이후 시작되었던 기계적 연산기는 드디어 실현화되었다.

1885년 펠트(Door Felt)는 실험적으로 여러 순서에 의한 키 구동 방식의 계산기를 설계했다. 1877년에 펠트는 컴프토미터(comptometer)를 제작하기 위해 타란트(Robert Tarrant)와 합작 관계를 맺었다. 이 계산기는 매우 성공한 것이어서 1902년까지 이 기계에 필적할 만한 어떠한 기계도 나오지 않았다.

1887년 프랑스인 볼레(Leon Bollee)는 곱셈을 함에 있어서 덧셈을 반복적으로 수행하지 않고 직접연산이 가능한 새로운 기계(BOLEE MACHINE)를 고안해 냈다. 이 기계는 돌출한 사각판 형태의 연속한 곱셈부분을 가지는데 이 부분들은 109까지의 정상적인 곱셈 기능을 가진다.

볼레가 마련한 이 원칙에 입각해 제작되어 상업적으로 대중적으로 성공을 거둔 밀리어네어(millienaire)라는 기계가 스위스에서 제작되었다. 이 기계는 곱셈을 연산하기 위하여 각 손잡이를 한 번만 회전시키면 가능했으며 다음 자리로의 자리이동이 자동적으로 가능했던 기계이다.


2.최초의 전자식 계산기

1946년 펜실베니아대학교에서 최초의 전자계산기 에니악(ENIAC:전자식 수치적분계산기)이완성되었다. 계산을 실행하는 회로는 진공관을 사용하는 전자회로로서 1/2000초에 덧셈이 가능했다는 당시로서는 경이적인 속도의 계산기였다. 프로그램은 계산기 전면에 있는 배선반의 배선에서 행해지는 것으로써 명령을 해독해내는 속도는 10분정도였다.
이 컴퓨터는 18800여개의 진공관을 사용한 무게 30톤, 길이 30m의 거대한 계산기로 10진법을 사용하였으며, 1초에 가감산은 5000회, 곱셈은 350회, 나눗셈은 170회를 할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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