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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드라마/연극

홈 드라마의 원형 구조, 나루세 미키오 '번개'(1952년)

작성자무비폴카|작성시간12.05.29|조회수76 목록 댓글 1

연출의 입장에서 '홈 드라마'란 무엇인가!'  를 생각했다.


나 자신이 홈 드라마를 즐겨보는 편이 아니지만

그러나 방송 짠밥이 몇년인가 !

...그럼에도 불구하고 홈드라마란 이런 것이다 라고 구체적 분석으로 잡히는 것이 없었다.


최근 HD로 화면이 넓어지고 가정용 수상기의 화면 자체가 40인치 이상으로 확대되면서

TV 드라마 란 것이 계속 진화하고 있다.

예전에는 20인치 이하 4:3 화면에서는 몹신이나 스펙터클 등을 극도로 자제하던

TV 드라마였는데 요즘에는 그렇지 않다.  


우리가 지금 준비하는 드라마는 아무래도 홈드라마 성이다

홈 드라마를 알기 위해서 홈 드라마를 찾아볼려며는 그 방대한 자료가 한이 없다..

현재의 홈 드라마는 주로 연속극의 형태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짦은 연속극이나 영화 등의 대상을 통하여 요즈음에 만들어지는 홈드라마의 원류를 찾아보려 애쓰게 되었다.


자료를 찾으니 일본 티뷔의 개국이 1953년이다.

<1953년 , TV국 개국과 함께 드라마가 시작된다. 지금은 믿을 수 없지만 , 생드라마도 있었다

NHK 도교 하츠네 여행·요시노산의 장소 (개국 기념의 무대물)

일본 TV 팩마을을 간다 (일본 최초의 연속 드라마)

그 후 「더·가드맨」등 지금은 전설로서 밖에 남지 않은 드라마가
여러 가지 제작된다>


티뷔 드라마와 영화는 여러가지로 비교 대상이다.

항상 티뷔 드라마가 쫓아가고 영화는 도망가는 형국이다.

지금은 티뷔 화면이 커지니까 영화는 3D로 도망갈려 하지만 그게 잘 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래서 이 것 저 것 생각하고 이 책 저 책 뒤적이다가 발견한 사람이 '나루세 미키오'감독이다.

'나루세'이전에 먼저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를 몇편 찾아 보았다.

형식미의 차원에서는 오즈의 영화들이 더 뛰어나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형식미가 더 뛰어나니 오즈의 영화들이 더 영화적이라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오즈가 그리는 세계는 나루세의 세계에 비해 인물들이 너무 나약하고 순응적이다. 

한결같이 좀 답답하다 해야 하나? (현재 각각 3~4 편 본 중간평가)

반면에 나루세가 그리는 인물들은 더 다양하다.



'번개' 라는 1952년 작품을 보았다.

끝 장면에서 엄마와 딸의 갈등이 폭발하고 그 카타르시스 이후 영화가 끝난다고 하여

우선적으로 찾아본 작품이다.


일본의 1950년대


우리는 그 때 한창 전쟁중이었지만

일본은 희망을 말하던 시기였다.

그래도 영화 속에는 자기들 패전 이후의 상처들이 곳곳에 드러난다.(경제는 발전하고 있었지만)


남자들이 전쟁에서 많이 죽다보니

전후 일본에는 이 영화 같은 가정이 더러 있었다고 생각된다.


장성한 4남매를 거느린 어느 엄마. 그런데 4남매의 아빠는 모두 다르다.


딸딸 아들 딸

그중 주인공인 막내딸 교코는 양품점을 하는 큰 언니 집에서 기거하며 도쿄 투어버스

가이드를 하고있다. 동양적으로 예쁜 눈매에 주인공 답게 야무지고 강한 인상이다.

우리 배우 '고두심'의 인상과 비슷하다.


아들은 참전 상이용사인데 자신의 몸에 총알이 두개 박혀있어서 그것이 언제 자기 심장으로 들어올지

모른다고 불안해 한다. 키만 크고 허약한 인상이다. 그러면서 직장은 가지지 않고 빈둥빈둥 하며

빠찡꼬에빠져 있다.


첫째 언니 미츠코는 마음이 약한 성격이다. 남편이 뇌출혈(또는 뇌일혈)로 급사하자 안그래도 장사가 잘 되지않는

양품점을 때려치고 엄마집으로 살림을 옮긴다.

남편의 장례 후 남편의  정부라는 여자가 간난아이를 업고 찾아온다. 이 아이는 당신 남편애니까 이 애 기르느라

자기 밥벌이도 못하는 형편이니 죽은 남편의 생명 보험금에서 2만엔을 내 놓으라고 요청 또는 강요한다.

죽은 남편을 사랑하고 마음이 모질지 못한 첫째 언니는 이를 외면치 못하고 교코는 그런 언니가 못마땅하다.


성격이 신경질적이고 간사한 둘째언니는  무능력한 남편을 무시하고 다른 남자 고토를 사귄다.

그 남자의 요청으로 막내 교코에게 돈 잘버는 남자 고토를 소개하지만 교코는 인간성이

별로로 보이는 그런 남자가 싫다. 


개성이 다르고 씨가 다른 네 남매를 키운 엄마는 아마도 그들을 키우느라 자기 성질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몸이 허약하여 집에서 빈둥빈둥하는 아들이지만 전쟁에서 살아온 것만도 감사한 마음일지 모른다.

그리고 둘째 딸에게 무시당하는 사위를 자기 집에서 기거하게 한다.


엄마 집으로 큰 언니가 집을 옮기면서 언니와 같이 살던 교코도 엄마집으로 돌아오게 되고

언니에게 무시당하는 형부와 언니의 새남자 고토와의 갈등이 폭발하고 엄마 집안이 번잡해지자

교코는 공기 신선한 교외 2층 방으로 따로 세를 나간다.

네 명의 남자를 거친 엄마와 언니의 현실을 바라보면서 남자를 믿지않고 독립심을 키우는 교코이지만

마침 새로 이사한 이층방, 그 옆집의 음악하는 대학생에게 순정을 느낀다.


이층에서 내려다보는 대학생네의 마당과 일층에서 올려다 보는 교코의 공간

그 아날로그적 일본의 공간 미학은 이 영화의 후반 상승과 잘 어울린다.


이 영화에서의 공간은 크게 세 곳이 삼각 구도를 형성한다.

엄마와 오빠가 함께 사는 집,   큰 언니와 주인공 교코가 사는 양품점 집,  교코가 새로 이사하는 교외 2층방과 그 주변


그 밖에 도쿄의 세느 강이라 일컬어지는 **강이 잠깐 나오고 커피샵, 교코가 버스 안내로 이동하는 긴좌거리,

큰 언니와 이동하는 여러 정감어린 길들, 죽은 형부의 유골을 모시는 절, 형부의 정부가 사는 이층집, 큰 언니가 잠깐

일하는 일본식 여관, 등의 공간이 나온다.


이런 공간들의 상관 관계,

이러한 인물 관계도,

가족간의 조그만 사건과 갈등 들의 연쇄반응 구조

는 오늘까지 우리 안방에서 되풀이되는 드라마의 원형적 구조의 하나라고 생각된다.


이 영화가 1952년 작이고 이후 1953년 일본 TV가 개국하고

안방극장이 생기면서 아마도 드라마들은 이러한 구성들을 가장 먼저 차용했으리라 생각된다.

영화에서 일하던 많은 사람들(주로 A급 이외)이 TV 드라마로 이동하였다.

그리고 이전의 영화에서 구사되던 형식들을 모방하고 차용하였다.


우리나라 경우,

KBS TV 개국이 1961년 12월 31일이고 최초의 민영방송 TBC가 1963년 이었다.

그 전개의 양상은 햇수만 조금 늦을 뿐이지 일본과 똑같다 할 수 있다.


그리고 영화들은 이러한 구성을 TV에 뺏기고 안방극장에 자기들 시장의 많은 부분을 내어주고

더 진화하는 극 형식을 찾아나서지 않으면 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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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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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ZRX_ZRRO | 작성시간 12.05.29 매우 훌륭한 작품 분석이십니다
    지금의 드라마 연출과 설정, 상황과 인물의 배치를 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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